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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감옥]에서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Ⅰ서론
시의 감옥은 무엇인가? 제일 깊숙한 감방은 언어일 것이다. 시인은 그 깊고 높은 감옥의 담을 거뜬히 뛰어 넘어야 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봄바람처럼 삼라만상의 꿈에
불을 켜는 시인의 경험과 체험은 천형의 고름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문지르는가?
장석남의 시들은 동형사의 세계를 꿈꾼다. 끝나지 않은 사랑처럼 종결어미로 마감하지 않는다. 그의 시속의 언어들은 서해 작은 섬 덕적도에서 보낸 어릴 적 추억으로 잡아끈다. 또
한 우리들의 고향으로 가는 언어들이다. 그 언어들이 한없이 어리고 여리며 가볍고, 서글퍼서 우리를 젖게 한다. 서해 저녁노을 뒤 [별이 감옥]에 꼭꼭 숨었으나 [새떼들에게로 망명]
을 할 수밖에 없다가 [지금은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이라며 눈으로 듣다가 [젖은 눈]으로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을 무장무장 슬프게만 마음의 감옥으로 옭아매 나직하게
읊조리는 삶을 찾아 가보겠다.
곁들어 [물의 정거장]에 잠시 발 담그며 바람과 별과 배와 그리고 햇빛까지 함께 손잡고 온몸으로 젖어 서해 섬에서 뭍으로 완결되지 않은 상처를 ‘돌멩이처럼 꽃을 피워, 쌀 안치
는 소리, 연필 깎는 소리로’마당에 배를 매어보겠다.
시는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걸까? 시의 생로병사를 따라 90년대의 시와 일정한 거리를두고 일상적인 이미지 결합이 아닌 생경한 연결이 더욱 깊고 그윽한 느낌과 오래오래 간직
할 수 있는 마술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알아보기 위해 시의 행적을 따라 가보겠다.
Ⅱ90년대 시 세계와 시인
장석남 시인의 시 세계를 따라 가 보기 위해서는 먼저 동시대에 뛰어난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고 그 시인의 시들과 비교하고 대조하는 것이 좋을 듯 싶어 간략하게 90년대 시의 특
징을 살펴보겠다
어떤 면에서, 90년대의 시는 80년대의 시에 비해서 시어가 지나치게 일상적인 평범한 언어로 되어 있으며, 사랑에 관한 노래만을 하여 감상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즉 이 시대의 삶의 문제를 고뇌하고 개혁하려는 민중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새로운 세기를 사는 지금의 세대가 각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이 다르듯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도 변하였음을 고려하지 않은 듯 하다. 그 시대의 미의식에 따라서 그 시대의 시인들의 가치관과 의식도 역시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정신과 가치관이 변하여도, 시의 생명과도 같은 변할 수 없는 한가지는 시적 긴장감의 유지이다. 시의 가장 큰 특징은 긴장과 축약을 통해 미감을 준다는 점
이다. 단순히 행과 연을 구분했다고 해서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는 시어 하나 하나에 그감정이 농축되고 집약되어 그 시어 하나로 타인을 울리고 웃길 수 있으며, 그 시 한 줄로
독자의 마음에 큰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90년대 시가 일상어를사용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시적 정신의 세계가 변했다고 할 지라도, 그 안에 시인의 삶의
깨달음이 집약되어 있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면 그것은 여전히 시이다.
현재 이 세대들은 386세대, 즉 현재 30대 후반, 또는 40대로서 80년대의 대학시절을 보낸사람들의 정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더구나 그 이전의 60, 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
의 정서와는 더욱 다를 것이다. 80년대의 젊은이들은 시대적인 요청에 의해서 사회에 반항하며 역사적 현실에 고뇌해야 했다. 즉 이 시기의 청년들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 강제하는
사회전체에 몸으로 부딪혀 투쟁해야 했다. 이러한 이 시기의 젊은이들의 고민, 사상, 감정은80년대의 시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90년대에 이르러 더 이상 폭력과 강제에 의한
개인 자유 억압이 자행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이 시기의 청년들은 자신의 자아의 탐구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극도의 개인주의를 보여주게 된다. 이 극도의 개인
주의, 소 집단주의는 시에 있어서 여러 가지 측면으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80년대의 거목인 황지우의 해체시에서부터 비롯된 탈 장르화는 90년대에 이르러 시를 넘어서서 보다 넓고 다양한 범위의 보편화된 문화를 아우르게 된다. 신문과 잡지, TV, 라디오,
음악, 미술, 이 모든 것은 시 안으로 아우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언어에만 한정되어 있던 시 표현의 도구를 다양화시킴으로서 소그룹화, 개별화되어 버린 90년대의 독자를 시속
으로 포섭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 도구의 다양화는 시의 고유성을 깰 위험이 있다.
또한, 시적 언어에 대한 충분한 고민의 과정 없이 쉽게 시 밖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는 점은90년대 시의 한계성이다.
90년대 시의 서정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몇몇 시인의 시 세계를 찾아 가보자. 기형도는 [입 속의 검은 잎]을 유일한 시집으로 남겼다. 이 시집은 85년부터 89년까지 쓰여진 시들로서 그의 유고시집이다. 그러므로 기형도의 기들은 분명 80년대에 쓰여진 시들이나, 그의 시는 그가 죽은 뒤 90년대의 현실 속에서 더욱 큰 공감을 얻고 읽혀져 그를 90년대의범주에 넣기로 하였다. 그의 시는 80년대의 시들과는 달리 부조리한 현실, 권력에 대한 항거와 선동의 목소리를 더 이상 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80년대가 아닌, 90년대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가난, 이별 등 상처를 통해서 세상과의 거리감, 고독감을 노래했고, 그의 시 전편에는 이러한 강한 절망감이 배여 나온다.
90년대의 대표시인으로서 유하에 대한 비평은 뚜렷하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진다. 긍정적인면으로는 키치 문화(일반적으로 저질로 정의되는 3류 대중문화 : 포르노, 만화영화, 비디오, 잡지 등)의 중독자이며 동시에 반성자로서 이중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면으로는 유희적 차원에 고정되어있어,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이 겉돌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자본주의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이다. 특히, 제 2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당시 베스트 셀러로서,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영향
을 주었다.
황지우는 80년대 시의 거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90년대의 시인들에게 충격적일 만큼 큰 영향을 미쳤으므로, 90년대의 서정에 포함시켰다. 그 만큼 그는 당시의 시의
경향과는 다른 해체시를 발표함으로서 전통시 장르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해체시란, 전통적인것에 대한 전면적이고 과격한 파괴를 시도한 시로 형식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사고체계까
지 포함한다. 따라서 해체시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선, 악, 진리에 대한 우리의 관습적 믿음을 근본적으로 회의하며 파괴한다. 또한 해체시는 시의 당연하고 유일한 표현수단
인 언어를 현실을 재현하기에 부족한 매체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해체시는 언어 이외의 기호, 사진, 그림 등 모든 표현 매체를 이용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어디까지나 80년대 시의 경향을 지녀, 항상 철저한 현실의식과 당대적 현실이 충실히 드러나 있다. 이러한 당대 현실의 정보 전달 형태의 시는 생명력이 짧아 질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그는 이러한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당대의 특수한 현실성을 고려하면서도 원형의 세계를 비중 있게 보여주기 위하여 노력한 것이 잘 드러난다.
최승자는 남성 중심사회를 공포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아버지'라는시어는 시인 개인의 아버지이며 동시에 이 사회의 여성에 대한 모든 억압기제이다. 이러한
시인의 표현은 그녀가 이 사회의 폭력, 공포, 억압의 기제를 '아버지'로 표현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즉 그녀는 '아버지'를 그 대상으로 하여, 여성의 억압에 대해 저항을 할 뿐 아니라, 그것을 포용하고 화해하려는 몸짓을 한다. 시인은 인습, 억압을 거부하고 진정한 사랑,죽음과 절망 등을 노래한다.
최영미는 상업적인 측면에 있어서 성공을 거둠으로서, 90년대에 큰 관심을 끈 시인이다.
첫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대중매체의 주목을 받으며, 출간 2달만에 20만 부나 팔려나갔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386세대를 대변하면서, 80년대 격변기에 젊음이 받았던 상처를 상징하는 대 명사가 되었다. 이제 80년대의 진지하고 치열했던 삶의 방식들이 하나의 추억으로 팔려나가는 90년대의 현실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최영미의 시는 즉 현대인의 가장 큰 관심거리인 에로티시즘을 시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현대의 사랑을 노래하여 상업적인 측면이 다분하다. 따라서 최영미의 시학을 문학적인 측면에서 가치를 두고 논하기에 부족한면이 있다. 그러나 분명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90년대 많은 관심을 모은 시집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90년대의 감수성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베스트 셀러로서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또한, 최영미의 시에 나타난 사랑은 과거 여성다운 사랑으로 여겨졌던 절대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니다. 최영미의 사랑은 더 이상 과거에 집착하고 몰입하지 않는다. 추억을 평생
을 간직하며 그리워하는 것은 더 이상 사랑일 수 없다. 최영미에 있어서 사랑은 지금 현재의 행위로서 과거의 여성의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페미니스트적인 경향도 갖고 있
다. 즉 '사랑한다'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둠으로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영미의 시에 있어서 자신의 가치에 대한 탐구는 가장 근원적인 육체, 몸
에 대한 관심으로 귀결된다. 이때의 몸에 대한 관심은 표면적으로는 타인과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한 채 오직 자기 자신에게 몰입한 듯 보인다.
신현림은 96년도 [세기말 블루스]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신현림의 시에는 가계와시대의 굴곡에 맞서 저항해온 개인의 경험이 마치 성장소설과 같은 인상을 줄 정도로 짙게 배어 있다. 또한, 신현림의 시에는 에로티시즘적인 요소와 최영미의 시와 같이 몸에 대한 천착이 드러난다. 그러나 몸에 대한 천착은 90년대의 주요 관심사인 개인, 개별성에 대한 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개인에 대한 관심에서 더 나아가 여성의 몸에 집중하였다.
지금껏 감히 드러낼 수 없고, 감추어야하는 은밀하고 은폐된 영역으로서 억압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몸을 해방시키려 한 것이다. 시인에게 여성은 남성의 반대급부로서 여성이 아니라
철저한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강조된다. 따라서 시인은 기존의 어떤 의미의 여성으로 규정짓는 것은 지양하며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여성, '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최승자나 최영미와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신현림의 시의 여성은 완전한 존재이다. 남성이 느끼는 욕망을 느끼며,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사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류시화의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류시화가 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그 동안 동인지, 문학지에 발표한 시들을 모두 엮어 실은 것이다. 그의 시
의 특징은 일상의 언어와, 어렵지 않은 보통의 구문을 통해서 신비한 세계를 빚어내고 있다
는 점이다. 그는 낯익임 속에 감춰진 낯설음의 세계를 발견해 냄으로서, 삶의 작은 깨달음을주며, 이러한 점이 류시화가 많은 독자를 확보한 이유가 될 것이다.
Ⅲ.장석남의 어린 시절과 시 세계
장석남 시인의 출세작(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맨발로 걷기」에서 ‘생각난 듯이 눈’이 내리고 “생각 위에 찍힌 생각이 생각에/지워지는 것도 모르고”눈이 내리며,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못하고’간다는 발상을 통해 눈, 생각, 발자국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눈이 생각일 수 있고 발자국일 수 있으며, 생각도 눈일 수 있고
발자국일 수 있다. 발자국도 마찬가지다. 세 시어가 거느린 요소들이 촘촘히 얽혀 있으며,꿈의 시어들이 질서 있게 흘러가고 있다
장석남의 첫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작품 해설에서 홍정선은 장석남의 시의 특징을 ‘뒤로 걸어가는 언어들’이라고 평한 바 있다. 뒤로 걸어가는 언어들이란 추억 속으로 가
는 언어들이며 고향으로 가는 언어들이다. 그 추억이나 고향에는 모순이나 갈등도 없다. 장석남의 시에는 대립구조가 없어 어머니가 아궁이에서 군불을 지피고, 굴뚝으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새들이 날고, 별들이 돋아 오른다. 그의 시에는 산 바다 달 별 나무 새 햇빛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무 연관성이 없는 듯한 언어들도 그의 추억의 시간 속
으로 들어가면 자유로이 꿈결처럼 만나고 헤어질 수 있다.
장석남 시인의 시는 언제나 감성의 사립을 반쯤, 은근히 열리고 있다. 남의 감정을 거스르거나 해치는 일이 거의 없으며, 난해하거나 현학적이며 이국적이 않다. 별다른 주의 주장이
없이 원시적인 생물처럼 움직이고 숨쉬고 있는 듯 하다. 그의 시에는 주어가 없고 관용화 된 비유군도 없이 새롭고 달콤하다.
젖은 눈은 몸의 눈이다. 젖은 눈에 이르러 눈은 몸의 눈으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왔으며,돌아와서, 이윽고 앞서가기 시작했다. 이 젖은 눈이 90년대 말엽의 눈이고, 새로운 세기를
바라보는 시인의, 몸의 눈이다.
젖은 눈 이전에 맑은 눈이 있었다. 맑은 눈은 마음의 눈이었다. 순수와 순결을 담보로 한눈. 그 눈은 통속의 반대켠, 그러니까 자의식이 없는 자본주의 세속도시를 조감하는 정신의
눈이었다. 그 눈은 서늘한 대숲이거나 소나무숲 속의 청정도량을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맑은 눈 이전에 깨인 눈이 있었다. 깨어 있는/있어야 하는 눈이 있었다. 역사나 시대와 같은
거대서사와 맞서는 눈―충혈된 눈, 강박의 눈, 지배와 피지배가 뒤섞인 눈, 개인 혹은 주체의 눈. 장석남 시인의 말투를 빌린다면, 젖은 눈은 이제 간신히 아무도 눈치보지 않고 젖어
서, 젖은 것들, 또는 젖어 있지 않은 것들을 볼 수 있는 무렵이다. 하지만 젖은 눈의 발아기는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무섭기까지 하다. 모든 생각의 끝이, 모든 생산과 소비의 끝이,
모든 생명의 끝이 인류의 끝과 직통하는 시기에 ‘간신히’ 눈뜨고 있는 어리고, 여린 젖은 눈. 젖은 눈의 눈동자는 아직 선명하게 맺혀 있지 않아, 눈앞에 있는 것들을 무심하게 관통
해, 먼 데를 바라보고 있다. 그 먼 데는 그가 지나온 세월과 장소들이기도 하지만, 거기서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들의 미래로 앞서가 있기도 하다. 시간은 휘어져 있다. 그리움과 외
로움은, 죄와 상처들은 과거가 아니라, 늘 미래 쪽으로 먼저 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세번째 시집 『젖은 눈』에서 ‘젖은 눈’은 시속에 감춰져 있다. 독립된 한 편의 시가 아니다. 그 젖은 눈은 시집의 들머리 “국화꽃 그늘을 빌려/살다 갔구나 가을은/젖은 눈으로 며칠을 살다가/갔구나”(「국화꽃 그늘을 빌려」)에서 처음 등장했다가, 여러 개의 눈으로 자맥질하다가 “나를 만나면 자주/젖은 눈이 되곤 하던/네 새벽녘 댓돌 앞에”(「그믐」)에서 수면 위로 다시 솟구친다.
젖은 눈이 환기하는 바는, 우선 눈물이지만, 눈물나기 이전이거나 눈물 이후이지만, 여기서 ‘젖다’라는 자동사가 포괄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 젖은 눈은,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91년)과 두번째 시집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95년)에 복류해 왔으며, 세번째에서도 “밤새 마당을 굴리고 있는/가랑잎 소리로써/머물러보다가/말갛게 사
라지는/그믐달/처럼”(「그믐」) 작고 희미한 눈이다. 하지만 젖은 눈의 위력은 강력하다.
젖은 눈은 대상을 명료하게 파악하지 않는다. 젖은 눈은, 깡말라 있는 대상까지 흐리게 만들어버린다. 눈이 젖어 있으면 사막까지 젖어 있는 것이다. 이 젖은 눈, 전폭적으로 주관적인
눈의 강력함이라니. 장석남의 시는, 보는 것과 듣는 것으로 대별된다. 그는 달과 별, 집과 길, 저녁 해와 가파른 생애를 보고, 숨쉬는 소리와 쌀 안치는 소리, 배호의 노래, 나무들이 뿌리를 가지런히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이 청각 이미지들도 젖은 귀로 듣는 것이어서, 젖은 눈이 본 것, 또는 보려는 것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앞에 인용된 시 「그믐」이 그 결정적 장면이다.
그리고 젖은 눈과 귀로보고 듣는 것, 보고 들으려는 대상은 ‘그리운 것’ ‘외로운 것’으로 수렴되고 있다. 그의 젖은 눈이 주로 달, 그것도 가장 작아진 달과 관련된다면, 그의 청
각은 시 「밤비」의 “새로 선 비석처럼 귀를 세우고/아득한/비의 여정을 엿듣는” 대목에서 한 절정을 이룬다.
그 젖은 눈은, 거칠게 말해서 김종삼과 박용래를 연상시키거니와, 그의 시가 ‘―있었다’라는 분명한 과거형 종결어미를 사용하며 삶의 신산함을 압축할 때, 그의 시는 김종삼의 시
를 발전적으로 승계하고 있으며, 여백이 많은 단형시로 유년 시절의 궁핍과 고독을 쓸 때, 그의 시는 박용래의 시를 발원지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젖은 눈은 순하다. “알고 보면 다 묶여 있”는 것인데도 젖은 눈은 “새로 생긴 아파트 입구”에 서 있는 자전거들이 “순하게/나란히들 서 있다”고 본다. 이 순한 시선은 시어에 그대로 번져 있다. “봄은 간 모양이다”에서의 “모양이다” “이 봄에/어른이 되는 아이가 있나 보다”에서의 “보다”처럼. 이 순한 시선은 따뜻한 거리에서 발생한다. 묶여 있는 자전거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넘겨짚는 상상력에는 생에 대한 지극한, 속수무책의 애정이 작동하고 있다. 그의 시는 어리고 여린 것들에 대한 지독한 편애인 것이다.
「봉숭아를 심고」에서 젖은 눈은 얻어온 봉숭아 씨앗을 화분에 심고 싹이 돋자 그 어린 생명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양육되던 생에서, 양육하는 생으로의 변화. 앞의 생이 제2시집까
지의 생이었다면, 뒤의 생은 『젖은 눈』에서 목격되는 생이다. 봉숭아 씨앗은 “애기들”이다. 그 어린 생명에게 그는 물을 주지만, 그 물의 배후에는 “해와 달”이 있다.
시 「외딴집」은 젖은 눈과 귀의 ‘성능’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싸락눈 내리는 시골의 겨울, 이른 아침이다. “싸락눈 쏟아지기 시작하자/동그마한 흙마당에/나보다도 더 작은/
하나님들이/여기저기에서 들떠/왔다갔다하시네”. 이 시에서 “하나님들”은 어린 아이들이거나 강아지들일 것인바, 젖은 눈에게 그 어린 것들은 그냥 어린 것들이 아니라 신성을 내
포한 생명의 존엄들이다. 그러나 젖은 눈의 시야와 시력은 싸락눈 속에서 뛰노는 것들에만머물지 않는다. 이 길지 않은 시, 모두 13행으로 완성되는 이 시는, 하늘―지상―지하로 이
어지는 수직 구조에다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져 시의 부피를 무장무장 확대시킨다. 살구나무뿌리에서, 하늘에서 땅속으로 내려가는 수직 구조는 반전되고 있어서, 이 짧은 시의 공간은
매우 넓어진다.
더 들여다보자. 젖은 눈은, 눈 속에서 뛰노는 어린아이들을 포착한 뒤 귀를 연다. 그 귀는 “살구나무들이/뿌리를 가지런히 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때 청각은 지상에서의 시각이다.
그런데 이 소리는 어디에서 들리는가 하면 “싸락눈 제일 많이 쌓이는/그 그늘/모퉁이에서 들”려온다. 그렇다. 젖은 눈과 귀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들이 ‘그늘의 아들들’임을 생
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장석남의 시는 그늘의 아들들인 어리고 여린 것들에 대한 관찰이고 집중이 아닐 수 없다.
그늘의 산물인 동시에 그늘 그 자체이기도 한 어리고 여린 것들에 대한 전폭적인 관심은 순함, 따뜻함의 발로이다. 열림이 진정한 열림이라면, 그것은 정신이나 주의의 열림이 아니
라 몸의 열림이어야 할 터. 거개의 정신이나 주의는 몸이 가리키는 반대쪽으로 몸을 이끌고가, 몸을 수단화한다. 정신이나 주의는 차갑다. 정신이나 주의가 설령 몸을 목표로 삼고 있
다 해도, 그 목표에 도달하는 동안, 몸은 학대의 대상일 때가 많다. 그러니 따뜻하고 순한 정신이나 주의는 불가능하다. 타자에 대한 열림은 곧 나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생명에
대한 열림이고, 그 열림은 결국 받아들임과 같은 것. 그리하여 따뜻함과 순함은 열림/엶의시학에서, 아니 받아들임의 시학에서 그 조건이며 과정이고 그 결과이다. 다시 그리하여 장
석남이 ‘온몸이, 온몸으로 젖은 눈’이 되어 밀고 나가고 있는 시세계는, 생명의 위기에 개입하고, 그것을 견인해나갈 수 있는 시의 미래인 것이다.
젖은 눈과 귀의 고향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공간이고, 한 세대 전쯤의 시간이다. 장석남 시인의 성장기는 아버지의 부재와 외딴섬으로 요약된다. 현재는 인천광역시로 편입된 덕적도 서포리가 그의 고향. 그곳에서 초등학교 6학년 여름까지 자라났는데, 아버지는 6·25에 참전한 이후 곧바로 인천으로 나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3남 2녀의 막내인 그는 가
장 늦게까지 외딴섬에 남아 할머니와 단둘이 자라나야 했다.
섬소년. 그의 절친한 문우 이홍섭 시인(강원도에 사는 그는 마침, 수곡 낚시터로 달려와 있었다)의 분석에 따르면, 섬소년은, 뭍에서 자란 사람들에 견주어 주변 환경을 자기화하는 능
력이 탁월하다. 어떤 분위기, 어떤 사물과 사태, 사건을 장악하는 힘이 빼어난 것을 보면 장석남은 영락없는 섬소년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뒤돌아보니, 친구의 지적은 그렇게 틀린 것이 아니었다. 장석남에게는 적응력이나 순치와는 전혀 다른, 배타적이지 않은 장악력이 있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섬약한 섬소년은 미국인 신부가 운영하는 성당 부설 유치원과 그 신부가 꾸려가던 중국인 할아버지를 위한 복지 시설들을 보며 자라났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
면 성당에서 영화를 상영하곤 했는데, 그때 보았던 뉴욕 거리의 복층 고가도로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먼 곳에 대한 동경.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늘 방학을 기다렸
다. 그렇게 인천에 가고 싶었다. 덕적도 섬소년에게 인천은 신세계였다. 네다섯 시간 통통배를 타고, 저녁나절 인천항으로 들어갈 때, 그가 보았던 항구의 불빛들이며 “향긋했던 휘발
유 냄새”. 섬소년은 가슴이 설레기만 했다.
섬소년이 대도시에 적응하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 기타를 사서 혼자 배웠으며, 다락방에서 ‘서금옥의 밤의 데이트’를 들었다. 닐 다이아몬드를 좋아했으며, 한때 첼
리스트를 꿈꿔 예술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넣으려 했지만, 담임 선생과 부모의 반대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는 간혹 술이 좀 거나해지면 “나는 딴따라를 했어야 하는데……”라고 말
하곤 했는데, 실제로 중학교 때 저와 같은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첼로를 좋아하던 그 시절, 그는 『렌의 애가』나 『석녀』, 유치환 서간집을 읽으며 “나도글을 쓰면 되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다. 중3 때 교지에 시를 내라고 해서 시를 한 편 냈는
데, 급우들에게 “뭐, 저런 게 다 시를 써”라는 눈총을 받은 적이 있었다. “친구여 별이 진다고 슬퍼하지 말라”라고 시작되는 시였다.
제물포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문예반에 들어갔다. 문예반의 ‘위대한 선배’들은 글 쓸사람이 무슨 공부냐며 학교 공부를 말렸다. 그는 위대한 선배들의 말을 수긍했고, 빨리 적응
해, 가장 뛰어난 문예반 학생이 되었다. 고2 때 원광대가 주최한 현상 문예에 시가 가작으로 뽑힌 이래, 고3 때 경희대 주최 전국 고교생 현상 문예에 시가 당선될 때까지 그는 전국 규
모 백일장을 휩쓰는 고등학생 문단의 스타였다.
일찍이 교복을 입은 시인이었던 그는 문예반에 들어가면서, 서울예전 문창과에 가겠다고 결심했다. 서울예전에서 주최한 백일장에서도 입상한 적이 있어서 무난히 그 대학 문창과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스승들을 만났다. 특히 최하림 시인은 대학 졸업 이후에도 줄곧 그의 삶의 스승이었다. “현실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족해” 직장 생활을 오래 하지 못하는 그
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주선해준 이가 최하림 시인이었고, 그 이후에도 “미당 같은 프로 시인이 되어라”며 수시로 질책과 격려를 보내준 스승이 바로 최하림 시인이었다.
‘젖은 눈의 시학’ 즉 열림의 시학은 첫 시집의 「군불을 지피며 1」에서 연기를 바라보는 시선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군불을 지핀다/숨쉬는 집/굴뚝 위로 집의 영혼이 날아간다/
家出하여, 적막을 어루만지는 연기들/적막도 연기도 그러나/쉬 집을 떠나진 않는 것/나는 깜빡 내/들숨 소리를 지피기도 한다”. 모두 8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 이 시에서 군불은 집
을 데워놓고 떠나지만, 가출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깜빡 내 들숨 소리를” 군불에 지피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집을 살려내는 불기운이 그의 코로 들어가 그의 생을 숨쉬게 하는 사태. 그러니 그는 집이다. 가출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
아가는 길은, 그의 존재의 집 속으로 돌아가는 길인 것이다. 그의 시는 늘 가깝지만 늘 먼곳(「소나기」)인 옛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아버지로, 어머니로, 그리고 섬소년으로. 비어 있
는 것, 죽어 있는 것들을 살려내는 군불은 시/시인의 은유인 것이다.
「군불을 지피며 1」이나 제2시집에서, “이제 어디에라도/닿을 때가 되었는데/되었는데”라고 읊조리는 「소나기」, “나는 나에게로 가는 길을 알았으나 길은 물에 밀려가고 물 속으
로 잠기고 안개가 거두어갔다”고 노래하는 「한진여」, “내 그림자를, 서글픔들을/무슨 수로도 외면할 수 없는/그것들을 들여다보고/다시 들여다보”는 「불빛을 흔들어서」 등의 시
에 주목하다보면, 그의 시는 유년의 집에서 나와, “계단만으로도 한 동네가 되”는 청소년기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을 찾는 길 위의 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집 찾기는 성급하거나
초조하지 않고, “거북이처럼 지나가는/정월 보름달”처럼(「나의 遊牧」) 느리다. 느리고, 또 느리되, 그는 온몸이, “온몸으로 그리운 숨결”이 되어(「낯선 방에서」) 있다.
어리고 여린 것들에 대한 편애와 배려에서 비롯되는 따뜻함과 순함, 그리고 느림이 ‘젖은눈의 시학’을 구성하고 추진한다. 그러나 젖은 눈의 시학이 그렇게 허약한 것은 아니다. 허
약하기는커녕, 거기에는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거기에 동참하겠다는, 그것과 하나가 되겠다는 단호한 신념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리고 진정한 단호함이 늘 그렇듯이 그 단호함은 섬세함과 민감함에서 나온다.
Ⅳ결론
지난 두 달 동안 정신적인 몸살을 몹시 앓았다. 본래 목표하지 않았던 전문직에 주변 사람들의 권장으로 겁도 없이 뛰어들고 말았다. 타고난 게으름에다 내 좋아하는 것도 다 하지
못하고 질질 끌러 가는 일상이 되고 보니 견딜 수가 없었다. 한 줄의 메모도 못하는 생활에는 메마른 바람만 몸을 감싸고 돌 뿐이었다.
장석남 시인의 작품을 통해 표현의 묘미를 터득하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을 가지런히 질서 있게 늘어놓은 작품들을 읽으면서 가슴 한 곳에 밝은 등불을 켤 수 있겠다며
즐거워하였다. 장석남 시인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 것은 90년대 후반이었다. 학교가무너지고 교실에서 학생들의 말과 행동에 내 자신을 다잡을 수 없을 때 시집을 다시 읽을
기회를 가졌다. 그의 시는 상식을 가지고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80년대 우리 시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그의 시는 이탈하고 있었다. 장석남의 시집 세 권을 읽고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고, 겨울 서해바다의 풍경을 가슴에 담기 위하여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이 아닌 느린 배를 타고 덕적도를 두 번이나 다녀왔다. 별 바람 햇빛 산 바다 달 새... 시어
들의 고향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마음 가득 서해바다 백사장에서 2월 늦은 함박눈을 맞으며 시심을 더듬었다. 덕적도 넓은 백사장과 단장이 잘된 주택, 그리 높지 않은 비조봉 산행의 그윽함과 서해 점점이
떠 있는 무인도의 적막함. 그리워 할 수밖에 없는 「별의 감옥」에서 「마당에 배를 매다」는 시인의 시상을 다시 그려보았다.
일주일에 두 번 지하철로 대학원을 오가며 장석남의 시집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까지는 섬에서 뭍으로 나온 섬 소년의 시선이 서해 바다에 정답게 자리
잡은 고향 덕적도에 꽉 붙잡혀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보았다. 뭍에서 섬을 그리워하는 생활속에서 세 번째 시집 [젖은 눈]이 나왔고, 산문집 [물의 정거장]을 통해 네 번째 시집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까지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내 실종의 위치는 어디인가? 구체적 자기 삶에 변화를 일으켜 언어를 넘어 기존의벽을 넘을 넘어 새로움을 창조해야한다는 뭍의 생활을 통해 섬소년의 흔적을 떨치지 못한
장석남의 99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배를 밀며」를 싣고 미흡하나마 시의 행적을 따라간 사색의 오솔길을 마감하겠다.
배를 밀며
배를 민다
배를 밀어 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장석남(張錫南)
1965년 인천 덕적도 출생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맨발로 걷기」
1991년 첫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간행 (문학과 지성사)
1995년 두 번째 시집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 않을 무렵』간행 (문학과 지성사)
1998년 세 번째 시집 『젖은 눈』간행 (솔 출판사)
2001년 네 번째 시집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창작과 비평사)
1992년 김수영문학상 수상, 1999년 현대문학상 수상
1993년 김수영문학상수상시인 시집 『별의 감옥』간행 (프로젝트·409)
1999년 제44회 99현대문학상 수상시집 『마당에 배를 매다』간행 (현대문학사)
2000년 산문집 『물의 정거장』간행 (이레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