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안정을 위해 시작한 대중목욕탕
“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에베소서 5장 15절)
의류유통업과 전혀 관계없는 대중목욕탕을 운영하게 된 동기는 우리 집안 사람들의 짧은 수명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50세를 넘기지 못하였다. 나는 늘 가정의 안정과 경제를 결부시켜 생각해 왔다. 우리 집안 남자들이 거의 단명이었기 때문에 남자가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의 경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내가 먼저 죽더라도 아내와 자식들이 안정되게 살아갈 수 있는 업종을 찾다가 생각한 것이 대중목욕탕이었던 것이다 대중목욕탕은 현금장사요, 위치만 좋으면 언제나 흑자를 낼 수 있고 특별히 머리를 쓰지 않아도 운영되는 사업이라고 판단이 되었다.
그런데 이 사업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까운 위치에 다른 사람이 더 크고 호화로운 시설로 짓는다면 먼저 지은 목욕탕은 바퀴를 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는 업종이라 하루아침에 망하는 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목욕탕을 짓기로 한 장소 옆에 청량리 모 기관에 있는 유력 인사가 대중목욕탕을 짓기 위해 대지를 구입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상대방을 만나서 대화를 해보니 그는 기관에서 퇴직한 상태였고 오래전부터 대중목욕탕 사업을 계획하고 대지를 계약한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의논할 곳도 없이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기도하던 중 묘안이 떠올랐다. 직접 상대방과 협상을 하는 데도 힘의 우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원래 내가 계획하고 있던 목욕탕 규모보다 배로 큰 규모의 목욕탕 건축계획서를 작성하였고 상대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내 계획을 보고 깜짝 놀라 협상을 받아들였다. 상대방은 대지를 계약하고 계약금을 지불했기 때문에 내가 계약금을 배상해 주기로 하고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였다.
그러나 대중목욕탕 운영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자본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이 심했던 것이다. 나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찬 물방울을 없애기 위해 천장을 개량하고, 눈을 감고 잡아당기면 38도의 온수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샤워꼭지를 개발했다. 미끄러운 타일 바닥을 고치고 한증막의 탁한 공기를 제거하기 위해 수분 조절 장치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서울에서 처음으로 안마기를 설치하였다. 나는 서울에서 제일가는 대중목욕탕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 서울 전역의 잘 된다는 목욕탕을 110곳이나 직접 다니면서 견학을 하였다. 목욕탕에서는 알몸이다 보니 견학을 하더라도 적을 수가 없어서 높이나 넓이 등을 손뼘으로 재서 나중에 기록하여 적용시켰다.
1971년 목욕탕을 짓고 나서도 나는 낮에는 평화시장에서 의류 유통업을 하였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다 보니 평화시장의 장사도 잘 되고 부업으로 시작한 목욕탕도 잘 되었다. 하지만 두 가지 일을 다 하려다 보니 몸도 피곤했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자주 주일 성수를 범하게 되었다. 특히 내 마음을 괴롭혔던 일은 어떻게 하든 나는 주일 성수를 할 수 있지만 종업원들은 주일에도 일을 시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고민하던 중에 주일에 버는 돈을 선교비로 사용하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를 위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사람들, 주로 목욕탕을 운영하던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청신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인천 간석동, 서울 삼양동에 개척교회를 지었다.
이런 활동은 다소나마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었다. 또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아쉽지만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욕탕을 팔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10년간 경영하던 목욕탕을 팔았다. 아쉬운 마음도 많았지만 팔고 나니 짐을 벗은 듯 마음이 후련하였다. 모두가 주일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잠언 30장 9절의 아굴의 기도처럼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었다.
모든 것에는 배울 것이 있다는 성현의 말씀처럼 나도 목욕탕을 경영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 목욕을 하면서 사업을 구상하는 장소로 활용하는 것이다. 요즘도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나서 곧바로 목욕탕을 향한다. 목욕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날 할 일을 구상한다. 그러면서 운동을 한다. 특별한 기구를 이용하는 운동은 아니고 기본 체조에 팔 굽혀 펴기 운동, 고개운동, 허리운동, 얼굴 만지는 운동 등을 순서를 정해서 숫자를 세어가며 한 시간가량 한다. 운동을 하면서도 사업 구상, 교회 일, 가정 일을 생각하면 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나고 만다. 가장의 단명으로 가족들이 받을 금전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했던 목욕탕 사업을 오랜 기간 하지는 못했지만 목욕탕을 활용하는 나만의 여가시간은 건강을 지켜주고 삶을 연장시켜주는 방법으로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