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유부초밥
나는 요리라고는 젬병인 사람이다. 라면 끓일 때 물 맞추는 것도 계량기에 넣어 정확히 해야지, 대강 눈대중으로 하다간 정말 대강 끓인 맛이 나는 것이다. 밥도 제대로 못 짓고, 그 쉽다는 계란프라이마저 실패해 기어코 스크램블로 만들어버리는, 요리계의 멍청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느닷없이 청천벽력 같은 부탁을 해왔다.
“나 도시락 싸줘. 네가 싸준 도시락 먹고 싶어.”
그녀와 봄을 맞아 나들이를 하고자 뚝섬유원지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그날 돗자리 펴고 그 위에서 먹을 도시락을 싸달라고 한 것이다. 내가 요리 못하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애가 왜 이런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어서 진심이냐고 몇 번이나 물어본 끝에 결국 나는 도시락을 쌀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받아들였다.
다음 날 아침, 주말이면 아침을 내 멋대로 늘려가며 아주 늦게까지 자던 내가 8시에 일어났다. 비몽사몽이었다. 사실 약속은 오후에 잡아놓은 터라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지만, 장도 봐야하고, 실패했을 경우 생각해놓은 음식이 아닌 다른 음식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요리만 하는 게 아니라 화장도 해야 하고, 소풍 갈 채비도 하려면 분명히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만 하는 스케줄이었다. 세수만 대충하고 자주 가는 마트에서 식재료들을 사오는 것으로 본격적인 도시락 싸기 미션을 시작했다. 목표는 유부초밥!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 봉지나 사왔는데, 아주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유부초밥만 먹으면 심심하니까 음료수와 과일도 함께 싸갈 생각으로 샀다.
유부초밥은 한 봉지 안에 세트로 모든 재료를 넣어서 파는데, 왠지 거기에 들어간 재료들보다 직접 당근이나 양파, 파프리카, 햄을 요리해 넣는 게 그녀에게 좋을 것 같아 그것들을 먼저 손보았다. 작게 손질하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볶고, 밥에 양념을 뿌린 후 식재료들과 함께 버무렸다. 유부초밥의 물기도 빼서 그릇 위에 미리 준비해두었다. 유부초밥은 만들기 간단하고 주변에서도 다들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실제로 이렇게 글로 써보니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데 체계적으로 어떤 순서를 잡고 움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요리 순서도 엉망이고, 이미 부엌은 난리통이었다. 어떻든 좋으니 맛만이라도 괜찮았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밥을 동글동글하게 뭉치는 작업까지 강행했다. 처음에는 밥이 너무 적어 너무 짤까봐 걱정했다가 밥을 더 넣고는 밥이 너무 많아 간이 덜 배여 심심할까봐 걱정하며, 최대한 동그랗게 만들려고 애를 썼다. 봉투를 하나만 뜯었기 때문에 14개 정도인가 들어있었는데 한 8개 정도까지는 그 크기를 감을 잡지 못해서 어떤 건 지나치게 뚱뚱했고, 어떤 건 너무 얇았다. 하지만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나머지 6개는 하다 보니 실력이 붙었는지 꽤나 모양도 괜찮았다. 좋아, 이 10개는 엄마 점심으로 드려야겠다고 딸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말을 실천하며 새로운 봉투를 뜯었다. 완성한 유부초밥들을 도시락 통 안에 차곡차곡 넣으니 모양까지 꽤나 근사했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애인이 나 때문에 부끄러워할 일은 없겠다고 자화자찬하면서 평소 좋아하는 긴치마를 입고, 도시락과 함께 길을 나섰다.
“진짜 맛있는데?”
젓가락으로 그녀의 입에 유부초밥을 하나 넣어주자, 그녀는 오물오물 맛있게 씹으며 먹는 내내 맛있다고 칭찬했다. 요리에 ‘요’자도 모르던 나는 괜히 으쓱거리면서 다음번에는 뭐가 먹고 싶냐고 큰소리를 텅텅 치기도 했다. 좁은 돗자리를 구색 삼아 내내 꼭 붙어 앉아서 사진을 찍고, 서로 마주보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그러다가 하나밖에 가져오지 못한 나무젓가락 때문에 서로 먹여주면서 도시락을 나눠 먹으니 그런 행복이 따로 없었다. 그녀의 예쁜 미소에 앞으로 도시락, 몇 천 번은 더 싸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말풍선): 도시락으로 싸면 좋을 메뉴들! 추천해주세요!
첫댓글 아기자기한 꼬마 주먹밥이 만들기도 쉽고 먹을때도 간편해서 좋은거 같아요!
[남색] 오.. 꼬마 주먹밥. 좋은 것 같아요! 동글동글 예쁘게 잘 뭉쳐서 한 입씩 넣어주기에도 딱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