AI는 자랑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자랑은 자신과 관련된 좋은 점이나 성과를 남에게 드러내어 뽐내는 행위(과시)를 뜻합니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결과물, 소유물, 재능 등을 알리며 인정받고자 하는 심리에서 비롯되며, 주로 show off, brag 등의 표현으로 쓰입니다.”
자랑은 뽐내고 과시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의미입니다.
퀘컴 롬 2-3을 보면 유대인이라 불리는 자들의 자랑은 하나님(17)이며, 율법(23)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과 관련된 가장 좋은 것이고, 고결한 가치라고 본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를 존귀한 자로, 또 가치있는 자로 인정받게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랑과 달리 그들의 삶이 보여준 모습은 자랑스러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지키지 아니하고, 심지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금한 것들을 행하여 그들의 자랑을 무색하게 하는 행위였습니다. 가장 고결한 것을 가지고 있으나, 그 고결함에 걸맞는 행위가 없는 자랑은 도리어 자랑거리를 욕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로 할례를 행하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율법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심히 무례하고, 악독한 행동이라는 것을 그들은 오랜 세월 습관이 되어버린 행동속에서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28~2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그들은 스스로 자랑하고, 스스로 칭찬하는 어리석은 유대인으로 묘사됩니다. 말씀을 맡은 유대인의 자리에서 육체만 남은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자랑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자랑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고, 그 자랑에 취해 스스로 저지르는 행동의 문제를 깨닫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는 종종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헛된 자랑과 비견되기도 합니다. 바울은 종종 자랑에 대해 말할 때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고전 1:31 고 말합니다. 또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바울의 자랑은 스스로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낮아짐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은혜에 걸맞는 행동을 하는지는 스스로 점검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자랑이며, 그리스도가 자랑인 것은 좋으나 그것이 자신의 삶의 모습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면, 우리가 입술로 그 자랑을 말하는 순간, 그 자랑을 부끄러움의 자리에 던지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의 모범을 본받아 십자가, 곧 고난이 자랑이 되고, 약함이 자랑이 될 수는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차라리 살면서 자랑은 하지 아니함만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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