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건너온 서양금, 구라철사금 양금
양금은 국악기 중 유일하게 유럽에서 들어온 악기이며 양금이란 말은 서양금(西洋琴)의 줄임말이다.
원래 양금은 중동지방의 악기로 아라비아나 페르시아에서는 덜시머, 또는 쌀터리라 불리던 것이 십자군 원정으로 서양에 전해진 것이다. 유럽지역에서는 덜시머, 팀파논, 하크베르트, 쳄발로 등으로 불렸으며 헝가리의 집시음악에서는 지금도 침발롱으로 불리며 중요한 악기 로 사용되고 있다. 양금이 동양에 전해진 것은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리치에 의하여 중국에 전해진 것이 처음으로 이때에는 천금, 또 는 번금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양금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조선 영조때 청나라를 왕래하던 실학자들에 의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담헌 홍대용이 이 악기를 이용하여 우리곡조를 처음 연조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연암 박지원에 의하면 1772년 음력 6월 18일 홍대용 과 마주않아 그가 양금을 연주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후 19세기 후반부터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영산회상 등 연주에 널리 쓰이게 된 듯하다.
이러한 사실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양금악보 30여종이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점으로 짐작할 수 있는 데 현재까지 전하는 가야금의 옛악보가 5∼6종인데 비하여 현존하는 양금악보의 숫자가 매우 많은 편에 속한다.
양금이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됐을때는 서양금, 서금, 또는 구라철사금으로도 불렸는데 구라철사금이란 구라파, 즉 유럽에서 들어온 철사 금이란 뜻이다.
이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양금은 동양의 다른 현악기와는 달리 명주실을 사용하지 않고 철사를 사용한 점이 특이하며 음색면에서도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양금은 사라리꼴 몸통에 주석과 철의 합금으로 만든 철사를 얹는데 통은 오동나무로 만들고 바깥쪽이 좁고 연주자의 안쪽이 넓게 돼어 있으며 같은 모양의 뚜껑이 있다.
그리고 14벌의 줄을 얹는데 한벌은 4개씩의 가는 줄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 네줄은 같은 음으로 조율된다. 통위에는 두 개의 침괘를 얹 어 줄을 받쳐 놓는데 우측괘의 좌측과 좌측괘의 좌,우측 부분을 채로 쳐서 소리낸다.
양금채는 해죽(海竹)을 깍아 만드는데 손잡이와 자루 부분은 대의 껍질이 지닌 탄력성을 유지하도록 얇게 깍고 줄을 치는 머리 부분은 대나무의 두께를 살려 두텁게 만든다.
서양이나 중국에서는 양손에 채를 들고 연주하나 우리나라에서는 한손으로 연주한는 것이 보통이다.
양금의 14벌 줄에 받쳐진 두 개의 침괘에 의해 나누어진 각 부분 가운데 소리를 내어 연주한는 부분은 모두 21개이나 이 가운데 세음은 중복되고 있어 실제 양금에서 낼 수 있는 음은 모두 18음이고 조율방법은 서양의 7음음계와 같다.
옛 사진 자료에 의하면 왼손으로 양금의 몸통을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연주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뚜껑을 벗겨 받침으로 사용하며 연 주자의 정면 바닥에 악기를 바로 놓고 오른손의 채로 쳐서 소리를 낸다. 양금의 연주방법은 채로 친 다음 진동하고 있는 줄에 채를 가 만히 대어 그 떨리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는 '채 굴림 주법'이 간혹 사용될 뿐이다.
철사줄을 사용하므로 한국음악의 특징인 농현이 불가능하여 쓰임새가 넓지는 않으나 영산회상같은 풍류음악이나 단소와의 병주(2중주) 등에서 맑고 영롱한 음색을 자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