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팃 포트에서 버스를 타고 카림아바드의 중심도로를 따라 발팃 포트로 간다. 발팃 포트 앞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놓은 버스는 호텔로 돌아가고 우리는 기념품 가게와 숙소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발팃 포트로 올라간다.
발팃 포트 매표소 앞에서 유튜브에서 보아 눈에 익은 관리인 아저씨를 만났다. 독특하고 재미있게 기른 수염으로 인해, 훈자를 방문한 모든 사람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다. 내 핸드폰에 저장된 그의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웃으면서 사진 촬영에 응해준다.
발팃 포트는 워낙 외진 곳이라 1974년까지 외부 세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750년 동안 훈자를 다스리던 왕 미르가 살던 곳으로 13세기 티베트에서 시집 온 공주의 고향 이름을 따서 발티트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녀 때문에 티베트양식으로 지을 때는 1층 구조였으며, 15세기 때 2층, 100년 전에 3층 구조였으며, 19세기말 영국인들이 처음으로 이곳에 도착했고, 1945년 훈자지역이 파키스탄령이 된데다 성이 너무 낡아 훈자 왕은 알팃 포트로 이사해 비어있다 1976년 왕이 죽은 후 오래 비워둔 성은 서서히 붕괴 조짐이 나타나게 되고, 훈자 왕의 후손은 이 성을 1996년 아가칸 문화역사재단에 기부하게 됩니다. 이후 재단은 복원을 시작해 1996년 성의 일부를 개방하게 되었다. '아가칸'은 이 지역 이슬람 지도자인데, 그의 후원과 가르침으로 이곳 훈자는 다른 곳보다 교육, 의료, 경제 등의 수준이 뛰어나다고 한다. 발팃 포트는 요새로서 높은 언덕 위에 있어 훈자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이 매우 좋은 곳으로 훈자마을에는 원래 망루와 요새처럼 만들어진 성벽이 있었고 발팃포트에도 감시탑과 요새가 있었지만, 1891년 영국군이 훈자를 점령하면서 모두 파괴해 버렸다. 현재 발팃 포트에는, 훈자 왕국을 지키기 위한 대포가 상징적으로 한 문 남아있는데, 대포 포문이 저 멀리 훈자마을 입구쯤에 조준되어 있는 것 같다.
성의 전체적인 모양은 가운데 원통형과 사각형 목조테라스가 있고 양 옆으로 흰색 벽이 있는 형태다. 성벽 구조는 알팃 성과 비슷해 빙하가 밀어낸 퇴적물 위에 돌과 흙으로 벽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올리고, 다시 돌과 흙으로 쌓는 형식이다. 그 성벽 위에 흰 벽의 3층 건물과 검은색 목조 건물을 세우고, 작고 좁은 창문과 평평한 지붕으로 이루어진 티베트 식 건축물이다.
출입구는 왕을 알현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고개를 굽히도록 알팃 포트와 마찬가지로 좁다. 부엌 살림도구와 천장의 창, 지하창고 등은 규모만 다를 뿐 알팃 포트와 비슷하다. 아담한 규모의 성은 크기에 비해 다양한 시설들을 가지고 있는데 미로처럼 작은 방들이 연결되어 있어 자칫하면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지하에는 곡식 저장시설을 마련해 두었고 식사와 잠자리 등 대부분의 생활은 2층에서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3층은 접견실이나 연회를 위한 공간 등이 있으며 특이하게도 성 내부에 감옥이 있다.
3층의 발코니에 서면 훈자의 구석구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북으로 길게 뻗 은 훈자계곡과 발아래 훈자마을, 발팃 포트 뒤 울타르 봉의 풍경까지 모두 볼 수가 있다. 옛날 훈자 왕들은 이 발코니에서, 훈자의 아름다운 전경과 백성들의 삶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또, 히말라야 산양인 아이벡스(Ibex)의 박제된 머리가 벽에 걸려있는데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눈바람 휘몰아치는 설산에서 빙하를 건너가는 한 마리의 아이벡스가 신비롭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신령스러운 짐승인 듯 여러 곳에서 문양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 안 박물관에는 마지막 훈자 왕과 왕족의 의상, 주방용품, 생활용품, 왕족들의 사진 및 훈자의 역사 등을 전시해 놓았다. 또 한편에는 역대 이슬람지도자들의 사진도 걸려 있다. 훈자는 시아파의 한 분파인 이스마일파라고 하는데 훈자 주민 92%가 추종하는 이 종단은 예언자 모하메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이스마일과 딸 파티마의 후손을 예언자의 정통 후계자(이맘)로 받들고 따른다고 한다. 현재 이맘은 아가 칸 4세인데, 하버드를 나온 인텔리이며 부자로 훈자지방의 도로포장, 여성들만을 위한 아가칸 여자고등학교, 파키스탄 제일의 아가칸 병원 등 학교와 병원 설립, 전통 건축물의 복원 등 많은 일을 하고 있는 덕분인지 훈자의 문자 해독률은 77%(파키스탄 평균 58%)이며, 30세 이하에서는 99%라고 한다. 이 종단은 삶의 질과 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해 공동체 삶을 강조해 훈자사람들은 잘 살지는 않지만,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한다. 다만, 전에는 세계 3대 장수마을로, '장수의 원인은 맑은 공기, 살구, 훈자 워터(빙하 녹은 물, 석회석이 섞여 회색빛이다)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장수마을이 아니라 한다. 훈자워터(사실 영양학적으로 이롭지 않다)도, 살구도, 맑은 공기도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암 같은 질병에 더 많이 걸린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식습관이 깨지고 인스턴트 같은 도시의 먹거리를 먹게 되고, 자동차 같은 문명의 이기가 건강한 생활 습관을 버리게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살구꽃 피는 파라다이스는 더 이상 파라다이스일 수 없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싶고 더위에도 지친 난 동행하던 룸메이트에게 먼저 내려가 그늘에서 쉬겠다고 하고 나 홀로 성 아래 주스가게 앞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일행들이 내려오면서 룸메이트가 나를 찾고 있다고 한다. 아마 귀가 살짝 어두운 룸메이트가 내가 한 말을 못 알아들은 것 같다. 잠시 후 룸메이트 김 형이 내려오고 서로 소통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하며 웃는다.
발팃 포트에서 조금 내려오면 울타르 빙하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훈자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는 해발 7,388m의 울타르 봉우리는 훈자 인들의 영혼이 깃든 산이자 그 설산의 빙하가 녹아내린 물은 훈자의 식수원이자 생명의 원천이다. 울타르 산이 나를 부르는 것 같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빙하까지 왕복 5~6시간이 걸리고 등산 안내인이 없으면 위험하다고 할 뿐만 아니라 70대인 내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하는데 룸메이트 김 형은 못내 아쉬워한다.
김 형과 인근 훈자 전통 레스토랑에서 훈자 식단으로 점심을 먹고 호텔로 내려오는데 일행들 중 젊은 측에 속하는 여자들이 아 가게 저 가게 들르면서 쇼핑을 하고 있다. 더위도 식힐 겸 이들을 따라 가게로 들어갔는데 그녀들이 캐시미어숄을 구입하면서 하나 구입해 아내 갖다 주면 좋아할 거라고 한다. 쇼핑에는 도통 관심이 없지만 그녀들의 권유에 하나 사자 룸메이트 김 형도 구입한다. 이 아줌마들 덕분에 이 가게 오늘 매출 좀 올렸다.
호텔로 돌아와 테라스에 앉아 훈자의 산과 마을 풍경을 보며 멍 때리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