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영감에 번뜩이는 재치
- 정희경 시인의 『빛들의 저녁시간』을 읽고
김덕남
1. 시조 사랑의 넓이와 깊이
빛들의 저녁시간에 영혼의 눈으로 신의 말을 받아쓰는 이가 있다. 세상의 경계를 허물며 다가오는 그녀, 세상의 낮은 대상에게 더 낮은 자세로 다가가는 그녀, 현대시조 100인선 중 1차 50인에 선정된, 가장 짧은 시력으로 시조단의 별로 떠오른(국제신문 2016.10.7) 시인, 언론이 먼저 알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 시인이 있다. 부산시조단은 물론이고 한국시조단에서도 정희경 시인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그녀는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짐을 달게 지고 가니 천생 타고난 시조시인이다. 번뜩이는 재치와 깊이 있는 시조 창작으로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린이 시조교실, 어머니 시조교실을 열어 시조의 저변확대를 꾀하고 있다. 동시에 전문 시조잡지의 편집장과 주간, 어린이 시조잡지의 주간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계간평 ‘五讀悟讀’으로 평론가로서의 입지도 단단히 굳혀가고 있다. 크고 작은 시조행사에는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사통팔달 통하지 않은 곳이 없다. 하여 시조사랑의 넓이와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2. 현대인의 소외, 불안을 따뜻하게 길어 올리다
정희경 시인의 시선은 상당히 도회적이면서도 낮은 데로 가 머문다. 상투적인 언어를 배격하고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있다. 즉, 낯설게 하기를 시도하되 관념성과 난해성을 경계하고 있다. 삶 주변에서 시의 재료를 얻고 경험을 통한 유사성에 바탕을 둔 은유와 인접성에 바탕을 둔 환유를 즐겨 쓴다고 자전적 시론에서 밝힌 바 있다. 비인간화된 도시 즉 센텀시티로 지칭되는 현대의 인간상을 연작으로 발표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부산의 시가지를 흘러 바다로 향하는 수영강에 허연 배를 드러낸 숭어를 보는 시인의 눈은 편치 못하다. “경계를 넘나들던 바다 향한 산란의 꿈/가라앉은 유리창에 수초인 양 부딪힌 날/빌딩들 센텀시티에 /조등을 내건다”는 「숭어와 센텀시티 2」에서 숭어의 죽음에 단순한 조의를 표하는 마음을 넘어 자연을 함부로 대한 비판과 자성의 마음을 함께 볼 수 있다. 「전통 호떡」 「화상수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우산을 고칩니다」 「삽목」 「바나나가 있는 식탁」 등 빌딩의 그늘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흙수저’들의 아픔을 이성적으로 접근하여 내면에 감추어진 아픔과 슬픔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내다 종국에는 따뜻하게 감싸는 시인의 긍정적인 시선이 희망을 품게 한다.
발돋움한 찬장에서 마른 국수 쏟아진다
마음 놓고 쭉 뻗은 놈
댕강댕강 부러진 놈
바닥이
거미줄이다
실금 간 빙판이다
밑그림 덮어버린
일요일 오후
촉이 선다
블랙홀의 시간들 살다보면 있는 게지
수돗물 트는 소리에
퉁퉁 붇는
저 항변
- 「갑자기」 전문
기존 시조의 창작과는 사뭇 다른 ‘갑자기’라는 부사를 제목으로 들고 나와 일견 자유시처럼 보이나 다시 읽어보면 자유시에서도 볼 수 없는 깊이와 재미, 숨 쉬는 여백까지 둔 정격의 시조다. 발돋움으로 찬장 문을 여는 순간 우르르 쏟아지는 마른 국수, 가지각색으로 쏟아지는 그 모양이 아무도 예상치 못하는 우리네 삶과 인생을 결부시켰다. “쭉 뻗은 놈” “부러진 놈” “실금 간 빙판”에 선 현대인의 자화상을 자유분방한 수사로 그리고 있다. 밑그림대로, 예상대로 산다면 인생이 무슨 재미요 걱정이겠는가. 살다보면 블랙홀의 시간들 만나기 마련, 그러나 시인은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현상만을 제시함으로서 독자들에게 생각의 여백을 내어주고 있다.
위 시조는 뉴욕일보의 ‘시와 인생’에 소개된 작품이기도 하여 시조의 세계화에 한발 다가선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3. 생명을 노래하다
생명성이 넘치는 시인의 정신적인 고향 ‘지슬리’를 세상에 알리는 첫 시조집 『지슬리』가 출산의 기쁨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대구에서 지슬리로 시집간 새댁 정희경은 학창시절부터 꿈꾸던 시조시인의 길을 지슬리에서 그 씨앗을 길어 올린다. 지슬리를 싸고도는 농촌의 현장성을 다양하게 의미를 함축하여 시조의 행간에다 쏟아 붓고 있다.
「입춘」 「상강」 「소한」에서 절기의 특성을 예리한 족집게로 찍어내듯 한 시인의 시선이 놀랍기만 하다. “곡괭이가 쨍!하고 언 땅을 튀어” 오르는 소한이나 “하늘도 들어와 앉아/살 오르는 가을 안쪽”의 상강이나 “헛간에 매달려서//허공에 파종하는” 마늘의 입춘은 생명의 영원성을 노래한다. “시간이 재잘거린 포플러의 뜬소문/싹둑싹둑 잘라버린” 사과밭의 「적과」, “내어주고 내어준 어미의 빈 젖가슴”의 「감식초」, 고구마밭 다녀간 멧돼지의 “긴 이랑 할퀴고 간 폭식의 야성 앞에” 「절규」하는 농민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에/떼로 오는” 「하루살이」, “홀로된 풍각댁 바지런한 걸음걸이//억세고 뻣뻣해진 슬관절 삐걱댈 때//흰 꽃대 목을 쏙 빼고//그 안부를 묻는”「부추꽃」 등 지슬리로 대표되는 정신적인 고향이 시인의 시밭을 건강하게 일궈나가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뒷모습 가볍게 지슬행 차표를 사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땡볕을 쩍 가르는 매미 울음 따갑다
눈물이 고여 있다, 금방 흘러내릴 듯
온종일 되새김질한 해는 아직 붉은데
꼬리를 치켜세운 네 발에 힘이 간다
핏발 선 눈동자 위 매미 소리 딱 멈춘다
물컹한 주머니 하나 지상에 내린 순간
뜨거운 혓바닥이 세상을 닦아내면
드디어 일어선다, 비틀거린 핏덩이
어미소 산 같은 등이 노을을 끌고 있다
- 「출산」 전문
한여름 매미 울음은 따가울 정도로 쏟아지는데 어미소가 그렁한 눈으로 “꼬리를 치켜세우”고 “네 발에 힘”을 주고 있다. “핏발 선 눈동자 위 매미 소리 딱 멈추”는 순간 “물컹한 주머니 하나를 지상에” 내리고 있다. 눈에 보이 듯한 이 묘사는 실제로 보지 않고는 그릴 수 없는 장면이다. 이 장엄한 순간을 시인은 숨을 멈추듯 용을 쓰면서, 기도하면서 지켜보았으리라. 생명의 탄생은 이렇게도 엄숙한 것이다. 울던 매미조차 울음을 딱 멈추고 있잖은가. 어미의 뜨거운 혓바닥이 새끼를 핥아내면 그 힘을 받아 새끼는 일어선다. 비틀거리는 새끼를 보는 어미의 눈이 애잔하다. “산 같은 등이 노을을 끌고 있다”는 묘사는 세심한 관찰과 삶의 깊이를 꿰뚫어보는 통찰의 눈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정희경 시인은 “詩人은 視人이다”라는 릴케의 말을 빌려 스스로 視人이고자 한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단지 보는 것을 넘어서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깨닫는 길을 가고 있다고 보아진다.
4. 복원을 꿈꾸다
정희경시인의 또 다른 시조의 세계는 있는 그대로 돌려놓는 「복원」에 있다. 이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 ‘인간성 회복’ 내지는 진실에 닿기를 꿈꾼다. 「복원」의 연작시로 “마모되어 잊혀질 듯/시퍼런 침묵의 녹//못 두드린 원이 있어/ 징 속에 박”은「방짜유기」, “그 무게를/못 이겨” 부러진 「벤치」, “밑동만 남겨두고” 사라진 「은행나무」 그리고 “흰 눈물 터진 봄날”의 「개화」에서 그 절정을 본다.
재개발 구겨진 땅에
요란한 포클레인
집 찾는 직박구리
목청이 찢어진다
쓰러진
매화 두 그루
흰 눈물 터진 봄날
- 「복원 5 –개화」 전문
도시는 재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포클레인은 담장을 쓰러뜨리고 매화 둥치마저 사정없이 밀어버린다. 매화나무 위의 직박구리 집이 흔적없이 뭉개지니 그 목청이 찢어질 수밖에. 하얗게 피던 꽃이 한꺼번에 눈물을 터뜨리고 있다. “흰 눈물 터진 봄날”이라는 표현을 잡아낸 시인의 눈이 가히 촌철살인이다. 같은 시조시인으로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복원을 꿈꾸는 정희경 시인이 또 어떤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인지 기대된다.
- 《부산여류시조》 2017. 제31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