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앞에서 꽃 이름을 불러보네
가을 해가 던져주는 햇살은 농익다 못해 서슬 푸르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은 쬐끔한 돌 하나 집어 던져도 쨍그랑 하고 깨질 것 같다. 무더운 여름을 어찌 견뎠을까. 도처엔 가을 햇살을 물고 우수수 나뭇잎을 흔드는 소슬바람이 지나간다. 감칠맛 나는 유행가 한 소절이 차량 뒤를 구성지게 따라 붙을 것 같은 아침이다.
차는 어느새 대둔산 자락 얼음골로 빠져든다. 대전 안영교에서 금산 간 도로를 달려 마티재를 넘어가면 얼마못가 국도 변에 얼음골이란 간판이 떡 하니 나타난다.
오늘의 야생화 답사 장소가 바로 얼음골이다. 얼음골이란 이름 탓일까. 점점 달아오르는 땡볕 햇살을 짊어지고 걷는 일행 뒤로 얼음골의 알알한 기온이 훅하고 따라붙는다. 초입에서부터 야생화들이 줄지어 일행들을 반겨주었다. 감질나게 지나가는 소슬바람에 신이 난 듯 야생화들은 서로 어울려 한들한들 어깨춤을 추었다. 발걸음도 가볍다. 포실하게 부서지는 산길 흙을 밟는 발걸음이 가벼운 것은 절정으로 치달아 오른 기분 탓이다. 야생화 답사에 빠져서는 안 될 영아자님이 오랜만에 동행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인삼밭 뒤로 펼쳐진 대둔산의 정경
물봉선
둥근잎유홍초
꽃 이름을 물으면 컴퓨터처럼 톡톡 이름을 알아맞히는 영아자님의 꽃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끝이 없다. 꽃의 잎이나 줄기를 갖다놓고 물어보아도 척척이다.
명색이 야생화 모임이지 꽃에 대해 별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모인 이런 모임에는 영아자님 같은 분이 꼭 필요한데 그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도 끝이 없어라,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꽃들
연분홍꽃잎들이 행렬을 이룬 물봉선 군락지를 지난다. 약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꽃빛깔이 눈 시릴 만큼 화사하다. 물가에서 잘 자라고 봉숭아의 꽃잎을 닮았다고 해서 물봉선이라고 했던가. 보들보들한 꽃잎의 촉감이 어여쁜 여인의 속살을 만지는 기분이다. 그 자태가 너무 고와 한참 카메라 앵글에 눈을 맞추는데 저 위에서 회원들을 모아놓고 야생화에 대해 설명을 하는 영아자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모두들 진지한 표정이다.
주변에는 눈괴불주머니가 함초롬히 피었다. 꽤나 외로운 모습이다. 줄기를 따라 다닥다닥 매달린 길쭉한 꽃 모양이 영락없이 꽃 주머니를 닮았다. 꿀과 향기가 가득 들어있을 것 같은 꽃 주머니는 바람만 살짝 불어도 떨어질까 위태로운 느낌이 든다.
괭이밥
야생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회원들
그 옆에 피어있는 주홍서나물은 귀화식물이다.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지방에서 자생하지만 요즘 들어 중부지방에서 발견되는 꽃이다. 아마 온난화 현상 탓이 아닌가 싶다. 꽃봉오리 끝에 주홍빛이 들고 허공을 향해 똑바로 서있다고 해서 이름 붙은 주홍서나물, 세상의 어느 꽃인들 서있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만 단지 서있는 모습을 두고 평범하게 이름 붙은 이 주홍서나물도 자꾸만 불러주니 멋진 이름으로 들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러고 보니 꽃은 자꾸만 그 이름을 불러줘야 그에 걸 맞는 자태로 피어나는 모양이다.
고슴도치풀
진득찰
주변엔 그런 꽃들이 지천이다. 여기서부터 몇 걸음 오른 산길 옆 공터에는 무성한 잡풀들이 숨 가쁘게 뒤엉켜있고 잡풀 속에는 처음 보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금방 눈에 띠는 꽃들뿐 아니라 눈곱만한 꽃들도 있다. 수까치깨, 이질풀, 여우팥, 들깨풀, 괭이밥, 고마리 등 이름을 불러도 끝이 없다. 모두들 이름을 불러주니 연약한 꽃대에서 향기가 지천으로 쏟아지는 느낌이다. 꽃향기에 숨이 막힌다.
꽃향기에 취해 꽃들에 앵글을 맞추고 있자니 한 무리의 일행이 이상한 눈초리를 하며 내 옆을 지나간다. 손에 들고 있는 낫자루를 보니 벌초꾼들이 분명하다. 이 바쁜 날에 세월 좋게 꽃놀이나 하고 있는 우리들을 속으로 무척이나 욕을 했을 게다. 참 세월 좋다고, 세상 참 잘 만나 호강한다고,
숨어서 감도 따고 꽃 이름도 불러보고
산자락에는 감나무 한그루가 노랗게 익은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호젓이 서있다. 공해 없는 산 속에서 익어가는 감이라 그런지 멀리서 봐도 그 때깔이 참 곱다. 손버릇이 나쁜 사람을 만나면 순식간에 감 몇 개는 동이 날 것만 같다. 그 때 사철나무님이 감에 손을 댄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나에게 와서 감을 따도 되냐고 묻는데 주인도 아닌 내가 해줄 말이 마땅히 없어 침묵을 지킨 것이 그예 일을 내고 말았다. 휘늘어진 감 가지를 붙들고 정신없이 감을 따는데 저러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큰 코 다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산에서 아무렇게 자라는 감나무라고 전부 야생 감나무가 아니다.
이질풀
계곡에 차린 천연의 밥상
야생화 박사, 영아자님
산길에 흩어진 야생화는 씨앗이 바람에 날려 천리 먼 길에도 날아와 터를 잡지만 저렇게 우람한 가지를 뻗어 내린 감나무들은 다 임자가 있는 법이다. 사철나무님이 저러건 말건 난 오직 야생화에 탐닉했다. 진득찰이니 고슴도치풀이니 하는 꽃들이 새롭게 내 가슴을 친다. 진득찰은 이름이 투박해도 꽃 모양은 오묘하다. 여러갈래로 갈라진 꽃받침위에 얹힌 꽃이 눈부신 노랑빛을 띤다.
고슴도치풀은 이름처럼 열매는 뒤숭숭하게 생겼다. 날카로운 가시들이 씨방을 에워싸고 있다. 가시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동물의 털에 붙어 씨앗을 멀리까지 이동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생각 없는 야생화처럼 보여도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말 할 수 없이 신기하다.
계곡에 차린 자연의 밥상, 끝내주네
한참 꽃 답사를 하고 나니 점심 무렵이다. 일행들은 맑은 물이 샘처럼 고여 있는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일행이 한창 꽃 답사를 하고 있을 무렵, 벌초꾼들이 사라진 길을 따라 자취를 감췄던 백당님도 나타났다. 손에는 얼음열매와 다래열매를 들었다. 껍질이 양쪽으로 쫙 벌어진 얼음은 그 열매가 너무 익어 보기만 해도 침이 고였다. 그 맛은 보나마나 바나나를 먹는 기분일 게다. 동글동글한 다래 열매는 생긴 모양과는 달리 맛은 시어 터졌다. 백당님이 따 온 이런 열매가 무슨 기념이라도 되는지 찰칵하고 한방 사진을 박고 나자, 시간에 맞춰 맛깔난 음식이 차려졌다.
수까치깨
여우팥
다래열매
뭐니 뭐니 해도 먹는 시간만큼 재미나는 일도 없다. 삼겹살을 굽고 라면을 끓이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전부 꺼내 놓으니 완전히 한 상 가득한 천연의 밥상이 되었다. 울창한 나무가 내려주는 시원한 그늘을 돗자리 삼아 먹는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까.
그러나 이 기분도 오래가지 못했다. 지나가던 벌초꾼 한 사람이 일행이 있는 곳으로 웅성거리며 들어오더니 급기야 한마디를 던졌다. 계곡에 연기를 피우면 안 된다고, 그런가 보다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 감을 가득 따 놓은 비닐봉투가 눈에 띄자 목소리가 더 거칠게 변하기 시작했다. 훈계조의 말을 한참 들었다.
멋진 폼으로 찰칵
일행 중의 누가 땄던 간에 우리는 모두가 공동정범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무조건 허리 굽혀 사과를 했다.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잔뜩 노기 띤 인상이 풀어지더니 주인은 밥 먹은 자리를 잘 정리하고 가란 말을 남기고 횅하니 사라졌다. 십년을 감수했다. 산에 와서는 아무리 맛깔 나는 과일나무가 눈에 띄어도 침만 꼴깍 삼킬지언정, 손을 대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을 오늘의 사건으로 알게 되었다.
하산 길에도 야생화 향기에 취하다
점심이 끝나자 모두들 일어섰다.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대전으로 돌아가 산에서 풀지 못한 기분을 다시 낼 참이다. 내려가는 길에도 야생화 답사를 했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수까치깨나 쇠별꽃들이 눈에 띄었다. 쇠별꽃의 “쇠”는 작다는 뜻으로 붙여진 것인데 꽃의 크기를 보니 정말 작기는 작다.
오이풀
한련초
까실쑥부쟁이
눈을 꽃에 바싹대고 봐야 암술과 수술이 따로 보일 지경이다. 암술머리가 3개로 갈라지면 별꽃, 5개로 갈라지면 쇠별꽃인데 눈을 똑바로 뜨고 봐도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별꽃이면 어떻고 쇠별꽃이면 어떠랴. 우리가 그것을 구분하지 못해도 그들은 서로의 빛깔과 향기로 영역을 지키며 한 계절을 순조롭게 살아가니 오히려 인간들이 꽃에게서 배우는 지혜가 훨씬 크다.
몇 걸음을 내려왔더니 일행이 처음 들어섰던 얼음골 입구다. 정면으로 우뚝 솟아오른 바위산들이 희끗희끗 절경이다. 저곳이 대둔산이다. 그 대둔산을 바라보며 피어있는 한 무리의 까실쑥부쟁이들이 길가의 산자락에 보랏빛 물을 들였다. 저렇게 흔하게 피어나는 쑥부쟁이도 저토록 외로움을 타니 확실히 가을이 깊어지긴 깊어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