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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에비타 / Evita" 중
"날 위해 울지 마세요 아르헨티나여
/ Don't Cry For Me Argentina"
- 사라 브라이트만 / Sarah Brightman
It won't be easy, you'll think it strange 쉽지 않을 거예요, 아니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요
when I try to explain how I feel 내가 느끼고 있다는 걸 말하려 든다면
that I still need your love after all that I've done 모든 걸 이룬 내가 여전히 여러분 사랑이 절실하다는 걸 말에요
You won't believe me, 여러분은 날 믿기 힘들 거예요,
all you will see is a girl you once knew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은 예전에 알았던 한 소녀일 뿐이니까요
Although she dressed up to the nines 비록 아주 호화로운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at sixes and sevens with you 여러분들과 달리 말에요
I had to let it happen, I had to change 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난 변해야 했어요
Couldn't stay all my life down at heel 내 삶을 저 밑바닥 인생으로 팽게쳐둘 순 없었어요
looking out of the window, staying out of the sun 햇빛도 들지 않은 곳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초라하게 내버려둘 순 없었어요
So I chose freedom, 그래서 난 자유를 택했어요,
running around trying everything new 뭐든 새로운 일을 해볼 수 있는 자유를 말에요
but nothing impressed me at all I never expected to 하지만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어떤 것도 내 마음을 끌지는 못했어요
Don't cry for me Argentina 날 위해 울지 마세요 아르헨티나여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all though my wild day 진실로 난 이 힘든 나날 속에서도 여러분을 저버리지 않았어요
My mad existence I kept my promise 난 이 미칠 것 같은 삶 속에서도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켜왔어요
Don't keep your distance 날 멀리하지 마세요
And as for fortune, and as for fame 재산도 명예도
I never invited them in 난 결코 구하지 않았어요
though it seemed to the world they were all desired 세상에서는 내가 그런 것들을 바랐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They are illusion 그런 것들은 환상에 불과해요
They're not the solutions they promised to be 혹시 그렇게 보일지라도 그런 것들은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어요
The answer was here all the time 진정한 해답은 항상 여기 이곳에 있어요
I love you and hope you love me 난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이 날 사랑해주시길 바랄 뿐이에요
Don't cry for me Argentina 날 위해 울지 마세요 아르헨티나여
Interlude 간주
Don't cry for me Argentina 날 위해 울지 마세요 아르헨티나여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all though my wild day 진실로 난 이 힘든 나날 속에서도 여러분을 저버리지 않았어요
My mad existence I kept my promise 난 이 미칠 것 같은 삶 속에서도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켜왔어요
Don't keep your distance 날 멀리하지 마세요
Have I said too much? 내가 너무 말이 많았나요
there's nothing more I can think of to say to you 이제 여러분에게 할 말이 더는 생각나지 않네요
But all you have to do is look at me 하지만 이제 날 지켜보시면
to know that every world is true 이 모든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아시게 될 거예요
Interlude 간주
Don't cry for me Argentina 날 위해 울지 마세요 아르헨티나여
'뮤지컬 '에비타(Evita, 1978)'는 실존인물인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Juan Peron, 1895-1974)' 대통령의 두 번째 부인인 '에바 페론 / 에바 두아르테(Eva Peron / Eva Duarte, 1919-1952)' 영부인(First Lady Of Argentina)의 생애를 그린 뮤지컬입니다. '에비타(Evita)'는 에바 페론의 애칭이며 1946년부터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클럽의 댄서 등을 거쳐 삼류배우와 가수,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노동부 장관이던 후안 페론을 만나 영부인이 되었고 33세의 짧은 나이인 1952년에 자궁 경부암(Cervical Cancer)으로 세상을 떠난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기반으로 하여 만든 뮤지컬 작품입니다.
영국의 천재적인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1948-)'가 작곡을 맡았고 전설적인 작사가 '팀 라이스(Tim Rice, 1944-)'가 작사를 맡아 탄생시킨 기념비적 작품인 뮤지컬 '에비타(Evita, 1978)'입니다. 세계 문화계의 이슈로 떠오른 뮤지컬 '에비타(Evita, 1978)'는 1978년 당대 미국 최고의 연출가 '해롤드 프린스(Harold Prince, 1928-)'의 연출로 영국 런던 웨스트 엔드의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Prince Edward Theatre)에서 러브 송인 '날 위해 울지 마세요 아르헨티나여(Don't Cry For Me Argentina)'를 필두로 재즈, 미사곡, 합창곡 등의 아름다운 음악과 탱고, 왈츠, 폴카 등의 화려한 춤과 함께 초연되었습니다.
21세기형 악녀와 성녀로 불려지기도 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 '에비타(Evita)'의 강렬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담긴 뮤지컬 '에비타(Evita, 1978)'는 1981년 로렌스 올리비에상 최고의 뮤지컬상(The Laurence Olivier Award For Best Musical)과 토니상에서 최고의 뮤지컬상(The Tony Award For Best Musical), 작품상, 작곡상, 작사상, 감독상 등 7개 부문상을 수상하였고 뉴욕 비평가협회 특별상을 수상하였습니다. 1980년에는 그래미상을 수상하는 등 불멸의 세계적인 명작 뮤지컬로 자리잡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1996년에는 영화 '에비타(Evita, 1996)'가 제작 상연되었고 아르헨티나의 영화에 대한 일부 거부반응 등으로 다시 한번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의 뮤지컬 '에비타(Evita, 1978)'를 바탕으로 영국의 각본가이자 영화 감독인 '알란 파커(Alan Parker, 1944-)'가 감독을 맡았고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음악을 맡아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 에바 페론의 삶을 그린 영화 '에비타(Evita, 1996)'가 많은 호평을 받으면서 상연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싱어 송라이터, 배우이자 인기 여가수인 '마돈나 / 마돈나 루이스 치코네(Madonna / Madonna Louise Ciccone, 1958-)'가 당시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극 중 '에비타(Evita)' 역을 맡아 열연하였고 '안토니오 반데라스(Antonio Banderas, 1960-)'가 '체 게바라(Che Guevara)' 역을 맡았으며 '조나단 프라이스(Jonathan Pryce, 1947-)'가 '후안 페론(Juan Peron)' 역을 맡아 열연한 영화로 크게 히트한 명화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영화 '에비타(Evita, 1996)'의 O.S.T. 곡인 '날 위해 울지 마세요 아르헨티나여(Don't Cry For Me Argentina)', '그대는 날 사랑해야 해요(You Must Love Me)'의 곡 중 '그대는 날 사랑해야 해요(You Must Love Me)'의 곡은 뮤지컬 '에비타(Evita, 1978)'의 원곡에는 없는 이 영화만을 위한 러브 송으로 마돈나의 모든 감성을 극대화하여 부른 신곡이자 명곡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골든 글로브상 최고의 작품(Best Picture)상, 최고의 주제가(Best Original Song)상과 최고의 여우주연(Best Actress)상을 수상하였고 이 영화의 러브 송인 '그대는 날 사랑해야 해요(You Must Love Me)'의 테마곡은 아카데미상 최고의 노래(Best Priginal Song)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하였습니다.
'에바 페론 / 에바 두아르테(Eva Peron / Eva Duarte, 1919-1952)'는 1919년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Buenos Aires Province, Argentina)의 대초원 작은 마을 로스 톨도스(Los Toldos)의 농장에서 부유한 농장주인 '후안 두아르테 / 후안 두아르테 이바르구렌(Juan Duarte / Juan Duarte Ibarguren, 1914-1953)'과 그의 농장의 요리사인 어머니 '후아나 이바르구렌(Juana Ibarguren)' 사이에서 네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후안 두아르테는 정식 부인이 따로 있었고 다섯 사생아 중 네 번째로 태어난 에바를 비롯하여 다른 자매들을 법적인 자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생부로부터 버림받은 그녀는 어머니와 다른 자매들과 함께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의 후닌(Junin, Buenos Aires Province)으로 옮겼고 어려운 생활로 밑바닥 삶을 전전하였습니다. 에바 두아르테는 어머니 가족의 도움으로 학교에 갈 수 있었고 학교 연극과 연주회에서 그녀의 재능을 발휘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삼류 연극배우와 가수 그리고 라디오 아나운서로 활동하던 25세 때인 1944년에 당시 노동부장관이던 '후안 페론(Juan Peron, 1895-1974)' 대령과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었습니다.
후안 페론 노동부장관은 1944년 1월 15일에 일어난 아르헨티나의 산후안(San Juan, Argentina) 지진으로 1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속출한 참사사건의 이재민 구호기금 조성을 위해 모금운동에 나섰습니다. 이때 에바 두아르테와 처음 만났습니다. 구호기금 마련으로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받은 후안 페론 노동부장관은 부통령에 추대되었고 군부는 물론 국민들의 지지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안 페론과 에바 두아르테는 1945년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에바 두아르테는 후안 페론 대통령 후보 선거의 승리를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에바 페론은 남편의 선거 유세 자리에 빠짐없이 동행하였고 여성과 노동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녀가 '에비타(Evita)'라는 애칭으로 불린 것도 이 시기부터였습니다.
후안 페론은 1946년 2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에바 페론의 적극적인 내조에 힘입어 54%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46년 6월 정식으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식량 수요의 증가로 농,축산물의 수출이 늘어나면서 많은 외화를 벌어드린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퍼스트 레이디가 된 에바 페론은 많은 노동자와 여성, 빈민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었으며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에바 페론은 미국의 시사 전문지 '타임(Time)'의 표지 인물에 두 번씩이나 선정될 정도로 당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여성으로 회자되기도 하였습니다. '페론을 위하여(Parra Peron)'라는 명분을 내세워 기업가, 농장주, 부유층들의 재산을 환수하여 노동자, 빈민자들에게 무상 분배하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가진자에게는 천한 악녀 퍼스트 레이디였고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는 거룩한 성녀 퍼스트 레이디이자 자상한 국모로 칭송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노동자, 빈민자의 천국을 만들겠다는 그녀의 야심찬 빈민 노동 구제정책은 그녀에게 있어 모든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되었던 것입니다. 에바 페론은 정부 내에서 공식적인 직책에 오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동자, 빈민자들에게 후한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해주었고 그녀는 사실상의 보건부장관 자리에 있었습니다. 1947년에는 유럽 여러나라를 방문하였고 많은 관심을 끌기도 하였습니다. 스페인에서는 가난한 아동들을 위해 구호활동을 펼쳤고 프랑스에서는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 대통령을 만나 식량지원을 약속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노동자와 빈민구제를 위한 복지개혁 입법을 서둘러 착수하였고 정의당의 분파인 여성 페론당(The Peronist Women's Party)을 결성하여 그 대표로 있으면서 여성 참정권 도입 등의 여성 운동에도 기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노동단체, 기업 등의 헌금으로 운영되는 '에바 페론 재단'을 만들었고 전국 곳곳에 세워지는 학교, 병원, 양로원 등의 건립비와 각종 자선사업지원 활동에 쓰여지면서 국민들의 환호와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에비타 병원열차'를 운영하였고 의료장비 등을 탑재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무료진료를 실시하였으며 지진 및 재해를 당한 나라에 기금을 지원하는 등 많은 자선활동을 펼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아르헨티나 내 상류 부유층은 물론 군부로부터 비난을 받는 등 그녀와의 사이도 나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 노동자와 여성, 빈민자들의 국모로서 그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파리 패션계의 여왕으로 주목을 받았고 유럽 상류사회 여성들로부터 추앙을 받으면서 짧지만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도 하였습니다. 1950년 그녀는 자궁 경부암(Cervical Cancer) 진단을 받았고 점차 건강이 악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1951년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군부의 반대로 같은 해 10월 부통령 후보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하였습니다. 남편인 후안 페론 대통령이 1951년 11월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부인 에비타를 아르헨티나의 '영적 지도자(Spiritual Leader Of The Nation)'로 추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갔고 1952년 7월 26일 33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 에바 페론의 장례식은 국민의 애도 속에 국장이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노동자와 국민은 에비타를 성녀로 추대하려는 시도를 하는 반면 그녀의 정적들은 국민들에게서 그녀의 흔적을 없에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에바 페론에 대한 양분된 평가로 정국이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1955년에 일어난 쿠데타로 후안 페론 대통령이 축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쿠데타로 집권한 새로운 정부는 방부 처리되어 있던 에바 페론의 시신이 페론주의의 상징이 될 것을 염려하였으며 그녀의 시신을 은익하여 이탈리아로 빼돌렸습니다. 그러나 1971년 이 시신은 스페인에 망명 중인 후안 페론측에 인도되었습니다.
후안 페론은 파나마 망명 당시인 1956년에 그의 세 번째 부인이 되는 '이사벨 페론 / 이사벨 마르티네스 데 페론(Isabel Peron / Isabel Martinez De Peron, 1931-)'을 만났고 스페인으로 망명지를 옮긴 후인 1961년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후안 페론과 이사벨 페론은 아르헨티나로 돌아왔고 1973년 대선에 러닝메이트로 출마하였으며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1974년 후안 페론 대통령의 사망으로 이사벨 페론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받았고 집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사벨 페론 대통령은 1975년에 에바 페론의 시신을 아르헨티나로 송환하였으며 대통령궁(Casa Rosada)에 안치하였습니다. 그러나 1976년에 경제파탄과 정치혼란을 내세운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사벨 페론 대통령이 실각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에바 페론의 시신은 다시 군사 정권에 의해 제거되었으며 그녀의 시신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콜레타 지구(Barrio Recoleta) 공동묘지(Cementario)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두아르테(Duarte) 가문 가족묘지에서 영면하고 있습니다.
실로 에바 페론은 정적들에 의해 죽어서도 참담한 고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녀에 대한 엇갈린 찬반논란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들은 국민들의 열열한 칭송을 받았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를 향한 추모 열기는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는 2014년 4월 29일~5월 9일 일정으로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당시 정종명 이사장)'가 주최하고 '안전행정부'와 '브라질 한인회'가 후원한 제24회 '해외 한국문학 심포지엄' 및 제23회 '해외 한국문학상' 시상식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Sydney)'와 함께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꼽히는 포르투갈어로 '1월의 강'이라는 뜻을 지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Brazil)의 투어 일정에 나섰습니다. '코르코바도 언덕(Morro Do Corcovado)의 거대 예수그리스도상(Cristo Redentor)', '팡데아수카르 / 슈가로프산 / 빵산(Pao De Acucar)', '코파카바나 해안(Praia De Copacabana)' 등의 투어에 이어서 브라질 최대 도시로 꼽히는 상파울루(Sao Paulo, Brazil)에 도착하였습니다.
5월 1일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인회 회관에서 성대하게 거행된 '해외 한국문학상' 시상식에서 필자의 중앙대학교 동문이자 선배이신 정하원 선생님께서 '해외 한국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힘찬 박수와 함께 축하를 드립니다. 동행사를 마치고 브라질의 포스 두 이구아수(Foz Do Iguasu, Brazil)를 향해 떠났습니다. 그러나 포스 두 이구아수 국제공항(Foz Do Iguasu International Airport)의 기상악화로 몇 차례 착륙시도가 무산되었고 다시 상파울로로 회항하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익일 현지 기상이 호전되었고 다소 일정에 차질이 있었지만 무사히 포스 두 이구아수 국제공항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브라질편 이구아수 국립공원(Iguazu National Park) 이구아수 폭포에서 다시 아르헨티나의 푸에르토 이구아수(Puerto Iguazu, Argentina)로 이동하였고 예정된 일정을 소화해냈습니다. 5월 3일 LAN 아르헨티나 항공 LA 4025편으로 이구아수 카타라타스 국제공항(Iguazu Cataratas International Airport)을 출발하였고 현지시각 오후 4시경 아르헨티나의 수도이자 스페인어로 '아름다운 공기'라는 뜻을 지닌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AEP 국내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종명 이사장(현 계간문예 발행인)님 이하 우리 일행들은 재아르헨티나 문인협회 여러분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 연구위원이며 아르헨티나 브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시면서 세계 한인사회 중심넷 '월드코레안(Worldkorean)'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인 박채순(Profesor, Park Chae Soon / Tomas Park) 정치학 박사님의 친절한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공사다망하심에도 불구하시고 공항까지 나오셔서 환영 현수막과 함께 따뜻하게 맞이해주신 재아르헨티나 문인협회 여러분들에게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일행은 5월 4일 일찍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 시티 투어에 나섰고 그 첫 코스가 에바 페론의 묘가 있는 레콜레타 지구(Barrio Recoleta) 공동묘지(Cementario)였습니다. 우리가 에바 페론의 아버지 두아르테(Duarte) 가문 가족묘지에 안장된 에바 페론의 묘에 도착한 시각이 현지시각 오전 9시 20분 경이었는데 이미 많은 헌화가 놓여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에바 페론에 대한 추모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귀국 일정에 따라 페루의 리마(Lima, Peru)를 거처 해발 3,600m 에 위치한 옛 잉카제국(Inca Empire)의 수도인 고대 도시 쿠스코(Cusco)에 들렀습니다. 잉카문명의 문화 중심지였으며 잉카문명의 유적지 중 하나인 케추아어(Quechua)로 '배꼽'이란 뜻을 지닌 고대 도시 전설의 쿠스코입니다. 일행 모두는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 근처에 있는 한 식당에서 중식을 하였습니다. 식사 중에 우리 일행은 식당의 4인조 전통 악기 밴드 그룹의 연주곡 '엘 콘도르 파사 / 콘도르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 연주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면서 여독을 풀기도 하였습니다. 이어서 우리 일행은 페루의 우루밤바(Urubamba) 계곡에 연한 해발 약 2,057m에 위치한 잉카문명의 고대 도시이자 공중 도시로 알려진 '마추픽추(Machu Picchu)' 등정에 나섰습니다. 페루의 고대 도시 마추픽추는 1983년에 고대 도시 '쿠스코(Cusco)'와 동시에 유네스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에 등재되었고 2007년에는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New Seven Wonders Of The World)'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태양의 신전(Templo Del Sol)', 태양을 잇는 기둥이라는 뜻을 지닌 '인티후아타나(Intihuatana)' 돌기둥, '능묘(La Tumba Real)', '세 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Room Of The Three Windows)', '계단식 농경지' 등은 태양을 숭배하면서 생활해온 당시의 잉카문명을 엿볼 수 있는 유적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낮은 기압을 잘 적응하지 못해 고산증으로 숨이 찾던 추억도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1948-)'는 1948년 영국 태생으로 영국의 천재적인 작곡가로 그의 명성을 떨쳤으며 일명 '뮤지컬의 마술사(Magician Of The Musical)'로 불려지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부친 '윌리엄 로이드 웨버(William Lloyd Webber, 1914-1982)'는 영국의 작곡가이자 런던 웨스트민스터 센트럴 홀(Westminster Central Hall, London) 이사와 로열 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 교수로 재직하였고 모친 '진 존스톤(Jean Johnstone, 1921-1993)'은 피아노 교사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 '줄리안 로이드 웨버(Julian Lloyd Webber, 1951-)'는 첼로 연주자(Solo Cellist)로 활동하고 있는 음악 가족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유년을 보냈습니다. 따라서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어릴 때 프렌치 호른, 바이올린, 피아노 등을 연주하였고 7살 때는 작곡을 하였으며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연극 배우로 활동했던 그의 숙모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뮤지컬 '지지(GIGI, 1952)',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1956)' 등의 공연을 보면서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웨스트민스터 스쿨(Westminster School)을 졸업한 후 옥스포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친이 재직하고 있는 로열 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으로 편입하여 음악으로 진로를 바꾸었고 클래식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는 17세 때인 1965년에 절친한 친구로 지냈던 '팀 라이스(Tim Rice, 1944-)'의 가사에 곡을 붙여 그들의 첫 작품이기도 한 음악극 '우리와 닮은 사람들(The Like Of You, 1965)'을 작곡하였고 발표하였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평소 신앙심이 깊었습니다. 1968년에 팀 라이스가 가사를 쓴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 / 요셉과 놀라운 색동옷(Joseph And The Amazing Technicolor Dreamcoat, 1968)'의 작품을 작곡하였고 발표하였습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로 '야곱(Jacob, 기원전 2006년-기원전 1859년)'의 12명의 아들 중 열한 번째의 아들인 총명하고 영특한 요셉과 형들의 이야기를 그린 쇼트 칸타타(Short Cantata) 형식의 작품으로 많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의 러브 송인 '언젠가 꿈은 이루어질 거예요(Any Dream Will Do)'의 테마곡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이 런던의 '타임스(The Times)' 잡지로부터 호평을 받게 되면서 런던 웨스트민스터 센트럴 홀(Westminster Central Hall, London)에서 공연을 갖게 되었으며 많은 관심과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이 작품은 1976년에 2막 짜리 뮤지컬로 다시 만들어졌고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도 올랐으며 1982년에는 토니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자신감을 얻게 된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는 '뉴 벤처 시어트리칼 매니지먼트(New Venture Theatrical Management)'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본격적인 작품활동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나이 21세 때인 1969년에 싱글 앨범을 발표하였고 이 앨범을 바탕으로 1970년에는 록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 슈퍼스타 /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를 두 장의 앨범으로 발표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최후의 7일간을 극화 한 록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는 테마곡 '난 어떻게 그이를 사랑해야 하나요(I Don't Know How To Love Him)'와 함께 크게 히트하였고 미국에서 총 150만장 이상의 앨범이 판매되었습니다. 1971년 제작자인 '로버트 스틱우드(Robert Stigwood, 1934-)'에 의해 제작된 뮤지컬 '예수 그리스도 슈퍼스타 /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 1971)'는 토니상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는 뮤지컬 '예수 그리스도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 1971)'의 빅 히트에 힘입어 그들의 명성을 널리 떨치게 되었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1972년 7월에 옥스포드 대학 시절에 만난 '사라 휴길(Sarah Hugill)'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팀 라이스와 함께 20대 초반의 나이에 세계적인 스타로 급부상하면서 서로의 음악적 견해의 차이를 느끼기 시작하였으며 서로가 떨어져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1975년에 희극작가 '앨런 아이크번(Alan Ayckbourn, 1939-)'과 함께 만든 작품 '지브스(Jeeves)'를 발표하였으나 3주 공연을 끝으로 종영하게 되면서 실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1976년에 다시 팀 라이스와 손을 잡았고 뮤지컬 '에비타(Evita, 1978)'의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1978년에 해롤드 프린스가 연출을 맡은 뮤지컬 '에비타(Evita, 1978)'의 발표와 동시에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인기를 되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뮤지컬 '에비타(Evita, 1978)'의 O.S.T. 테마곡인 '날 위해 울지 마세요 아르헨티나여(Don't Cry For Me Argentina)'는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 대통령의 영부인 에바 페론이 극 중에서 부른 명곡입니다. 이 작품은 토니상에서 작품상, 작곡상, 작사상, 감독상 등 7개 부문의 상을 석권하였고 뉴욕 비평가협회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에는 그래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하였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팀 라이스와 결별하였고 이어서 '리얼리 유스풀 그룹(Really Useful Group)'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1981년에 영국 시인 'T.S. 엘리엇(Thomas Sterns Eliot, 1888-1965)'의 우화집 '웃기는 고양이 아저씨의 행장기 -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 1939)'를 근거로 한 총14편의 시에 곡을 붙였고 '캐머런 메킨토시(Cameron Mackintosh, 1946-)가 제작을 맡았으며 '트레버 넌(Trevor Nunn, 1940-)'이 연출을 맡은 뮤지컬 '캣츠(Cats, 1981)'를 발표하였습니다. 뮤지컬 '캣츠(Cats, 1981)'는 '고양이들은 9번의 부활로 새 생명을 얻는다'라는 고양이들의 전설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의인화하였으며 다양한 캐릭터의 고양이들은 인간의 삶으로 표현되며 이를 통해서 인간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을 풍자하여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러브 송인 테마곡 '추억(Memory)'은 극 중에서 매혹적인 고양이로 명성을 날렸던 유흥가 출신 늙은 고양이 그리자벨라(Grizabella)가 지난 날의 추억을 떠올리고 모두의 개성을 존중해주며 자신의 개성도 소중하게 아끼면서 새로운 행복을 열망하면서 부른 명곡입니다. 이 작품은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어낸 세계적인 뮤지컬로 우뚝 섰던 것입니다. 1981년 영국 런던 웨스트 엔드의 뉴 런던 극장(The New London Theatre)에서 초연된 후 21년이 넘는 2002년 5월 11일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9000회를 마지막으로 종연되었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최장기 공연 뮤지컬로 기록되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1982년에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Broadway)의 윈터 가든 극장(Winter Garden Theater)에서도 공연을 시작한 후 18년이 되는 2000년까지 7,485회를 마지막으로 종연되었습니다. 이 기록은 1988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1986)'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마제스틱 극장(Majestic Theater)에서 공연을 시작한 후 18년이 되는 2006년 1월 9일 7,486회를 기록할 때까지 미국에서 가장 최장기 공연을 한 뮤지컬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흥행에 가장 성공한 뮤지컬로 전 세계가 사랑한 영원한 걸작으로 평가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러브 송인 '추억(Memory)'은 이후 무려 170여 명의 가수들이 600회 이상 녹음을 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어냈습니다. 뮤지컬 '캣츠(Cats, 1981)'는 1981년 로렌스 올리비에상 최고의 새 뮤지컬상, 토니상 최고의 뮤지컬상을 비롯한 7개 부문의 상과 그래미상 등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하였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1982년에 단막극인 뮤지컬 '송 앤드 댄스(Song And Dance, 1982)'를 발표하였고 1984년에는 아들과의 기차 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뮤지컬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Starlight Express, 1984)'를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1983년 11월 두 아이를 두고 사라 휴길과 이혼하였습니다. 그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캣츠(Cats)' 공연장에서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 1960-)'과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었고 이후 이들은 1984년 3월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은 오래가지 못하였고 1990년 1월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1985년 뮤지컬 '레퀴엠(Requiem, 1985)'을 발표하였고 테마곡 '피에 예수(Pie Jesus)'의 곡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이어서 1986년에 자신의 세계적인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추리소설 작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 1868-1927)'의 원작 소설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1910)'에 근거한 대본에 곡을 붙였고 캐머런 매킨토시가 제작을 맡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1986)'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발표와 동시에 가히 폭발적인 인기로 지구촌 곳곳을 요동치게 했고 사상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였습니다. 1986년 영국 런던 웨스트 엔드의 허 마제스티 극장(Her Majesty's Theatre)에서 초연한 후 2010년까지 일만회 공연을 기록하였고 1988년에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마제스틱 극장(Majestic Theater)에서 공연을 시작한 후 2012년까지 역시 일만회의 공연을 기록하였으며 지금도 공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실로 전 세계 29개 국가 150개 도시에서 6만오천회 이상 공연되었고 1억 명 이상이 관람한 사상 최고의 인기 뮤지컬이 되었으며 사상 최장기 뮤지컬로 자리잡게 된 최고의 걸작 뮤지컬입니다. 이 작품의 러브 송인 테마곡 '밤의 음악(The Music Of The Night)'은 그의 부인인 사라 브라이트만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1986)'에서 '크리스틴(Christine)' 역을 맡아 런던 웨스트 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열연하였고 대중가수로 성공하였으며 클래식과 팝을 넘나드는 독특한 음색을 지닌 세계적인 여가수로 자리 잡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1986년 런던 로렌스 올리비에상 3개 부문의 상과 1988년 뉴욕 토니상 7개 부문의 상을 수상하였고 드라마 데스크상 7개 부문의 상을 비롯하여 전 세계 주요상 시상식에서 70개 이상의 상을 석권한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1989년 뮤지컬 '사랑의 양상(Aspect Of Love, 1989)'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라 브라이트만과의 결혼생활을 청산하였고 1990년 1월에 이혼을 하였습니다. 1년 후인 1991년 2월에 '마델라인 구르돈(Madeleine Gurdon, 1962-)'과 결혼하였고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현재까지 생활하고 있습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1993년에 뮤지컬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 1993)', 1996년에 뮤지컬 '바이 지브스(By Jeeves, 1996)', 1997에는 뮤지컬 '휘슬 다운 더 윈드(Whistle Down The Wind, 1997)', 2000년에는 뮤지컬 '뷰티풀 게임(The Beautiful Game, 2000)', 2004년에는 뮤지컬 '우먼 인 화이트(The Woman In White, 2004)' 등을 발표하였으며 모두 흥행에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습니다. 2011년에는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 2011)'를 발표하였고 이 작품과 러브 송인 테마곡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Somewhere Over The Rainbow)'의 곡을 많은 사랑과 함께 히트하기도 하였습니다.
영국 런던 웨스트 엔드의 뮤지컬은 '뮤지컬의 마술사'로 불리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뮤지컬의 '미다스(Midas)의 손'으로 불리는 제작가 캐머런 매킨토시의 등장으로 옛 뮤지컬의 영광과 그 주도권이 다시 뉴욕 브로드웨이로부터 돌아왔던 것입니다. 원래 런던 웨스트 엔드는 뮤지컬의 본고장이자 발원지였습니다. 그동안 영국 런던 웨스트 엔드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그 인기와 주도권을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유명한 뮤지컬들이 모두 영국 런던 웨스트 엔드에서 제작, 초연되었고 성공을 거둔 후에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로 옮겨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캐머런 매킨토시의 등장으로 런던 웨스트 엔드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뮤지컬 '에비타(Evita, 1978)', 뮤지컬 '캣츠(Cats, 1981)',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1986)' 등이 런던 웨스트 엔드에서 앤드루 로이드 웨버에 의해 작곡되었고 세계를 감동시킨 세계 4대 뮤지컬이라 할 수 있는 뮤지컬 '캣츠(Cats, 1981)', 뮤지컬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1985)',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1986)', 뮤지컬 '미스 사이공(Miss Saigon, 1989)' 등이 역시 런던 웨스트 엔드에서 캐머런 매킨토시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크게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은 쇼 중심의 화려하고 감각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런던 웨스트 엔드의 뮤지컬은 음악 중심의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작품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미국의 디즈니(Disney Theatrical / Disney Theatrical Productions Limited)사가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었고 뮤지컬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1994)', 뮤지컬 '라이언 킹(The Lion King, 1997)', 뮤지컬 '아이다(Aida, 2000)', 뮤지컬 '인어 공주(The Little Mermaid, 2008)' 등을 제작하였고 크게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실로 런던 웨스트 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는 세계 뮤지컬계의 양대산맥을 이루면서 각축을 벌이고 있고 명실공히 세계 뮤지컬계의 명소로 각각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소리에는 흥미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뮤지컬 음악에만 흥미를 느껴왔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뮤지컬계의 거장이 되었고 현대 뮤지컬계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는 영국 왕실로부터 1992년 '기사 작위(Knighthood)'를 받았고 1995년에 '종신 작위(House Of Lord's)'를 수여받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1995년에는 미국에서 영국인으로는 드물게 '미국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봉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하였습니다.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 1960-)'은 1960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발레학교에서 무용과 음악을 배웠고 14세 때인 1973년에 런던 피카디리 극장(The piccadilly theatre)에서 뮤지컬 '나와 엘버트(I And Albert, 1972)'를 통해서 데뷔하였습니다. 댄스 그룹 '팬스 피플(The Pan's People)'에 참여하였고 '아레네 필립스(Arlene Philips, 1943-)'의 '핫 고십(Hot Gossip)' 무용단에서 멤버로 활동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978년에 싱글 '우주선 기병에게 내 마음을 잃었어요(I Lost My Heart To A Starship Trooper)'의 곡을 불렀고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히트하였습니다.
그녀는 1981년 영국 런던 웨스트 엔드 '뉴 런던 극장(The New London Theatre)'의 뮤지컬 '캣츠(Cats)' 공개 오디션에 합격하였고 뮤지컬 가수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뮤지컬의 천재로 각광을 받았던 영국의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1948-)'와의 운명적인 만남도 이루었습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뮤지컬 '에비타(Evita, 1978)'의 러브 송인 테마곡 지금 흐르고 있는 '날 위해 울지 마세요 아르헨티나여(Don't Cry For Me Argentina)', 뮤지컬 '캣츠(Cats, 1981)'의 러브 송인 테마곡 '추억(Memory)' 등의 곡을 불러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날 위해 울지 마세요 아르헨티나여(Don't Cry For Me Argentina)'는 1978년에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작곡을 맡았고 '팀 라이스(Tim Rice, 1944-)'가 작사를 맡은 뮤지컬 '에비타(Evita)'의 테마곡입니다. 극 중에서 실존인물인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Juan Peron, 1895-1974)'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 / 에바 두아르테(Eva Peron / Eva Duarte, 1919-1952)' 영부인(First Lady Argentina)이 부른 곡입니다. '에비타(Evita)'는 영부인 에바 페론의 애칭입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클럽의 댄서 등을 거쳐 배우와 가수로 활동하면서 영부인이 되었고 33세의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뮤지걸입니다. 이 곡은 1976년에 영국의 배우이자 가수인 '줄리 커빙톤(Julie Covington, 1946-)'에 의해 처음 불려졌으며 지구촌 곳곳의 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려진 명곡입니다. 뮤지컬 '에비타(Evita)'는 1978년 런던의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Prince Edward Theatre)에서 초연되었고 많은 사랑과 함께 호평을 받은 세계적인 뮤지컬입니다.
그리고 1996년에는 영국의 각본가이자 영화 감독인 '알란 파커(Alan Parker, 1944-)'에 의해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음악을 맡은 영화 '에비타(Evita, 1996)'가 제작되어 상연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영화에 대한 일부 거부반응 등으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추억(Memory)'은 극 중에서 매혹적인 고양이로 명성을 날렸던 유흥가 출신 늙은 고양이 그리자벨라(Grizabella)가 지난 날의 추억을 떠올리고 행복을 가슴 속에 되새기면서 불렀습니다. 모두의 개성을 존중해주고 자신의 개성도 소중하게 아끼면서 새로운 행복을 열망하며 부른 명곡입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1984년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결혼하였습니다. 뛰어난 미모와 가창력으로 당대 최고의 클래시컬 크로스오버 소프라노(Classical Crossover Soprano) 가수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레퀴엠(Requiem, 1985)',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1986)' 등에 주연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세계 뮤지컬계의 스타덤에 올라섰던 것입니다.
1986년 10월 9일 런던 웨스트 엔드에서 초연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1986)'은 프랑스의 추리소설 작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 1868-1927)'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1910)'을 토대로 하여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뮤지컬입니다. 특히 극중 펜텀(Phantom)이 부르는 이 작품의 러브 송인 테마곡 '밤의 음악(The Music Of The Night)'은 사라 브라이트만의 생일 선물로 작곡되었다고 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테마곡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날 생각해줘요(Think Of Me)', '그대에게 바라는 전부이에요(All I Ask Of You)' 등의 곡도 많은 사랑과 함께 히트하였습니다.
그 녀가 가지고 있는 넘버 원 엘범으로 '레퀴엠(Requiem / Classical charts 1985)'과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1987)'이 있고 1989 년 발표한 앨범 'The songs that got away'는 영국과 미국에서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계속해서 뉴욕, 모스크바, 도쿄 등지를 오가며 라이브 공연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1990년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이혼 한 후 이탈리아로 건너갔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벨칸토 창법을 섭렵하는 등 한동안 공백기를 거친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였습니다. 1992년에는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 1946-)'와 듀엣으로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제가 '영원한 친구(Amigos Para Siempre)'를 페막식 행사에서 불렀고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1994년에는 '플레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 1941-)'와 함께 일본 순회 공연을 가졌고 독일의 유명 프로듀셔인 '프랭크 피터슨(Frank Peterson, 1963-)'을 만나 팝과 오페라를 아우른 새로운 '팝페라(Popera)' 장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1997년에 팝페라 앨범 'Timeless'를 발표하였습니다. 수록된 듀엣곡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에요(Con Te Partiro / Time To Say Goodbye)'의 곡은 이탈리아 시각 장애인 테너 가수인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 1958-)'와 함께 불렀고 크게 히트하였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어낸 명곡입니다. 이 듀엣곡은 독일의 IBF 라이트 헤비급 복싱 세계 챔피언인 '헨리 마스케(Henry Maske, 1964-)'의 요청에 의해 그의 은퇴식에서 불려졌던 명 듀엣곡이기도 합니다. 독일인들은 독일 통일 후 야기된 갈등과 경제 수준 격차에 의해 반목하던 동, 서독간의 화합에 크게 기여한 헨리 마스케를 영웅시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록된 '사랑의 아랑후에즈(En Aranjuez Con Tu Amor)', '그대 같은 사람은 없어요(No one Like You)', 아르헨티나의 작곡가이며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호세 쿠라(Jose Cura, 1962-)'와 듀엣으로 부른 '제발 내게 그대를 사랑할 방법을 알려주세요(Just Show Me How To Love You)', '날 위해 내 곁에(There For Me)', 영화 '햄릿(Hamlet, 1996)' O.S.T. 곡 '평화 속에(In Pace)' 등의 곡도 불렀으며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의 앨범 'Timeless'는 전 세계 34개국에서 150개의 골드와 플레티넘을 기록하였습니다.
1986년 영국의 유명한 영화 감독 '롤랑 조페(Roland Joffe, 1945-)'가 감독을 맡았고 영화음악의 대가이자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작곡가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1928-)'가 음악을 맡은 영화 '미션(The Mission, 1986)'의 O.S.T. 테마곡인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의 곡을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하였고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영화 '미션(The Mission, 1986)'은 1750년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3국의 국경 수역인 이구아수(Iguasu) 강 인근의 원주민인 과라니족(Guaranis) 인디오 마을로 파견되었던 스페인 예수회(Jesuits)의 '가브리엘 신부 / Father Gabriel(제레미 아이언스 분 / Jeremy Irons, 1948-)'가 겪은 실화를 근거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스페인, 포르투갈(Spanish-Portuguese)의 정복 이주민 군대와 맞서 비폭력으로 저항하다 이구아수 폭포(Iguazu Falls) 중앙의 가장 큰 폭포수인 현재의 아르헨티나 푸에르토 이구아수(Puerto Iguazu, Argentina)에 있는 '악마의 목구멍(Garganta Del Diablo)'에서 과라니족 사람들과 함께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비극적 실화를 담은 명화입니다. 테마곡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는 극 중에서 '가브리엘 신부(Father Gabriel)'가 과라니족 인디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연주하는 오보에 연주곡입니다. 맑고 고우며 더없이 고요한 오보에 선율이 과라니족의 꽁꽁 얼어 붙은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와 인종의 편견도 뛰어 넘게 하였습니다.
원래 이 곡은 가사가 없는 연주곡이지만 이 곡에 매료가 되었던 사라 브라이트만은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이 곡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녀는 3 년간에 걸쳐 꾸준히 편지를 띄웠고 설득에 성공하였습니다. 결국 '키아라 페르라우(Chiara Ferrau)'가 이탈리아어로 작사를 하였고 제목 또한 '넬라 판타시아(Nella Fantasia / In my fantasy)'라고 붙여 '엔니오 모리꼬네'가 편곡하게 되는 결실을 이끌어냈던 것입니다.
그녀는 1998년에 이 곡을 그녀의 앨범 'Eden'에 수록하여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지구촌 곳곳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실로 '넬라 판타시아(Nella Fantasia)'는 그녀의 대표곡이자 세계적인 명곡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 곡은 '러셀 왓슨(Russell Watson, 1966-)', '켈틱 우먼(Celtic Woman)' 등 클래식 크로스오버 가수와 수 많은 뮤지션들에 의해 불려졌고 또한 리메이크 되어 불려지기도 하였습니다. 이 앨범 'Eden'에 수록된 '에덴(Eden)', '언제나, 어디서나(Anytime, Anywhere)', '바람에 날리는 먼지에 불과해요(Dust In The Wind)', '오월의 첫날(First Of May)',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의 오페라 '리날도(Rinaldo)' 중에서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 등의 곡도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라 브라이트만은 2000년에 앨범 'La Luna'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 1841-1904)'의 오페라 '루살카(Rusalka)' 중에서 아리아 '달에게 바치는 노래(Song To The Moon)'를 편곡한 '라 루나 / 달(La Luna / The Moon)', '스카보로의 추억(Scarborough Fair)', '보름달이 뜨면(Hijo De La Luna)', '라 칼리파(La Califfa / The Lady Caliph)', '우울한 일요일(Gloomy Sunday)', '사랑(This Love)' 등의 곡들을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스카보로 시장(Scarborough Fair)'은 영국 요크셔 주의 한 항구도시를 말합니다. 1788년을 끝으로 더는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항구도시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행복한 시절을 상징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래된 스코틀랜드 민요로 행복한 시절을 상징하는 항구 도시 '스카보로의 추억(Scarborough Fair)'이 가사와 관련해 슬픈 일화가 담긴 전설로 전래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영국의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이 1966년에 발표한 이 곡은 미국의 베트남 참전을 반대하는 반전가요 중 하나로 유명해진 명곡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은 1967년 '마이크 니콜스(Mike Nichols, 1931-)' 감독의 영화 '졸업(The Graduate, 1967)'의 O.S.T. 테마곡으로 선정되었고 후에 세계 각국의 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바이벌 혹은 리메이크되어 불려졌습니다. 전쟁에 나가 전사한 한 병사가 자신의 몸에 피어난 풀들을 향해 사랑하는 연인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랑 고백으로 비극적인 전쟁의 참상을 담고 있습니다. 전래되고 있는 가사 내용 중 '파슬리(Parsley)', '세이지(Sage)', '로즈메리(Rosemary)', '타임(Thyme)' 등은 중세 시대 때는 오늘 날의 장미처럼 사랑을 상징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솔기도 바늘 자국도 없는 셔츠, 바닷물과 바닷가 사이에 있는 일 에이커의 땅'처럼 현실에서 불가능한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 주문은 이미 자신은 이승을 떠나 만날 수 없기에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역설적인 표출로 보여집니다.
이어서 2001년에는 앨범 'Classics'을 발표하였습니다. 수록된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의 가곡 '엘렌의 노래 / 엘렌의 세 번째 노래 / 아베 마리아, D.839, Op.52, No.6(Ellens Dritter Gesang / Ellen's Third Song / Ave Maria, D.839, Op.52, No.6)', '쇼팽(Fryderyk Chopin, 1810-1849)'의 연습곡 에튀드(Etude) 중에서 '이별의 곡 Op.10, No.3(Chanson De L'adieu / Dans La Nuit, Op.10, No.3)',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v, 1873-1943)'의 '여기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Op.21, No.7(Zdes' Khorosho / How Fair This Spot, Op.21, No.7)'를 편곡한 '세레나데 / 여기가 얼마나 아름다운가(Serenade / How Fair This Place)',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 중에서 '네순 도르마 /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Nessun Dorma)', 그리고 오페라 3부작인 오페라 '잔니 스키키(Gianni Schicchi)' 중에서 유명한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교향곡 제7번 Op.92(Symphony No.7, Op.92) 제2악장 알레그레토에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시 '마왕(Der Erlkonig)'을 붙여 편곡한 '잃어버린 아들아(Figlio Perduto)',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레퀴엠(Requiem)' 중에서 '피에 예수(Pie Jesu)', '요셉 캉틀루브(Joseph Canteloube, 1879-1957)'의 가곡 '오베르뉴의 노래(Chants D'Auvergne / Songs Of The Auvergne)' 중에서 '바일레로 / 목동의 노래(Bailero)' 등의 곡들을 불렀으며 많은 사랑과 함께 호평을 받으면서 지구촌 곳곳에 팝페라 열풍을 일으키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라 브라이트만은 3년 여에 걸쳐서 아리비안 나이트를 테마로 한 동양적인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앨범 'Harem'을 발표하였습니다. '하렘(Harem)'은 이슬람 국가에서 여자들이 분리되어 거처하는 방을 말합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일반 남자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신성한 곳이기도 합니다. 앨범 'Harem'에 수록된 '하렘(Harem)',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오페라 '나비부인(Madame Butterfly)' 중에서 아리아 '어떤 갠 날(Un bel di, Vedremo)'을 편곡하여 부른 '어떤 갠 날(It's Beautiful Day)',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에요(What A Wonderful World)', '자유(Free)', 반전 메시지를 담은 '전쟁은 이제 끝났어요(The War Is Over Now)', '아름다운(Beautiful)', '그대는 내 숨결을 앗아갔어요(You Take My Breath Away)' 등의 곡을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기도 하였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행사에서는 올림픽 공식 주제가 '당신과 나(You and me)'를 중국 가수 '류환(劉歡)'과 듀엣으로 불렀으며 많은 사랑과 함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Symphony', 'A Winter Symphony'와 'Symphony: Live In Vienna'로 이어지는 심포니 시리즈 앨범을 연달아 발표하였고 세계 투어 공연을 꾸준하게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영국의 톱 팝페라 가수입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2011년 중국의 음력 1월 1일 정초 명절(Chinese Lunar New Year)인 1월 27일에 '후난(湖南) TV(Hunan Broadcasting System)'의 '춘절 페스티벌(Spring Festival)'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후난 TV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텔레비전 방송입니다. 그녀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스카보로의 추억(Scarborough Fair)'과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 중 제3막에 나오는 아리아 '네순 도르마 /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Nessun Dorma)'를 열창하였고 많은 사랑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청순한 미모와 그녀 특유의 티하나 없이 맑고 밝으면서 고운 음색과 고음으로 이어지는 청아하고 고요한 목소리로 전세계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 잡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각 앨범의 작사에도 관여하는 등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로 지구촌 만인들의 가슴을 끊임없이 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백 선생님 안녕하세요. 건안 건필하시고 '메르스' 주의하시면서 최고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