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로스쿨 출신 시각장애인 변호사 김재왕 씨
박지연 기자
2012-05-0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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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내용 음성 파일로 전환… 듣고 또 들었다
“교재 120쪽 여섯째 단에 보면….”
수업 중에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공익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재왕(34·사진)씨는 재학 시절 이 말만 들으면 한숨이 나왔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1급 시각장애인인 김씨는 교재를 한글 파일로 바꾼 뒤 이를 음성 파일로 변환해 공부했다. 그러니 120쪽 여섯째 단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집에 가서 음성 파일로 들어야 한다. 수업 중에 찾아서 들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 이어지는 설명을 놓치기 때문이다. 모든 교재가 음성으로 변환할 수 있는 한글 파일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 교재는 학교에서 한글 파일을 제공하기도 하고 복지재단에서 교재를 한글파일로 입력해 주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시험기간에 학습시간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보는 요약본은 촉박한 시험기간에 한글 파일로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시험기간에도 전체 시험 범위를 음성파일로 들으며 공부해야 했다. “시각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학습자료가 제한적이라 방대한 양의 법학교재를 다른 학생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공부했습니다.” 김씨는 지난 3월 25일 발표된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가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된 것은 2009년, 서른한 살이 되던 해다. 오른쪽 눈은 어릴 적부터 보이지 않았지만, 왼쪽 눈은 스물다섯 해동안 사물을 보는데 크게 지장이 없었다. 대학원에 다니던 2003년의 어느 날, 그는 시야가 좁아졌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시신경이 바깥 쪽부터 차츰 죽어가며 손상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7년 동안 시야가 좁아지는 형태로 차츰 시신경이 기능을 잃어가다가 2009년에는 완전히 볼 수 없게 됐다. 병원에서는 증상이 녹내장과 비슷하다고 진단했지만 병명은 확실치 않았다. 기초 재활교육을 받으면서 2004년부터 6개월간 점자를 배웠지만 어른이 된 후여서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다가 2009년 로스쿨행을 택한 그는 어려운 점자로 공부하는 대신 ‘소리’로 공부하는 방식을 택했다.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기까지 교재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필기하면서 공부했던 김씨에게 들으면서 공부하는 방식이 처음엔 잘 맞지 않았지만, 3년간 로스쿨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점차 익숙해졌다.
올해 1월 실시된 변호사시험은 법무부 법조인력과의 지원으로 음성 지원 프로그램을 탑재한 컴퓨터가 있는 별도의 시험실에서 치렀다. 2010년 법조윤리시험 때에도 진단서를 제출해 음성 지원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컴퓨터로 치를 수 있었다. 그에게는 다른 응시생의 2배에 해당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시험 문제를 듣고 답하는 데에는 시간이 충분했지만 오히려 충분한 시간이 문제였다. 다른 응시생들이 하루에 5시간 동안 치른 데 비해 김씨는 10시간 동안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나흘에 걸쳐 실시하는 시험이었기에 엄청난 체력전이었다. 2011년 겨울, 로스쿨 1기생들의 3학년 진급을 앞두고 법무부가 주관한 모의고사 이후, 법무부는 김씨의 이런 고충을 듣고 사례형 과목 시험시간을 1.5배로 조정해줬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로스쿨입학 장애인 특별전형, 변호사시험 장애인 수험생 편의지원 등 시각장애인이 변호사가 되기까지는 제도가 잘 마련돼 있는 편이다. 문제는 변호사가 된 후다. 로스쿨에 합격해 3년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변호사시험에도 버젓이 합격했지만, 변호사 사무실에는 커다란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건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수 천장에 달하는 서면을 숙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대한 서면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문서를 스캔한 뒤 이를 한글 파일로 변환해 음성화 작업을 해야 한다. 서면 원본과 스캔본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고, 프로그램이 스캔본을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력을 가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장소를 이동할 때 활동보조인이 이따금씩 동행하고 있지만 활동보조인의 조력을 받는 시간은 한정돼 있어 서면 확인 업무를 맡길 수도 없다. 적게는 400장에서 많게는 1만 장이 넘는 문서를 일일이 원본과 대조하려면 활동보조인에게 주어진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비용을 들여서 누군가에게 문서화 작업을 맡겨야 하지만, 넉넉치 않은 사무실 여건상 그러기도 힘들다. 그가 근무 중인 비영리 공익인권변호사들의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은 문을 연 지 갓 한 달이 지났기에 당분간 인턴도 모집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김 변호사가 서면을 숙지하는 데에는 다른 변호사들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그는 “장애는 한 번에 극복하는 게 아니라 차차 적응해 가는 것”이라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변호사로서 김재왕씨의 꿈은 사무실에만 있는 변호사가 아니라 현장에 있는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자연인으로서 김씨의 꿈은 ‘행복’으로 간단 명료하면서도 확고하지만, 변호사로서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이 없다고 했다. 그만큼 사무실에서 직면하는 눈 앞의 과제가 버겁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