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리에 공연 중인 창작 뮤지컬 <일 테노레>를 보았다. 이탈리아어로 테너를 뜻하는 제목이다. 미국에 있는 아들 부부가 생일 선물로 표를 구해주었다. 아빠가 출판한 책 <왕의 침묵: 만담왕 신불출>의 시대배경과 무대에서 침묵을 강요하는 갈등구조도 비슷하여 내가 좋아할 듯하여 선택했다고 한다. 굳보이!
아내가 예약한 한남동 유명 솥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블루스퀘어로 향했다. 좌석 위치가 앞쪽 열 정중앙으로 배우들의 움직임이 잘 보이고 음향도 최고였다. 좋은 좌석 고르느라 미리미리 예약했을 정성이 기특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뒤를 돌아보니 객석이 빈 곳 하나 없는 완전 만석이었다. 뮤지컬의 인기가 실감되었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창씨개명으로 조선의 혼을 말살하는데 광분하던 1930년대 말 경성. 태어나보니 식민지 백성으로 살게 된 조선의 세 젊은이. 점점 심해지는 총독부의 감시와 압박을 피해 민중에게 애국심 고양을 위한 메시지를 은밀히 전할 방법을 찾는다. 그 중심엔 자신도 몰랐던 특별한 목소리를 가진 세브란스 의전생 윤이선, 강한 리더이며 연출가인 이화 여전 학생 서진연, 독립군이 되기를 꿈꾸는 열정적인 건축학도로 무대디자이너 이수한이 있다.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꺾겠다고 다짐하는 골든 레코드 사장인 최철은 나의 책에서 나오는 오케 레코드사 이철 사장과 오버랩된다. 그들은 총독부가 학생연극 상영을 불허한 데 이어 아예 조선말로 된 모든 공연을 금지하자 절망했다.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의대생 ‘윤이선’ 역을 맡은 배우 서경수는 한 인물의 드라마틱한 일대기를 멋진 연기와 가슴을 울리는 가창력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페라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지닌 앳된 청년의 모습부터 세계적인 테너로서 무대에 오른 노년까지.
결단력과 카리스마가 충만하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랑스러운 인물인 서진연을 연기하는 김지현 배우는 엄혹한 시절 서진연이 그랬을 것 같게 말하고 노래했다. 관객은 두 사람에게 감정이입되어 그들의 꿈과 사랑, 두려움과 결단의 순간을 생생하게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은 탄탄한 플롯으로 관객을 몰입하게 했다. 1막 이후 인터미션 20분을 포함하여 170분이 순식간에 지났다고 느낄 정도로 긴장과 흥분으로 채웠다. 2막 마지막 부분에서 아무도 예상 못한 마무리가 나와 사람들을 놀라고 슬프게 했다. 앞사람의 어깨가 들먹이고, 눈에 손을 가져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인다.
서경수 배우(윤이선 역)가 “가네 멀어지네, 빛바랜 희망이 됐네"라고 시작되는 '이선의 아리아(꿈의 무게)’를 아름답고도 슬픈 곡조로 부르며 피날레를 장식하는 순간, 곳곳에서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붉은 커튼이 내려지고 공연이 끝나자 약속을 한 듯이 모든 관객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배우들에게 보냈다. 관객들이 인사를 하고 무대 막이 내려갈 때까지 기립박수는 끊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극적인 공연 마무리였다. 아내와 함께 극장을 나서며 많은 관객들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음을 보았다. 세계로 나가도 흥행할 수 있는 한국의 창작 뮤지컬을 만나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