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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호 목사 (강의1) 거듭남의 비밀, 성령
성도님, 안녕하십니까 귀한 집회에 초청을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기악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번 짧은 기간이지만 성령 이야기, 증인 이야기라고 하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도록 하겠습니다.
2시간은 성령에 좀 초점을 맞추겠고요
2시간은 증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2015년도에 미국 미시간주에서 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 남자가 몸에 총알을 5발을 맞고 죽었습니다.
아내가 머리에 총상을 입었는데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누가 봐도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증거도 없었고 목격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건이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키우든 앵무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버드라고 하는 아프리카는 회색 앵무새인데 이 앵무새가
남편의 말투를 계속 한 문장을 반복해서 떠들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쏘지 마 쏘지 마. 분명히 남편의 말투를 이 남자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하는 걸로 보아서 어떤 날 저녁, 그 사건이 있던 날 저녁에 있었던 그 남편의 말투, 남자의 말투를 따라하는 거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이 앵무새의 말투를 조사를 하고 결국 배심원단까지 이 말투를 고민하고 참작을 해서 결국 이 말투는 남자가 아내가 자기를 총을 쏘려고 했던 상황에서 했던 말이라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아내는 종신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법정에 이 앵무새를 세울 것을 검토를 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배심원단이 이 앵무새의 말을 결정적 증거로 삼아서 아내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법적 사건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증인입니다.
증인이 무어라 말하고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판결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증인은 본 것을 말하고 경험한 것을 설명하는 사람입니다.
여기 사도행전 1장 8절에 이런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사도행전 전체의 주제는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사도행전은 28장까지 되어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압니다.
사도행전 1장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기 위해서 준비하는 내용입니다.
2장부터 7장은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증인이 된 이야기이고요.
8장부터 12장은 성령 받은 제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증인이 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13장부터 28장까지는 성령 받은 제자들이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번 장막회의 전체 주제 문구가 뭐예요? 선교회는 위기가 없고 기회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선교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제 부담을 가지고 계시지요 그런데 여러분 선교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는 것은 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겠지요
내가 분명히 보고 경험한 것을 설명하고 드러내는 것 그런데 분명히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만 증인의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여기 증인은 어떤 사실을 증명하는 사람 혹은 사전에서 자기가 경험한 사실을 진술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경험하지 않고 선교가 가능하겠는가? 성령을 받지 않고 증인이 되겠는가? 여러분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증인의 삶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가 어떻게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그 성령이 우리에게 함께할 때 어떻게 증인이 될 수 있는지를 연결시켜서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첫 번째 시간으로 우리의 마음에 많이 부담이 될 수 있는 거듭남의 비밀에 대해서 좀 살펴보고요.
이것이 어떻게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어떻게 증인의 삶으로 연결되어서 말 그대로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말씀 요한복음 3장 1절에서 5절에 있는 말씀을 다 읽지는 않고요
빨간 우리 성경 부분만 읽도록 하겠습니다.
3절 사람이 시작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러분, 유대인 탈무드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과거에 태어났던 모든 사람들과 앞으로 태어날 모든 사람들을 다 통틀어도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의 가치 되지 않는데 유대인들은 과거에 태어났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미래에 태어날 모든 사람들을 다 합쳐도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의 가치만큼 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당연히 한 자리
보장이 되어 있다라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종교 지도자였고, 그 당시 6천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굉장히 경건한 사람이었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보장이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이 상황에 이 니고데모는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겉으로 침착한 척은 하였지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드러낼 수 없었지만 기분이 굉장히 나빴습니다.
자기를 예수님이 이 젊디 젊은 한 라비가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영적인 내면의 상태를 진정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난 것 그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그에게
예수님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즉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본인의 영적인 상태를 잘 알고 살아가시는지요? 제가 한번 sbs에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좀 보게 되었는데, 굉장히 흥미 있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악취 때문에,
집안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3년 동안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한 주부의 사연이 소개가 되었습니다.
뭔가 녹차와 관련된 냄새가 나는데 원인을 찾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주부가 찾은 그 냄새의 근원지는 어딘가 하면 아랫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랫집에 가가지고 냄새가 나서 못 살겠으니까 좀 조치를 취해달라고 계속 닥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랫집은 아무리 자기 집을 둘러보아도 그런 내용이 뭔가 근특지가 없었기 때문에 관계가 대단히 불편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공기청정기를 집 안에서 두 대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안 되어서 정신과에 가서 신경 안정제를 처방을 받아서 먹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어서 냄새를 탐지하는 전문가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해서 집 안 곳곳을 뒤졌습니다.
자기 집 하기 전에 먼저 아랫집에게 양해를 구하고 밑에 집을 다 샅샅이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냄새의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이 전문가가 그럼 이 집도 하자고 그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근데 우리 집에는 이런 거 절대로 냄새가 날 만한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안방을 체크하는데 안방 화장대 위에 오래된 클렌징 크림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걸 열어보니까 녹차 성분이에요. 이게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인의 말로는 근데 탐지기를 갖다 대고 냄새를 측정하니까 측정된 냄새의 값이 34.8이었습니다.
34.8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여러분 음식물 쓰레기가 버리지 않고 많이 썩어가고 있을 때 냄새가 15,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아서 변기가 오래 지나고 나서 나는 냄새가 20 그리고 달걀을 한참 놓아두어서 썩어갈 때의 냄새가 30이었습니다.
근데 이 클렌징 크림에서 나는 냄새는 34.8이었습니다.
이 주부가 이게 절대로 이것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가 일단 치워봅시다. 치워보고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치웠습니다. 냄새가 났을까요?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여인이 3년 동안 고통을 당하고 밑에 집에 그렇게 난리 법석을 치면서 약도 받아 먹고 했던 모든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어요? 자기한테 있었습니다.
근데 어디다가 화풀이를 했어요 엉뚱한 집에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당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일 때가 엄청나게 많거든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상태를 잘 모르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니고데모가 그랬거든요. 여러분 여기 티모티 켈러가 한 목사님이 쓴 말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죄떼고 결점이 많지만 동시에 우리는 자신이 바라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다.
한 가지 질문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인일까요 동의하십니까? 정말 죄인일까요? 근데 우린 잘 몰라요.
우리는 본인이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특정한 상황이 되면 그 사실이 더 분명히 드러나요.
좋을 때는 잘 모릅니다.
돈 문제가 개입되고 이권이 개입되고 내가 손해가 생기느냐 안 생기느냐가 딱 개입되면 나한테 없던 것 같은 본성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여러분 평소에 우리는 자기가 죄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훨씬 더 이기적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죄되다는 것이지 근데 우리가 그걸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기쁠까요 슬플까요? 이걸 알면
기쁘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에 한 목사님의 표현은 동시에 우리는 자신이 바라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다.
여러분 예수님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실까요? 잘 몰라요.
그런데 우리가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더 알아야 되고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셨습니다.
너가 거듭나야 한대.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성령으로부터 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하고는 너하고 아무 상관이 없대.
여러분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여러 가지 말씀이 있겠지만 살펴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뭐 하다는 거죠?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는 반드시 뭐 할 수 있다는 거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고 그죠? 그런데 들어가려면 반드시 뭐가 있다고요?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이 얼마나 많은지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 외모가 얼마나 탁월한지 능력이 얼마나 많은지 성별이 어떤지 미국 사람인지 아무 상관이 없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유일한 조건은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미국 지도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분명히 있을까요? 가보신 분도 계시고 생활하셨던 분도 계시고 그저 알고만 계시고 가보지도 못한 분 계십니다.
상관없습니다. 여러분 미국이라는 나라는 누가 다스려요? 미국 대통령이 다스립니까? 여러분 대한민국은 누가 다스립니까? 윤 대통령이 다스립니까? 아니에요.
여러분 대한민국은 국민이 다스립니다.
국민이 다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누구를 뽑아놓은 거죠?
대통령을 뽑아놓은 거죠. 여러분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다스립니다.
미국도 국민이 다스리죠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는 주인이 누구예요? 국민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미국에 내가 들어가고 싶다라고 하면 누구 허락을 받아야 돼? 주인이 허락을 받아야 되잖아요.
여러분이 남의 집에 들어가고 싶은데 그 사람 주인이 허락을 해줘야 들어가지 그렇지 않으면 제가 어느 번에 전도회를 갔는데
거기에 문서 전도하시는 분들이 같이 한 팀이 되어서 전도회를 했습니다.
그분들이 직접 방문을 다니는데 이렇게 녹화를 해도 안에서 인기척이 없어서 이분이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그랬더니 나중에 그분이 주인이 나와가지고 경찰에 신고를 해버렸어요.
그래서 이분이 경찰서에 잡혀갔어요. 여러분 어떤 집에 들어가서 주인이 들어오라고 허락하지 않는데 들어가면 어떻게 돼요? 주거 침입이에요.
집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사는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되죠. 그래서 내가 미국에 가고 싶다 여행을 하고 싶다 공부하고 싶다 아니면 내가 돈을 벌러 가고 싶다 하면 합당하게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되죠.
그래서 주인들이 다 허락을 못 받으니까 주인들이 뽑아놓은 사람이 누구냐면 공무원이에요.
그 공무원들한테 허락을 받아야 되죠.
그래서 허락해서 받는 게 뭐냐 하면 위자라는 겁니다.
그것은 주인으로부터 검토를 받아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허락받는 것이 비자지요.
이처럼 한 나라에도 들어가려면 조건이 있는 것처럼 그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존재하는데 그럼 하나님 나라의 주인은 누굴까요? 당연히 하나님이겠죠.
그럼 누구 허락을 받아야 돼?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님의 나라는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근데 그분이 허락하는 유일한 조건이 뭐라고요?
거듭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거.
오늘 저는 성령에 초점을 맞추면서 오늘 이 시간에 거듭나는 의미와 거듭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것이 어떻게 우리의 삶의 증인의 삶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인지를 살펴보고요.
오늘 그렇게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건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어떤 분들은 알고 계시지만 어떤 분들은 부담이 되고 잘 모르는 말씀인데 이번 기간 동안에 한번 꼭 정리를 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파란 글자를 읽을 테니까 여러분 빨간 글자를 읽으십시오.
구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
여기 보면 구주께서 말씀하시기를 1차적으로는 니고데모에게 한 말씀이고 2차적으로는 우리 모두에게 하실 말씀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즉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풀어서 설명한 것입니다.
사람이 새 마음과 새 욕망과 새 목적과 새 동기를 받아 그것들로 새 생애에 들어가지 아니할 것 같으면 여러분 이게 거듭난다는 거예요.
한마디로 말하면 거듭난다고 하는 것은 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뭐라고요? 거듭난다고 하는 것은 새 생애를 사는 새 생애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새 사람이 된다는 게 구체적으로 뭐냐 새 마음을 가지고 새 욕망을 가지고 새 목적을 가지고 새 동기를 가지고 새 기쁨을 가지고
새 슬픔을 가지고 여러분 이 앞에 붙는 계속 똑같은 단어가 뭐예요? 새롭다는 단어입니다.
그럼 한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여러분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도 회사에 출근하지 회사에 출근해서 뭐 해요? 돈 벌어요.
그죠? 세상 사람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도 회사에 출근해서 돈을 버는데
오늘 여러분과 제가 회사에 출근해서 돈을 번다면 그 사람들하고 돈을 회사에 출근하는 목적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여러분 만약에 세상 사람들하고 재림 신자인 우리하고 회사에 출근해서 돈을 버는 목적이 똑같으면 어떻게 돼요? 거듭났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도 회사에 가서 돈을 벌고 일 열심히 해서 승진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근데 만약에 내가 재림 신사인데 나도 여전히 회사에 가서 돈을 벌고 돈만 벌고 회사에서 인정받고 승진하는 것만이 목적이면 그 사람하고 나하고 뭐가 다르냐 이 말입니다.
또 한 가지 질문을 드리죠. 여러분 거듭나지 않은 사람도 시집 장가 가지 결혼한단 말입니다.
그죠? 요즘 젊은이들이 잘 안 해서 그러지.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왜 결혼해요?
혼자 살 때보다 행복하려고 그러죠 혼자보다 둘이 같이 살아서 더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합니다.
맞아요. 이건 거듭나지 않는 사람도 가지고 있는 목적이에요.
그러면 재림 청년들이 시집 가고 장가 갈 때 만약에 내가 결혼해서 혼자보다 둘이 되어서 더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한다면 그건 세상 사람도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내가 정말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내가 다시 태어난 사람이라면 뭘 하든지 돈을 벌든지 일을 하든지 관계를 맺든지 뭘 하든지 목적과 동기와 욕망과 과정이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르지 않으면 그 사람하고 나하고 똑같다는 것이지.
여러분 여기 보세요. 한 분이 간증한 내용입니다.
제 속마음에는 전혀 새로운 동기와 기쁨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 뭐라 그랬어요? 내 속마음에는 전혀 새로운 동기와 기쁨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걸 뭐라 그래? 이 한 문장을 요약한 걸 뭐라 그래? 거듭났다는 거죠.
세 사람 되었다는 거죠. 그다음 보시 저는 지금 하나님이 저와 함께하신다는 수많은 증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경험하고 난 후로 이 세상에서 소중하고 아까운 것들이 없어졌습니다.
불필요한 염려가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보시 아까 새 목적 새 동기 새 욕망 이야기했는데 아까 파워포인트에 나와 있지 않지만 새로운 기쁨과 새로운 슬픔도 나온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왜 슬퍼해요? 슬퍼하는 이유가 있거든요.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는 이유도 있어요.
근데 만약에 내가 똑같이 세상처럼 기뻐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 사람들과 같이 똑같이 슬퍼하면 별로 내가 거듭난 거하고는 상관이 없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것을 갖지 못해서 걱정과 염려가 되었는데 거듭나고 나면 그것이 더 이상 나한테는 염려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없어도 괜찮다고 느끼기 때문에
여러분 이거 완전히 차원이 다른 삶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럼 새롭게 된다는 의미가 뭔가 이번 교과에도 나와 있습니다.
여기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 24절에 보면 옛 사람을 뭐 하고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뭐 하라 입어라.
여러분 성경에 있어서 사람의 변화를 왜 옷을 입고 옷을 벗는 것으로 이야기할까?
중요한 것이 옷이 상징하고 있는 바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이걸 제가 다 시간 설명을 드릴 수는 없고요.
이게 새롭다라는 단어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여러분 옛날에 이런 전화기 쓰셨죠? 요즘 이런 전화기 쓰는 분 없습니다.
이런 전화기를 쓰다가 이게 낡아가지고 새로운 전화기로 구입을 할 때
이게 공장에서 나온 시간이 지난 새로운 물건에 새롭다라고 하는 것은 헬라어로 네오스라고 표현합니다.
근데 여기에서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는 이 새롭다라고 하는 단어는 카이노스라는 단어예요.
이거는 어떤 의미인가 하면 스마트폰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보셔요. 이렇게 전화기 다이어를 돌리거나 버튼을 눌러서 전화를 걸든 이 전화기를 사용할 때 10년, 20년, 30년 뒤에 사람의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러면 이 구식 전화기에서 새로운 단지 네오스적 전화기는 새로움은 똑같은 제품 모델의 신형입니다.
공장에서 막 출시된 것이 새롭다는 뜻인데 이 카이노스적 새로움은 차원이 완전히 다른 새로움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새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착한 일 조금 하고 내가 마음에 조금 인내가 있고 그런 차원이 아니고 완전히 이전 사람하고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성령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는 이걸 잘 경험이 안 된다는 것이죠.
교회를 다니면서도 여러분 오늘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불행
이건 전부 다 옛 마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옛 옷을 옛 사람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의 마음이죠. 마태복음 15장 19절에서 마음에서 나온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가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이 내용을 보시면 이게 남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본인 이야기인 것 같아요
여러분 우리 이야기죠 여러분 이거 증명이 쉬울까요? 여러분 휴대폰 들고 어느 포털 사이트에 사회면 뉴스 몇 개만 검색해보셔요.
살인 가능 사기 음란 다 나옵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되죠 내 속에서 이런 것들이 나오니까 여러분 교회의 불행의 원인도 역시 옛 마음입니다.
옛 사람이죠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뭐와 뭐가 있다? 이기와 분쟁이 있다.
여러분 고린도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 교회도 있다는 것이죠 여기 한 여 집사님이 자신의 페이스북에다가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담기를 원하는 무리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다.
종종 오랫동안 아니 모태 교인으로 장로로 계시는 분들이 심심하면 교회 안 나오겠다고 한대.
회의 도중 박차고 나가고 하기를
번번이 한데 그럴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누구를 위해 신앙을 하는가 모르는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의 사고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그때마다 목사와 다른 분들은 방문을 한다.
물론 다독이고 해야 하지만 난 반대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고 본대.
그럴 시간이 없이 다독이기만 하니까 늘 그 행실을 하는 사람은 늘 그렇게 한대.
어떤 때는 아니 자주 신앙 공동체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가정에서 일터에서는 행복하다가 교회 가면 이런 일들 때문에 과연 노아 때나 소돔과 고모라 때나 구원자는 소수이다.
교회에 나가 주는 것이 무기가 되는 사람과 과연 무기가 되는 사람이 과연 진실된 신앙일까? 슬프고 아픈 마음에 잠시 주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건가요? 응답을 기다리며
본인의 페이스북에다 이렇게 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여기 시물교원에 있는 말씀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노라고 주장하면서도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한번 보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말과 정신과 품행에 전혀 변화를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은데 그 까닭이 무엇인가?
또 자기의 목적과 계획에 대한 반대를 참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품성을 나타내며 말이 거칠고 거만하고 툭하면 성을 잘 내는 자들이 많은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의 생애에서 세상 사람들의 생애에서 볼 수 있는 자기를 사랑하는 일과 이기심과 급한 성미와 성급한 말을 볼 수 있대.
그들은 진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처럼 자만하기를 잘하고 선천적인 못된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괴벽한 품성을 자주 나타낸대. 그대의 말씀 같이 있습니다.
시작 그 이유는?
여러분 누가 섭섭한 이야기를 하면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말할까 듣고 잊어버리셔요.
일주일이 지나도 남아 있고 한 달이 지나도 남아있고 1년이 지나도 또렷하게 남아 있으셔요.
우리 재림 신자들은 현미를 먹고 채식을 해가지고 머리가 맑아 누가 섭섭한 이야기를 해도 그게 잊혀지질 않아요.
여러분 누가 섭섭한 한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자꾸 생각하면 그게 작아지고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요.
더 섭섭함이 커져요. 여러분 우리 마음에 떨어지는 미움과 사랑은 똑같이 씨앗과 같습니다.
그걸 자꾸 생각하면 자라요. 여러분 누가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서 누구 아무개가 호감이 있어요.
그 사람을 자꾸 생각하면 그 사랑의 마음도 커집니다.
반대로
미워하는 마음도 내가 자꾸 생각하면 그게 커져요.
내 마음에서 제거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 모든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이런 마음이 변화가 되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많이 애를 씁니다.
여러분 제가 불교 이야기 잠깐 하고 성경 이야기하겠습니다.
여러분 불교의 핵심 교리는 사성제하고 팔정도라는 것입니다.
사성제는 네 가지 거룩한 가르침이라는 뜻인데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 고지멸도라고 그래서 불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고성제는 뭔가 삶은 고통이 되 결과지요.
원인이 뭐냐 집성재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라는 거지.
욕심 이게 원인이 되어서 고성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가? 멸성제 번뇌와 고통을 소멸시켜야 되는데 이게 불교에서 추구하는 목표예요.
그럼 이걸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도성제 번뇌와 고통을 소멸하기 위해서 도를 닦아야 되는데 이 도성제를 실현하는 8가지 방법이 팔 정도예요.
바른 생각 바른 견해 바른 말 바른 행동.
여러분 이제 한 가지 질문을 드리죠.
누가 나한테 섭섭하게 하는 사람을 내가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된다는 걸 알아요? 몰라요 아는데 돼요 안 돼요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되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그게 답이 될 것 같으면 우리 세상에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내가 아는 게 실천이 안 되지. 그래서 불교는 여러분 정통 불교는 사극이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스님이 기룡 화복을 점쳐주고 미래에 어떤 잘되게 해주는 건 여러분 그건 정통 불교 아니고 그건 불교가 잘못된 기복 신앙화된 불교입니다.
정통 불교는 하안거 동안거 그래서 산속에 들어가서 벽을 보고 깊이 도를 닦고 수행하는 종교가 정통 불교예요.
멋있어요 안 멋있어요? 굉장히 멋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드는 욕심과 번뇌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아무것도 아닌 이것을 가져도 그만 안 가져도 그만 색즉시공 공적 지색 굉장히 멋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도를 닦으라고 말을 하는데 성경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다시 태어나라 그래요
여러분 다시 태어나는 거 잘 압니다.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도를 닦고 바른 생각과 바른 말을 해서 변화시킬 수 있으면 우리는 남자든 여자든 생물학적으로 남자 혼자 여자 혼자 아기를 낳을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아기 낳을 수 있어요 없어요 혼자서
남자든 여자든 혼자서 아기를 못 낳는 것은 자기 스스로 내 마음속에 새 마음과 새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친밀한 관계에 의해서 생겨나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처럼 오늘 우리도 새 마음
새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우리의 특별한 밀접한 관계가 되지 않으면 거듭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릭오렌이라는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보낸 9개월이 그 자체로 끝이 아닌 다른 삶을 다른 삶을 위한 준비였듯이 현재의 삶은 다음 삶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여러분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잉태가 되면 280일을 있습니다.
여러분 280일이 끝이에요 280일이 지나고 양수를 터뜨리고 나와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요.
마찬가지라는 거죠 여러분 거듭나는 것도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거듭나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미션인데 그 거듭나는 것이 끝이 아니고 그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돈 많이 벌고 집 잘 짓고 자식들 출세시켜가며 사는 것이 이 삶에 주어진 목적이 아니고
죄의 몸으로 탄생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서 거듭나는 삶을 살아서 이 땅에서는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우리가 거듭난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 이 말입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이 재림 신앙을 하면서도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내 자식 잘 키우고 내 남편 사업 잘하는 것으로 이 재림 신자의 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 땅에 소망이 되어 있다는 것이지
불교에 있어서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은 바른 생각과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을 통해서 도를 닦으라는 것이고 성경이 말하는 새로운 사람이 되고 마음이 변화되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된다?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마셔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다시 태어나는가 하는 것이지 여러분 잘 아시기 때문에 니고데모에 있는 말씀을 다시 드립니다.
빨간 글자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이 내용을 잘 아시기 때문에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 적 모두 살더라.
여러분 여기 보십시오. 영생을 얻게 한다.
모두 산다. 같은 말이에요. 그러면 그를 믿는다라고 하는 것은 놋뱀을 쳐다본다는 것과 관련이 됩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 뱀에게 물렸습니다.
몸에 독이 퍼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요? 그 문 뱀하고 똑같은 모양의 노스로 구리로 만들어 가지고 높이 들어서 이거 쳐다보면서 살까요? 과학적으로 맞아요 의학적으로 맞아요 이성적으로 맞아요 안 맞아요
여러분 그래서 쳐다본 사람은 있었겠지만 안 쳐다본 사람도 있었겠죠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이런 방법을 쓰셨을까 이 말이에요.
여러분 예수님이 원하시면 제가 신장이 없어도 허파가 없어도 저를 살릴 수 있습니까? 제 심장에 심장으로 작동하지 않아도 제 심장이 없어도 그분이 원하시면 이 피를 돌릴 수 있고 제 허파가 없어도 그분은 호흡할 수 있게 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 당시 노뱀을 만들어서 쳐다보는 것이 과학적으로 맞나 이성적으로 맞나를 따지는 게 아니고 예수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살리신 거죠 이것은 구속의 계획에서 중요한 것을 예수님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보십시오. 그를 믿는 자마다 여기 믿는다는 것은 쳐다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계신 여러분 저를 보신 분도 있고 안 보신 분도 계신데 오재호라는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별로 대답을 안 하시네요.
근데 저는 스트레스 안 받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모르기 때문에 당연히 못 믿는 거지.
근데 저하고 1년을 살고 5년을 살았는데 저를 못 믿는다 그러면 아마 저는 좀 서운할 거예요.
여러분 사람을 믿는다라고 하는 것은 그분을 쳐다봐야 되지.
그분의 말을 쳐다보고 행동을 쳐다보고 인간관계를 쳐다보고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쳐다보고 자꾸 쳐다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지요
여러분 멋지게 생긴 남자 예쁜 아가씨 자꾸 쳐다보면 어떨까요? 이런 거 안 해보셨습니까? 정말 멋진 아가씨를 자꾸 한번 쳐다보고 굉장히 잘생기고 멋진 남자를 자꾸 한 번 쳐다보면 무슨 생각이 무슨 마음이 들어요?
좋아하는 마음이 들어요 좋아하는 마음이 안 드는 분도 계시겠죠 여러분 멋지고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보고 특별히 인격적으로 고매하고 고상한 그런 삶을 자꾸 보면 내 마음속에서 뭔가 생겨나요? 같이 한번 대화를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한번 저 사람의 모습이 왜 저런지 한번 한번 이야기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자꾸 뭔가 들지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이야기는 사람 죽어가는 이야기예요.
그렇죠 여러분 얼마 전에 우리 사건이 있었죠 그죠? 학교 선생님 어떻게 되고 수혜 나서 사람 찾으러 다니다가 군인 어떻게 되고 그거 다 젊은 사람들이었습니.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는 사람 죽어가는 이야기 사람 죽었다는 이야기 그것도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굉장히 우리를 안타깝게 하죠.
여러분 예수라고 하는 사람을 쳐다보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인자도 높이 들려야 하리니 저 예수님을 쳐다보는 사람은 여러분 그 쳐다보면 저 존재가 왜 저렇게 죽어가지
왜 저렇게 모욕을 받지 저게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거야 아니면 우리하고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여러분 자꾸 쳐다보면 생각을 하게 돼 있습니다.
여러분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에 가면 여러 박물관이 있습니다.
기념관들이 있고 그래서 미국 전역에서 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 몇 번을 갔었는데요.
저에게 가장 감동적인 장소는 여기였습니다.
여기가 어디냐면 한국전쟁 기념관이에요.
6 25 전쟁
특별히 건물은 없고 이렇게 일반 노지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여기에 이제 군인들이 행진하는 모습인데요.
여러분 이 행진하는 끝에 가면 벽이 하나 있습니다.
이 벽에 무슨 문장이 적혀 있는가 하면 프리드 미즈 프리 자유는 공짜가 아니래.
이 앞부분에 가면 한 타일에 한 문장이 적혀 있는데 굉장히 감동적이에요.
우리 국민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들과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를 지키라는 부름에 응한 조국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분 이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여기 처음 갔어요.
아는 사람하고 막 돌아다니다가 두 번째 갔어요.
이걸 또 읽었습니다. 세 번째 가서 또 읽었습니다.
여러분 처음 갔을 때보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제가 이 문장을 자꾸 읽을 때 제 마음속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왔어요.
처음에 아무 생각 없다가 그치? 여기 6 25 전쟁 때 미국에서 한국으로 명령 하나를 받고 온 그 사람들이 대한민국 땅을 알았을까?
대한민국 나라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까? 전혀 몰랐죠 명령 하나를 받고 왔으니까 그러고 나서 죽었잖아요.
여러분 그 사람들이 피를 흘린 것 때문에 내가 여기 지금 공부하러 와 있지 그다음부터는 굉장히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의 죽음이 자꾸 생각하니까 자꾸 들다 보니까
그 수혜자가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자유롭게 다니고 내가 말도 할 수 있고 어디 갈 수도 있고 자유가 전혀 제한받지 않고 이렇게 살고 있는 이 내 현재의 삶이 이 이름 모를 사람들이 와서 자기 피를 흘리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싸웠던 그
과거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현재 자유를 누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는 안 들었어요. 자꾸 보니까 자꾸 생각하니까.
여러분 그래서 내 마음 제 마음속에 없던 마음이 생겼어요.
감사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 여러분 이게 쳐다보면 생겨나는 거예요.
그 대상이 잘못된 대상이면 안 생기겠지만
올바른 대상이고 우리를 위하여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하여 그 대상이 분명하면 분명할수록 그 대상을 쳐다볼수록 우리의 마음이 뭔가 마음속에 뭔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기 수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그 가치는 우리가 그것을 위해 내놓으려고 하는 인생의 불량과 같아.
우리가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내가 희생할 수 있는지 거기에 그 가치가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교회 정문 200페이지는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구원의 가치를 온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뭐를 이해해야 된다고요? 그걸 이루기 위해서 무슨 대가가 지불이 되었는가? 여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서 받는 매일의 축복들과 무엇보다 우리에게 행복과 천국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께서 죽으신 사실이 끊임없이 우리의 감사의 제목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매일의 축복들이 있어요.
이제 제가 한 두서너 가지 이야기 드리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참 감동적으로 경험하게 된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 한 직장 여성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이 여성이 회사에서 큰 실수를 했어요.
아주 결정적인 실수를 해서 해고를 당할 만한 그런 경제적인 손실을 직장에 끼쳤습니다.
그런데 이 바로 위에 있는 직장 상사가 더 윗선에 보고를 하지 않고 자신이 그 실수를 고스란히 뒤집어 쓰고 욕을 얻어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밑에 있는 여직원이 보니까 엄청나게 불편했습니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찾아가서 그러지 마시라고 왜 제 실수를 그렇게 다 뒤집어 쓰고 욕을 얻어먹고 어려움을 당하십니까? 솔직히 말을 하시라고 이분이 대답을 안 해요.
근데 자꾸 추궁을 하니까 이분이 대답을 합니다.
뭐라고 대답을 하는가 하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거기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내가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예수 그리스도가 떠맡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나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나도 힘 닿는 데까지 남들의 짐을 지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게 제정신이에요 아니에요? 여러분 일반 회사로 직장 출근해서 돈 버는 사람의 정신이에요 아니에요 아니잖아요.
여러분 일반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해도 남한테 또 미루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게 세상 사람들이에요.
근데 자기가 저지르지 않는 책임까지도 뒤집어 쓰는 그 이유가 뭐라고요? 예수님을 자꾸 쳐다보고 예수님을 자꾸 바라봤더니 그분이 내 짐을 졌더라는 거죠.
그게 너무 감동되고 그게 너무 기쁘고 고마워서 나도 인생에 있어서 할 수 있는 대로 남들이 져야 될 짐을 나도 한번 지고 살아야 되겠다.
그 예수님을 자꾸 쳐다보면서 자기 마음속에 생겨난 거죠.
여러분 이것을 성경에서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새 마음이라 그래.
여러분 새 마음은 어금니 깨물고 나오는 게 아닙니다.
새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꾸 쳐다보니까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다가 또 쳐다보고 또
자꾸 쳐다보면서 내 마음속에 없는 마음이 생겨나고 그게 고맙고 그게 감사하고 그게 눈물이 나고 그게 내 삶을 기쁘게 만들어서 내 마음속에 없는 새로운 마음이 생겨나서 그 마음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사람.
여러분 이것을 성경에서는 새 사람이라 그래.
이걸 거듭남이라 그러죠 한번 보시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여러분 지금 여기에 오셔서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이제 가장 여러분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사셨는지를 점검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향해 예배하며 살아간대.
인간은 쇼핑센터에서 예배하며 tv 드라마 앞에서
스포츠 경기장에서 그리고 정치 권력을 향해 예배한대.
소비적 욕망에 빠진 인간은 상품을 예배한대.
무신 숭배에 끌려다니는 소비적 인간은 예배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 내가 열망하는 모든 것은 예배의 대상이 되며 우리는 그것을 예배하고 있다.
여러분 예배한다는 말이 딴 말이 아니에요.
찬사를 보내고 감탄을 하고 그거 괜찮다고 소개하는 거예요.
여러분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 먹었으면 그 음식 맛있더라라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한테 한번 가보라고 소개합니까? 여러분 그거 소개하는 어떤 물건을 써봤는데 그 물건이 나한테 너무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서 너도 이 물건을 한번 써봐라고 말하는 것이 뭐예요? 예배하는 거 찬사를 돌리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뭔가 사람이든 물건이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는 것은 내가 그 맛을 본 거라는 거죠.
그러면 결국
증인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은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의 맛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너무 좋아서 그분이 내 삶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은 그분을 이분의 맛이 너무 좋으니 이분을 한번 알아봐달라고 이분이 이런 분이다라고 소개하는 게 뭐예요? 그게 성령의 증인인 것이지.
첫 번째 여러분 꼭 기억하실 것은
오늘 전도는 선교는 내 마음속에 전도를 해야 된다라고 말하면서 쥐어 짜내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오늘 여러분들이 물건 하나 사람 한 명을 기쁘게 경험하고 그 좋은 것을 확신했을 때는 저절로 그걸 자랑합니까?
제가 한 분의 이야기를 드리고 마무리하겠습니다.
한 재림교회의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선교가 굉장히 큰 부담이었습니다.
선교가 너무 부담이 되어서 싫었습니다.
안식일 예배 잘 드리고 오늘은 전도지 공급이 있습니다.
그러면 기분이 확 잡히는 분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받은 은혜가 이렇게 확 사그라들어버리는 그런데 이분이 선교 회장을 맡았습니다.
가을에 전도회를 계획을 해야 되는데 어떻게 어떻게 해서 삼육대학교에서 몇 교회가 모여서 연합으로 전도회를 한다니까 정말 좋았습니다.
뭐가 열심히 안 해도 되니까 이제 묻어가니까 근데 이분이 곰곰히 생각을 해본 거예요.
내가 왜 예수님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한마디 입을 열어서 말하는 게 이렇게 부담이 되고 어려울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이 누군지 잘 모르겠더래요.
장로인데 그러면서 하나님이 무섭더래.
자꾸 자기를 심판하는 것 같고 자기를 잘하나 못하나 이렇게 자꾸 이렇게 확인하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더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분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한번 알아보겠다고 작정을 합니다.
근데 성경을 보니까 내가 많은 무리와 행엄하고서라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예레미야 3장 1절에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너가 많이 행엄했으니까 너 나한테 이러고도 돌아올래? 오라는 거예요.
오지 마라는 거예요.
오지 마라는 것 같은 그러니까 나쁜 짓하고 악을 행하면 돌아오지 마라라고 말하는 하나님 같은 굉장히 부담스럽더라는 거죠.
또 성경을 보는데 요한복음 15장에 보니까 포도나무 비유가 나오는데 포도나무의 열매를 못 맺는 가지는 2절에 보니까 아버지께서 그것을 뭐 해버리시고
잘라버린대 그럼 자기가 열매를 못 맺는 나무인데 그럼 자기 같은 나무는 이제 그분이 잘라버리는 그런 하나님으로 자꾸 느껴지는 거예요.
굉장히 부담스러웠다는 거죠. 이제 이분이 고민을 하기 시작하고 이제는 좀 더 쉬운 성경을 가지고 이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실까 정말 제대로 한번 알아야 되겠다.
공부를 하기 시작합니다.
근데 예레미야서를 3장을 쭉 읽다가 뒷부분에 조금만 나와도 12절에 가보면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이게 너가 그렇게 음란하고 나쁜 짓을 하고도 나한테 돌아올래 이렇게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고 이렇게 하고서라도 나한테 뭐 해라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그다음에
이 요한복음 5장에 있는 말씀은 아이로라고 하는 말인데 이걸 가지를 잘라낸다는 말도 있는데 이 아이로라는 말은 이렇게 들고 이렇게 일으킨다는 이런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요한복음 5장 8절에 보면 예수님이 베데스다.
목가에서 사람을 고치고 일어나서 내 자리를 들고 가라.
그럴 때 이 들고가 가지를 자른다고 똑같은 말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팔레스타인에는 우리나라 사람들 처럼 이렇게 지지대를 세워서 포도나무를 이렇게 잘 재배를 못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지들이 땅바닥으로 쳐진 거죠.
그렇게 땅바닥으로 쳐진 포도나무에 포도를 잘 맺히게 하기 위해서 주인이 뭐 한 거죠? 가지를 들어준 거라는 거지.
하나님은 열매 못 맺는 사람은 잘라버리는 게 아니고
열매를 맺도록 틀어세워주는구나. 그러면서 이분이 하나님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해서 이분이 이분은 의사예요.
동정원 앞에 한 장로님인데 이러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기쁜 거예요. 그래서 자기 사랑하는 아들한테 자기가 말씀을 읽고 깨달은 좋으신 하나님에 대해서 자꾸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내가 만나는 하나님 이런 분이야 이런 분이야.
여러분 내가 만나야 내가 뭔가 경험해야 글이든지 말이든지 설명을 하지요.
증인이 되지요. 근데 이분이 그냥은 안 깨달아졌죠 자꾸 말씀을 보고 자꾸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는 뭐 한 거예요 생각한 거죠
자꾸 쳐다본 거죠. 여러분 기억하셔요 오늘 우리가 거듭나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을 뭐 하는 거예? 쳐다보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고도 마음이 변화될 수 있는가? 없어요.
이제 이분이 다른 사람한테도 이분이 이제 의사거든요.
그래서 진료를 오는 환자들이 있으면 그때는 그냥
만 원하는 아픈 거 치료해 주고 후딱 보내는 게 이분의 그거였는데 이제는 이분이 어떻게 하면 틈만 메워가지고 그 자기가 의료 행위를 하는 그 중간중간에 예수님 이야기를 할까 여러분 이게 이분의 고민과 기도 제목이 된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바뀐 거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이 정말 어떤 분일까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또 생각하고 그래서 내 마음속에 그분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그분이 어떤 부분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확신이 들면서 없는 마음이 생겨나게 된 거죠.
여러분 제가 한 가지 읽고 마치겠습니다.
여기 빨간 글자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여러분 바라봄으로 변화하는 것이 인간 마음의 뭐다? 여러분 법칙이라는 게 뭐예요? 미국에서도 되고 한국에서도 되고 옛날에도 되고 지금도 되고 근데 과학 이론 중에 법칙이라는 것 말고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됐는데 지금은 안 되는 거 그래서 여러분 창조 뭐라 그래요
봐봐요. 여러분 바깥에 건물에 가서 물건 하나 던지면 밑에 떨어지잖아요.
중력에 뭐라 그래? 법칙이라 그러잖아요.
왜냐면 중력의 법칙은 한국에서도 되고 미국에서도 다 되는 거죠.
옛날에도 되고 지금도 되고 실험 가능해서 증명 가능한 게 법칙이에요.
근데 이론은 뭐냐 하면 옛날에는 됐는데 지금은 안 되고 미국에서는 되고 한국에서는 안 되고 이런 거는 이론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빅뱅 이론 이러지 빅뱅 법칙 그렇게 하지 않아요.
창조 이론 창조론 그러지 창조법칙 혹은 진화론 그러지 진화 법칙 그러지 않아요 왜? 진화가 되는 것이 창조가 되는 것이 확인이 안 되거든요.
근데 바라봄으로 변화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의 뭐다? 법칙이 돼.
그러면 이거는 시대와 장소와 환경에 상관없이 쳐다보면 변화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꼭 기억하셔요. 오늘 우리가 성령의 증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라고 부담만 갖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오늘 내 마음속에 내가 정말 거듭난 마음
새 목적 새 동기 새 욕망 새 슬픔 새 기쁨으로 예수님에 관하여서 뭔가를 말할 만한 거리를 내 속에서 경험하고 사는 걸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성령의 사람 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내 마음속에서 새 동기 새 욕망이 생겨나지 않으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증인의 삶은 여전히 부담만 오늘 꼭 기억하실 것은 사람은 마음은 변할 수 있다.
근데
세상의 종교나 세상의 활동들은 바르게 살고 바르게 행동하여서 도를 닦든지 애를 쓰라는 것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변화의 원인은 누구를? 예수 그리스도를 뭐 쳐다보래 여러분 요 찬미가 가사 제가 한번 읽고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383절
제가 아는 한 분이 그걸 작곡한 겁니다.
작사는 한 목사님이 하셨고 영남 앞에 목사님이 예수만 바라보세 예수만 쳐다보세 믿음의 주 대신 예수만 바라보세 예수만 생각하세 예수만 신뢰하세 예수만 품어보세 예수만 모셔보세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 속에 없는 분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려니 참 힘이 듭니다.
그 의무와 책임을 알수록 더 부담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의 문제가, 삶의 부족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셨사오니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끔 바라보고, 아주 오랜만에 바라보고, 안식일쯤 한 번 생각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제는 이 예수님 매일 생각하고
매 순간 바라보고, 이 예수님이 우리를, 나를 향하여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자주자주 생각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삶의 문제의 원인이 거듭나지 못함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예수님
쳐다보고 살아서, 이 예수님 바라보고 감동하고 살아서, 이 예수님 주시는 그 새 마음 받고 살아서 오늘 저희의 입술을 열어서 이 좋으신 예수님에 대하여 소개할 무엇이 있는 저희 증인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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