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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덟 번째 280 완주기 : 난 참 붕어 대가린가봐
1. 난 참 붕어 대가린가봐. 결국 또 참가하네.
“강진 랠리는 참가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봄이 되었지만 몸이 많이 망가져 있었기 때문에 완주할 자신이 없었다.
내년에는 직장을 명퇴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래서 작년에는 명퇴 후 필요한 자격증이나 하나 따놓자고 마음먹었고,
강릉 280랠리를 겨우겨우 완주한 바로 다음 날부터 ‘미친 듯한 열공모드’로 진입했고
공부 집중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자전거를 포함하여 아무 운동도 하지 않고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했고.
그래서 자격증은 쓸데없이 높은 점수를 받아 따내는데 성공했지만, 그만 몸이 망가져버렸다.
당화혈색소 7.6%, 정맥혈당 190, 당뇨병이란다. 평생 약 먹으란다.
의사 말 듣고 한 달 간 약을 복용하다가, 이건 아닌 듯싶기도 하고 또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해서 그냥 약을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자전거에 혈당 조절까지 맡겨버리기로 했다. 5월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워낙 강력하게 랠리 참가를 반대하는 집사람과의 약속도 있고 해서
직접 랠리에 참가는 못하더라도 다른 분들의 280랠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특히 세자동 회원님들을 위해서라도 랠리 상황판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상황판을 만들기 위해 강진 코스를 살펴보고 연구하면서부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진 주변의 산과 도로와 관광지들을 두루 섭렵하는 아름답고 역사 깊고 다양하고 멋진 코스는 나를 다시 꿈결같은 랠리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마누라와의 약속보다도 훨씬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것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아무래도 강진 랠리는 참가해야겠어!”라고 마누라를 설득하고 있었다.
네이버지도, 다음지도, 구글어쓰를 보면서 수십 번 이상 코스를 살펴보았고, v 3.2까지 랠리 상황판을 업데이트했다. 그리고 강진랠리를 이렇게 예상했다.
(1) 역대 랠리 중 도로 비중이 비교 불가능할 만큼 크다. 따라서 도로에서 시간이 많이 단축될 것이다.
(2) 역대 랠리 중 임도의 경사도가 가장 작다. 아마도 임도에서도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3) 그렇기 때문에 완주율을 조정하기 위해 싱글코스는 매우 어렵고 길게 설계했다.
(4) 하지만 지금까지의 랠리에서도 만만한 싱글은 별로 없었다. 자주 역대 최악의 싱글코스라는 말이 나왔었다. 나의 첫 번째 참가였던 정선랠리에서도 특히 사북으로 넘어가는 170킬로미터쯤의 싱글은 욕이 튀어나왔었고, 두 번째 예산랠리 때에도 태풍 매미의 위력 속에서 더 극악해진 165킬로미터 쯤의 국사봉 싱글은 위험천만하기까지 했었다. 15회 춘천랠리의 북배산 싱글은 사전답사 때부터 악명을 떨쳤고, 16회 문경랠리의 오정산 싱글도 3킬로미터의 급경사 업힐이 많은 참가자들의 입에 게거품을 뿜게 만들었다. 17회 강릉랠리에서는 대공산성 – 곤신봉 - 대관령 – 능경봉 – 고루포기산으로 이어지는 18킬로미터에 이르는 악마의 싱글이 있었고, 첫 싱글의 험난함과 시간 지체도 많은 참가자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올해 싱글이 매우 험난하다지만, 뭐, 그래봤자 얼마나 험난하겠어? 고루포기산 정도 아니겠어?
이러한 생각을 기본 베이스에 깔고 상황판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조정된 나의 완주 목표시간은 4시간 취침하고 35시간 30분경에 운동장에 도착하는 것! 자, 이제 출발이닷!
2. 아름다운 산야!
운동장을 출발해 첫 번째로 만난 덕천리 임도는 탐스러운 임도다. 세종 주변에 이런 임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물론 전의임도나 무성산 임도 등이 좋기는 하지만, 덕천리 임도에 비할 바는 아니다. 적당한 업힐 이후에 능선 상부로 이어지는 길고 너무나 멋진 ‘산꼭대기 임도길’, 그리고 적당한 경사의 다운힐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초보자부터 상급자까지 마음껏 자신의 속도를 즐길 수 있는 너무너무 탐나는 훌륭한 임도임에 분명하다.
아름다운 가우도 출렁다리를 지나 주작산 임도를 거쳐 조식지점인 두륜중학교 부근 흥촌리에 도착한다. 주작산에서 병목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빠른 속도로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한다.
역시 편안한 주작산 서쪽 임도를 지나 드디어 주작산 싱글로 접어든다. 오를수록 멋진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고, 시원한 바람이 반겨주는 듯하다. 생각보다 병목현상이 크지 않고, 위험한 구간도 적고, 예상한 시간과 비슷하게 1시간 20분 정도가 지나 첨봉에 도착한다. 낮이어서 그런지 강릉 랠리의 고루포기산보다는 평이한 느낌이 든다.
동령리 마을회관에서는 지원나온 마누라에게, “생각보다 코스가 쉬워. 잘하면 5시간은 자고 갈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한다. 그 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집사람은 280랠리 준비가 잘된 것 같고 또한 강진군 지자체의 협조적인 태도가 너무 마음에 든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올해 랠리는 정말 편해요. 도로 분기점마다 경찰들이 나와서 교통 흐름을 통제해주고 있고, 마을 주민들도 너무너무 친절해요. 이렇게 준비가 잘 된 랠리는 처음인 것 같아요.” 하고 말한다.
서기산 임도를 오르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공주금강MTB의 두바퀴 님, 학희 형님, 야화 님이 가고 있다. 학희 형님은 강릉 랠리를 함께 완주하신 분인데, 바로 오늘이 환갑날이란다. 환갑 기념으로 두 번째 280랠리를 완주하고자 오셨다니, 열정이 놀라울 따름이다.
멋진 서기산 임도를 돌고 돌아 평이한 임도와 도로로 이어진 쉬운 길을 돌고 돌아, 큰 힘 들이지 않고 돈밧재를 넘으니 쌍정제다. 마누라와 수박을 먹으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3시간 전부터 이곳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분이 내 앞에 13명밖에 지나가지 않았다고 말해 주신다. 나는 앞에 50여명쯤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활성산 임도를 오른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업힐 경사가 조금씩 커진다. 체크포인트 지점에 도착하니 김현 님이 직접 체크해 주시면서,
“올해는 계획한 것보다 좀 빠르게 도착하신 것 같네요. 다른 랠리에 비해 코스가 쉬웠나 보죠?”하고 묻는다.
“예, 약간은 쉬운 것 같아요.” 하고 대답한다. 아, 이 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레드불을 시원하게 마시고 다시 출발,
활성산 정상 능선에서는 예기치 않은 아르바이트를 수행한 후에서야 비로소 제길을 찾아간다. 첫 번째 2km의 아르바이트!
임도와 도로를 길게 다운하여 탐진 임도로 들어선다. 19km가 넘는 긴 임도길이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평이한 느낌이다. 하지만 시간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잡아먹는다. 1시간 30을 예상했는데, 1시간 46분이 걸려 오후 6시 16분에 유치자연휴양림 입구에 도착한다.
공주금강MTB 지원조로 나오신 소이농원 형님과도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저녁을 먹고 푸욱 쉰다. 세자동 지원조로 나온 송죽과 월매 님이 닭백숙을 했다고 먹고 가라는데, 나는 계획했던 대로 라면과 밥과 미역국과 수박 등을 먹는다.
야간 라이딩 준비를 마치고, 가랑비가 뿌리는 바람에 조금 자고 가려고 했던 계획은 버리고, 텐트를 걷어주고, 마누라 차에 짐을 실어주고, 계획했던 시간대로 저녁 7시 40분에 수인산성 싱글로 향한다.
3. 헉! 뭐, 이따위 싱글이!
처음엔 조금 쉬운 듯했으나 오를수록 경사가 가파르다. 자전거가 성가시기 시작하더니, 능선 안부에 도착할 때쯤 해서는 하도 자전거를 많이 들어 올린 탓에 손바닥이 아리아리하기 시작한다. 48분이 지난 저녁 8시 28분에 능선에 오른다.
싱글 종점인 홍골제까지는 총 6km의 등산로. 계룡산 주능선이 1.8km밖에 안 되니 6km가 얼마나 긴 거리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배낭보다 백 배는 성가신 자전거를 들쳐메고 걸어야 하는 험난한 수인산성 길은 고난 그 자체이다. 게다가 ㄷ 字 볼트를 박아놓은 암벽길이 두 군데나 있고, 깜깜한 밤이지만 음산한 절벽이 바로 옆에 있음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거 자전거 랠리 길로는 너무 위험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수십 번 머리를 헤집고 튀어나온다. 게다가 약간의 병목이 오히려 위로가 될 만큼 진을 뺀다.
추월할 수 있는 길도 전혀 없지만, 추월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아예 나지 않는 좁고 험난한 길을 ‘끝없이’ 걸어서, 능선에 도착한 후 1시간 25분이 지나서야 드디어 홍골제에 도착한다.
총 2시간 13분이 걸린다. 예상한 2시간 8분과 크게 차이가 난 것은 아니지만, 에너지 소모는 거의 두 배 수준이다.
사전답사 후기를 떠올리며 위안을 삼아 본다.
“주작산 싱글이 가장 어렵고, 그 다음이 수인산성 싱글, 그리고 다음이 일봉산 싱글, 서기산 싱글과 만덕산 싱글은 많이 수월한 편!”
그 분들이 내린 결론은 이와 비슷했다.
‘이제 주작산과 수인산성 싱글을 넘었으니, 이젠 그에 비해 쉬운 일봉산과 서기산 싱글만 남았다. 만덕산은 거저 먹기니 언급할 필요도 없고... 흐흐... 자 이제 쉽다는 일봉산으로 빨리 가잣!’
병영면을 지나는데 거리가 너무 깜깜하다. 날파리가 수두룩하게 얼굴로 달려드는 바람에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그 탓인지 혹은 하나로마트가 영업을 안 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또 1.4km를 아르바이트한다.
제 길을 찾아 돌아와 긴 도로를 지나 금곡사로 오른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지만 수인산성의 후유증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그 때 랠리 번호판을 단 젊은 두 명의 참가자가 나를 추월해간다. 나도 다시 자전거에 올라 그들을 따라간다. 고개를 지나 다운힐에 접어든다.
금곡사를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두 젊은 친구들을 뒤따라 내리 쏘는데 금곡사에 이르자 조명막대를 휘두르며 오른쪽으로 가라고 신호해주는 사람이 보인다. 꽤 멀리부터 밝은 조명막대를 휘두르며 신호해 주었기 때문에 그것을 보지 못할 확률은 제로다. 그런데도 분명히 배번을 단 두 명의 젊은 참가자는 강진을 향해 도망치듯이 달려 내려간다.
그 때는 그냥, “아, 저 밑에 있는 숙소에서 자고 가려고 하는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랠리 후기에 올라온 여러 명의 가짜 완주자 목격담을 읽고 난 지금 생각에는 왠지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들도 혹시???? 완주증 하나 받아보자고 그런 짓을 하는 라이더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기 때문에 어디에선가 체크포인트를 놓치고 거꾸로 올라오는 참가자를 한 명 보았을 때 그를 너무 불쌍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젠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사람 일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산태봉으로 오른다. 경사는 갈수록 세지고 계단은 없는 것보다 나을 게 없어 보인다. 좁아터진 계단이 자전거를 들어올리는데 오히려 방해물이 된다.
매우매우 힘겹게 산태봉이 올라,
“여긴 수인산성보다 쉽다고 했으니, 이제부터라도 쉬워지겠지.” 하고 기대해 본다.
다행히 내 앞에 가던 분들이 정상에 오르자 먼저 가라고 양보해준다.
속도를 내본다. 길은 암벽으로 이어져 거칠고 위험하고 험난하다. 그래도 빠른 속도로 릿지같은 능선을 오르내린다. 한참을 가자 앞에 가던 참가자들을 만난다. 다들 숨이 가쁘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는 추월할 수가 없는 길이다. 뒤따라간다.
일봉산 정상이다.
“아, 이젠 정말 280랠리는 참가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힘든 건 괜찮지만 위험한 건 안 돼!” 하는 생각이 송곳처럼 생각 이곳저곳을 쑤시고 돌아다닌다.
“280랠리가 힘든 거야 당연한 거지만, 이렇게 위험한 코스를 통과해야 하는 거라면…, 비가 안 왔으니 천만다행이지, 만약 비라도 내린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젠 280랠리와는 완전 쫑이닷! 목숨 내놓고 자전거 탈 일은 없지 않나!!” 하며 다짐하듯 되뇌어 본다.
일봉산 정상부터 우두봉 정상까지는 더 빠른 속도로 돌진해 본다.
강진MTB 카페에 올라온 정보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산태봉-일봉산-우두봉-강진고> 푯말을 보고 가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
우두봉 300m 전 갈림길에서, 랠리 표지기가 애매하게 갈림길의 가운데 쯤에 걸려있고, 안내판에는 ‘직진하면 우두봉’이라고 써있으니, 당연하게 직진해서 우두봉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룬 된장! 우두봉에 도착하니 길 어디에도 랠리 표지기가 보이지를 않는다. 멋진 강진 시내 야경만 눈앞에 가득찰 뿐 여긴 랠리 길이 아닌 게 분명하다. 잠시 이곳저곳 쑤셔보다가 300미터쯤 전 갈림길까지 되돌아간다.
오른쪽 급경사 하강길 밑에 흰색 표지기가 보인다. 아, 카페에 올라온 그 글만 안 읽었어도 여기에서 아르바이트할 일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정보의 정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친다.
“혹시 내가 올린 상황판 때문에 나처럼 아르바이트할 분들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젠 내리막길이다. 강진MTB 카페에 올라온 시간 정보에 따르면, 여기부터 강진의료원까지는 20분 거리란다. 그런데 20분에 의문을 품은 어떤 분이 그게 정말 맞냐고 문의하자, 직접 야간라이딩해본 결과는 30분이 걸렸다고 댓글이 올라온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30분 후면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는 모텔에 내려가 쉴 수 있을 거다. “아, 이젠 정말 다 왔다.”
그런데 마지막 다운힐 길이 나에게는 만만치 않다. 혹시라도 넘어져 다치면 랠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운하기에는 좀 경사도 있고 험한 편이다. 많은 참가자들이 과감하게 들이밀면서 타고 내려가겠지만, 완주를 최우선으로 하는 내 입장에서는 끌고 내려가야 하는 곳들이 매우 많다. 이건 야간 랠리 중에는 결코 30분 코스가 아닌 셈이다. 나는 50분이 걸려서야 강진의료원에 도착한다.
금곡사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43분,
산태봉 정상 11시 정각 (17분 소요)
일봉산 정상 11시 33분 (33분 소요)
우두봉 정상 11시 52분 (19분 소요)
우두봉에서의 아르바이트 시간 11분
강진의료원 다운힐 12시 50분 (50분 소요)
결국 총 1시간 50분 – 아르바이트 11분 = 1시간 39분이 걸렸고, 그 중 다운힐이 50분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전체 시간 중 마지막 다운에서 정확히 반이 걸렸다.
여기에서도 정보의 정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앞으로 상황판 만들 때에는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어쨌든 모텔에 올라가 문을 두드려 지원나온 마누라와 조우한다.
사전 연구했던 것보다 싱글코스가 험하다. 마음 편하게 완주하려면 조금 일찍 출발해야겠다.
결국 4시 30분 출발 시간을 4시 정각 출발로 변경한다.
4. 둘째 날 : 조금은 마음 편하게
2시간쯤 자고 일어나 끓여준 라면을 먹고 마누라의 배웅을 받으며 4시에 모텔을 나선다.
서산저수지까지 가는 길이 꽤 멀고 속도도 나지 않는다. 서기산 임도를 오른다. 첫 갈림길까지는 경사 있는 길이 이어져 주로 끌바 모드로 올라간다. 갈림길부터 서기산 싱글 입구까지는 타다 끌다를 반복하며 올라가는데, 임도 정상 부근에서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배낭에서 빵과 토마토와 체리를 꺼내 먹고 있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세자동의 별비돌물이 반갑게 인사한다. 작년 강릉 280을 내내 함께 했던 왕년의 프랑스 배우 아랑드롱 뺨치게 잘생긴 핸섬맨이다.
서기산 싱글은 앞의 싱글들보다는 확실히 쉬운 편이다. 하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능선길이 실제 거리보다 두 배는 길어 보이고, 가면 갈수록 거친 암벽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만덕산 싱글은 확실히 거져먹기다. 지금까지의 험로에 길들여진 탓인지 거리가 짧기 때문인지, 만덕산 싱글은 싱겁게 여겨질 만큼 금방 오르내린다.
아침 7시 40분에 보동공원에 도착해 송죽, 모래추, 마누라의 마중을 받으며 편안하게 아침을 먹고 체인에 오일을 치고 배낭을 핸들가방과 탑튜브 가방으로 교체한다.
계획한 대로 8시 20분에 출발한다. 이제부터는 좀 달려야겠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가우도를 지나 수동리 임도를 지나 영동리 도로를 지나 하분리로 접어든다. 기잿재 삼거리까지의 경사도 낮은 도로 업힐에서 속도를 내본다. 기잿재에 도착하자 세자동 지원조로 나오신 제우스 님이 수박화채를 주신다. 너무 맛있다. 이렇게 수박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도 다 랠리에서나 가능한 일일 게다. 제우스 님과 모래추의 배웅을 받으며 기잿재를 출발해 대덕으로 달려내려간다. 초등학교 앞의 작은 가게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연지마을을 지나 천관산을 오른다.
두 번째 임도삼거리에 도착하기 전이다.
씩씩하게 끌바하고 있는데 흰 져지를 입으신 연세(?) 꽤나 들어보이는 분이 아주 편안한 걸음걸이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는데, 호흡 하나 흐트러짐이 없이 나를 추월해 가신다.
지금까지 여덟 번의 280랠리 완주 중에 내가 팀원들과 함께 보조를 맞춰 끌바업힐할 때를 제외하고, 나 혼자 끌바하면서 다른 참가자에게 추월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싱글에서나 임도에서나 끌바 업힐이 랠리 완주의 최고 무기였던 나이기에 그 분이 더욱 대단해 보인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하는 생각이 절로 나고, 말이라도 붙여보고 싶은 충동이 가득 일지만, 실례가 될 것 같아 꾸욱~~ 눌러 참는다.
그 분 뒤를 따라 천관산 임도를 올라 골치재로 달려간다. 임도삼거리부터 골치재까지는 달리기에 그만이다. 시멘트 포장이 된 넓은 길은 가끔 차량 때문에 위험하기는 하지만, 특히 전망대부터 골치재까지는 평속 30km를 넘는 속도로 달려간다.
천태산 임도로 접어든다.
그 멋지게 잘 생기신 흰색 져지의 노인 신사분이 천태산 임도에 대해 설명해주신다. 그런데 끌바만 잘하시는 게 아니다. 자전거 업힐이 너무 편안하다. 페달링이 워낙 좋아서 힘들이지 않은 듯한데도 잘도 올라가신다.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랠리 완주 후 운동장에서 만나 인사를 올렸는데, 그 분이 195번, 무한질주 최유호 님이란다. 어쩐지 대단하시더라니~~
“조금이나마 함께 한 시간이 제게는 영광이었습니다.”
천태산을 오르고 또 오르고 또 다시 올라 임도 정상에 도착한다. 다운힐은 생각보다 경사가 세지 않은 편이어서 즐겁고 통쾌하다. 오랜만에 최대한의 속도를 내본다.
금방 명주리에 도착하고 평소 여러 차례 라이딩을 함께 해온 해피캅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 고갯길을 함께 오르내린다.
이젠 펜션으로 운영되는 폐교된 칠량동초등학교에 도착하자 세자동 지원조와 마누라가 반갑게 맞아준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가 되는 월매 님이 끊여주는 라면을 먹는다. 벌써 8년째 만나고 있는 송죽과 세자동 회원들의 완주를 위해 시간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컨디션에 따라 차이는 나겠지만 마지막 덕천리임도를 넘는 데에는 1시간쯤 걸릴 거야. 거기에서 운동장까지 20분…, 따라서 2시 30분 전에 이곳을 출발하면 완주가 가능할 거야. 여유 있게 잡는다면 2시 이전에 출발하면 좋겠지.”
송죽은 더욱 확실한 완주를 계획한다.
“그러면 1시 30분에 출발시키면 더 확실하겠네요?”
“남아돌지.”
드디어 마지막 구간이다. 삼흥저수지를 끌고 올라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탐나는 임도인) 덕천리 임도로 접어든다.
마지막 힘을 내본다. 완만한 업힐을 거의 다 타고 올라가, 산 정상 부근으로 이어놓은 더욱 완만해진 길에서는 시속 18킬로미터 정도로 달려본다. 드디어 마지막 12번째 체크포인트!
그리고 신나는 덕천임도 다운힐을 거쳐 도로 구간을 달려간다. 시계를 보니 저녁 먹고 덕천리 도로에 합류하기까지 5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덕컥 걱정이 된다.
“이거 예상보다 너무 빨리 도착해서 마누라가 운동장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어떡하지? 조금 천천히 갈까?”
그런 생각이 들자 속도를 줄여본다. 그래도 불안해서 중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물도 마셔보고….
강진종합운동장이다.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면서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역시 너무 빨리 도착했나보다. 체크포인트를 확인받고, 완주증을 기다리는데, 액자에 든 또다른 완주증에 ‘7스타’라는 글자가 보인다.
“저도 여덟 번째 완주했는데, 왜 제 건 없죠?” 하고 묻는데, 김현 님이 오시더니, 내가 7스타임을 그분들께 말씀해주신다. 알고 보니 이유는 영구결번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매번 참가할 때마다 새 배번을 받다보니, 배번으로 검색할 때 나타나지 않은 탓이다. 이름으로 검색하니 금방 확인이 되어 바로 액자에 넣은 ‘7스타 등록증’을 내주신다. 별 것 아닌 듯한데도 기분이 상쾌하다.
이런 이벤트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자동 팀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강검 님은 내가 들어오기 5분쯤 전에 들어오셨고, 내 뒤를 이어 바로 쌀개봉이 들어오고, 조금 있으니 별비돌물과 진진 님이 들어오고, 뒤를 이어 사다리 김홍덕 님이 들어오신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작년 강릉에서도 그렇게 완주했던 것처럼 기적처럼 내내 쥐잡느라 고생한 튼튼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들어오고 있다. 학희 형님도 환갑 기념 280랠리를 무난히 완주하고, 금강MTB의 야화 님도 완주한다. 그리고 해피캅도 완주하고… 뭐~~ 완주율이 80%는 되나 보다.^^
아쉽게도 세자동 총무인 백지한장은 일봉산 구간까지의 가장 힘든 구간을 모두 완주하고도 엄지발가락이 빠지는 불운으로 인해 세자동 지원조가 붙들어 완주에 합류하지 못했다.
5. 난 참 붕어대가린가 봐!
세자동 지원조가 차려놓은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옆에 앉은 마누라에게 말한다.
“고생했지?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이야! 내년부터는 280랠리에 참가하지 않을 거니까! 힘든 건 견딜 만한데, 이건 갈수록 코스가 너무 위험해. 작년에도 비가 왔다면 싱글이 매우 위험했는데, 올해는 더더더욱 위험해서, 만일 비가 왔다면 목숨 내걸고 랠리해야 될 판이었어! 내년 울산 랠리도 마찬가지일 거 같고. 난 이제 280랠리 접을 거야! 이번엔 정말이야!!!”
그리고 세자동 회원님들에게는
“난 내년부터는 지원조로 참가할 겁니다!” 하고 선언한다.
작년에도 올해에도 세자동 지원조로 나서 주신 송죽, 월매 부부와 제우스 님 부부에게도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금강MTB의 소이농원 형님과의 만남은 너무나 반가웠고, 두바퀴 님, 야화 님, 역시 너무 반가웠어요. 그리고 학희 형님, 환갑 기념 랠리 완주 정말 축하드리구요, 저도 학희 형님처럼 환갑 기념을 280랠리 완주로 대신해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흐.^^
왕발톱 때문에 완주를 접은 백지한장의 아쉬움과 첫 출전에서 고배를 마신 조구현 님의 아쉬움도 함께 나누고 싶구요.
마지막으로 헌신적으로 나를 지원해 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 마누라 임선주에게 감사와 존경과 사랑과 헌신의 내 마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불과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누라에게 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10회 연속 완주는 해야 되겠어. 내년 울산에도 나가고, 다음 해에도 나가고…”
아, 대책 안 서는 머리다. 아무래도 내 머린 IQ 1의 붕어대가리임에 틀림없다. 더 이상 랠리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지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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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쉬~ ㅎㅎㅎ
기다리던 생생한 후기군요..... 형님! 고생했고요, 8번째 완주 축하드리고요, ....멋~져부러요 ^^
감사 감사~~~^^
근시일 내에 완주 축하 술 한 잔 살게~~~
록키 형님, 운천, 백지한장, 홀리데이 등과 함께~~~ ^^
정말 멋지십니다~~~^^
대단도 하시구요. 지는 엄두도 안납니다 ㅎㅎ
꼭 10회 완주 기대합니다~~~^^
고마워~~
얼굴 못 본지 너무 오래된 듯~~~
라이딩 때 봐~~~^^
@사내가요 넵~~~뵌지 오래된듯합니다~~^^
아 ~~~ 280 대하소설 속으로 빨려들어갔다가 나오는길입니다 ᆢ수고 많으셨어요^^ 축하드리구요 ᆢ 그리구 제 생각에는 10회가 아니라 20회까지도 하실듯요ㅋㅋ
흐~~ 20회까지 지원조로라도 참가하고 싶어~~~
근시일 내에 밥 한 번 먹자구.^^ 술도 한 잔 하고~~~
송죽 카프카즈 다녀오면 그 때 자리 마련할게~~~
보름쯤 후면 돌아올 거야.^&^
집사람에게 내년에 나가볼까 물어봤다가 본전도 못찾았어요 ㅠㅠ
크~~~ 너무 일찍 물어본 듯~~~~^^
@사내가요 그러네요 집 사람도 기억력엔 한계가 있겠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