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신에게 제사 지내보도록 하거라
내가 공장운영을 하다 보니까 깨닫는 게 참 많았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할수록 위기감이 발동하게 되고
신비한 것들을 많이 찾아 해결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이것은 일종의 현실도피이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심정으로 신비한 사람들을 찾아 해결 보려는 욕망의 발원인 것이다.
이것은 심령이 약한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공장운영은 전생에 지은 죄가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얼마나 힘들면 이런 말들을 할까?
내 주변 지인들도 전부 소규묘 공장운영자인데 한결같다.
대기업공장운영에 근무하는 분들하고는 그래서 격이 다르다.
소규모라 운영자금도 항상 부족하고 항상 돈 빌리려 다니는게 일상이다.
그러니 다들 사장들이 헐벗은 것처럼 삐적 말라 있다.
하루는 나도 공장의 빚이 쌓여 고민하다가 그 날 사무실에 눈을 잠깐 감고 있었다.
“공장 부지에 문제가 있으니 토지신을 불러 제사 지내보도록 하거라”
간략한 말이였지만
너무도 생생하여 눈을 번쩍 뜨자마자
주변에 제사 지낼만한 스님이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스님은 비싸서 안되고 베트남 스님을 한 번 불러봐야겠다.”
그래서 나는 베트남 직원들을 시켜 주변의 동네 사찰 스님들을 소개 받기로 하였다.
그런데 한국 호치민 영사관에서 근무하는 절친 한 사람이
자기가 베트남에 잘 아는 스님 한 분이 있다고 하면서 소개해준단다.
마침 그 사찰이 내 공장 주변과 무척 가까웠다.
“이것도 인연이겠구나. ”
싶어서 다음 날 바로 찾아가 인사드리고 그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진짜가 가짜인가?”
스님도 도력이 있고 없고 절차만별이다.
땡중 잘못 섭외하면 돈만 날린다.
“잘 살펴봐서 해야지 회사 공금 들어가는 것이니까.”
그런데 첫 인상이 별로이다.
손님 앞에서 담배 물고 대답을 한다.
여기도 분명 한국 사찰로 치면 조계종은 아닌 것 같다.
일반 개인 사찰이 분명하다.
“절도(節度)가 없네.”
한편으로는 실망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어디 다른 절을 찾기로 결심하였다.
그 날밤 꿈을 꾸는데 잘 자려진 제사상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그 상차림이 얼마나 푸짐하고 먹음직스러웠던지
악한 귀신도 행패부리려 들어왔다가는 대접받고 화를 풀고 갈 정도였다
특히 깜짝 놀란 것은
꿈속에서 그 상차림을 내가 흠향(歆饗)했더니
냄새가 전부 내 코에 살아났다.
맛있는 냄새가 꿈속에도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와! 맛있겠다”
하면서 잠을 깨었다
“사람은 겉모습으로 그 사람의 도력을 평가하면 안된다”
는 사실을 그때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하늘에서 나에게 또 다른 음성이 들렸다.
“제사 비용은 진찌우로 하거라”
여기서 진찌우는 9백만동을 말한다.
당시 직공 급여가 90만동 수준이였으니까 10배인 셈이다.
너무 비싸지 않을까요?
그 정도 가격이면 한국분 데려올 수도 있었다.
“기도하는 사람이 흡족해야 하느니라”
그렇다.
나는 거기서 깨달았다.
“기도해주는 법사가 돈 문제로 역심을 품으면 그 기도가 어찌 잘되겠는가?”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이다.
간명료를 깍아달라거나 복채비를 낮춰 달라는 분들이 계신다.
이것은 의사에게 병원비 좀 활인해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술사에게 간명료 좀 깍아달라는 말이니
그러면 그 간명이 어찌 정확해지겠는가?
활인된 가격만큼 짧은 미래를 보여주신단다.
나는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젊은 스님을 만났다.
돈 봉투를 들고 받아 달라고 애원하였다
돈 봉투를 이렇게 스님에게 주려고 갈망해 보기는 처음이다.
이게 바로 복을 비는 방법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부처님 전 당시의 비구들의 대화를 살펴 보자
"오늘은 누구에게 복을 짓도록 할까?"
"내가 공양지를 선택하는 순간 그 사람은 그날로 복을 짓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그런 스님들을 보고 구걸짓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모두 허망한 사람들인 것이다
당장 제사 날짜를 잡았다.
하늘에서 가르쳐준 귀인 스님을 만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게 깊은 인연이라는 말이다.
그 이후 일요일에 제사날을 잡아 봉행했다.
공장터는 멧돼지 터였다.
늙고 오래된 멧돼지 2마리가 병들어 보였다.
돼지터이니 복터는 맞는데 월남 전쟁 중에 죽은 유골들이 많았단다.
그 원혼들이 멧돼지를 병들게 만든 것이다.
그 공장주인은 미국시민권자였다.
내가 당신의 공장터를 대신해서 기도드린다고 말하니까 내심 좋아한다.
당시 2016년도에 한 달 공장 집세가 5000 달려였다. 공장 평수가 6000핵터였다.
6개월 모으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 들어오니 준재벌인 셈이다.
그 당시 베트남 일반 집 값이 3만불이면 구입이 가능했다.
물론 위치에 따라 집값이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 주인 부럽다 정말.”
첫댓글 ㅎㅎ...오늘도 잘읽고 갑니다^^
ps:나중에 책 내셔야 하실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