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6장 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것은 그대 자신이다
대지 위에 봄비가 촉촉이 내려 만물이 생동한다. 나뭇가지마다 맺힌 영롱한 물방울들이 낙하하면서 마치 봄의 교향악을 연주하듯이 귓전에는 화려한 악단의 협연이 쟁쟁한 듯하다. 이른 봄꽃들은 팝콘처럼 꽃망울을 터뜨리고 나도 모르게 이은상 선생님의 동무 생각을 흥얼거리게 된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히브리서 5장에서 더 좋은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를 논증한 기자는 6장에서 다시 “그러므로”로 시작하면서 생활의 적용을 시도한다.
(히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히 6:2)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신앙은 끊임없는 전진이다. 정체되거나 한곳에 머무르면 썩고 퇴보한다.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고 자라나야 한다. 이것이 신앙 생명의 원리다. 나태하거나 영적 게으름에 빠지게 되면 결국 정체, 퇴보, 사망의 수순을 밟게 된다. 기자는 우리에게 이것을 주지시키면서 세상의 탁류에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당부한다.
(히 6: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히 6: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마치 대지 위에 봄비를 내리시듯 은혜의 단비를 선인과 악인에게 골고루 내리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의 단비를 맞고도 사람에 따라서 그 내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은혜는 같으나 열매는 다르다.
불교 경전인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牛飮水成乳 蛇飮水成毒'(우식수성유 사식수성독)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소는 물을 마시고 젖을 만드나 뱀은 물을 마시고 독을 만든다."이다. 같은 물을 마셨지만, 전혀 다른 열매를 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편애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같이 사랑하시지만, 그 은혜를 받는 사람이 복이 되게 하거나 저주가 되게 만든다.
(히 6: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히 6: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우리를 더욱 간절하게 하는가? 아니면 더 나태하고 타락하게 만드는가? 결국 천국은 악인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악인 스스로 배제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지금도 은혜의 단비를 내리시고 계신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날마다 새롭게 하셔서 매일 주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게 하소서
비록 우리의 육신은 쇠패하여도 마음은 날마다 새롭게 하시고
주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