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소문공원의 ‘천주교성지화’ 사업에 천도교를 비롯한 민족종교와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서소문공원 바로 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서 종교간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범대위는 11월 16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 앞에서 발족식을 갖고 서울 중구청이 시행 중인 ‘서소문밖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한국 근대사의 역사를 바로 세워 달라고 촉구하며 서소문 공원 일대에 플래카드를 내걸고 천막농성과 노숙을 지속하고 있다. 플래카드에는 ‘서소문역사공원을 시민의 품으로’ ‘순국선열의 서소문에 518억의 혈세로 천주교 성당이 웬말인가’ ‘서소문의 역사를 왜곡하지 마라’ 등의 문구가 담겨있다.
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재, 역사적 의미를 내세워 예산지원에 대한 불만이 토로되고 있다. 결국은 돈이 문제가 되는 셈이다.
서소문공원은 천주교에선 빼놓을 수 없는 성지다. 1984년 시성(諡聖)된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가 순교한 곳이자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해 열린 시복식을 통해 복자 반열에 든 27위의 순교터다. 그런 차원에서 천주교는 오래전부터 단독 성지화 작업을 추진해 왔다. 지난 5월 서울시와 함께 지정해 발표한 ‘서울 천주교순례길’ 코스 중 서울에서 가장 전통적인 천주교 역사를 간직한 코스인 제2코스에 들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광장 시복식에 앞서 먼저 찾았을 만큼 의미가 큰 곳이다.
한편 천도교를 비롯한 범대위의 입장도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형장 중 하나였던 서소문의 역사를 바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소문은 사육신을 비롯한 홍경래·전봉준 등이 처형된 장소이자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김개남 장군의 수급이 효시된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사형장이자 한국 근현대사의 수난과 아픔을 간직한 서소문공원을 왜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서울 중구가 공동으로 천주교 색채가 강한 순교성지로 바꾸려느냐는 지적이다.
“서소문공원은 천주교인만 순교한 곳이 아니라 천도교 유교 등 많은 사람 처형된 곳으로 천주교 단독 성지화 하는 것은 천도교계 차원에서 차별일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 처형된 사람들에 대하여는 유교에 대한 차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체부와 서울 중구는 공식적인 대응은 하지 않았지만 “세계의 유명 관광지로 조성하겠다는 사업 중 하나인데 특정 종교를 너무 의식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천주교와 천도교와의 갈등 같은 특혜지원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원불교가 익산에 건립하기로 한 국제훈련원 사업이 개신교의 반대로 무산된 것도 그 한 사례일 뿐이다. 템플스테이 예산과 10‧27법난 기념사업 , 개신교 종교문화행사 등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정부, 지자체의 예산 지원에 대한 배아픔이 깔려 있다.
이에 황평우 문화재 전문위원은 “종교가 국고보조금을 가져가야할 권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또한 종교라는 이유로 각종 세계 등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도 부적절한 하다. 세금 등 종교인 스스로 지켜야 할 의무의 이행은 외면하면서 국고보조금이라는 권리만 챙기려는 태도는 종교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가 지적한다. 또한 “종교계 스스로 종교와 문화를 구분하고, 과연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원칙에 합당한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글·사진=장정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