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늦은 밤 결실을 수확하는 이 시기에는
도움이 일도 안되는 쓰잘데기 없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고 26일까지 비올 확률이 90%여서
동행하기로 약속한 두분과는 아쉽지만 다음
좋은 기회에 트래킹에 합류하기로 미룬다.
26일 새벽 세차게 퍼붓는 빗속을 뚫고 일단
무주에서 전주로 간다. 전주에서 몇가지 일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제 만경으로 가
본다. 만경정에 도착하여 30분을 차안에 앉아
비가 수긋해지기를 기다린다.
오랫만에 넓은 들판 물안개 자욱한 빗속에서
아무런 생각없이 차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보며
앉아 있으니 영혼이 평안해지는 느낌이었다.
만경강 노을
노을아
피멍진 사랑아
어릴 적 고향집 뒷방 같은 어둠이
들을 건너오는구나
그대 온몸의 출렁거림
껴안아줄 가슴도 없이 나는 왔다만
배고픈 나라
하늘이라도 쥐어뜯으며 살자는구나
내 쓸쓸함 내 거뭇거림 앞에서
그대는 허리띠를 푸는데
서른살이 보이는 강둑에서
나는 얼마나 더 깊어져야 하는 것이냐
서해가 밀려들면
소금기 배인 몸이 쓰려
강물이 우는 저녁에
노을아
내 여인아
시인 안도현
또닥거리는 빗소리에 설핏 잠이 들다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보기로 마음 먹고
최대한 간단하게 준비한 후 걷기 시작한다.
중요한건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이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가을비 우산속을 걷는다.
신창마을 구 만경대교에 40분만에 도착
농가 뒷뜰에 커다랗게 자란 나무가 파초인지
바나나 나무인지 이색적이고 멋스럽다.
주먹만한 왕대추도 아직 익지는 않았지만
달고 맛날 것 같아 보이고~^^
농가 담장따라 길가에 핀 정겨운 분꽃
맨드라미 으아리등 우리꽃들이 빗속에
어우러져 피어 있는 모습이 정겨워 보이고
어렷을적 고향집 장독대옆에 무리지어 피던
추억속의 꽃밭을 떠올리게 한다. 이쁘다.
만경대교는 지금은 노후화되어 자동차 출입이
금지되었고 "새창이다리"로 불리며 김제
지평선축제 즈음부터는 망둥어낚시 대회도
열리면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새창이다리 위에서 방금 전 만경정부터
걸어 온 자전거 도로를 다시한번 바라보고..
다리위에 설치 된 김제 관광 안내도를 찬찬히
읽으며 걷는데 다리 중간까지로 시설 끝.. ㅋ
만경강 중간이 김제와 군산 분기점인것 같다.
군산은 만경대교가 관광 가치로는 별볼일 없는
곳인지 다리위에 의자 하나도 놓여 있질 않다.
다리밑엔 빗속에 낚시 하러 나온 젊은이들이
있고 뭐가 잡히냐고 큰소리로 물어봤더니
망둥어와 숭어 몇마리 잡았다고 한다. 나도
이곳에서 예전에는 숭어 꽤 잡았었는데 ㅎ
다리 끝 군산 둑방길엔 넓은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조망대와 제 53차 서해랑길 안내판이
자세하게 표기되어 있어 참고한다.
비로소 김제를 벗어나 군산으로 접어 들고
대야까지 가는 국도길에는 애기 꽃사과와
단감이 아름답게 제 색깔로 익어가고 있다.
군산 대야 너른들은 새들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들군산" 입간판이 커다랗게
표기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대야에 도착하니 빗속에 명절 전 대야 오일장이
서는 날이어서 꽤 혼잡하고 비는 오다말다 사진
찍기가 번거로웠다.간단하게 점심을 사 먹고.
점심 후 부지런히 걸어 대야.발산.개정을 지나
군산 기차역을 거쳐 금강하구둑 초입에 도착.
예전 성산 호텔이 스테이 호텔로 이름이 바뀐
것 같은데 호텔 모습은 변함없어 보인다.
하구둑 주차장으로 들어 가기 전 군산시청과
채만식 기념관 좌측. 나포 웅포 철새조망대
우측. 금강하구둑 넘어 서천 직진으로 나뉘는
분기점에 도착하니 하늘은 갤까말까 망설인다.
금강하구둑을 건너지 않고 군산 금강호
휴게소에서 오늘 일정을 마친다.
우산을 받쳐 들고 걷기도 하고 스틱 대신
지팡이 우산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26km
3만5천보를 걸었다. 오히려 햇빛 뜨거운
날보다 걷기 수월해서 좋았더래요^^
트랙리스트 기록이 되다말다 엉망이다.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에" 노래가 종일 입가에
맴돈 하루였고 비때문에 접고 건너뛰려고 했었
는데 그래도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좋았다.
한가위 추석 명절이 오늘부터 시작되는것 같은
분위기이다. 내일은 한가위 보름달을 볼 수
있게 제발 좀 날씨가 화창했으면 싶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 풍족하세요
하는 덕담도 말하기 힘들만큼 경제도 뭣도 다
좋지 않은 실정이지만 그래도 명절이니 다같이
모여 다복하고 행복한 시간 많이 갖으시고
모두모두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3.9/27.고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