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월요일 아침 담임 박환배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 오시더니 숙연하게 말씀하시면서 눈물도 흘리셨다
우리반 한 친구가 주말에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고 . .
이유인즉슨 자취나 하숙하다가 주말에 기차를 타고 신태인 근방 자기집에 갔었다는데 집에서는 오지않아 찾아보니 기차역 철로옆 작은 나무속에 쓰러져 있었다는것
같은 반 친구들 모두 조용한 가운데 안타까운 마음이었고 그런 일들은 잊을수가 없었다
이제 시간이 흐른 후 초교동창 유영호를 만나 이야기 하다보니 그 반에 그때 함께 있었고 그애 이름이 민병걸 이라고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영호가 같은 반이었다는 것 조차 까맣게 잊었었는데 그런 대화 이후 1-5 반 시절 몇가지가 기억으로 소환되기 시작한다
둘다 퇴직하여 시간 여유를 가졌으며 고1때 유도하다 다쳐 고생하며 1년 늦게 졸업하면서 절반뿐인 친구들에 관한 내 추억과 비슷한 희미한 기억들을 주고 받았다
포도밭을 가꾸었고 그동안의 직장생활과 부친이 일제 관동군 징집되고 소련군에 잡혀 죽을 고비를 넘긴 일 등등 . . 멀리 떠나 갔다가 돌아와 내 옆에 앉은 누이처럼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교문을 들어서서 짙푸른 히말리야시다의 늘어진 가지 사이를 지나고 강당 앞을 통과하여 1-5반은 중학교 두개 건물의 왼쪽이었고 우리 교실은 건물 중간입구로 들어가서 1층 바로 오른쪽이었다
교실 앞쪽에는 남성국민학교 건축공사가 한창이었으며, 가끔 운동장가의 벽돌담 위에 올라보면 남쪽 길 건너 남창국민학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울타리 넘어 오른쪽 저 윗쪽에는 전북공대와 그 앞쪽의 논과 집들이 보였다
1학년때 학교 양건물 사이에 구름같이 모여서 이윤성여사 동상 제막식을 했었으며 그때 마고인가 외국인 영어선생도 함께했다
그때 조금 값이나가 졸라서 사준 제도기를 그만 잃어버려 다시 사달라는 엄두를 못내 1학년 끝날 때까지 친구들한테 빌려 사용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박환배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열성적이셨으며 그래선지 여름방학 숙제로 알파벳 A~Z를 필기체로 200번 써오라고 했었는데 그 숙제를 하느라 종이에 네줄을 그리고 쓰고 또쓰고 다 쓰느라 방학내내 마음놓고 놀지도 못한 것 같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때 우리반 친구는 장홍권, 김용균, 위성락, 최옥환, 박은철, 신용호, 김영택, 한영진, 유영호, 강의성, 정양희, 채진석, 이춘만, 이춘세, 김학규, 전보휘 . .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학년 올라갈 때마다 헤쳐 모여 다른 반이 되었으니 같은 반으로 계속 함께 올라 가면서 정이 쌓이는 일은 드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보휘만 3 년동안 1, 2, 3 - 5 같은 반으로 내 옆에 계속 있어 주었다
시공관, 소방서를 지나 한의원을 하는 보휘네 집에도 가 보았고 2년 선배인 보휘 형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짧게 1학년이 지나고 친구들은 다른 반으로 흩어지며 다시 만나기 어려워 저절로 멀어지게 된다
나는 공고로 가는 바람에 더욱 잊어질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직장생활할 때 전군도로 시내버스의 붐비는 차안에서 최옥환이 나를 알아보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그 뒤로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친구들의 들리는 이야기로 병치레 고생을 했다는데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먼 발치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박환배 선생님의 소식 그리고 최근 수원에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 1~3 년 동안 어릴때 내곁에서 함께하던 보휘는 나중에 찾으려 애를 써 봤지만 끝내 찾지를 못했다
이민 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