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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일시: 2016년 7월 30일 (토)
o 날씨: 흐림/안개/비
o 산행경로: 버리미기재 - 곰넘이봉 - 촛대봉 - 대야산 - 밀재 - 고모치 - 조항산 - 청화산 - 늘재
o 산행거리: 17km
o 소요시간: 10시간
o 지역: 경북 문경, 상주
o 일행: 좋은사람들 산악회 백두21기
▼ 등산지도/고도표
오늘 백두대간 산행은 '버리미기재~늘재' 구간이다. 산행前에 대충 도상훈련(?)을 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산행고도표를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지난 몇번의 산행에서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번 구간은 어떤(떨)지 미리 가늠을 하는 것이다. 이번 구간도 큰산 3개(대야산, 조항산, 청화산)를 넘어야 하며, 작은 봉우리까지 감안하면 6~7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쳐야 하는 난코스라고 할수 있다. 특히 대야산 직벽구간은 대간코스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라 이리저리 걱정이 앞선다. 더군다나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폭염도 견뎌야 한다....
산행들머리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반을 넘기고 있다. 새벽시간인데도 후덥지근한 공기는 오늘 산행도 쉽지 않을 것임을 알려준다.
▼ 버리미기재 (들머리)
버리미기재, 처음에는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고, 이름이 헷갈리더니 이것이 '벌어먹이다'의 사투리라는 것을 알고나니 이제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고향 사투리도 '벌어먹이다'의 발음이 '버리미기다'와 비슷하다....
버리미기재에서 대야산 정상까지는 비탐구역이다. 출입문에 좌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은 덕분에 지난번과는 달리 조용히(?) 산속으로 잠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등산로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곰넘이봉까지 약 1.2km를 가는 동안 세번이나 선두와 후미가 뒤바뀌는 사태(?)가 벌어졌다. 곰넘이봉까지 이어지는 적잖은 암릉과 가파른 비탈길에 초반부터 체력이 급격히 소진되는 느낌이다.
▼ 곰넘이봉 방향 등산로
곰넘이봉은 등산로 옆 커다란 바위 부근이다. 예전에는 바위 위에 작은 정상석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받침대만 남아 있다....
▼ 곰넘이봉(733m)에서 내려가는 산우들
곰넘이봉을 지나도 등산로는 거친 암릉길의 연속이다. 내리막 암릉길을 조금 지나면 우측에 가사적삼을 두른 듯한 기암괴석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미륵바위다. 모두 인증샷을 찍느라 새벽이 분주하다....
▼ 미륵바위
곰넘이봉을 지나면 블란치재까지 약 1.4km는 급격한 내리막길이다. 버리미기재에서 곰넘이봉까지 올라온 높이를 그대로 반납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촛대봉을 향해 오르막이 시작된다.
▼ 블란치재 방향 등산로
▼ 블란치재
블란치재에서 촛대봉까지는 0.7km의 짧은 거리며, 고도차도 크지 않아 비교적 수월하다. 촛대봉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여명이 밝아 온다. 대야산과 주변의 멋진 모습을 담을 수 있기를.....
▼ 촛대봉
촛대봉에서 다시 내리막 암릉길 내려간 후 대야산을 향해 오르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촛대봉에서 대야산까지는 약 1.3km이며, 고도차도 약 400m나 되기 때문에 상당히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야 한다.
▼ 대야산 방향 등산로
잠시 후면 대야산 직벽구간을 올라야 하는데.... 안개 때문에 먼 빨치에서라도 미리 살펴볼 수가 없다.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을때 사람을 더욱 두렵게 한다.....
▼ 진행방향으로 올려다본 대야산 직벽구간 (펌)
드디어 직벽아래에 섰다. 형세를 살펴보니 두갈래 길로 보인다. 앞서 가고 있는 산우를 따라 나는 오른쪽으로.... 가파르기도 하지만 직벽 아래가 낭떠러지라 엄청난 부담이 생긴다. 저절로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먼저 올라간 산우의 도움을 받아 겨우 통과.... 코가 바위에 닿을 정도로 온몸을 싣다 보니 무릎에 크고 작은 영광의 상처가 생겼다.
▼ 직벽구간 모습 (실제는 훨씬 가파르다)
나중에 듣고 보니 직벽구간의 등로는 세갈래이며, 오른쪽은 비교적 수월한 지름길이고, 왼쪽은 새로 밧줄이 정비되었고, 중간이 그야말로 최고의 난이도라고 한다. 그 실제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어떤지 자뭇 궁금하기도 하다. 높이는 약 100m이며,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지금은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많은 산객들이 이곳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한다고 한다....
직벽구간을 올라서면 CCTV가 설치되어 있는 암봉을 건너야 대야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CCTV에서는 '이곳은 출입금지 지역이니 되돌아가라'는 멘트가 반복되고 있다.
▼ 대야산 정상
어제 내린 비때문에 습도가 높아 새벽부터 안개가 짙다. 사방을 가린 짙은 안개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태라면 오늘도 안개만 보게 될 것 같다. 지난번 구간에서는 폭우로, 지지난번 구간은 짙은 안개 때문에 국립공원 속리산의 장쾌한 대간길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는데.... 속리산에서 청화산, 대야산, 희양산, 조령산, 마패봉, 부봉, 황장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멋진 암봉과 암릉들이 많아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 대야산 정상부 모습
대야산 정상에서는 남서쪽으로는 조항산과 청화산을 거쳐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 북동쪽으로는 장성봉과 희먕산을 거쳐 조령산과 주흘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이 한눈에 보인다. 주변에는 중대봉, 칠보산, 군자산, 백악산, 도명산, 가령산, 도장산 등 속리산 국립공원의 명산들이 군집해 있다. 오늘은 어쩔수 없이 회색의 캔버스 위에 기억을 더듬으며 나만의 물감을 칠해본다...
▼ 올려다본 대야산 정상 (2015/6/21 촬영)
▼ 현재의 대야산 정상부 모습 (펌)
▼ 대야산 정상에서 바라본 대간 능선 (촛대봉~장성봉~희양산~주흘산 전경, 2015/6/21 촬영)
▼ 대야산 정상에서 바라본 속리산 전경
초반에 또 무리를 했나보다. 직벽구간을 오르면서 다리에 힘을 너무 쓴 것일까.... 대야산 정상에 올라서니 다리에 경련(쥐)의 조짐이 보인다. 재빨리 스프레이 파스를 뿌리고 근육이완제를 복용하여 쥐와 싸움에 나선다. 아직 초반인데.... 벌써 다리의 상태가 이러면 큰일이다....
▼ 대야산 하산길 등산로
대야산을 지나 이제는 밀재와 고모치를 거쳐 조항산과 청화산을 넘어야 한다. 대야산 정상에서 밀재까지는 위험한 암릉구간이 많지만 지금은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안전한 산행이 가능하다. 바위를 타는 재미(?)는...... 안개는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 갈림길 이정표
대야산에는 기암괴석이 많으며 이름이 붙어있는 바위가 많다. 오늘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도 않고, 다리(경련)에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 ??? 바위
▼ 대문바위
▼ 코끼리바위
▼ 거북바위
밀재로 내려가는 도중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없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큰일이다.... 밀재는 밀치, 밀목치, 밀목재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다고 해서 빽빽할 밀(密)자를 써서 밀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늘은 나무만 빽빽한 것이 아니라 안개도 빽빽하고, 답답함도 빽빽하다. 대야산 정상에서 밀재까지는 약 1km의 거리다.
▼ 밀재
밀재에서는 다시 849, 864봉을 넘어 고모치를 지나야 조항산으로 연결되며, 이구간 역시 비탐구간이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849봉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다리가 흔들린다. 자연히 오늘도 맨 후미로 뒤쳐지고 말았다. 849봉과 865봉으로 가는 길에도 집채바위, 구멍바위(굴바위), 고질라바위 등이 있다고 하는데....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짙은 안개 또 안개 그리고 앞으로 몇시간의 고통....
▼ 굴바위(?)
▼ 864봉(?)
864봉을 지나면 통시바위 갈림길이다. 직진(약간 좌측)하면 둔덕산으로 이어지고, 고모치 방향은 우측길이다. 등산리본이 많이 메달려 있기는 하지만 무심결에 그냥 직진하기 쉬운 곳이다. 우리 일행도 두어명 짧은 알바를 한 모양이다. 둔덕산으로 가는 길에는 마귀할미 통시바위와 마귀손녀 통시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 통시바위 갈림길
통시바위 갈김길에서부터 고모치까지는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밀재에서 올라온 만큼을 내려가야 한다. 거세지는 빗방울에 젖은 몸은 그 만큼을 땀으로 쏟아 낸다. 비는 내리지만 후덥지근한 날씨다. 만약 뙤약볕이 내리쬐었더라면....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 고모치
고모치 10m 아래에 고모샘이 있다. 바위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석간수는 갈증을 풀어주는 이상의 선물이다...
▼ 고모샘
이제는 조항산을 향하여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올라가야 한다. 거리는 1.2km지만, 고도차는 약 250m로 만만찮은 오르막이다. 오늘 산행도 중반에 접어들면서 체력적으로 부담이 가중되고, 응어리진 다리근육은 여차하면 다시 도질 태세다. 비가 내려 습도가 높고 짙은 안개가 지배하고 있는 숲속은 음산하기까지 하다.... 땀은 비오듯이 흘러내린다. 비와 땀으로 온몸은 한증막에서 방금 나온 몰골이고, 신발까지 물이 차면서 지난주 폭우중 대간길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
▼ 조항산 방향 등산로
▼ 의상골 갈림길
조항산~청화산~늘재 구간은 지난 겨울산행 경험이 있어 비교적 친근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지난 겨울에 본 것과는 판이한 느낌이다. 여름과 겨울의 차이인 것인지, 심신의 컨디션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 조항산 (951m)
[조항(954m)]은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북으로 대야산과 남으로 청화산과 이어져 있는 고모령과 갓바위재 사이에 위치한 암봉이다. 조항산과 청화산 사이에 난 남쪽의 가파른 고개가 갓바위재로서 청천면 삼송리에서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조항산의 동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는 궁기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궁기리라는 마을 이름은 견훤이 궁터를 조성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마을이다. 우리나라에서 '새(鳥)'를 산 이름으로 쓴 경우가 많다. 날렵하거나 높이 솟아 있는 산의 모양새에 따라 붙여진 것들이다. 조항산이란 이름 또한 봉우리가 새의 목처럼 생겨서 붙여졌다고 한다. <구한말지형도>에는 이 산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조선지형도>에서는 현재와 같은 지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안내판)
▼ 조항산에서 청화산(중간 뒤)으로 이어지는 대간길 능선 (펌)
▼ 조항산 아래 암릉길
조항산에서 갓바위재로 이어지는 암릉은 진행방향으로 청화산과 속리산이, 뒤로는 대야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진 조망포인트이다. 오늘은 짙은 안개 때문에..... 가파른 경사와 미끄러운 바위 때문에 마음만 바쁘다....
▼ 조항산 암릉에서 바라본 대야산(중간 좌측) 방향 (2015/12/5일 촬영)
▼ 조항산 암릉에서 바라본 청화산산(중간) 방향 (2015/12/5일 촬영)
조항산에서 시작한 내리막길은 갓바위재에서 바닥을 찍은후 청화산을 향해 다시 오르막길로 바뀐다. 비도 서서히 그치면서 뜨거운 햇살이 목덜미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다....
▼ 갓바위재
▼ 뒤돌아본 조항산
▼ 청화산 방향 등산로
▼ 뒤돌아본 조항산
▼ 801봉(?) 아래 암릉
801암봉 아래 조망좋은 너럭바위에서 후미의 일행들이 뭉쳤다(?). 이야기 중에 선두는 이미 887봉을 오르고 있다고 하면서 '누가 후미가 되고 싶어서 후미인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후미로 쳐졌고 그만큼 불편하고 힘들다' 라는 누군가의 말씀이 어쩜.... ^^ 그래도 선두가 엄청 부럽다. 강철같은 다리와 체력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 언제쯤 그런 반열에 오를수 있을까....
▼ 801봉에서 내려다본 의상저수지
조항산에서 청화산까지의 약 4.3km가 생각보다 멀게 느껴진다. 청화산 이전에 887봉과 858봉도 통과해야 한다. 이구간이 오늘 코스의 마지막 오르막길이다. 산우 한분이 내 다리 상태를 보시고는 속도와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리딩을 해주셨다. 오르막에서 뒤쳐지면 기다려주시고... 감사합니다~
▼ 801봉에서 바라본 887봉(우측)과 858봉(좌측)
멀리서 본 887봉은 제법 묵직한 바위군과 암릉들을 품고 있다. 가파르기는 하지만 다행이 등산로는 위험한 구간을 우회한다. 산행을 하면서 근래에는 힘이 딸릴때 에너지음료를 마신다. 각성제의 일종이지만 나에게는 진짜로 파워를 넣어 주는 것 같다. 플라시보 효과라고 할까...... 갓바위재에서 마신 에너지음료 덕분인지 컨디션이 제법 회복된 것 같다.
▼ 887봉 방향 등산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다. 안개가 조금씩 걷히면서 멀리 조항산은 아직 흐릿하고,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부드러운 물결을 일렁이고 있다. 지난 겨울에 눈덮힌 능선을 바라보며 한없이 감탄했던....
▼ 887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지나온 등산 궤적
▼ 887봉 암릉에서 바라본 조항산 (좌측) 방향 (2015/12/5일 촬영)
887봉을 지나면 다시 내리막길 그리고 858봉을 올라가야 한다. 마지막 고비라고 생각하니 별 어려움(?)이 없다. 858봉을 오르면 청화산 정상을 약 400m 앞둔 지점에 시루봉 갈림길이 나온다.시루봉은 청화산과는 반대방향인 동쪽으로 가야 한다. 시루봉에서의 전망이 좋다고 하며, 시루봉, 연엽산과 연계하여 청화산을 찾는 산객들도 제법 많다고 들었다.
▼ 시루봉 갈림길
▼ 청화산 방향 등산로
청화산 정상석은 등산로상에 숨은 듯 조용히 서있다. 속리산 구간 주요 봉우리들의 정상석들은 청화산처럼 대부분 아담하다. 문장대는 예외적(?)으로 큼직하고.... 파란색으로 새겨넣은 글씨가 이색적이다.
▼ 청화산 (984m)
문경의 전설에 의하면 [청화산]이란 이름이 지어진 유래는 수십 리 밖 어디에서 바라보나 항상 화려하고 푸르게 빛나고 있으며, 시루봉도 장엄한 자세로 그 위엄을 떨치고 있다 하여 청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두대간 주능선의 청화산은 심산계곡의 명산이다. 하늘에 천국이 있다면 지상에는 이상향이 있다. 예부터 영남 일대에 전해 오는 이상향 우복동(牛腹洞)이 상주에 있다고 했다. 지형이 마치 소의 뱃속처럼 생겨 사람이 살기에 더없이 좋다는 곳이다. 민초들이 찾았던 유토피아가 바로 이 청화산(靑華山) 자락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문지리서인 <택리지>에서 ‘청화산은 빼어난 기운이 나타나서 가린 곳이 없으니, 거의 복지(福地)’라고 했다. 그의 호가 청담(淸潭), 청화산인(靑華山人), 청화자(靑華子)였음을 볼 때 청화산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상주지명총람>에는 “이중환이 이 산을 좋아해 여러 해 동안 머물렀고 자신의 호까지 ‘청화산인’으로 지었다”고 했다.... (월간산에서 발췌)
후미로 쳐진(?) 8명이 나무그늘 아래에 앉아서 오붓한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가 솔솔하다. 산과 산행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나눈다. 오늘의 주제는 알바, 하산시간, 귀경버스를 타지 못했던 사건(?) 등등... 재미있는 간접경험 들이다...
▼ 청화산 갈림길
이제는 늘재로 하산하는 길만 남았다. 청화산에서 늘재까지는 약 2.7km로 길지 않은 거리지만, 체력이 떨어진 후반의 가파른 내리막길은 생각보다 훨씬 멀고 고달프게 체험된다. 잔 돌멩이들이 많아 미끄러지기 쉬운 내리막길이다.
▼ 헬기장
동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시루봉은 여인의 가슴을 닯았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지난주에 다녀온 도장산과 그아래로 우복동으로 알려진 용유리가 희미하게 보이고....
▼ 헬기장에서 바라본 시루봉 (중간 좌측)
▼ 헬기장에서 바라본 도장산(중간 좌측) 방향
▼ 늘재방향 내리막길
내리막길에서 언듯언듯 보이는 속리산... 안개만 없었더라면 얼마나 장쾌한 모습일까...... 늘재와 멀지 않은 지점, 속리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에 정국기원단이 설치되어 있다.
▼ 정국기원단
정국기원단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해석은 각자 ^^
白衣民族(民族中興)聖地
不失基租 三巴水
白頭大幹 中元地
늘재에 내려오면 성황당이 있고, 그앞에 세워져있는 커다란 표지석은 이곳이 백두대간길임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 성황당
[백두대간 성황당]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은 영역 늘재에 당(堂)이 있으니 백두대간 성황당이다. 원래 탑의 신앙과 산신신앙을 혼성한 서낭신앙에서 유래하여 신라, 고구려때는 횡액 질병을 막고 길손의 무사여행을 기원하는 소박한 민간 토속이었고 조선에 이르러 동제(洞祭)로 발전하여 오다가 잦은 국낭을 당하면서 국태민안을 위해 성황신을 白神의 장으로 모시고 관민이 신봉하는 전통 신항으로 승화되어 堂도 地誌에 등재되어 왔다. 이러한 유서를 지닌 신당으므로 그 위치가 환경유적과 사실이 찬연하다. 이를 개관하여 이 늘재는 낙한(落汗) 양대강의 분수령이다. 강이 원류따라 개통된 도로는 동남으로 영호남, 서북으로 충청도와 서울로 통하는 장정의 기점이며 고대에 羅濟의 국경으로 각축지대라 견훤산성이 축성되었고 근세에는 정기룡 장군의 임란전첩지가 용화동에 있으며 세조대왕께서 백관과 함께 노시던 문장대와 용화 온천을 비롯하여 고승과 명장이 수련한 유적이 있다. 특히 한말 경술국치후에 義士들이 창의하고 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통로가 되고 쉼터이며 도창의 대장 이강년 선생의 묘소가 지척에 있다. 그리고 때맞추어 늘티에 전상석 처사가 우국일념으로 이 성황당을 창건하여 동민과 함께 지성기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백두대간 성황당 由來碑에서 발췌)
▼ 늘재 (날머리)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청화산 농원 앞에 도착하니 먼저 내려온 선두의 일행들이 진심으로 반겨준다. 건네주는 시원한 맥주 한잔에 피로가 사라지고, 농원 뒤편 작은 계곡에서 땀을 씻어내니 그야말로 여기가 우복동의 그곳이다. 오리백숙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 뒷풀이
힘들었던 발걸음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나' '백두대간이 뭐길래..'를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걷기 위해서라면 다리가 너무 아픈데, 보기 위해서라면 오늘은 보이는 것이 없고, 느끼기 위해서라면 심신이 너무 피곤하다.... 남기기 위해서라면 뭘 남겨야 하지.... 아마도 말초신경의 오감보다 훨씬 깊은 뭔가가 나를 또 일으켜 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