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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782. 교회신문 > 제 390호 기도는 응답받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려도 하나님은 저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정빛나입니다. 제 피부를 사진이나 우리 교회 사이트(www.jcc.tv)에서 언젠가 보신 분들, 그리고 제 가까이서 지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태어날 부터 아토피증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는 그리 심하지 않아서 그 증세가 몇 번 나타나다 없어졌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억하기로는 초등학교 3학년 전까지 몇 번의 증세가 더 나타났었는데, 그 후로는 피부에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러니까 작년 10월부터 증세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토피 증세인 줄 모르고 왜 이렇게 자꾸 가려운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점차 그 증세가 서서히 심해지면서 12월부터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뭐라 말할 수도 없이 제 자신이 끔찍했습니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피와 딱지가 얼굴과 두 팔 가득했고요, 진물이 뚝뚝 흐르고, 가루가 저절로… 정말 말하기조차 싫습니다. 주변에서는 “병원에 가봐라”, “아토피 잘 고치는 용한 한의원이 있다더라.” 하며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의 아토피 증상이 너무 심해지자 학교에서 저를 피하는 학생까지 생겨났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 아이들은 직설적으로 “너, 학교에 나오지 마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그래줬으면 하는 행동과 말을 비추었습니다.
좋게 말해서 병원에 입원하라는 뜻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혼자 있었고, 하교하면 곧바로 집에 와서는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병으로 말미암아 저절로 왕따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병원에서도, 한의원에서도 별 뾰족한 수는 없어 보였습니다. 좋다는 것은 다 해보았지만 효과를 느낄만한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새 학년이 되는 3월이 되었는데, 저는 도저히 더 이상 학교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새로운 아이들과 부딪칠 일이 싫었고, 또한 이런 모습으로 더 이상 버틸 자신도 없어 그만 휴학하고 말았습니다. 사춘기를 맞은 저로서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살 소망마저 갖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이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제 외모 때문에 저에게 등을 돌려도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리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예수중심교회에 다녔습니다.
제가 워낙 약한 몸으로 태어났기에 어머니는 늘 저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악성 아토피 증세를 보이니 어머니는 저를 위해 거의 매일 기도로 사시다시피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학교조차 나가지 않는 딸을 보시며 늘 위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잖아. 하나님이 꼭 낫게 하실 거야.” 이런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가 제 신앙이 되었고, 마음의 기둥이 되었고, 그 자체가 제게는 교육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와 각별한 사랑이 없었다면 저는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피부를 고쳐주세요. 저도 피부가 깨끗해져서 학교에도 가고 싶고,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요.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신다고 우리 목사님이 늘 그러셨는데, 하나님, 제 병은 사람이 고칠 수 없으니 하나님이 고쳐주세요.” 정말 간절히, 간곡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 이초석 목사님께 안수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이것도 귀신이 그런 거야.” 하시며,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아주셨고, 저는 뒤로 벌렁 나가떨어지며 귀신이 나가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3개월, 제 피부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습니다. 아직 예전의 흉터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아무도 제가 그렇게 심한 피부병을 앓았다고는 믿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으셨고, 제 마음의 아픔을 아셨기에 저를 위로하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아팠던 것들은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제가 믿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목사님의 말씀처럼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학업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어린 제가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기도는 응답받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도한 3개월이 짧은 것 같지만, 학교까지 그만 둬야 했던 저에게는 3년과도 같은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고쳐주시리라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더니 하나님이 결국 응답해주셨던 것입니다. 어린 저도 해냈으니 성도님들도 기도하고 바라는 것을 꼭 응답 받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끝으로 이 간증문을 쓰게 해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우리 어머니를 비롯하여 많은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우리 이초석 목사님께 말할 수 없는…(아… 뭐라고 써야 표현이 될 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기도하는 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딸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동교구 정빛나
***간증: 797. 교회신문 > 제 438호 세 번째 사는 인생,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가끔 성도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신학생 맞습니까?” “네, 신학생입니다.” “지금 몇이신데요?” 저는 웃으면서 “5학년 9반입니다.” 라고 합니다. 그 성도는 “아휴 졸업하시면 몇이고, 전도사 생활에, 목사 안수까지는 몇 살이네”하며 금방 계산도 잘합니다.
사람들은 제 나이에 관심이 많지만 저는 나이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우선 공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봉사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예배를 위해 이른 새벽부터 강단을 설치하는데 신학생 20여명이 2시간 이상을 단설치 작업을 해야 강단이 완성됩니다. 저는 이 단 설치 작업을 하면서 출애굽기에 광야에서 이동하며 성막설치 작업을 했을 모세를 연상하곤 합니다.
저는 우리 예루살렘 교단이 축복받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이초석 목사님을 24년 동안 변함없이 쓰시는지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20여 년 동안 예배를 위하여 그 많은 정성과 수고와 노력을 쏟아 붓고 있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감탄하지 않겠으며, 지구상에 이렇게 정성을 다해 단을 쌓는 교회가 또 있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일손이 부족한 이곳에 저를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앞뒤, 상하, 좌우, 어디를 봐도 제가 할 일이며,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 즐겁게 봉사하며 또한 자부심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든 강단에 천사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생각만 해도 기쁨과 은혜가 넘치고 또 넘칩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만큼 매도 많이 맞고서 정신을 차려보니 5학년 9반, 59세가 되었습니다.
2007년 11월초, 자동차 운행 중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시속 7, 80km로 달리던 차가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앞면을 땅에 처박고 다시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차 지붕이 땅에 떨어져 박히고, 네 바퀴는 하늘을 향해 서는 대형사고로 차는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 지붕 안쪽에 제가 앉아 있었고, 차 바닥이 지붕이 되어 있습니다.
깨진 옆문으로 나와 차를 보니 차는 납작해져 휴지처럼 됐으나 저는 안경도 그대로 쓰고 있었고, 마치 차에서 살짝 내린 사람처럼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늘을 보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저를 어디에 쓰시려고 살려주셨습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때 구경꾼들이 몰려왔습니다. “이봐요? 시체는 꺼냈나요? 몇 사람이나 탔어요? 다 죽었겠네.” 하며 웅성거리는 구경꾼들 속에 끼여 저도 기웃거리며 구경했습니다.
1993년, 저는 주의 종이 되겠다고 원서를 썼지만, 세상이 붙잡는 것들이 많아 순종하지 못하고 세상과 짝하며 살다 1995년, 또다시 35톤 중장비가 대파되는 대형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다친 곳 없이 무사했습니다. 나는 인생을 다시 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사업에 거듭 실패하면서 ‘올해는 좀 낫겠지.’ 했는데, 이 사고로 세 번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한 대 맞았습니까? 한 대 더 맞기 전에 깨달으세요. 깨닫는 게 복입니다. 사고 후, 열흘이 됐을 때 꿈속에서 이초석 목사님이 체크남방 차림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저는 장로님들 사이에 앉아있었는데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복이 너, 기도원에 들어가 일 좀 해라.” 저는 “세상에서 하는 일이 있어 기도원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열흘이 되었을 때, 다시 꿈을 꾸는데 녹음이 우거진 높은 산 위에 만 톤이 넘는 큰 무역선이 있고 그 배를 제가 샀다며 수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열흘이 됐을 때 꿈을 꾸는데, 갈증으로 목이 타 들어가 죽을 지경인데 누런 흙탕물 속에서 생수를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어느 집이 있어 문을 열어보니 그 건물은 화장실이었고, 인분이 넘쳐 흙탕물처럼 보였습니다. 그 물은 허리까지 찼습니다. 생수를 찾아 얼마를 헤맨 끝에 높은 평상 위에 수정 같은 생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배가 부르도록 생수를 마셨습니다.
저는 이 꿈을 해석받기 위해 2008년 1월 8일, 기도원에서 총회장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목사님은 저를 보자마나 “너한테서 목사 냄새가 난다.”고 하시며, 지금 박진수 학장이 와있으니 상담하고 원서를 내라고 하셨습니다. 갑작스런 목사님의 말씀에 할 말을 못하다 “목사님 제가 지금 몇 살인데요. 쉰아홉입니다.” 했더니 “야, 71살 먹은 사람도 목회를 하고 있다. 너 여기까지 오는데 한 20년 걸렸지?” 하시는 거 아닙니까? 사실 저는 여기까지 오는데 광야길 같은 17년 세월이 걸렸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장정이 일주일이면 들어갈 가나안 땅을 40년 걸려 간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부족한 모습 이대로 주님께 저를 내놓기로 했습니다.
이제 주님의 은혜로 세 번째 사는 인생, 이 몸에 힘이 다하는 날까지 오직 주만 위해 살리라 결단하고 5학년 9반에 신학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의지를 놓은 신학생도의 마음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미력하나마 주님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예루살렘 교단과 교회를 위하여 이 한 목숨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할렐루야!
신학생 한수복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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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제경험으론 간절할때 이루어 주시는 분입니다.
기도는 간절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