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성이 용신일 때
재성은 <음양오행>쪽에서 다루고 경영하고 유지하는 것이라 하였다. 물건 뿐 아니라 계획을 세우는 것과 인간관계를 원활히 유지하는 것까지도 모두 재성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재성은 또한 모든 일간의 궁극적 목표이다. 설령 그의 용신이 재성이 아닌 인성, 식상, 비겁, 관성에 있다고 하여도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가장 궁극적 행복은 재성에 있다. 그리하여 재성이 의미하는 바는 남자에게 돈과 여자가 되는 것인데 모든 남자가 차지하고자 하는 것이 돈과 여자인 것과 같다. 만약 스님이라고 할지라도 재성은 그가 원하는 것, 바로 깨달음이 된다.(참 스님일 경우에만...) 그래서 스님들은 재성 운에서 깨닫고 그것을 나눈다. (더욱이 스님들은 비겁이 강하여 쟁재까지 되는 경우가 많으니 이것이 참된 구도자의 길이다)
이러한 재성이 용신이라면? 말 그대로 행복하게 웰빙하면서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다. 집도 적당히 넓어야 하고 차도 적당히 좋은 것 타야 하고 자식들도 적당히 좋은 학원 보내서 잘 키워야 되고...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좋다는 것들을 잘 영위하게 만드는 것이 재성이다. 일과 삶의 밸런스를 잘 잡는다.
더욱이 재성은 네트워크를 뜻하므로 주변 사람들과 사회적 인간관계, 개인적 인간관계를 영리하고 자연스럽게 영위하게 된다.(항상 친해지거나 끈끈해진다는 소리가 아니다. 도원결의 맺는 것처럼 철썩 달라붙어 친해지는 힘은 비겁에 있다. 재성은 선을 넘지 않는 자연스러운 소통이다) 그러므로 남자가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는 30~50대에 재성이 용신인 사람이 재성과 유정한 운을 걸으면 대부분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가정도 화목하게 이끈다.
보통 점집에 가면 재성이 튼튼하고 운에서까지 받쳐주면 돈 많이 벌겠다고 좋은 사주라고 대단히 칭찬을 한다. 사실 재성이 힘을 받는 사주는 돈을 많이 버는 사주라기보다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주라고 해석해야 맞는 것이다.
2. 재성이 기신일 때
대부분 명리학 책에는 재성이 용신이 되는 경우에 재성의 길한 점에 대해서만 나열해 놓고 기신이 되는 경우 그 흉함은 거의 언급이 없다. 재성은 길할 때는 대단히 좋은 만큼 흉할 때는 오히려 그 반대로 모든 십성 중에 가장 큰 고통을 주기도 한다. 생각해 보라. 여자와 연애를 함에 있어서 모든 것이 기쁘기만 한가? 슬픔과 애증도 함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재성이 주는 고통은 그와 같다.
재성은 생활 전반과 인간의 행복(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안정된 생활에서 오는 행복)을 말하는 것이므로 그것이 일간을 배신하게 되는 경우 그의 세상 자체가 모두 힘겨워 지는 것이다. 쓸데없는 의무에 묶인 관계만 많아 지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며 책임까지 떠안아야 하니 그야말로 의무감 때문에 가정에 꼬박꼬박 월급을 벌어다 바쳐야 하는 파김치 가장 신세가 된다.
사주원국에 재성이 있는데 바로 옆에서 충극을 맞아서 재성이 깨진 사주는 진실로 재성이 기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재다신약이나 편관이 강한 사주이다. 재다신약은 일간의 선택권이 하나도 없음을 의미한다. 인생 자체가 남의 손에서 좌지우지 되고 주권 없는 삶을 살아가는 신세가 된다. 심하게 표현하면 애완동물의 삶이다. 먹을 것과 안락한 삶은 보장받지만 자주권이 하나도 없는 삶인 것이다. 편관이 흉흉한 사주 또한 흉하기는 매한가지다. 편관(의무) 때문에 힘든 인생에서 한 점 희망을 바라보려면 비겁이나 인성 운을 기다리는데 뜬금없이 재성이 들어와 있으면 자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옆사람 죽어가는 것까지 챙겨서 살려내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어째서 재성이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왜냐하면 재성은 세상의 온갖 슬픔과 고통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사주가 온통 인성, 비겁 혹은 식상으로만 되어 있는 무재성 팔자는 남의 사정을 잘 헤아리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중심에서만 생각한다. 그러나 재성이 왕한 팔자는 남의 고통을 이해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그 관계 속에서 고통받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십성이 기신으로 변할 때 가장 불쌍한 것이 재성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