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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유럽은 운하의 나라이다(내연기관이 발명되고, 기차와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운하는 주요한 물류수단이었다). 지금도 네덜란드는 총연장 6,800킬로미터, 독일도 7467킬로미터의 내륙 물길을 가지고 있다. 유럽은 촘촘하게 이어진 운하를 통해 물류를 움직여 왔다. 내연기관이 없었던 시절 말과 마차로 움직일 수 있는 물류의 한계는 분명했다.
(MB의 대운하를 찬성하거나 지지하는 건 절대 아니다! 독일도 운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상황이고, 전 세계적으로 운하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게 대세다. 내연기관이 나오기 전... 교통수단이 배밖에 없는 상황에서의 운하는 생명줄이며, 물류의 핵심이라고 말 할 수 있지만 다른 수단이 있는 상황에서 운하는 굳이 그걸 쓸 이유가 없는 ‘짐’같은 존재가 됐다. 특히나 한국 같은 경우에는 운하를 쓰느니 기존에 있는 연안항로를 활용해 물류를 옮길 수도 있는데, 뭐하러 땅을 팠는지...)
이러다보니, 진군을 하는 군대는 ‘운하’를 끼고 움직이거나 운하와 가까운 길을 따라 올라가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3~4일 정도 행군한 다음, 보급을 기다리는데... 바로 밀가루 보급이었다. 운하에 배를 띄워 밀가루를 보급한 거다. 최소한 3~4천명 이상 되는 사람들을 먹이려면 얼마나 많은 밀가루가 전달돼야 할까? 이들은 밀가루가 보급될 때쯤 운하 근처에서 진을 치고 행군을 멈춘다. 그리곤?
“야야! 밀가루 얼른 내려서 반죽해라!”
“에? 지금요?”
“시간 없어! 지금 당장 반죽해서 빵 구워!”
이들은 3일정도 행군한 다음 보급부대와 만나 밀을 보급 받는다. 그런 다음 이 밀가루를 가지고 미친 듯이(!?) 빵을 굽는다. 당장 먹을 빵과 앞으로 행군할 때 먹을 빵을 동시에 굽는 거였다. 그렇게 미친 듯이 빵을 구운 다음 이 빵을 챙겨들고 또 2~3일을 행군한다. 그리고 다시 밀가루 보급을 기다리고, 밀가루를 보급 받으면 다시 빵을 굽고, 이 빵을 챙겨들고 행군을 갔던 거다.
만약 이 밀가루 보급이 끊기면? 전쟁은 끝나는 거였다. 웃기게 들리겠지만, 군대를 먹일 만한 밀가루를 수습하고, 이를 보급하는 것, 그리고 보급 받은 군대가 이 밀가루를 가지고 빵을 만들고 이걸 들고 행군을 하는 것. 이 사이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군대는 그대로 회군을 하든가, 전멸해야 했다.
밀가루를 30일치만 구해놨는데, 전쟁이 30일을 넘긴다면? 혹은 이 밀가루가 제대로 수송이 되지 않는다면? 혹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나 공간을 확보할 수 없다면? 전쟁은 힘들어진다. 이 밀가루의 수송이 끊기거나(혹은 밀가루 확보량이 다 떨어져서) 회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보면 알겠지만, 이 당시 ‘빵’은 전장의 주요 식품이었다. 빵이 주식이기도 했거니와 보존하기에도 편했기 때문이다. 밀가루만 가져오면 만들기도 편했고 말이다.
(군대에서 행군을 하면서 빵을 만들어 먹는다는 게 지금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보통 밀가루 수송은 그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빻지 않은 상태. 즉, 낟알의 형태로 수송됐다. 이걸 빻고, 다시 오븐을 만들고, 여기에 효모를 넣고, 발효를 시키고 빵을 만든다? 이 바쁜 전쟁터에서? 이건 사치 중의 사치다. 결국 병사들은 로마시절부터 전장에서 빵을 만들 때에는 밀가루에 소금이랑 물을 대충 뿌린 후에 이걸 구워서 만든 ‘건빵’같은 걸 만들어 먹었다. 우리가 제과점에서 흔히 보는 빵을 만들어 먹는게 아니다)
이틀 치 비상식량을 만들어서 들고 다녔다고 해야 할까? 문제는 이렇게 보급계획을 짜고 움직여도 식량수급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거다. 이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현지징발’을 먼저 생각할 거다. 소위 말하는 노략질 말이다.
“장군님, 식량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하죠?”
“예, 어제 저녁이 마지막 식사가 됐습니다. 당장 애들 밥 먹여야 하는데...”
“없으면 빼앗아 오면 되잖아! 북한 애들은 주유소에서 기름 넣고, 휴게소에서 식량 확보해서 진격하겠다는데, 우리라고 왜 못해? 주변에 널린 게 집이야! 가서 냉장고 털어와!”
없으면 뺏는다는 단순한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이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뺏어 먹으면 좋다. 손자병법 작전편(作戰篇)을 보면,
<식적일종(食敵一鐘) 당오이십종(當吾二十鐘)>이란 말이 나와 있다. 적의 1종을 먹는 것은 아군의 20종에 해당된다란 건데, 이건 당연한 말이다. 식량을 수송하는 어려움도 덜고, 적의 식량을 빼앗아 먹으니 적에게도 타격을 입힌다. 문제는 이게 어디까지 가능하냐는 거다.
<군대 병력을 다 먹일 정도의 식량을 어디서 구하는가?>란 문제가 있다. 사단 단위면 1만 명이 넘는다. 이 병력을 다 먹일만한 식량을 쌓아놓는 곳이 흔할까? 사람이 1년간 먹고 마시는 음식물의 양이 약 1톤이 넘어간다. 1개 사단이 1년간 먹고 마시는 것만 1만 톤의 물과 식량이 필요하다는 거다. 1개 사단이 하루 동안 필요한 물과 음식만 27톤이 필요하단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의 식량을 구하는 게 그리 쉬운 건 아니다. 결정적으로 적도 바보가 아니기에 후퇴하면서 초토 전술로 적이 이용할 만한 것들은 다 파기하고 움직인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 (계속)
-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