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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은혜를 얻어 행4:32-37
유머1. 감사의 표시
목사님이 한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돈을 지불하려고 가격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이발사가 하는 말, “존경하는 목사님! 돈을 안 내셔도 됩니다. 주님을 위해 봉사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이튿날 아침, 그의 이발소에 목사님의 감사 편지가 와 있었다. 며칠 후 경찰관이 이발을 하고 나서 물어 봤다. “얼마죠?” 이발사가 대답했다. “존경하는 민중의 지팡이님! 돈을 안 내셔도 됩니다.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 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이발사는 또 경찰관의 감사편지와 함께 조그마한 선물까지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 한 국회의원이 머리를 깎고 물었다. “얼마입니까?” 이발사가 대답했다. “존경하는 의원님! 돈을 안 내셔도 됩니다. 나라를 위해 봉사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이튿날 아침 그가 이발소에 나가 보니 아침부터 3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머리가 부스스한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이발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머2. 별난 다이어트 코스
뚱뚱한 남자가 다이어트 학원을 찾았다.
20만원과 50만원 코스 중 20만원 코스를 선택하고 방으로 들어갔더니 한 여자가 홀딱 벗고 유혹하고 있었다.
"날 잡으면 난 당신 꺼." 열심히 쫓아다녔지만 그녀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만족을 못한 남자는 '20만 원 짜리보단 50만원이 훨씬 더 섹시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이번엔 50만원 코스에 등록을 했다. 하지만 방에 들어갔더니 이번엔 험상궂은 남자가 벌거벗고 침대에 누워 말했다.
"내가 너 잡으면 넌 내꺼!"
유머3. 헌혈하라고 잡혔을 때
* 국회의원 아들 : 체중미달이라서 안된다고 우긴다.
* 바람둥이 : 자신은 쌍코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피가 부족하다고 우긴다.
* 악덕업주 : 나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온다고 우긴다.
* 골초 : 자신의 피는 임산부나 자라는 아이한테 해롭다고 우긴다.
* 술꾼 : 혈중 알콜 농도가 높아서 안 된다고 우긴다.
* 공해업자 : 자신의 피는 재활용이 불가능하다고 우긴다.
유머4. 각 과목선생님들이 애들 혼낼때
~ 국어: 주제도 모르고 쯧쯧쯧...
수학: 분수를 알아라. 분수를...
일반사회: 왜 그렇게 생각이 없니?...
윤리: 서로 배려하고 타협 할 줄 알아야지...
진로담당: 너희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니?
경제: 너희 같은 놈 들 때문에 반평균이 깎이는 거야!!!
국사: 조상님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
세계사: 너희들이 싸운다고 이 세상이 달라지냐!!!
담임: 부모님 모셔와!!!
생물: 벌레만도 못한 놈들...
지구과학: 내가 아주 돌겠다!!! 돌아!!! 그냥...어휴~~
급식 담당: 밥 먹고 그렇게 할일이 없냐!!!
유머5. 한석봉 따라 하기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아빠는 불 끄고 글씨 쓸 수 있어?” 아버지는, “물론이지.” 하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아들이 하는 말, “그럼, 불 끄고 여기 성적표에 사인 좀 해 주세요.”
본론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가는 사이에 옛날 고향에서 살았던 어려운 시절에 따뜻함이나 또 마음주고 받았던 삶의 기쁨들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번잡한 길을 걷다가 편의점에 들어가서 음료수를 하나 꺼내가지고 지금 돈이 없으니까 나중에 갔다 드릴께요 한다면 그리고 장부에 적어 놓으세요 그러면 그 점은 아마 미친사람 취급할것이며 경찰에 신고할 것입니다.
그 낮은 사람에게 외상이라는 것은 절대 통화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옛날에 시골에서 살아갈때에 구멍가게가 있었습니다.
마을 점빵에 가서 돈 한푼없이도 얼마든지 물건을 살수가 있었습니다.
외상하면 됩니다.그리고 장부에 적어놓으면 되고요 그 외상이 가능한 이유는 서로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그 집형편 누구보다도 그 점빵주인이 더 잘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형편을 너무나 잘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 해줍니다.
그래서 외상이 가능한것입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갑작스럽게 손님이 찾아 온다던지 쌀독에 쌀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기다려다가 쌀이 떨어질설때에 앞집 뒤집 찾아가서 밥 한그릇 빌려왔어 손님대접하고 밥한그릇빌려왔어 자식들을 먹이기도 했더랬습니다.
아침 아이가 학교를 가는데 가지않고 마당에서 스성이고 있으면 어머님께서 돈이 없어 그러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서는 뒤집에가서 돈을 빌려왔어 그 아이손에 집어줍니다.
그리고는 그 돈 빌린댓가로 품삿을 나갑니다.
몸으로 때우는것입니다. 그것이 옛날 우리 고향에 삶이 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이 부끄럽지도 안을분더러 부담되지도 않았습니다.
너무 당신의 형편을 잘알고 이해 해주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도시 생활에서 돈없으면 한발작도 움직일수 없는 삶이 아닙니까?서로의 관계란 깊이 알면 다치는 관계가 되어서 사생활에 침해가 일어난다고 했어 전혀 자유롭지 못합니다.
외상으로 물건을 산다는 것은 상상 조차 할수 없습니다.
몸으로 때우고 품삿으로 돈빌린 것 갑을려는 생각도 통하지를 않습니다.
오늘 참 아름답고 가슴 두근거리는 감동에 이야기가 말씀안에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바로 이랬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물건을 통용하고 무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큰 은혜를 받고 살았다 라고 그랬습니다.
아마 초대교회 당시 삶이 우리가 어려울 때 삶이 비숫하지 않겠습니까?그런데 무리를 지어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은혜를 받고 이해하며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감동을 주는 것은 믿음이란 행위가 있어야 된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있다하면은 그 믿음에 따른 행동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래기에 그들 주위에는 피잡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가 아파하면 함께 아파해주었고 누가 배 고파하면 나누어 주고 이해 해주어기 때문이지요.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행위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만약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위가 없다면 은 그 신앙은 관념화된 신앙 생각의 신앙 불과합니다. 머리로만 예수를 믿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입술로 아무리 감사합니다. 믿습니다. 하고 고백한다 할지라도 감사의 표현이 없고 믿음의 행위가 있으면 그의 감사와 그의 믿습니다.라는 고백은 입술에 불과합니다.
참으로 누가 아파하면 나의 아픔처럼 느겨지고 누가 배고프면 나의 배고픔처럼 느껴질 때
나의 자녀가 귀중한 것처럼 남의 자녀도 귀중하게 느껴질 때 그때야 말로 믿음의 생활이 행위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큰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큰 은혜가 어디서 솥아져 나오느냐 믿음의 행위로 나타날 수 있는 비결은 자족하는데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원하는 심정에서 가능합니다.
은혜의 삶을 보면 그 삶이 사명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사람이 행위로 나타나듯이 은혜받았다는 사람은 그 삶이 사명이 됩니다.
독일로는 은혜는 까베라고하고 사명 아우프 라고 하는데 이 까베 아우프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결국 은혜는 곳 사명으로 함께 간다는 말이죠. 믿음의 행위가 함께 가듯이 말이죠!
내가 복을 받았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을 격으면 안됩니다.
내가 복받고 살아가고 있다면은 내 주위에 있는 사람 정말 내 가까이 하는 사람 아끼는 사람이 아파한다면 그는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 행복하게 산다고 하면은 내 주위에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상처를 입고 아픔을 격는다면 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내가 행복하다면 내가 잘산다면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대단이 기뻐하고 같이 행복해 하는것입니다.
지금촌오지에 나라 아이티에서는 콜레라가 발생했어 하루에도 수없는 사람이 죽어가고 예상하건데 앞으로 일만명이 죽어것이라는 그런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귀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얼마전에 아이티에 대지진이 일어나서 수시 만명에 사상자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런일을 격고 있습니다.
원조를 해준다는 다른 많은 나라들이 원조를 해주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런데 지금 그들은 콜레라를 막을 수 있는 길이 비누한장이면 되는데 그 비누한장이 없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결코 자원이 모자라거나 농산물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생필품이 딸리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한쪽에서는 써지않는 생필품이 쌓여있고 남아돌아서 썩어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서는 비누한장 없어서 전염병을 막지못하는 아픔이 있을까요
유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심정에서는 저희 집에서도 사물함에 쓰지 않는 비누가 여러~개가 챙겨져 있습니다.
소포에라도 담았어 보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름다움 삶 행복한 삶이라는 것은 마음이 통하고 물질이 통하고 소통하는데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삶에 진정한 소통이 일어나고 유통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의 행복이 당신의 행복으로 유통 되는것이죠
나의 기쁨이 우리가정의 모두의 기쁨이 되고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 온교회가 예수안에서 행복해 이 행복이 우리 모두에 행복이길 바랍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이 은혜받은 표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은사나 그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가져다가 사도들 발앞에 갔다놓았다 그랬습니다.
참 은혜로운 표현입니다.
내것을 내것이라 고집하지 않고 받은바 은혜들을 자유롭게 다스리고 설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물질에 노예가 되고 물질에 지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지배하고 물질을 다스릴줄을 알고 그 위에 올라 서있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노예가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발취에 자기 자신을 내려놓았다는 말입니다.
세계2차 대전당시에 독일에 그 유명한 본 해포 목사님의 목회하시든 고백교회가 있었습니다.
본해포목사님은 그 당시 전쟁을 주도해가고 있었던 나치정권 히틀러에 대항을 했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 였지만은 그는 당당이 맞서 습니다.
이런 비유를 합니다. 어떤 정신 병자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저잘못된운전수를 끄러내야 한다고
말로 애기했어 될문제가 아니고 엎드려 기도만 했어 될 문제가 아니라 운전석에 저 히틀러를 끄집어 내려야 한다고 저 운전석에 끌어내려야 한다고 이런 본해포 목사님의 설교에 나치정권 히틀러가 가만이 내버려둘 리가 없습니다.
고백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하고 지도자를 체포해 갑니다.
본해포목사님은 결국은1939년도에 미국에 망명을 갈 수 있는 티오가 생겨고 얼마든지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해포 목사님은 그런 피박과 시련을 딛고 고백교회를 지키고 세상에 사단이요 세상의 전쟁의 광인 히틀러나치정권에 당당이 맞서 던것입니다.
1983년도 나치에 체포되어서 히틀러가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하기 15일전에 본해포목사님은 나치정권에 의했어 교수형을 당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가 39세였습니다.
39세 젊은 나이로 죽어가지만은 그의 신앙과 그의 고백은 독일교회 고백교회를 통했어 신앙에 토대로를 이루어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일이 가능했겠습니까?
본해포목사님은 결코 세상에는 두주인이 있을수 없고 하나님만이 역사에 주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수 없고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수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박수를 보내고 아멘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오늘 교회에 주인은 누구이며 이 역사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참으로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요 이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는자만이 주인의 다스림과 주인의 넘치는 은혜와 이해하심을 받아서 복되게 살아갈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물질을 가져다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은사들을 복들을 사도들의 발앞에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자신들의 삶의 모든 내용들이 하나님앞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삶의 위치를 현주소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에 머리위가 아니였습니다.
하나님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머리위에 올라서서 큰소리쳤다는 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셋가지 질서안에서 살아갑니다.
역할질서가 있고 관계질서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위치 질서 속에서 살아갑니다.
내 인생의 위치는 어딘가가 대단이 중요합니다.
물질을 머리위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야 말로 돈에 노예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은사나 내가가지고 있는 재능이 내 머리위에 올라서 나를 지배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야 말로 그 재능에 노예가 되고 맙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기전에 세레요한이 6개월전에 유대광야에서 광야에외치는 소리로 메시야를 예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을 향했어 독사에 자식들아 회개하라 고 종말을 선포하면서 독서를 퍼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이 요한에 명설교를 들을려고 구름때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의 명성과 그의 영광은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6개월 뒤에 예수그리스도가 나타났을 때 세례요한은 자기에 집중된 그 영광과 하늘을 찌르듯한 자기의 명성을 예수의 발앞에 갔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자기 위치를 정확히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을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께 드립니다.
예수의 발취앞에 세례요한이 엎드려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신에게 그런 부탁을 했답니다.
제발 나에게 머리좋고 돈많고 예쁜 여자 보내주세요 그랬습니다.
신이 그 말을들어보니까 너무 간절했어 그 소원을 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좋고 많고 예쁨을 다 빼버리고 머리 돈 여자가 뚜벅뚜벅 걸어오더랍니다.
머리가 돌아버린여자가 오더라는것입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삶의 위치를 상실한 사람이지요
하나님을 내 머리에 모시고 내 자신이 주님의 발취에 엎드려 있다면은 하나님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의 영광을 누릴 수밖에 없는것이지요
비인격 적이라고 하는 물질조차도 하나님의 발취앞에 갔다놓는 한 그 물질이 가치를 발견할 것이며 보배처럼 쓰여 진다는 말입니다.
비인격적인조차도 보잘 것 없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졌어 쓰임받고 다스림을 받는다면은 존귀해 질 수밖에 없고 가치있을 수밖에 없잔아요
돈에 가치를 전혀 모르는 두셋 살난 어린아이에게 한손에 천원짜리 줘어좆다면 한손에는 5백원짜리 동전을 지어좆다면 이아이는 무엇을 선택할까요?
그 아이는천원짜리 지폐를 버릴 것입니다.
천원이 오백원보다 분명 만지만은 그 손에 오백원이 훨씬 더 자기에게는 좋습니다.
가지고 놀기 좋고 손에 꼭 쥐이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 좋아서 그는 그 오백원동전을 좋아 할것입니다.
내 손에 들려져 있는 인생의 도구들이 누구에 다스림을 받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라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에 인생이 하나님의 발취앞에 내려 놓아질때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뿐더러 내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살아갈때야 말로 하나님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가실것이며 내 손에 무엇이 이든 어떤 것이 있든지 간에 그것을 통했어 보배롭게 해주실것입니다.
이어령교수님이 쓴 글 가운데 차한잔사상이라는 글에 이런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의 손이 참 묘하다고 합니다.
짐승은 원래 앞발 두 개가 앞손 두 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짐승은 앞손두개를 앞발로 했어 네발로 걸어다니지만은 인간은 두손을 귀가 막히게 사용하는 관계로 두발은 땅에 딛고 가지만은 두손은 너무나 귀하게 쓰여졌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문화라는 것을 창조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 모든 역사 생활속에는 손에 귀중함에서 시작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이 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축복하기도 하고 저주하기도 하는 귀한 손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하나님의 큰 은혜안에서 그것을 주님 주인 삼아 붙잡고 담고 나아간다면 그들이 축복에 도구가 되며 가치있고 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주인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초대교회 공동체 가운데 큰 은혜를 입은 한사람을 소개하는데 우리가 익히 잘아고 있는 바나바라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괄로를 쳤어 위로의 아들이라고 바나바 인생을 한마디로 인생을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이 바나바라는 사람을 주목해 보십시오
초대교회에 대체로 익명에 사람들이 헌신하는데 바나바를 소개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나바가 사울 바울을 만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울이 바울되게 하고 바울이 바울되게 했든 절대절명의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피박했을때에 그가 다멕석으로 가는길 예수의 붙잡혀서 회심을 하게되고 주님을 극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놀랍게도 사도바울은 그로부터 자신의 고향인 다소라는 곳에 내려가서 무려13년동안이나 집거하게 됩니다.
그 위대한 사도바울이 성령 체험까지한 이 사도바울이 다소라는 자기 고향에 가서 13년동안 세월을 무명세월을 보내고 있을때였습니다.
그때에 예루살렘교회에 유력한 지도자였던 이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목회를 하로 왔다가 사도바울이 생각이 났어 안디옥에서 일주일 정도 걸리는 걸어서 다소로 내려가서 13년동안 무명생활을하고 집거했는 사도바울을 불러들여서 안디옥교회에서 함께 목회를 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사도바울이 역사에 전면에 등장을하고 바나바 자신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사도바울이 바울되게 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바나바라는 사람을 예배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 어찌 큰 은혜가 아니겠습니까?여러분 아십니까 오늘 내가 이렇게 하나님앞에 예배하고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결단코 나 자신의 의지와 결단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시 공간을 초월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위로하시기 위해 부르셨고 죄많고 허물많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자리에 서고 앉게 하셨습니다.
바나바이신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저자신은 감이 이 자리에 설수가 없습니다.
지난 간밤에도 오늘 아침에도 내일도 하나님의 위로가 없다면은 바나바이신 하나님의 손길없다면은 저는 이 자리에 설수가 없습니다.
저는 믿음도 없는 사람인 동시에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디 저 뿐이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의 위로가 있고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기에 여기서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끊이없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오늘 우리 자신입니다.
내가 믿기도 전에 나를 먼저 아셨고 나의 허물과 엄청난 잘못을 할때도 주님이 아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러내어서 위로하시고 용서해주시면서 용기를 주어 다시 일어서게 하시지 않습니까?이 하나님의 위로가 없다면 감이 오늘 내가 어찌 여기 설것이며 여러분은 어떻게 이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시 공간을 초월하셨어 우리의 삶의 모든 가정에서 바나바가 되셨어 위로해 주신다면 오늘 우리 살아가는 날 동안에 이시대에 바나바로써 참으로 위로할자를 위로하고 마음을같이 하고 뜻을 같이 해주어야 할 사람에게 함께 해 줄수 있을 때 진정한 바나바의 역사가 일어나지않겠습니까?지금으로부터 약2500년전 사마리아 성에 아람군대 진영에 의했어 포위가 되었습니다.
먹을 음식들이 차단되어졌고 생필품이 끊어졌습니다.
당연이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배를 고를 수밖에 없어고 물가는 폭등했습니다.
그 당시 나귀머리하나가 우리돈으로 오천만원 된다니 귀가 막힌 일입니다.
비둘기 똥이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배가 고프니 비둘기 똥이라도 먹어야 했으기 때문이지요
극기야는 오늘은 너의 자식 잡아먹고 내일은 이집자식 잡아먹자고 사람을 잡아먹기까지 이릅니다.
이것이 2500년전에 사마리아성안에서 일어났던 이입니다.
어찌 이 일이수천년전에 일어났던 일로만 볼수 있겠습니까?오늘우리가 살아가는 이세상에 마치 사마리아성처럼 같은 상태가 되어서 서로 쥐어뜨고 서로물고 서로 배고픔에 대한 아우성을 치고 있지 안느냐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성에서 그런 죽음에 사항에서 아주 낳은 곳에서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마리아성에 어귀에 내 나병환자가 있었는데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이렇게 긂어죽어나 저래서 죽으나 마찬가지니 저 아람군대 진영에 들어가서 실컨먹고나 죽자고 그렇게 판단을 하고 나병환자 4사람이 아람군대 진영으로 들어갑니다.
놀랍게도 나병환자4사람이 들어가는 소리가 아람군대 사람들에게는 숫천에 몰려오는 병거소리
군인들 소리로 들려지면서 아람군대 사람들이 다 도망을 쳐버린 것입니다.
나병환자 4사람이 아람군대진영에 들어가보니깐 군인들은 하나도 없고 먹을 것 입을것만 가득했어 실컨 먹고 입고 좋은 것을 품에 품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일이 선하지 못하니 이 좋은 소식을 저 성안에 전하자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나병환자4사람이 사마리아성에 갇혀있는 사람에게 아람군대 진영군대 사람들이 다 도망을 쳤어니 이제 해방되어다고 선포해 준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방으로 우겨삼을 당하는 것 같은 우리의 삶가운데서 뜻밖에 은혜들이 쏟아질것이며 낳은곳에서 이문제를 풀어가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고 은혜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의 무엇 때문에 사방으로 우겨삼을 당하는 것 같고 환경과 문제앞에서 헉헉거리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까?
이 문제를 낳은곳에서 귀한 복으로 열어가시고 해결해가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고 이시대에 바나바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해결하실것이고 풀어가실것입니다.
우리가 즐겨 쓰고 있는 포스트잇 발견된 것이 1968년도 미국에 미네소타주주에있는 세인트폴근교 쓰리엔 연구소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쓰리엔 연구소 한직원이 아트푸라이 라는 한 젊은이가 교회에서 성가대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는데 찬송가 피스에 종이쪽지를 찢어가지고 본드 같은데 붙여서 찍어가지고 놓으면서 표시를 해갔었습니다. 그런데 찢어진 본드를 종이에 붙여서 때따 붙였다 하니 잘뜰어지고 잘붙드라는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찾간한 것이 그 본드에서 때따 붙였다 하는데서 바로 지금에 포스트잇을 발견 했다고 합니다.
지극히 낳은곳에서 생각지도 않는곳에서 문제가 해결되고 풀어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해결책이라는 것이 바로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만 한다면 바나바가 있으기에 사도바울이 등장했어 13년동안 집거해있고 무명으로 인생이 끝나버릴 사도바울이 였지만 바나바를 통했어 역사의 전면에 등장 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위로하기만 하신다면 우리는 뜻밖에 은혜를 입을실뿐더러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질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공이나 성취가 결코 아닐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화려한 졸업장도 아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은사들도 결코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이 차고 있는 금시계 금목고리 아니라 나를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하는 은행통장에 계좌번호가 결코 아닙니다.
내가 지금 위로를 받고 있으며 내 마음을 알아주고 만져주고 나를 위로 해주는 사람을 내가 얼마나 붙잡고 살아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누가 나를 위로해주기만 한다면 내 마음을 알아주기만 한다면은 가슴이 뛸것입니다. 감동이 될것입니다.
내 삶의 주의에 둘러선 수많은 바나바가 있을 때 나를 위로하는 그 사람이 있을때야 말로 내 삶이 행복하고 기쁜 것 아니겠습니까?하나님은 여러분을 위로 하십니다. 또한 사랑하십니다.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 분이 있는한 사마리아 성에 갇혀있는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뜻밖에 해결책을 받으시고 낳은곳에서 역사하시는 은총과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풀어혜쳐 행복하게 하고 자유케 할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십시오 내인생 모두를 하나님 발취아래로 내려놓고 주님의 큰 위로를 받으면서 행복해 하는 복된 삶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