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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사”에서의 언약
날씨는 화창하고 큰 산에는 진달래며 벚꽃이 한창 핀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오래간만에 홍천에 있는 서봉 사를 가기 위해 식전에 서울 집을 나선 이광철은 1시간 반 만에 양평 용문에 도착을 하여 휴게소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추운 겨울을 지나고 사람들이 별반 나들이를 하지 않다가 날씨가 따뜻해지는데다가 모처럼 맞는 석가 탄일이라서 그런지 용문사로 향하는 차들로 길이 많이 막혔다.
용문에서 다시 출발을 하여 홍천읍에 도착을 한 것은 9시가 좀 지난 시간이었는데 오는 동안 차가 많지를 않아서 빨리 올 수가 있었다.
읍에서 서석까지 가려면 솔치재를 넘어야 하는데 오래 전에 터널을 뚫러서 시간이 많이 단축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너무도 오래간만에 오는 길이라 그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서석을 일러 옛날부터 장작때서 이밥을 먹는 고장이라고 하였다지만 공직자들이 서석으로 발령을 받고 솔치재를 넘어 올 때에는 이런 산골에서 어떻게 살겠나 하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막상 근무 연한을 마치고 홍천으로 돌아갈 때에는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 다시 솔치령을 넘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광철이가 오늘 서가탄일을 맞아서 가까운 절을 놔두고 멀리 홍천으로 가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는 초등학교를 서석에서 다녔고 그로 인한 인연이 지금까지 서석을 잊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광철이의 아버지는 군인으로 근무를 하시는 바람에 식구들이 아버지가 이동을 하는 때마다 쫓아다니면서 살아야 했다. 광철이 어머니는 몸이 약하셔서 광철이와 동생인 광근이 형제를 낳으신 후에는 병원엘 다니시는 것이 일과였다.
광철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는 인제에서 서석의 공병대로 이동이 되자 풍암리 장거리 부근에 셋방을 얻게 되었는데 엄마는 장이 가까워서 부식을 사먹기가 좋다면서 이따금 형제를 데리고는 장구 경을 시켜 주시며 광철이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자주 사주셨다.
장날이 돌아오면 무엇보다도 구경거리 중에 엿장수 아저씨가 장타령을 부르면서 북치고 장구치며 춤을 추는 것이 제일 재미가 있었다.
“ 여러분. 아저씨 아주머니들 그동안 안녕들 하셨나요. 이 엿장수 영월 평창 정선 원주 제천 장을 돌아서 오다 보니 한숨이 나가다가도 서석 장엘 오게 되면 힘이 생긴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거야 물론 여러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제 엿을 잘 팔아주어서 그렇지요. 그렇다고 이 사람 그 돈 벌어가지고 내 호주머니에 다 넣는 것이 아닙니다.
도와드리는 곳이 있어 서지요. 요즘에는 마을마다 경노 당이 생겨서 어르신네들에게 점심을 해드린다지만 지금부터 2.30년 전만 해도 어디 그런 곳이 있기나 합니까.
마을마다 어렵게 사시는 분이 너무 많으셨지요. 그렇다고 도와드리는 분이 많지 않다 보니 고생들을 많이 하셔서 이 사람이 동리에 갈 때면 쌀 한 가마니씩을 사서 드렸습니다.
남을 도와드리는 것이 내가 먹고 남은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절약을 해서 돕는 것이 더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한번 그렇게 해보세요. 어느 결에 복이 저절로 굴러 들어와서 집안이 무고하고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해서 출세를 하는 것이지요. 이 엿장수도 아들 둘을 키웠는데 맏이가 공부를 너무 잘 해서 고시(考試)래나 뭐 어려운 시험에 파스를 해서 지금은 중앙청에 계장으로 있습지요. 네. 작은 애요. 그 애는 선생으로 있는데 나를 닮아서 얼마나 부지런한지 쉬는 날이면 여기 엿판에 엿을 가득 담아 준답니다.
이런 때는 박수 한번 크게 쳐주시는 겁니다. 아니 한번만 치라니까 정말 말들 잘 들으시네요. 학교에서 모두가 우등생 노릇을 하신 모양이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닌가 봐요. 언젠가 제가 제천 장엘 가서 꽹과리를 두들기면서 엿을 신나게 팔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하는 말이 그 많은 직업 중에 왜 하필 엿장수를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그 아저씨 엿이나 팔아주시지 왜 남의 아픈 가슴을 두드리느냔 말이에요. 이런 때는 눈물이 난답니다.
저도 한때는 양친부모님을 잘 만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바로 시골에 면서기 발령을 받아 근무를 하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 바로 옆자리에는 아주 어여쁜 아가씨가 근무를 하더라구요. 그는 내 선임자였는데 초년병이라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업무에 대해서 자꾸만 묻다가 보니 이 눈이라는 게 바로 박히긴 하였는데 글쎄 서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아가씨 얼굴로 자꾸만 빠져든 거지 뭡니까.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도 나를 좋아하게 되어 둘은 어느 날 부터 아무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없다는 38선을 무단으로 넘나들게 되었고 앗다 누구를 탓 할 것도 없이 아기가 생겨 저는 바로 장가를 가게 된 것입니다. 아기는 결혼 한지 한 달 만에 태어났는데 망태 두 개를 짊어지고 나와서 나도 색시도 얼마나 좋았던지 퇴근을 하면 아기를 업고 안으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던 어느 날 밤이었지요. 자다가 갑자기 아기 몸에 열이 나기 시작을 하더니 눈이 돌아가는 경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둘은 겁이 덜컹 나서 아기를 안고 한약방으로 달려갔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아기의 열은 하늘에 닿았는데 약방이 잠겨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중에 아! 우리 아기는 뻣뻣한 채 숨을 놓고 말더라고요. 그렇게 아기를 좋아했지만 끝내 그를 붙잡지를 못한 우리 내외는 얼마나 슬픈지 한 달 내내 울기만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직장을 고만두고 산으로 들어가서 중이라도 되려 하다가 세상의 번민을 잊기 위해서 엿을 팔면서 살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말을 하다 보니 저의 지난 가슴 아팠던 이야기를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이런 때 박수 한번 쳐주세요. 그래야 제가 힘이 날게 아닙니까.
언젠가 건강에 대해서 티브이에서 강연하는 것을 잠시 들었는데 뭐 손바닥에 온 몸의 기가 다 들었다면서 하루에 손뼉을 백번 이상을 치게 되면 병이 다 도망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맞는 말이라면 박수 한번 쳐보세요. 딱 한번입니까. 기왕이면 많이 좀 쳐 보세요. 덕분에 나도 목을 좀 쉬어야 하겠네요. 여러 아저씨 아주머니 제가 이래 봬두요. 학교 다닐 때에는 웅변을 좀 하였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학교 마다 6.25가 돌아오면 반공 웅변대회를 하였지요. 웅변대회 하면 학급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만 몇 명 추려서 하였기에 다른 아이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 해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은 6.25가 가까워지니까 학급 별 웅변대회를 하라는 지시를 하신 것이지요.
그러자 지금까지 태평치고 있던 아이들은 집에 가서 형이나 누나에게 원고를 써 달래서 밤늦도록 외웠는데 나중에 들으니 원고는 본인이 쓰고 반듯이 암기를 해서 단 위에 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각 담임선생님들이 애를 잡수셨지요. 교장선생님은 전인교육 즉 모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은 누구나 다 같은 수준에서 해야 된다는 것이 교장선생님의 교육철학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과 후가 되면 전 학급 아이들이 웅변 원고를 외우느라 밤늦게 까지 집에도 가지를 못하였답니다.
6월 25일 3일전에 교실마다 반공 웅변대회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거기에서 뽑힌 학생들이 대결을 하는데 웅변이라고 하면 지금까지는 고학년 언니들만 입상을 하였지만 이번에는 2학년의 여자 어린이가 우승을 차지하고 군 대회에 나가서도 당당히 우승기를 타왔던 것이니 이렇게 아이들 중심으로 하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나는 겨우 학급에서 1등을 하였는데 모든 것이 소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에 느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꽤 오래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그 교장선생님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냥 들으시지만 말고 박수 좀 치시라니까요. 오늘 엿을 좀 팔기도 해야 하는데 얘기만 해서는 안 되겠지요. 지금부터는 20분간 세일 가격으로 엿을 드리겠습니다, 사시고 싶으신 분은 줄을 서십시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시고 싶으신 분만 사셔야 합니다. 아무래도 엿이 모자랄 것 같으면 할 수 없이 제가 영월까지 갔다가 와야 하는데 지금 그렇게 한다면 죽도 밥도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방법은 다음 장날도 세일가격으로 들이겠다는 약속어음을 발행해 드리겠습니다. 아저씨 아주머니들 어음 발행해보신 적이 없으시지요. 이 엿장수는 그래도 은행에서 하는 짓은 다 하고 다닙니다. 은행에서 발행하는 어음은 어떤 때는 휴지조각이 될 수가 있지만 이 엿장수의 그것은 절대로 그런 가짜는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이 엿장수는 다시는 이 장에 나타나지를 못할 테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박수 또 잊어버리셨군요. 내가 지금부터 질문을 해서 맞추는 분에게는 엿을 상으로 드리겠습니다. 첫째 ‘하루 쎄끼 밥을 먹어야 한다. 아니다’ “ 먹어야 한다.” 그렇지요. 여자는 시집을 ‘가야한다. 아니다.’ “가야한다.“ 세상에 이렇게 잘들 알아맞히시니 엿 하나씩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아! 그런데 세일을 하다 보니 정말 엿이 다 떨어졌네요. 지금부터 오시는 분은 어음을 부득이 발행을 하겠습니다. 어음 발행을 하자니 내가 직접 사인을 해야 하니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점심 안 잡수신 분은 이 시간에 장마당 한 바퀴 도시다가 맛있는 음식이 눈에 띄면 얼른 잡수시고 다시 오세요. 있다가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어느 날 광철이가 어머니를 따라서 장엘 나간 적이 있었다.
이날 시골에서는 할머니들이 취 찰떡을 해가지고 와서는 좌판을 벌렸는데 엄마가 사주신 떡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몰랐다. 엄마는 그 다음 장에는 풍년집의 막국수를 잘 한다니 먹어보자고 하셔서 갔더니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 방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사먹지를 못하고 돌아서서 나오다 보니 올챙이 국수라고 파는 곳이 눈에 띄자 엄마는 그리로 들어가셨다.
광철이는 올챙이도 먹는가 싶어서 의아해 하면서 들어가니 사람들이 노란 국수를 먹고 있었다. 엄마가 두 그릇을 달라고 하셨는데 올챙이국수라는 것은 색깔이 누렇고 먹어 보니 국수는 물렁물렁한 것이 후루룩 먹기는 좋았지만 맛은 없었다. 올챙이국수를 먹고 돌아 나오다가 엄마는 옷가게에 들려서는 푸른색이 나는 내 윗도리를 둘 다 사주셨는데 광철이가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하자 엄마는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라면서 형편대로 돈을 써야지 돈 절약을 할 줄 모른다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엄마의 그 말씀에 광철이는 모처럼 사주신 옷을 감사하게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엄마는 점점 아프기 시작을 하여 장엘 나가지 못하였는데 그 대신 아빠가 일요일 마다 형제를 데리고 장엘 가셨다.
한번은 서석 면사무소에 가서 지역의 생산물에 대한 자료를 살펴 보고 나서 면사무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공원엘 갔는데 거기에는 ‘동학전적비’가 세워져 있었다.
아버지는 동학란이 일어나게 된 동기를 말씀하셨는데 동학란이은 1892년 전라도 고부군에서 일어난 민란이라고 하셨다. 당시 고부군의 군수 조병갑은 농민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는 한편 무고한 백성들의 재물을 착취하는 학정이 계속되자 전봉준(녹두장군)을 중심으로 한 동학군이 관아를 습격하고 지방관서의 탐관오리들을 척결하며 초창기에는 관군들이 당하지 못할 정도로 세가 불었으나 점차 그 기세가 꺾인 동학군은 관군에 쫓겨 서석까지 와서는 전멸을 당하여 피가 낭자하게 흘러내려 자작고개의 이름까지 얻었으며 지금도 땅을 파게 되면 곳곳에서 당시의 전사한 해골까지 발견이 된다고 하였다. 광철이는 역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석이란 곳이 동학란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고장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가끔 서석면 풍암리의 뒷산인 아미산의 끝자락인 해발 675m의 고양산 산행도 광철이를 데리고 하셨는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개울물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며 흐르는 것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참으로 아름다웠다.
광철이가 5학년 여름방학을 맞은 때의 일이다 . 그때 아빠는 모처럼 사흘간의 휴가를 얻었다면서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 가까운 곳으로 피서를 가자고 하셨는데 차를 타고 보니 내면쪽으로 들어가는데 뱃재 밑에 미약 골이라고 하는 곳에서 차를 세우시는 것이다.
“ 광철아 .여기가 홍천강의 발원지라고 하는 미약 골이라고 하는 곳인데 이 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보존지역으로 홍천에 이렇게 아름다운 피서지역이 있다는 것은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다.”
광철이는 아빠의 말씀을 들으면서 학교에서 한 번도 배우지 않은 곳에 대해서 아빠에게 듣고는 아빠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곳 서석의 생곡 리에 위치한 미약 골은 울창한 숲이 우거지고 맑은 계곡물이 항시 흐르는 곳으로 도로에서 500m 쯤 떨어진 계곡으로 들어가서 천막을 치게 되니 무더운 여름이지만 밤저녁에는 이불을 덮어야 잘 수 있을 만큼 피서지로서는 너무도 좋은 곳이었다.
엄마는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마셔 보더니 지금까지 아프던 몸이 금방 나은 것 같다면서 여기에서 한 달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까지 말씀을 하셨다.
이튿날에는 미약 골 상류까지 올라가 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는데 상류로 올라갈수록 소나무며 갈참나무가 잔뜩 우거져서 하늘이 잘 보이지를 않았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다닌 탓인지 산을 오르내리는 길은 나무뿌리가 훼손이 되기도 하고 어떤 곳은 나무가 쓸어져 길을 막기도 하였다. 40여분가량을 올라가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다시 한 구비를 돌자 저만치 30여m가량 높이의 폭포에서 명주실 같은 물살이 영롱한 무지개 빛깔을 내면서 떨어지고 있었다.
“ 광철아 . 엄마하고 올라왔더라면 너무도 좋을걸. 그랬지.”
“ 아빠. 다음에 엄마가 낳으시게 되면 한 번 더 올라 오세요. 네.”
광철이가 말을 하자 아빠는 대답을 하시지 않은 채 폭포만 바라다보고 계시더니 아이들을
불러서는 들고 온 물병 안에 물을 버리고 새물을 담아서 엄마를 갔다 드리라고 하셨다.
폭포물이 쉬지 않고 떨어지다 보니 시원한 바람은 자꾸만 어깨를 움츠리게 하였다.
폭포 물을 병에다가 담으니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얼음물처럼 차가운 것을 아빠에게 갔다
드리자 아빠는 아무 소리도 없이 한 병을 다 잡수신 다음에 물맛이 너무 좋다고 하셨다.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은 후에 시간이 꽤 되었으니 내려가자는 바람에 아빠의 뒤
를 따라서 계곡을 내려오자니 아까 갈 때에는 꽤 먼 것처럼 느껴졌는데 가까워진 것 같았
다.
가족들은 하루를 더 묵고는 집으로 내려왔는데 엄마는 거기에서는 기분이 마냥 좋다고 하시
더니 집으로 돌아오시자 아픈 증세는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엄마의 병은 심장질환이라고 하였는데 일주일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병원에 다
녀 오시고 나서 한 이틀 동안은 아이들을 챙겨 주시다가도 그 다음에는 기운이 없다면서 누
워 있을 때가 많았다.
광철이가 6학년으로 올라가자 학교에서는 학예회 준비를 하였는데 그때 서울에서 전학을
온 김순례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서 학예회에 뽑히게 되었다 . 순례의 아빠도 군인으로
광철 아빠부대로 전속이 된 것을 알게 되자 둘은 은연중에 급속도로 친하게 되었다.
외동딸인 순례는 얼굴도 예쁘지만 노래를 정말 잘 불러서 반의 남자 아이들은 모두가 순례
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렇지만 순례는 전학을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행동을 여간
조심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먼저 학교에서 순례 때문에 두 아이가 서로 싸운 적이 있었기 때
문이라고 하였다.
학예회에서는 순례가 춘양이로 광철이가 이 도령 역할을 하였는데 학예회가 끝나자 광철아
빠는 순례아빠에게 아이들이 수고를 하였으니 서봉사로 가족이 함께 놀러가자고 하였다.
가족이 다 모였다고 해봐야 광철네 식구는 넷이고 순례네는 단 세식구여서 음식준비는 많이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순례네 아빠가 다 맡는다고 하였다.
광철이 아빠는 서봉사 뒷개 울의 모래사장에 천막을 쳤는데 서봉 사를 끼고 휘돌아나가면
서 흘러가는 개울물소리는 새소리와 더불어 교향곡의 음향처럼 울려 퍼졌다.
점심을 먹는 동안 두 아빠들은 술이 취해서 서로가 아들자랑 딸 자랑을 하는 사이 두 엄마
는 개울물로 나가서 달팽이를 잡자 광길이도 따라 나섰다.
둘만 남게 되자 광철이가 순례에게 눈짓으로 서봉사로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 엄마 우리는 서봉사 한 바퀴 돌고 올게요.”
“ 그러려무나. 절에 가면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는 것 잊지 말 거라.”
“ 네 엄마.”
순례는 손을 흔들면서 개울에서 앞장을 서서 절로 향하자 광철이도 뒤따랐는데 소나무 숲길
을 돌아 나가다가 갑자기 ‘어마나’ 하며 순례가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 왜 그래 응,”
광철이는 얼른 순례 앞으로 나서면서 순례의 얼굴을 쳐다보니 겁에 잔뜩 질린 모습이다.
“ 저기 보란 말이야.”
순례가 가리키는 곳에는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가 스르륵 자리를 옮기는데 순례는
무섭다고 몸을 틀면서 제 자리에 앉는다.
“ 괜찮아. 일어나. 뱀이 지나갔단 말이야.”
그렇지만 순례는 몸을 떨면서 일어나지를 않는다.
“ 꽨찮대두 그러네. ”
순례가 그래도 일어나지를 않자 광철이가 어깨를 쪄 잡아 일으키려 하자 순례는 그래도 무
섧다고 하는 것이다.
광철이는 순례의 뒤에서 가슴을 덥석 끌어안으면서 일으켜 세우니 순례는 갑자기 눈을 흘기
면서 광철이의 등때기를 후려쳤다.
“ 왜 그래 뭐 내가 잘못 했냐.”
“ 잘못하나 마나 . 여기가 어딘데 함부로 만지느냐 말이야.”
“ 하도 일어나지를 않아서 그랬는데 .”
“ 내 몸에 함부로 손을 대지 마.”
“ 그럼 무섭다고 하지를 말아야지 . 야, 저기 또 .”
“ 뭐야.”
순례는 순간 다시 비명을 지르면서 이번에는 광철이에게 달려들자 광철이는 저도 모르게
그를 꽉 끌어안았다. 광철이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순간 순례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갔다 대기까지 하였다. 순례는 그제야 정신이 났는지 떨어지려고 하였으나 광철은 놓아주지
를 않았다.
“ 이거 놓아. 어른들이 보신단 말이야.”
“ 보기는 누가 본단 말이야. ”
광철이는 대담하게 이번에는 순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 내가 송아지야 . 잡아끌게.”
“ 춘향아. 이 도령이 납시신 것을 몰라본단 말이냐.”
“ 학예회가 끝 난지 언제인데 아직도 나를 춘향이로 착각 하냐.”
“ 영원히 내 춘향이로 만들거야 .”
“ 뭐야, 누구 마음대로.”
둘은 서봉사로 올라가서는 대웅전의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 무어라고 축원 드릴 건데.”
“ 여기 장차 부부가 될 광철이와 순례가 엎드렸나이다. 그렇게 해.”
“ 뭐야.”
순례는 아까보다도 더 세게 광철이의 무릎을 손바닥으로 치는 것이다.
‘’ 부처님이 너를 똑바로 보신단 말이야. 순례는 광철이를 남편으로 삼거라 하시면서.“
“ 너 있다가 죽을 줄 알아. “
“ 그런 소리 하지 마 . 내가 오늘 갑자기 너를 좋아하는 게 아니고 학예회 때 벌써 선생
님께서 정해주신거야.”
둘이 대웅전을 나오게 되자 이번에는 순례가 광철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하였다,
“ 난 사실 시골로 전학을 오는 것이 싫었는데 학예회를 하면서 시골학교가 너무 좋아졌
다.”
“ 시골학교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신랑이 좋아졌겠지. 아니야. 하하.”
“ 못 말리겠네.”
“ 순례야. 우리 여기서 약속 한 가지할래.”
“ 그게 뭔데 그래.”
“ 생각해 보니 오늘 우리의 만남이 보통 만남이 아닌 것 같으니 우리 15년 후에 여기서
한번 만나기로 하면 어떨까.”
“ 그때가 대학을 졸업을 하고난 후가 될 걸.”
“ 어쨌거나 너하고 나하고는 이제는 잊어버릴 수가 없게 된 것 아니니.”
“ 15년! 그때 우리는 어떻게 변할까.”
“ 아무튼 15년 후의 사월초파일날 서봉사에서 11시 정각에 만나기로 하자 . 그 대신
아무도 데려오지 않기야.“
“ 왜 그런 소리를 해.”
“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이런 노래 알고 있겠지.”
“ 난 또 뭐라고. 그런 것 생각하지 않기.”
순례는 손가락을 내밀었고 둘은 눈을 똑바로 맞추며 손 가락지를 오래도록 풀지 않았
다.
1학기 방학이 시작되자 광철이는 해마다 가던 외가댁에 가서 한 달 동안을 있다가 2학기
개학날 아침 일찍 등교를 하니 학급의 아이들이 다 왔는데 순례가 보이지를 않았다.
여자아이들에게 살며시 물어 보았지만 아무도 아는 아이가 없었는데 조회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김순례가 방학 동안에 전학을 갔다고 하셨다.
나중에 아빠에게서 들으니 보급품 분실의 책임을 지고 순례아빠가 갑자기 징계를 받고 전속
이 되었다는 것이다.
광철이는 그 소리를 듣자 한동안 학교에 가기조차 싫었다.
방학 동안에 집에 있었더라면 순례가 가기 전에 한번 만날 수도 있었을 턴데 하는 아쉬움
이 한동안 광철이의 마음을 외롭게 하였다.
서봉사로 들어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나들이옷을 차려입고 가고 있었다.
삼신산이 가까워 올수록 광철이의 마음은 순례를 만난다는 설렘 때문에 시야가 자꾸만 흐
려지는 것이다.
‘ 순례가 오늘을 잊지 않고 와서 기다릴까.“
문득 대웅전 앞에 엎드렸던 생각이 나는 것이다.
“무어라고 축원 드릴 건데.”
“여기 장차 부부가 될 광철이와 순례가 엎드렸나이다. 그렇게 해.”
金 斗 洙
‣농민문학 소설 (10)
‣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 경기대학교 출신문학회 회장
‣ 韓日親善(日本鳥取縣西伯郡) 蹴球.文化 交流協會長
‣ 제 8회 세계문학상 (소설부문)대상 (세계문협 13)
‣ 수필집: 손뼉 치며 나는 새 외 1권
‣ 단편소설: 고향의 향기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