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5
펨토초, 아토초 등 찰나에 도전하는 실험
원자시계 NIST-7 개발해 LA 교통정체도 해결
데이비드 와인랜드 박사는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Boulder)에 있는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 물리학연구소에서 37년간 꾸준히 양자광학 분야를 연구해 왔다. 그는 레이저를 이용해 절대영도(-273.15°C)에 가까운 초저온으로 이온을 냉각하는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그가 속한 연구 그룹은 2001년 이 기술을 이용해 수은이온 단 하나를 초저온으로 냉각시켜 가둬둔 후 이를 갖고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시계’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또 이 이온 냉각 기술을 이용해 ‘양자컴퓨팅’, 즉 데이터를 처리하는 계산기술을 연구하는 분야를 창시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분야는 암호 해독 기법 연구 등 여러 다른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NIST는 어떤 기관이기에 이런 연구를 할까?
NIST는 미국 상무부 기술관리국이 운영하는 정부기관이다. 1901년에 설립된 미국 최고의 국립 측정(계측) 전문기관이다. 설립 당시의 명칭은 국립표준국(NBS)이었는데 1988년에 NIST로 변경되었다.
NIST는 최신의 첨단기술을 미국 전역의 제품과 생산과정에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가를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따라서 상무부 산하에 있으면서 직접적인 상품이나 제품의 개발보다는 미국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여 국제기술시장에서 자국의 산업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예컨대 NIST에는 100만년 동안 단 1초의 오차가 생길 뿐인 원자시계 NIST-7이 있다. 도대체 이렇게 정확한 순간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로스앤젤레스시는 NIST-7을 이용해 교통신호를 작동시켜 교통정체를 해결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짧은 순간이 도로를 따라 연결된 수천 개의 신호등에 차례차례 영향을 미쳤고 급기야 차량의 흐름까지 바꿔버린 것을 파악해 NIST-7을 해결사로 투입한 것이다.
미 상무부 산하, 3000명의 인력 보유
이처럼 산업현장에서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각종 기술을 연계시키기 위해 NIST에는 다양한 분야와 영역을 포괄하는 전문시험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크게 건설화재(BFRL), 화학·화공(CSTL), 전기·전자(EEEL), 정보기술(ITL), 제조(MEL), 재료(MSEL), 물리(Physics) 등 7개의 연구소가 있다. 미국 메릴랜드주 게이더스버그(Gaithersburg)에 위치한 231만㎡(70만평)의 본부 외에 82만㎡(25만평)의 분소가 콜로라도주 볼더에 있고, 전국에 350여개 지역센터를 두고 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NASA(미국항공우주국)나 NIH(국립위생연구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연구소지만 민간자본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기술을 선행 연구한다. 1997년, 2001년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NIST에는 약 3000명의 과학자, 공학자, 기술자와 지원 및 관리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이 밖에 기업이나 외국의 객원연구원 등으로 구성된 1800여명의 준회원 집단도 존재한다. 대부분은 미국 내 혹은 국제적 규모의 각종 학술기관이나 연구단체가 수여하는 우수논문상을 수상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고 관련 분야 학회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이외에 고등학생들이 NIST의 실험실에 배정되어 형식상이 아닌 실제 연구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환경도 인상적이다.
우리의 연구 환경과 다른 점 중 하나는 학제 간 협력과 융합이 보다 활발하여 좀 더 다양한 연구 분야와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오(Bio) 분야와의 협력은 물론 궁극적으로 상품 제조(Manufacturing)를 위한 연구소임에도 전산이나 수학, 물리 등을 전공한 연구원이 거의 절반에 달한다. 이런 환경에서 과학자들은 펨토초(10-15)와 아토초(10-18)를 넘나들며 찰나에 다가가 순간이 세상을 바꿔놓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와 유사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소와 기술표준원이다.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