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소리 선교회(Sky News mission)
설교말씀 : 박찬덕 선교사
2021.08.15 야곱의꿈 베델 사닥다리3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서 지금 일편 이편에 이어 삼편을.지금 여러분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3편의 말씀은 매우 영적인 의미가 중요한 것이므로 여러분들이 많이 묵상을 하고 정말 시간이 있을 때마다 이 말씀을
찾아가면서 여러분들이 더욱더 깊이 연구해야 될 이러한 내용들입니다
이 성경 처음부터 계시록 끝까지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신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 성경 전체에 대한
얘기를 이 말씀으로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온전히 깨닫게 된다면
여러분의 믿음이 생명나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도무지 한시도 떠나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라는 것을 아시고
주님과 밀접한 정말 동행하는 삶 임재하시는 삶을 누리게 될 것을 제가 바라보면서 이 말씀의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우리 사람을 지으신 이유는 별 볼일없는.
아무 가치도 없는. 흙으로 지어진 인간을 생명나무 곁에서 생명나무에 과일을 따먹은
베드로 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그러한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하였을 때 너는 이제부터 너의 이름을 반석이라. 베드로 반석이라. 하리라 라고. 그 베드로의 이름을 일반된 하나의 조약돌에서 크시고. 영원하신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반석 위에 올려놓음으로 말미암아 그 반석 위에 올려진 베드로라는 그 조약돌이 빛나고 가치 있고
존귀하며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님과 연합되어 짐으로 말미암아 또한 귀한 보석 같은 존재로 변화된다 라는 이런 놀라운
일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흙이 아담아 흙의 사람 붉은 사람 붉은 흙이라는 이런 존재가 예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와 그리고 그 근원인 생명나무의 과일을 따먹게 되면 산돌이 되고 그 산돌이 또 변하여흘러 내려가 여러
가지 연단의 삶을 거치면서 아름다운 정금과 진주와
호마노 (12가지 형형색색)의 그러한 열두 기초 석에
아름다운 보석 같은 존재로 변화된다 라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의 목적은 바로 이 흙의 존재를 산돌이 되게 하고.
이 산돌이 성령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전을 짓는 건축을 하는 귀한 재료인 보석 같은 존재들로 만드는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뜻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알고 있고 뜻을 알고 있는 사단이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죠 가인을 통해서 아벨을 죽이고 그리고 가인의 후손인 그 에녹을 낳았을 때 그 도시의 성을 에녹성이라고 부르게 하여 사단이 마귀가 충동질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과 같은 비슷한 그런 집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짜 성을 가짜 집을 내놓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집이 만들어 지면은 자기 자신이 멸망당할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사단은 목숨을 걸고
이 하나님의 집이 만들어질 이 흙과 같은 이 존재들을 그냥 흙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아름다운
성 화려한 성 도시 성을 만들어놓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 안에 가두어 놓고 그 안에서만 살게 함으로. 말미암아 흙 더
이상의 존재로 변화될 수 없는 자들로 만들어 놓는다 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만하는 것이고 얼마나 거짓말하는 자고 미혹하는 자입니까.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집들을 만들기 위한 귀한 보석 같은 존재들로 되는 길을 발견하여서 그 보석이라는 그 존재자들로 만드는 삶의 길을 가게 된다면 마귀는 그야말로 패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목숨을 다해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그 흙의 존재자들인 인간을. 그냥 흙으로서의 삶 만을. 살게 하기 위해서 도시라는 이 성 안에 가두어 놓고 거기에 온갖 좋은 것도
만들어 놓고 눈을 돌리게 하고 귀가 쏠리게 하여 그 안에 정신 팔리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그렇게 만들 때마다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바로 모든 인류를 멸절시키고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집인 그 노아 방주를 통해서 노아의 식구 8명을 구원하여서 그 후손들을 통해서 또한 이 흙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만들어진 그들을 산돌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집을 짓기 위한 놀라운 가치 있는 보석 같은 존재자들로 그렇게 다듬어 가꾸어서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노아와 가족을 하나님께서 분별하시고. 구별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 노아의 후손들이 또 뱀에게 금방 이렇게 현혹되고 미혹되어서 그만. 에녹성에 이어서 바벨탑이라는 바벨성이라는
것을 건축을 합니다.이 바벨이라는 뜻은 뭡니까 이름은 너무나 좋습니다. 그럴 듯하죠. 99.9%로 모방품입니다.
아주 너무나 아주. 마치 자신들이 그 바벨성을 만들어놓고 하나님의집. 신의집. 신의문이라고 그렇게 그럴듯하게 이름을 붙여 넣습니다 .신의 집이라고요. 어째서 그게 신의 집인가요. 그. 뜻은 바로 바빌루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아카드어 혼란이라는
뜻이야. 혼잡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만드시고 난 후에 이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이 창세기 1장 28절 아담에게 주신 그 땅에 충만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이 또한
마찬가지로 노아에게도 이 9장 1절을 통해서 똑같은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러한 명령을 그에게 내렸지만 이 노아의 후손들은 오히려 흩어짐을 막고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 드러내고 그리고 홍수라는 것이 다시 한 번 자신들에게 임하게 되면. 그 홍수를 피하여 안전을 도모하자. 자신들의 생명을 보호하자 라는
의미에서 바벨탑을 높이 바벨 성을 높이 쌓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보시고 내려오셔서 흩으십니다
바로 9장 4절과 8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거기에서 그들을 온 주변에 흩으심으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라고 창세기 11장 4절과 8절에 나옵니다. 그들이 쌓은 것은 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 그 바벨이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집. 신의 집. 신의 문
하나님의 문입니다. 그러니 마귀가 얼마나 그럴 듯 하게 똑같으게 하여튼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그 보석이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전을 꾸미고 장식하고 아름답게 표현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님의 법 계명을 그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그대로
그 아름다운 보석이 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그것들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아름다운 존재자들로 만들기 위한 것을 가로막고 방해하고 그것을 못 만들게 하기 위해서 정말 너무나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정말 끊임없이 그림자처럼 쫓아 다니는 그 마귀의 행태를 우리가 이렇게 확연히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교만함을 이렇게 흩어지게 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언어를 혼잡케 하십니다. 그래서 혼잡게 하셨다. 섞어 놓았다 서로 흩어지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이 바벨이라는 이름이 나중에는 하나님의 바벨 흩어짐 흩어지게 하는
언어의 혼란스러움을 갖고 오게 함으로 말미암아 섞어졌다 혼잡해졌다라는 이 바벨이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계시록에 계속 바벨론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것 또한 거짓된 복음 잘못된 오류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참 진리 참 복음을 전해 듣고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져서 하나님의 집을 만들게 되어야 되는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만 곁길로 빠져서 다른 것을 택하게 되는. 다른 것을 결정하게 되는. 그러한 오늘날의
교회들을 향해서 우리 주님께서 경고의 메시지로 바벨론에서 너희가 나와라 나와라.
그들이 받을 심판을 피하라. 그들이 받을 재앙을 너희는 받지 말라 라고 간곡한 호소로
정말 눈물의 호소로 계속 기별자 들을 통해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을 통해서
그 바벨론 잘못된 오류를 전하고. 혼잡하게 하고 참 진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들로부터
내가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라고 간곡히 이렇게 호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가 저번에 그 얘기를 드렸죠.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때 그 방주의 안팎의 역청을 칠하는데 그 역청이란 뜻이 바로 어떤 뜻이냐 하면 속죄라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보혈의피 보혈의 공로로 상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코페르 역청 속량 속죄란 뜻입니다. 덮는다 감싸준다 없게 해준다. 이러한 나무에
진의 일종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보면은 나무의 진인지 아니면 그 콜타르. 오늘날에 말하면 아스팔트를 만드는 그러한 기름에 어떤 원료의 진인지 확실하게 이렇게 구분이 안 됩니다만 하여튼 원문에서의 뜻을 보면 속량 속죄피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보혈에 확신을 가지고 살라라는 얘기죠.
그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방주에 이 보혈의피를 바름으로 말미암아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듭난 자들이 바로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죄의 충동과 그다음에 유혹들과 그다음에 마귀의 시험들과 그리고 여러 바깥에서 오는
외형적인 바깥에서 오는 죄의 어두운 그림자와 공격을 막으라고 바깥과 그리고 안에 이 속죄의 피 역청을 바르라고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단불에 피를 바르고 속죄함을 받는 것과 똑같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한 애굽에서 탈출할 때 우슬초로 문지방과 좌우 문설주 상인방과 하인방에 이렇게 바름으로 말미암아
그 집 안에 있는 자들을 보호한다 라는 이 피를 바르는 행위 구속의 행위가 이 역청이라는 속량과 속죄의 뜻에 감춰져 있다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안팎으로 칠했다 라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의 능력을 통해서 에베소서 4장 27절은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라고 마귀가 역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력 보혈의 능력임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6장 14절에 너희가 역청으로 안팎에 칠하라. 세속을 멀리해야 되죠. 세상의 유혹들을 분리해야 됩니다
이러한 내면의 또한 죄의 충동들을 이렇게 우리가 물리쳐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아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역청은 편백나무와 같은 기름이 있어가지고 냄새도 제거하고. 해로운 미생물도 제거 하는 그 짐승들과 함께 수많은
이 세상에. 산재에 있던 그런 짐승들과 함께 산 이 얼마나 부정하고 더러운 냄새들이 많이 났을까요
그때 이 냄새를 제거하는 것이 역청 속에 마치 편백 나무 속에 있는 기름처럼 또 독소를 제거하는 것들이 역청에 있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안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 죄에 대한 독소 또 사망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나게 하는 소멸시키는 이런 놀라운 그런 능력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와 말씀 기도 속에 함께 이렇게 합류해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노아의 식구들이 구원을 받았음에 도 불구하고 그 후손들이
급속도로 사단에 충동질과 그런 사단의 그 정신에 빠져서 그만 바벨탑을 만들고 그리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 있는 그 아브라함이란 자를 따로 빼내십니다
구별하시고 분리하시고. 분별하여 주셔서 그를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자로 곧 그의 아브라함과 그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아름다운 보석이 되게 하므로 흙과 같은. 아무것도 아닌 그 이스라엘 지파들 그 열두 지파들을.
그 흙이란 존재에서 산돌이 되고 산돌에서 아름다운 보석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장막을. 하나님의 장막을. 짓게 하려는 그런 목적에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여러분 빼내어 주십니다.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계시록. 21장 3절에 마지막 장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3절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음에 여러분 여기서도 하나님의
장막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장막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음에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장막에서 곧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 더렵혀진 훼손된 이 지구를 새로 재창조하신 다음에
새 예루살렘 성 곧 하나님의 장막이 뭘로 만들어졌습니까 아름다운 보석들. 아름다운 존재들. 흙과 같은 존재였으나.
귀한 가치 있고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그러한 정금과 진주와 호마노 같은 그러한 보배로운 보석들로 만들어진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장막이 세워집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있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자들과 보석으로 만들어진 하늘. 나라에 들어가서 살기에 적합하고도 남음이 있는 그러한 거룩하고 의롭게 된 자들과 함께 거하여서
하나님은 왕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되는 그분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기 위한 하나의
처소를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지금 이토록 6천년 이라는 긴 역사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인내하시고 기다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뒤따라 온 롯 이라 하는 아브라함의 조카는 우상들의 성 인 바벨 성에서 바벨탑 에서는 구별이 되어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러니까 따라왔겠죠. 우상 숭배하는 그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빼내시고 그뒤를 따라 롯도 함께 동행했다 라는 것은 무슨 의미냐 하면 롯이 우상 들의 성 인 바벨탑의 사람들. 그 바벨탑의
정신에서 완전히 구별된 사람이다 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가 우상의 성인. 바벨탑 에서는 구별이 되어 있는데 그만 재산이
많아지고 양들이 짐승 떼들이 그런 가축들이 많아짐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약간 딴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막 생활이 아니라
뭔가 흘러내려 좀 편안하고. 조금은 좀. 안주를 누리기 원해서 바라보니 소돔이 마치 에덴동산 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터로
보였던 것입니다.
(창13: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소돔의 성으로 흘러 떠내려간 곳입니다. 누가 롯이요 바벨탑 바벨의
성 우상들의 정신이 있는 사탄의 사상과 철학과 정신과 그러한 동기들이 있는 곳에서 구별은 돼서 나왔는데 죄악된 세상들인 소돔성으로 들어갔어요. 소돔성은 바로 가인이 만든 도시성 그럴 듯하게 교묘하게 만든 에녹성과 같은 것이며 그리고 바벨
성 바벨 탑과 같은 것이었으며 우상들이었었죠 그 에녹성은 세상.어둠을 상징하고 있는 세상의 성이었죠. 그런데 지금
소돔으로 흘러 떠내려갔습니다.
죄악된 세상 죄악된 성으로 다시 들어간 거예요 .바로 마귀가 성공을 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13장12절에 그런 말씀이 써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그 장막이. 아브라함의 뒤를 따라 같이 동행하여서 계속 하나님의 집을 만드는 데 연단되어지고. 깎아지고 다듬어져야 되는데 그만 세상에 화려한 삶 세상에 죄악된 세상으로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거기는 그들이 꿈꿔왔고 그들이 바라왔던 하나님의 집을 꾸며나가는 그 재료들로 만들어지기에는 너무 세속적인 것이었고 부정한 것이었고 어둠이 있는 것이고.
너무 정욕과 탐욕과 이러한 분쟁과 다툼이 있는 육의 세상이었던 곳입니다 그 롯이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다 라는 그 성읍의 소돔 성읍에 그가 머무르길 원하여 그 장막을 옮겼습니다. 장막을 옮기니 결국 롯은 장막이 변하여.
그 소돔성에 있는 집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이 롯은 교회를 다니고 있는 많은 주님을 믿노라고 하는 교인들의 표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제단이 있는 장막에서만 살았습니다. 창세기 26장 25절은 이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후에는 야곱까지도
포함해서 이들의 삶은 그 25절에 26장 25절에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에 장막을 쳤더니
아직도 아브라함은 장막에서의 삶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참 집 참 성전인 하나님의 집을 만드는 재료가 되기 위해서는.
건축 자재의 놀라운 아름답고 가치가 있는 그러한 보석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장막의 삶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장막의 삶이 있어야 제단을 쌓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일이 생김으로. 말미암아 경외하고 섬기고. 말씀은
순종하고 명령을 지키고 준행할 때. 그들의 품성은 바로 하나님의 법과 일치되는 품성이 될 것이고 그들의 성품은 빛나고
깨끗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품성이 됨으로 말미암아 저절로 다듬어지는 것입니다
제단을 쌓을때.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을 가질 때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정말 공경하고 최대한 으로 섬기고. 예배를 드릴 때 인간의 품성은 다듬어지고 빛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소돔성 으로 들어가고야 말았습니다 창세기 33장18절에도. 모세 선지자는 이것을 계속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3장 18절부터 20절까지 야곱이 밧단 아람 에서 부터 평안이 가나안 땅. 세겜성에 이르러 그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 장막을 쳤지요. 19절.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100개로 사고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 로헤이 이스라엘 엘엘로헤이 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경배를 합니다 장막을 치고요 그때 이러한 이 재단을 쌓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삶을 살 때
예배하는 삶을 살 때 그분의 뜻대로 일치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그들은 보석으로 다듬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성령님께서는 그들을 아름답고 때로는 깨끗하고. 때로는 정결하게. 때로는 형형 색색의 여러 빛나는 놀라운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좋은 기쁨이 될 수 있는 그러한 보석 같은 존재로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변화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5장 21절은 뭐라고 얘기하냐면 이스라엘 이게 야곱에 대한 얘기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다시 발행하여 베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아브라함과 이삭만 장막을 쳤던 것이 아니라 바로 이스라엘. 야곱이 변하여 이긴 자가 되어서
이는 변화된 자입니다. 변화되었기 때문에 변화된 삶 장막에서의 삶을 고집하고. 그것을 끝까지 인내하는
마음으로 견뎠던 것입니다.
성도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의 믿음을 가진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보석들이 될 수 있다 라고 요한 계시록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육의 사람에서 야곱의 얍복 강가에서 어떤 사람으로 나타난 언약의 천사 곧 언약의 예수님을 통하여
놀라운 꿈을 계시를 받습니다 베델에서요. 그러나 그 전에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주님의 얼굴을 뵙기까지 그 전에는 유리하고 방랑하는 정말 집조차도 없었던 그가 아버지와 형님 에서를 속인 일로. 말미암아 목숨의 위협을 받고 멀리
하란 땅에있는 라반 삼촌 집을 향하여 정처 없이 떠나가고 있는 그때. 낙심과 절망에 빠져 있는 그에게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때. 꿈을 주시는데 그 꿈은 다름 아니라 사닥다리 놀라운 사닥다리 꿈이었습니다 야곱은 집이
지금 없었습니다 방랑자입니다 나그네예요 지금 멀리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삼촌의 집을 향해서 간 그에게 이런 일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은 이 야곱에게 아직까지는 이스라엘이 되지 않았죠. 아직도 육의 사람입니다만 그를 하나님의
그 집을.하나님의 성전을. 만드는 귀한 건축 재료를. 그가 그를 통해서. 만들고. 그가 대표자가 되어서 그 후손들도 그와
같은 자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꿈을 야곱에게 분명하게 확실하게 꿈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계시해 주십니다
어떤 것인가요.하늘의 집 하나님의 집이 이 땅과 맞닿았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28장 11절서부터 이렇게 쭉. 11절부터 이렇게 읽어보면 11절부터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한 곳에 한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와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내 자손에게. 주리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16절에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대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기름을 붓습니다.
그곳 이름을 베델이라 하였더니 이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베델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이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인 야곱에게 꿈을 통해서 자신의 목적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그 놀라운 꿈은 사닥다리를 통해서 바로 그 성육신 하시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위에 사닥다리
위에 계시고. 그 아래 사닥다리가 연이어져 있는데 땅에는 그 사닥다리가 이렇게 거기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왔다 갔다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으로 내려오게 할 수 있는 사닥다리를 본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그 사닥다리 위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성육신 하시기 이전이기 때문에 내려오실 수는 없었죠
십자가의 그 사건을 통하여 구속하신 다음에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인간들과 함께 동행하며 살며 함께 3년 반을 살았듯이 그렇게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하늘에서 있는 그 하나님의 집이 .성전 되신 그 예수그리스도가 땅으로 내려오 신다 라는 것을 꿈속에서
서 본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에 보면 꿈의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이 땅 위에 하늘의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놀라운 사실 아닙니까. 아니 우리는 하늘에서만 하나님의 집이 있는 줄 알아요 그것이 아니라 이 베델에서
야곱이 사닥다리 꿈을 통해서 보여준 것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의 집을 이 땅에서 세우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늘로 굳이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땅 위에서 하늘의 문이. 하늘의 집이 실현될 수 있다 라는 것을 미리
예시하신 것입니다. 예표로 보여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집입니다 지금 야곱이 꿈을 통해서 본 것이 하나님의 집이 하늘에 떠 있습니까 아닙니다
자기가 지금 그 경험한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그 사닥다리 위에 있는 분을. 보므로 말미암아 그 사닥다리를 통해서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네요 그 얘기는 뭐예요. 일정한 때가 되면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세상에 내려오시겠다
라는 계시입니다. 그래서 바로 야곱. 야곱은 베델. 그곳을 베델이라고 부르고.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구나 하나님의 문이구나
라고 놀라움과 기쁨과 소망 가운데. 그곳에 그 돌베개 했던 반석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시요 그 반석을 야곱이
이렇게 취하여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바로 그 18절에 보면 자신이 베개 하였던 그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아주 큼직하고 모양이 아주 그럴 듯한 반석이었겠죠 기둥이었겠죠. 그 후에 그 돌 위에 반석되신 예수님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바로
최초로. 어떤 의미에서는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집을 가지고 싶어 하시는 것을 이 베델에서 야곱의 꿈을 통해서 우리는 은연 중에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대한 성경의 최초 언급은. 이곳에서 확연히 보여준 것은 이곳일 것입니다.
물론 그전에 간헐적으로. 간접적으로 보여줬지만 이렇게 실제적인 계시로 예시로 보여준
것은 그동안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24장 35절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우리는 지금 우리가 거하고 있는 이 땅과 이 하늘은 훼손되고 더럽혀지고 망가지고 파괴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21장 2절과10절에서는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 주 예수님에 의해서 새롭게 창조되어진 후에 이 새롭게 된 환경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새 하늘 주님이 오신 다음에 천년 왕국에서 천년 동안 그곳에 있는 그곳이 아니라 이 땅의 새.예루살렘에서 보석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하나님의 집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으로 내려 앉아주셔서. 이 땅에 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 21장 1절 말씀은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우리가 보는 이 하늘과 땅은 너무 더럽혀졌어요. 너무 냄새 나고요. 훼손되고 파괴되고 죄로 가득 차고 어두워졌어요.
여기에는 정말 의로움과 거룩함과 하늘에 정말 정말 깨끗하고 정결한 흠도 없고 점이 없는. 그런 모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된 지음 받음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1장 10절에 보면 성령님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옵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여러분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시는 새 예루살렘에 그 건축할 재료들을 하나님께서 지금 찾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보석으로 꾸며진 자. 만들어진 자. 다듬어진 자 온갖 고난과 시련과 풀무불과.
그 고난의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그런 많은 시련과 어려움들을 경험한 그런 자들이 생명나무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생명수 되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너무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 존재자들로 바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을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또는 천사들을 통하여 또는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이 알곡들을 지금 솎아내고 있는 중입니다.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얼마나 깨어 있어야 될까요 저번에 제가 얘기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하늘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좋아할 수 있지만 실제. 하나님은 새롭게 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모된 이 하나님의 그 보석들로 아름답고 같이 있는 보석들로 만들어진 그 재료들로 건축된 그 하나님의 집을 이 땅에 내려놓으셔서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같이 거처를 거하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생각과 달라요 여러분 이 땅이 새롭게 변화되어 바로 새로운 마음들. 새로운 영들을 가진 자들과 함께 주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삶을 사실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좋은 것은 계시록에 쭉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 집을. 이 땅에 주시겠다 라는 이 야곱의 꿈을 우리에게 또한 말씀을 통하여 보여주시고 야곱을 통하여 이러한
사닥다리 꿈을 보여준 것에 대하여 우리는 정말 날마다 기뻐하고 소망 가운데 있어야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상을 베푸실 것입니다. 시편23편4절 말씀이죠
이 땅에서 원수들을 다 소멸시키고 악인들을 다 제하신 다음에 우리 하나님의 참 보석들로 아름답게 꾸며진 주님의 백성들.
주님의 자녀들과 함께 우리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이 땅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혹 어떠한 자들이 이 땅에서는 정결한 교회 생활을 할 수 없다 라고 얘기하는 그런 자들이 있으면 속지 마셔야 됩니다 여러분. 성경은 타락하고. 어둠 가운데 있고
죄 많은 이 세상 가운데서도 계속 하나님의 집인 교회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들 안디옥에 있는 교회들 고린도에 있는 교회들 에베소에 있는 교회들 빌립보에 있는 교회들 너무나
많은 교회들에 대해서 사도행전 8장 1절 사도행전 13장 1절 이런 데서는 교회에 대해서 에베소에 있는 교회 왜 교회라고
그랬을까요.
이러한 와중에도 마치 그러한 타락한 세상 가운데서도 에녹 같은 자가 있었던 것처럼. 노아 같은 자가 있었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이 거짓되고 부패되고 오염되고 잘못된 진리가 가득 찬 이때에도 하나님의 참 진리를 먹고 이슬을 마시고
하늘의 양식만을 하늘의 생명수만을 먹고 마신 자들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참 교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 집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마음껏 먹고 그 생명수에 흠뻑 정말 마음껏 갈증을 갈급함을 다 해결할 수 있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주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는 우리들은 교회들은
정결해지고 깨끗해지고 아무 흠도 점도 없는 그러한 주님의 품성을 닮은 자가 되어서 주님 나라에 가서 살기에 그리고
이 땅에 내려온 다음에도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결격사항이 없는 그러한 존재자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아무리 성경을 봐도 하늘에 있는 교회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어요.
하늘에 교회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예루살렘 성이 교회인데. 그것이 내려옵니다.
이 땅으로. 그것을 왜 사람들은 간과하고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왜 자꾸 마치 교회가
하늘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벧엘로서 반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돌베개 했던 그 반석.그 반석에 기름을 또 부으셨죠
하나님의 그 생명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생명수로 풍요로운 생명을 소유받아서 모든 것들이 우리 안에서
회복 되어지고 닦아지고 기름 부어지고 아름다운 돌로 깨끗이 정결케 우리가 변화되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28장 18절에 보면 야곱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더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베개 하였던 그 돌을 가져서 기둥으로 세웁니다 여러분. 야곱처럼
우리는 지금떠돌이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를 염원하시고 뜻하시고 바라시고. 꿈꾸시는 그분의 요청에 따라 바로 만유를 회복해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와 생명나무를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고자 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세워질 하나님의 집을 우리들이 보아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을. 우리가 처해 있는 이곳에 그곳이 어디가 됐든
그 장소가 어떤 곳이 됐든 내가 어떤 위치에 있든 상관없이 베델은 하나의 장소이고 하나의 돌이고 하나의 기둥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8장22절에서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전은 단지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그 위에 하나님의 돌이 서 있고 그 위에 하나님
성령님의 기름이 부어지면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집이 되어지는 곳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남의 발목을 붙잡고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고자 모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가 이렇게 전혀 다른 삶을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 야곱의 사닥다리 꿈 얘기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하나로 연합시키는 사닥다리를 통해서 하나가 되게 하는.정말 놀라운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 돌 위에 기름을 붓는다 라는 이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그.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기 위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보석이
되기 위한 그 흙으로 지어진 피조물 위에 기름을 붓는다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흙입니다 한줌의 이 흙 같은 존재인 우리가 성령님의 기름이 반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위에 기둥으로 세워진 그 위에 발라지면 신성과 인성이 연합되어 졌다고 그랬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우리가 보석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고
생명수가 됨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의 임재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임재를 통해서 우리는 이 흙 같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산돌이 되고. 놀라운 하늘의 성전을 이루는 재료들이 아름다운 보석으로 될 수 있다라는 이것 하나를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원래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진 붉은 흙 아담아 흙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원래가 돌이 아니었어요. 원래가 산 돌도 아니었고요. 원래가 아름다운 보석일 수가 없었죠.
원래 그는 그냥 조그마한 그냥. 진흙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빚어진
인간이 돌이 산돌로 변화가 되고 아름다운 보석으로 탈바꿈되는.이런 예수 그리스도 생명나무의 과일을 따먹는 일로 말미암아 생겨지고 그 생명나무에서 발원된 강의물 생명수로 말미암아 이러한 놀라운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베드로는 마태복음 16장16절 말씀 통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할 때
흙이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그렇게 고백하는 순간에 아름다운 보석으로 변모가 되는 순간이고. 보석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그 순간입니다 너무나 놀랍고 아름답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탈바꿈 되었을 때 예수님이 바요나 시몬아 네가 정말 복이 있다
너 조그만 돌이었었는데 흙에서 나를 따라 다니는 그냥 돌이였는데 이제는 반석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이 반석 위에
너 이 조약돌. 내 커다란 반석위에 너. 돌 하나를 세움으로 말미암아. 너와 내가 연합되어서 이제는 음부의 권세. 마귀가 절대 너를 공격하여도 니가 쓰러지지 않는 그런 한 자가 될 것이다 라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라는 이러한 위대한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여러분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꿔져서 승리하는 자 왕의 권세를 지닌자가
되었듯이 바요나 시몬아 요나의 아들 시몬아란 뜻이죠. 요나의 아들 이 뜻이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바꿔줍니다.
여러분 우리 또한 이러한 진흙 같은 존재에서 예수의 말씀을 먹음으로 돌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말미암아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연합되어 짐으로 하나가 되고 일체가 되어 짐으로 말미암아 산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 산돌이 다듬어지고 깎아지고 깨어지고 부서지고 쪼개지고 잘라지고 가위질 당하게 되면 아름다운 보석 하나님의 집을
꾸며나가고 장식하고 빛나게 하고. 예쁘게 보여지는 영광을 돌려주고 표현되어지는
그러한 존재의 자들로 탈바꿈시켜 주신 것이.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흙에서 돌이 되어야 되고요 돌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나무의 과일을 먹고.
그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서 산돌이 되어야 됩니다.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님과 일치가 되면 우리 또한 산돌이 될 수밖에요
산돌이 된 다음에 성령님께서 이제 마모시켜주시고 다듬어주시고 뺏바질로 이렇게 문질러 주시고 계속 반짝반짝 빛나게 여러분 광택이 나도록 계속 오랫동안. 연단 받아서 꼴 지어지고 콘크리트화 되어 정착화되면 바로 그것이 아름다운 보석으로. 자기 것만의 특유의 자기 자신만의 특별한 존재로서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 대로 요한은 요한대로 안드레는 안드레대로 도마는 도마대로 마태는 마태대로.
그렇게 완전하게 자기만의 특별한 특유의 그런 존재자들로 누구도 모방할 수없습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어요 베드로와 같은 성품 베드로 만이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 안에서 다듬어지고 깨어지고 정화가 되고. 정결해지면 베드로를 하나님께서 베드로라고 흙인데 흙이었는데
바요나 아들아 요나의 아들아 아담이 누굽입니까. 진흙이예요 한줌의 흙 우리는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온 존재자들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꿔주십니다 우리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생명나무 과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접붙임 당하면 우리가 바꿔지는 것입니다.
개명돼야 됩니다 변화되어야 됩니다 흙이 흙으로 존재하면 그건 결국 나중에 다 소멸될
것입니다 그러나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불 가운데 갈지라도 물 가운데 있을지라도.
침몰하지도 못하고 불이 태우지도 못할겁니다 왜냐하면 공력을 이미 지나왔기 때문에.
많은 수많은 풀무불과 용광로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를 반복했기 때문에 그러한 연단과
시련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미 통과해 버린 존재자들입니다.
우리는 흙에서 머물 것이 아닙니다
보배로운 보석이 되기 위해서 돌이 또 그 생명나무의 과일을 한 번 따 먹고 멈칫거리고
정지한다면 흙이 돌이 되긴 됐지만 그 돌은 쓸모가 없는 돌입니다 무엇에 씁니까.
아름다워지지가 않았어요 예수님의 품성이 나타나질 않아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성령님의 능력에 따라 말씀이 진리로 자기와 하나 연합되어서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부서지고 깨워지고 연단받고 말씀으로
우리가 변화되어져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는 보배로운 보석이 하나님의 집을 꾸밀 수 있고 장식 장식할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그런 자들이 된다라는 것을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3장을 여러분들에게 얘기를 했는데 이게 하나님이 우리를 흙으로 지으신 목적.
하나님의 집을 만들기 위한 아름다운 보석들로 그 재료들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 정금과
진주와 그리고 호마노라는 (12가지 보석)들로 만들기 위한 것에 대해서 지금 제가 3부 3편을 말씀을 드렸는데요 원래는 이게 한 번에. 한 5시간에서 한 7시간 더 길면 한 7시간에서 한 10시간 정도 해야 될 분량인데.너무 분량이 많이 지나간 거로 여기서 멈추고 다시 4부를 바로 곧 이어서 여러분들에게 전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여러분 인내하시는 마음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은 꼭 들으시고 묵상하셔야 될 말씀이라 생각하고 여러분 예의주시하면서 말씀을 대해주시길 바라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