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그리고 오늘
김 미라(2026/3월 한국문학예술)
기억 속, 언제나 그곳을 떠올렸다. 고향이라는 말과 내 나라라는 말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다. 그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같은 언어로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온전히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이국땅에 와서야 비로소 알았다.
이국의 시간 속에서 처음 느낀 것은 깊은 홈시크였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낯선 땅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예외는 아니었다. 나역시 그랬다.그 마음은 세월속에 스며들어, 오늘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느 봄날,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낯선 땅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새로운 시작의 설렘보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더 컸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곳에서 처음 겪는 두통이 머리를쑤셨고, 피부는 갈라지는 듯 건조했다.낯선 기후와 환경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시험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공포를 안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민을 준비하며 혼자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영어를 익혔다. ABC 순서조차 가물가물했던 상태였다. 이곳에 와서는 한국 방송 대신 현지 텔레비전을 틀어두고, 알아듣지 못하는 뉴스와 드라마, 코미디를 붙잡고 귀를 열었다. 몇 달이 지나자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고, 말도 더듬더듬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읽고 듣는 것은 가능해졌지만, 쓰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지인의 소개로 커피숍을 시작했지만, 가게를 인수한 바로 다음 날 건물 주인이 바뀌었다. 새 주인은 끝내 가게를 팔 수 없게 만들었고, 결국 가게는 기부하다시피 정리해야 했다.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문을 닫고 나오던 저녁, 마음에는 바람만 불었다.
25년 전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모르겠다. 원망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돌아보면, 그 두 마디가 당시의 불안과 흔들림, 그리고 지나온 고갯길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 시절, 정말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루 또 하루를 건넜다. 그때 한 친구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여섯 달만 머물겠다고 약속하고 그의 집에 들어가 청소하고 밥을 하며 지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도 함께 생활을 도우며 버텼다.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때 비로소 알았다. 정확히 여섯 달이 지난 날, 작은 집으로 옮겼다. 그 친구의 따뜻함은 삶은 다시 세우는 시작이 되었다.그덕분에 나는 다시 일어 실수 있었다.
간판 만드는 일을 했고, 카워시와 호텔 청소도 해보았다. 어느 순간, 이 방법으로는 오래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는 시내에 있었고, 집은 외곽에 있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세우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통학했다. 버스를 놓치면 수업에 들어갈 수 없어 다음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문 밖에서 서서 강의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ESL 수업을 통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다시 배웠고, 반 친구들과 인연을 맺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마주쳐도 서로를 기억하며 웃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흔들림도 지나야 했던 하나의 고갯길이었다.
비 오는 날에는 빗물 속에 눈물을 흘려보내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으며, 눈보라 치던 겨울에는 다시 올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 시간이 아픔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 준 추억이 되었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그 시간을 지나, 나는 단단해졌다. 잘 견디며 살아냈다.
비바람 속에서도 다시 고개를 드는 해바라기처럼, 오늘도 빛을 향해 선다. 감사 속에서,오늘을산다.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이 자리까지 데려온 모든 시간에게 조용히 고마움을 보낸다.
첫댓글 깊은 감동의 글 잘 읽었습니다
세월의 긴 터널을 잘 통과 하신 작가님께 마음의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주 안에서 참 평안 누리시며 건필 하사길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