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이다. 끝이 아니다. 31년 2개월이 흘렀다. 기자 초년병 시절에는 각종 사건사고 속에서 살았다. 사건기자의 정석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구지하철 붕괴사고 당시 장례식장을 찾은 국회의원이 유족들에게 뺏지를 뜯기고 당황하던 모습을 현장기자로 쓴 일은 지금도 생생하다. 고 조순 전 서울시장 재임시절 여의도광장을 숲으로 만든다는 소식을 담당 공무원에게 듣고 변화란 이렇게 오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얼마나 열심이었나를 자문해보게 된다. 자폐스팩트럼장애를 가진 아들의 통합교육 현장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일을 해결하기위해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기자로서는 드물게 사회복지사 1급을 딴 것은 확실히 잘한 일이었다. 곧바로 사당동 순복음대학원대학교 1기로 입학해 3년 과정의 목회학을 공부하고 청상으로 늙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2008년에 장애인들의 사회통합을 위해 현직 기자로서는 최초로 교회를 개척한 일도 의미가 컸다. 동료기자들은 평일엔 기자, 주말엔 목사님이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회사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교회 개척은 허용하지만 헌금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내가 기자가 되고, 가장 잘한 일은 발달장애인 청년 음악가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기위해 노력하고, 실제로 성과를 낸 것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 다동성 행동으로 조회시간에 줄에 서있지 못하고 쏜살같이 어디론가 사라지던 박혜림씨의 어머니가 고등학생이 된 딸이 플루트를 불고 있다며 어렵게 배운 연주실력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요청을 하면서 2011년 영종예술단이 만들어졌다. 그 당시 공항철도 계양역 광장에서 도원결의하듯이 모여 장애인예술단 창단에 힘을 모은 비올라 연주자 백승희씨의 어머니와 색소폰 연주자 박진씨의 어머니는 지금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국민일보 정년퇴임식날 5명의 국민엔젤스앙상블 단원들과 어머니들이 자리를 빛냈다. 모처럼 만난 단원들은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아는체를 했다. 735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정창교 유튜브의 주소비자들이 바로 5명의 단원이다. 운동을 할 때도 영상을 보고 답글도 달아주는 고마운 이들이다.
나는 올해 국민엔젤스앙상블 단원들과 직장내 장애인식개선사업을 펼치며 국민엔젤스앙상블 단장을 내려놓은 뒤에서 계속 만나기로 했다. 비올라 연주자 백승희씨와 바이올린 연주자 김유경씨가 함께 무대에 서기로 했다. 플루트연주자 박혜림씨와 첼로 연주자 유은씨도 함께 연주에 나서게 된다. 5인 이상 300명 미만의 사업장에서 문화예술형 직장내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원하는 곳에 찾아가 색소폰 연주자 박진현씨가 멋진 색소폰 연주를 들려주게 된다.
국민엔젤스앙상블과의 현역 마지막 오찬은 새벽늦게 까지 야근을 하고 숙직실에서 잠깐 눈을 부치고 난뒤 새벽 지하철을 타기위해 나와 허기진 배를 채우던 여의도 양지탕집에서 했다. 대파를 듬뿍 넣었다. 단장의 정년퇴임식을 위해 아침도 먹지 않고 행사에 참가한 박혜림씨가 밀가루를 먹지 않아 5kg을 뺐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나이 60세에 광야같은 세상으로 첫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