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컬트와 역술 공부를 위해서 우리의 의식과 기억을 신선하게(refreshing) 하는 것이 필요하다. 탕왕이 반야(세숫대야)에 써놓았다고 하는 “일신 일일신 우일신(日新 日日新 又日新)”을 상기하자. 이는 ‘날마다 새롭고 나날이 새롭고 또 날로 새로워라’는 뜻이다. 깨달음은 늘 의식 상태를 텅비게 정화하는 과정이다. 즉 시시각각으로 기존 의식을 새로운 의식으로 씻어내고 정화하는 프로세스이다. 그러므로 카르마를 정화하는데 수월하다.
.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찾아오는 주된 이유들 중의 하나는 자신의 카르마를 보여주고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카르마를 상담사가 대신 처리해주기를 바래서이다. 또한 카르마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고 상담자와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상담자의 지혜를 빌리고 자신의 문제를 덜어달라는 의미에서이기도 하다. 내담자 본인이 다 아는데 자신의 생각과 상담자의 생각이 일치하는가 확인하기 위함도 있다. 카르마 공유는 에너지 교류이기도 하다. 상담은 카르마 개입이 아닌 조언(advice)이 되어야 한다.
.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내담자의 카르마를 덜 받게 된다. 이는 제대로 카운슬링하게 되며, 창조적 파괴(Self가 드러나고 karma가 정화됨)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내담자의 카르마에 휩싸이고 파괴적 창조(Self가 가리어지고 karma가 증대됨)를 가져와, 내담자나 상담자 모두 안 좋게 된다. 둘 다 카르마가 쌓인다.
. 마음과 물질은 근본에서는 같다. 그러나 마음은 고차원의 주파수/파장/에너지로서 카르마가 정화된 상태이고 물질은 카르마가 보여 지는 상태로서 저차원의 주파수/파장/에너지를 뜻한다. 물질세계를 지배한 알렉산더 대왕은 디오게네스 현자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물었지만 디오게네스 현자는 “왕이시여, 태양의 빛을 비추도록 좀 비켜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하였다. 물질적 제국을 이루었던 알렉산더 대왕도 정신세계를 향유하는 디오게네스의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 카르마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하나이면서 차이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카르마이지만 말단에서는 세부적으로 여러 개의 카르마로 세분화된다. 높은 차원에서는 마음의 카르마가 있다. 낮은 차원에서는 물질적 카르마가 존재한다. 지, 수, 화, 풍, 에텔 순서로 카르마는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변화한다. 고차원 카르마는 지식, 명예, 권력, 지배와 같은 정신 카르마를 뜻하고 저차원 카르마일수록 소유, 돈, 욕망의 물질 카르마가 해당된다. 물질은 다양성이 많고, 마음은 단일성이 강화된다. 카르마는 파장으로 다가오는데 의도해서 파장을 상대에게 가하면 카르마가 크며, 의도하지 않아도 파장을 상대에게 가하면 약하게나마 카르마가 발생한다. 자신의 불필요하고 탁한 물질에너지를 비우면 비울수록, 즉 버리거나 잃으면 낮은 주파수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며 저차원을 넘어서 벗어나 고차원으로 초월하게 된다. 이는 말로서 될 문제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몸과 마음으로 체득(體得)해야 한다. 외부저급파장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마음공부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면의 고차원적인 영성을 추구해야 한다.
. 재생, 반복, 강화, 집착, 그리고 중독은 카르마의 성질이다. 욕망은 찌꺼기이다. 물론 카르마가 전혀 없어도 안 된다. 인위적으로 카르마를 놓는 게 아니다. 전생, 전전생, 전전전생 등등에서부터 내려온 다중인과(多重因果)가 있기 때문이다. 공부가 무르익어가는 학인에게는 주고받는 거래(카르마 에너지)가 남아 있으면 안 된다. 안 좋은 사람이나 올바르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 쓸데없이 불쌍하다고 마음을 내는 것도 카르마다. 우리는 해당 경험을 통해 의식을 업그레이드하기도 함으로써 다시는 동일한 경험을 즐기거나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상황과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스스로부터’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중간 매개체로서 아바타이며, 중간자, 채널(통로)이다. 그리고 무아(無我)로 가야한다.
. 인생에 있어서 운이 안 좋을 때는 주거나 빼앗기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온다. 여기서 주거나 빼앗기는 에너지는 나의 카르마 에너지, 즉 탁한 물질과 정신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물론 나에게는 탁하고 지저분한 에너지이지만 받는 이에게는 그나마 필요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상승하려면 나의 에너지를 뒷사람들에게 주고 떠날 필요가 있다. 붓다의 뗏목의 비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