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좋아하므로 왕이 놀리며 말하기를,
[너(평강공주)는 항상 울어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자라서 반드시 사대부의 아내가 될 수 없고 마땅히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야 할 것이다.]라고 하며 왕은 매번 말하였다.
딸의 나이가 16세에 이르자 (왕이) 상부의 고씨(高氏)에게로 시집을 보내려고 하자, 공주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대왕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되어야한다고 하셨는데 지금 무슨 연고로 이전의 말씀을 바꾸십니까? 필부도 오히려 식언(食言)을 하지 않으려 하거늘 하물며 지존(至尊)께서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말하기를 ‘왕 노릇을 하는 자는 농담(戱言)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 대왕의 명령은 잘못된 것인지라 소첩은 감히 받들지 못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平岡王少女兒好啼, 王戱曰, 汝常啼聒我耳, 長必不得爲士大夫妻, 當歸之愚溫達, 王每言之. 及女年二八, 欲下嫁於上部高氏, 公主對曰, 大王常語, 汝必爲溫達之婦, 今何故改前言乎. 匹夫猶不欲食言, 況至尊乎. 故曰王者無戱言, 今大王之命, 謬矣, 妾不敢祗承.
≪삼국사기(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1075-1151)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 사람이다. 얼굴 생김새가 우스꽝스러웠으나 마음씨는 착하고 효성이 지극했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항상 밥을 구걸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떨어진 옷과 헤어진 신으로 거리를 오가니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
궁에서 나온 평강 공주는 온달과 온달의 어머니를 설득하여 결혼하였다.
이후 평강 공주는 바보로 놀림 받던 온달에게 학문과 무예를 익히게 하여, 온달은 고구려의 장군이 되어 무공을 세웠다.
그러나 신라에 빼앗긴 땅을 회복하기 위해 전쟁에 나갔다가 나아오는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