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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김기곤목사 11 신학여행 로마서2
다 같이 기도하시고 또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흙덩어리 같은 저희들을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해 주셨사오니 그 크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주님 뜻대로 살려고 하지만 사단의 공격이 심하고 또 우리 옛 사람이 우리를 죄로 다시 되돌려오는 것을 봅니다.
저희들이 비참하지만은 그러나 주님께서 오늘 저희들의 구주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시니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고 감사합니다.
우리 주님 오실 때까지 저희들과 함께하여 주시옵시고, 이 좁은 길을 끝까지 걸어가도록 축복해 주시옵기를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아멘
오늘은 이어서 로마서 4장을 같이 공부하면서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장부터 3장까지 바울은 우리가 비참한 죄인이지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해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어떻게 확실하게 값없이 구원을 받는지를 3장까지 해서 잘 설파하였습니다.
3장까지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대인의 마음속에 한 가지 강한 의문이 생겨났습니다.
그렇다면 율법과 상관없이 저렇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도대체 무엇으로 구원을 받았느냐 그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행함으로 행함이 진실에서 행함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져서 구원받은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늘 아브라함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다면 무엇으로 구원을 받았는가 거기에 대해서 바울은 확실하게 답변을 합니다.
창세기 15장 6절을 인용하면서 아브라함이 구원을 받은 것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은 것도 아니고 한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도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게 바울의 말이 아니고 창세기 15장 6절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바울이 확실하게 사장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5장으로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유대인들의 의문을 풀어준 바울은 이제 5장부터는 니그렌이 말한 대로 이제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사는 사람인가를 차례차례 5장 6장, 7장 8장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5장의 전반부는 화평의 신학입니다. 5장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절에 보면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5장에서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이제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이다.
하나님과만 화평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은 우리 이웃과도 화평을 누리는 사람들이고, 또한 환란 중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5장의 전반부에는 즐거워하라 기뻐하라 그런 말씀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5장의 후반부는 두 아담의 신학입니다. 5장의 후반부 12절서부터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바울이 이거 한 가지는 확실하게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그 이유는 시내산에서 10계명 율법을 받기 전에도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을 봐서 죽음은 죄의 싹인데 죄인의 특징인데,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은 것을 봐서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인데, 이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단번에 구원을 받았다.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된 것이
확실한 것처럼 바울은 그것이 확실하다고 말해요.
왜냐하면 뭐 10계명이 있기 전에도 모든 사람이 다 죽었으니까 죄수로, 그러니까 우리가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인 것이 확실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단번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더욱더 확실하다.
이것이 5장에서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5장에는 마치 뭐 더욱더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더욱더 더 확실하게 우리가 아담의 후손이어서 죄인 된 것.
그거 억울하게 생각하고 통탄스럽게 생각하고 그러는데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건 너무나도 확실하다.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을 봐라.
다 죄인이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확실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게 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단번에 거기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더욱더 확실하다. 바울이 5장 후반부에서 두 아담 첫 아담과 두 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구원은 확실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보다도 더 확실한 것이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에서 가장 확실하고 변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인고 인혀지고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확실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 없죠.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6장으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로마서 6장은 이제 두 번째로 살리랍니다.
5장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살리라. 그래서 화평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다.
구원받은 사람 6장은 구원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죄의 노예에서 죄의 속박으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벗어난 사람이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6장을 읽어보면 2절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려 무릎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랬습니다.
6절에 보면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서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그랬습니다.
8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그렇습니다.
6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죄의 노예가 아닌 사람이다.
죄의 속박과 죄의 노예에서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벗어나서 사는 사람이다.
벗어나 살리라 그것이 구원받은 사람이다. 바울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절 4절은 침례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죠.
침례란 무엇이냐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의 죽음과 그의 장사와 그의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구원이고 또 그것이 바로 침례가 상징하는 의미다.
그렇게 침례의 참된 의미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침례를 받을 때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깊은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 괜히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물속에 들어가서 죽고 장사 지내고 그다음에 다시 일어납니다.
일어났는데 다시 살아나는데 자기 혼자 자라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미가 없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침례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요즘에 대부분의 교회에서 침례를 주지 않고 간단한 약식인 세례를 물을 뿌리는 세례를 주는데, 그것은 사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어떤 의미나 표적은 될지 몰라도 이 로마서 6장에 나타난 침례의 그 깊은 의미는 나타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 의미를 잘 드러내는 침례를 지금도 주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 성지 탐사단들을 데리고 요단강에 가서 침례받으신 곳을 이렇게 잘 꾸며놨는데 거기서 어떤 학생이 침례를 받고 싶다고 그래서 제가 거기서 침례를 주었습니다.
거기는 아주 침례 증서도 만들어 놓고 침례 옷도 준비해 놓고 그렇게 하고 있어 이스라엘에서 거기서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봤는데 제가 침대를 이쪽에서 주는데 상당히 좀 깊은 깊은 곳 찾아서 이렇게 주는데 아주 아름답게 잘 해놨어요.
저쪽에서는 또 다른 교회에서 와서 그 요단강에 이제 성지탐사 와서 거기서도 이제 하는데 거기서는 세례를 줘요.
그래서 제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 교회에서 혹시 세례 주는 건 몰라도 예수님께서 침례받으시고 성경에 수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은 요단강까지 와서 왜 침례를 줄까 세례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요단강에 와서는 그래도 침례를 받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는 그다음에 제가 이제 침례를 주었는데 그때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그때 거기 많이 모여 있었는데 다 어디로 와서 구경했겠습니까?
세례 주는 데 가서 구경했겠습니까? 침례 받는 데 가서 구경했겠습니까?
거기 전 세상에서 온 관광객들이 다 우리 침례 받는 데 와서 다 구경하고 감동을 받고 아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도 여기서 저렇게 침례를 받으셨겠구나 다 그렇게 이제 가외에 젖은 모습으로 우리 침례받는 곳에 다 모였어요.
저기 세례 받는 곳은 안 가고 그래서 우리가 참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게 중요하죠.
여러분 성경에 세례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에 일요일에 교회 간 사람도 한 사람도 없고요.
그래서 성경 말씀대로 사는 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순종하며 사는 건 좋은 것이죠. 침례의 깊은 의미가 6장 3절 4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6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죄에 대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
그렇게 말씀을 지금 하고 계십니다.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사형수가 감옥에 있을 때 평생 나오지 못하지만 그러나 어떻게 하면 거기서 나옵니까?
해방됩니까? 죽으면 나옵니다. 사형수도 죽으면 거기서 풀어줄 수밖에 없어요.
우리도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죄에 대해서 죽는 것입니다.
죽어버리면 어쩔 수 없어요. 죄가 우리를 어떻게 할 길이 없어요.
우리가 죽어버리면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뭔가 하면 죄에 대해서 죽는다는 것이 도대체 뭘 의미하느냐 그겁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고 거기서 해방돼서 살 수가 있는 것이냐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은 그것도 역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은 무엇이냐? 6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죄에 대해서 혼자 죽어서는 그건 가치가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그 죄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부활할 수도 있는 것이지, 죄에 대해서 혼자 죽는 것은 고통만 줄 뿐이지 그건 의미가 없다.
즉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는다는 건 뭘 의미하느냐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걸 의미한다.
그래야 다시 살 수가 있다. 그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8절에서 그러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은 도대체 뭘 말하고 있느냐
그것도 여러분 궁금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까?
바울은 그것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6장 6절에 보면 6절 한번 보시죠.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우리 옛사람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 구원받기 전 사람, 온갖 죄악으로 물든 사람 그건 죽어야 되는데 그 죽는다는 거 어떻게 죽어야 되느냐 하면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되는데 그건 뭘 의미하는가 하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같이 못 박히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그래야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고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승천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바울은 그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아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며 사는 것이죠.
제가 지난번 학생들의 철야기도에 갔었는데 가보니까 큰 구덩이를 두개 파놓고
한 사람씩 그 구덩이에 내려가서 죽음을 상징하는 구덩이에 내려가서 죽으라고 그래요.
우리가 죽어야만 우리한테 희망이 있다고 그래 저도 내려가서 구덩이에 내려갔는데 구덩이에 내려가서 제가 여러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어떤 것이 참으로 죽는 것이냐 물론 이 구덩이에 내려가서 실제로 자기의 죽음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어떤 것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고, 어떻게 해야 참으로 죽는 것이냐 그때 제가 구덩이에서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성경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실 것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10절 참 아름다운 말씀이죠. 또 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4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이제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니라.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이구나.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나는 죽었으니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 그리고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신 그분을 믿고 그분을 사랑하면서 그분과 함께 믿음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내 모든 옛사람의 정과 욕심, 모든 인간적인 것들을 다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는 것 그것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함께 죽는 것이구나 그런 생각을 그 구덩이에서 했습니다.
그다음에 우리 7장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로마서 7장은 또 무엇에 대해서 벗어나서 할일 랍니까?
여러분 다 기억하십니까? 벌써 잊으셨습니까? 로마서 7장
5장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살리라. 구원받은 사람은 6장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살리라.
7장은요. 놀랍게도 율법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살리라 그겁니다.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아주 자주 이야기하고 율법을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 사람입니다.
절대로 율법이 필요 없다거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7장에서도 보면요. 율법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말하려고 하는 7장에서도 보면 율법의 아주 중요하고 서운하고 의롭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서운하고 의로운 율법 에서 왜 벗어나라고 하는가 7장은 율법에서 얽매임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것이죠.
6절에 보면 이제는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그랬습니다.
12절에 보면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랬습니다.
이 의롭고 선한 율법 믿음이 높아지는 곳에 율법도 최고로 높아지는데, 이 율법에서 이 선한 율법에서 벗어나서 살아야 된다.
바울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근데 바울은요.
율법에서 벗어나라고는 안 씁니다. 율법은 의롭고 선한 것이에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단지 그는 율법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율법의 얽매임이란 여러분 뭘 말하는 것입니까? 뭘 말합니까?
율법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고 하는 생각, 혹은 율법에 의지해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생각 전혀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지만 우리도 살아가면서 그런 생각에 빠질 위험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 될 것은 구원은요.
인간적인 것이 아무리 선한 것이라도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이 구원입니다.
애굽에서 열 번째 재앙의 밤에 그날 큰 아들이 피를 바른 큰 아들들이 구원을 받았는데 거기에 인간적인 것이 들어가지 않았어.
그냥 믿음으로 피를 바르는 것만 하나님께서 요청하셨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그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거기에 어떤 걸 첨가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야 되겠어요.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로마서 12장부터 나오는 말씀대로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이제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지만은 성화의 길은 싸움도 있고 그다음에 어려운 일들도 있죠.
그때 우리의 싸움이 필요하고 행함이 필요한 것이죠.
행함도 다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행함이죠.
그렇게 율법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라고 권고한 바울은 7장 14절서부터는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쭉 얘기합니다.
율법이 신령하긴 하지만 거룩하고 의로운 것이긴 하지만은 그 안에서 우리가 율법을 바라보고 바라보고 있을 때는 우리는 얼마나 비참한 사람이 되는가 24절에 보면 오호라 나는 공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너를 건져내랴 아주 비통한 부르짖음을 바울이 바라고 있습니다.
8장에 보면 8장은 이제 무엇에서 벗어나 살려라 랍니까?
5장이 하나님의 진노고, 6장이 죄의 속박이고, 7장이 율법의 얽매임이고, 8장은 죄의 악신 사망에서 이제 벗어나 사는 사람입니다.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이미 사망에서 벗어난 사람이죠.
지금 죽는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 죽는다 해도 이미 영생을 소유한 것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은 지금 죽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영생을 소유하고 있죠. 그래서 그게 복음이고 그래서 그게 굉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의 8장은 참 위대한 해방의 외침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한테는 7장의 경험도 있어요.
그리스도 안에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7장의 마지막 오호라 나는 공고한 사람이로다.
이 경험이 믿지 않을 때의 경험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은 그렇지 않은 것이 로마서 5장부터 다 구원받은 사람의 경험입니다.
그래서 7장의 이 비통한 경험도 역시 예수님 안에 살면서 구원받은 사람의 게도 이런 경험이 오죠.
이런 비참한 고통이 있죠. 예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기 자신이 더
비참하게 느껴지는 것, 십자가 앞에서 더 우리가 추악하게 느껴지는 것 그게 신앙이죠.
그런데 8장은 이제 거기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드높은 해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이 7장 경험도 있고 8장의 경험도 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은 이제 8장의 경험 점점점점 더 날마다 우리가 하늘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가 팔짱의 경험 속에서 더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죠. 얼마 전에 어떤 부인이 저한테 전화를 했는데 상담하겠다고 하고는 울기만 계속해요.
아마 고통이 많은 분 같습니다. 이름도 말하지 않고 교회도 말하지 않고 그냥 자기 고통 때문에 울기만 해요.
그게 제가 성경 말씀으로 위로를 했습니다. 로마서 8장을 펴보십시오.
둘이 8장을 편 다음에 전화를 사이에 두고 제가 읽었어요.
하나님이 내 편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의롭다 하신 이가 우리 아버지시니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내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장의 후반부입니다. 드높은 승리의 노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 그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즉각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생을 소유하고 사는 사람들의 드높은 찬양입니다.
그것이 로마서 8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부터는 우리가 초반에 구조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바울이 아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 이렇게도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확실하게 구원을 받는데 왜 내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 유대인들은 왜 예수님을 거절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도대체 왜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너무나 바울은 안타까워서 탄식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구원을 못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노력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
그렇게 탄식합니다.
여기 9장 32절에 보면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그랬어 그리고 탄식합니다.
그렇지만은 바울은 9장 10장 11장에서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이 구원을 못 받는다고 해서 탄식만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바울은 깨닫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방인들이 수많은 이방인들이 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들어왔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민족이기 때문에 어떤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누구든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다 하나님의 자녀여 다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큰 뜻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실패 중에서 하나님의 또 깊은 뜻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마침례는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다 함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 그날이 오기를 바울이 기대하고 또 그것이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감사의 찬송으로 우리 11장이 마치게 됩니다.
12장은
우리가 처음에 로마서를 둘로 가를 때 1장부터 11장까지는 교리편이고 12장부터 16장까지는 실천편이라고 그랬죠.
이제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나 그걸 설파한 것이 12장입니다.
그게 바울 편지서 어느 편지서를 보든지 바울 편지서는 둘로 갈라집니다.
교리에 대해서 얘기하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후반부는 이제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나 반드시 바울은 그렇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그러니까 바울이 믿기만 하면 다 된다. 믿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다.
믿기만 하면 이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 절대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반드시 구원받은 사람은 이런 삶을 살아야 된다.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12장에서도 보면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그러므로가 뭡니까?
이렇게 값없이 그리스도의 피로 엄청난 희생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된다.
살아있는 재물로 들여야 된다. 우리는 원래 재물은 죽어야 되지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는 살았어요.
그렇지만 재물은 죽은 것입니다. 살아있는 재물로 우리가 들여져야 된다.
그다음에 2절에 보면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그랬어.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10절에 보세요.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위해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얼마나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까? 구원받은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
바울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3장은 기독교 역사관을 말하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근데 이 말은 특별히 젊은이들이 별로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독재자도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느냐
독재자 독재 정권에도 우리가 순종해야 되느냐 그런 의문이 생기지만 이게 기독교 역사관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어떤 황제가 하는 것 같지만, 어떤 대통령이 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 모든 역사도 다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의 역사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게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돌멩이를 들고 싸우는 대신에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가서 기도하면서 이 세상 역사를 바르게 움직이도록 하나님께 탄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입니다. 13장 마지막에 보면 12절서부터 보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과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것은 종말적인 삶을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이 한 권면입니다.
이 대목을 아우구스티누스가 읽다가 크게 감동을 받고 그의 삶을 다 버리고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로마서 14장은 이 문제가 있는 장입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가 나오는 장이죠.
그래서 여기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연약한 자는 재수만 먹느니라. 또 5절에 보면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낮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장할지니라 이렇게 말씀을 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이걸 음식의 음식 문제라고 생각해서 뭐 채식하고 음식을 가려 먹고 하는 거 그것은 믿음이 연약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모두 감사함으로 먹자.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은 이 신약 성경에 나오는 음식 문제는 여러분 절대로 채식 문제나 육식 문제가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채식 문제나 육식 문제가 없었어요. 다 깨끗한 음식 깨끗한 부정한 것이 아니면 다 육식을 했습니다.
그 당시는 그렇기 때문에 신약 성경에 나오는 음식 문제는 우상숭배의 문제입니다.
우상숭배 재물 우상에게 바쳐진 다음에 시장에 나온 음식을 먹느냐 마느냐 그것이에요.
그다음에 여기 이 날을 전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안식일 지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전혀 아닙니다. 이날 저날 안식일은 이날 저날로 하는 날이 아닙니다.
이건 10계명에 넷째 계명으로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안식일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건 절기를 말하죠. 왜 절기를 그러면 이 날 저날 가리지 말라.
바울이 똑같다 하느냐 이미 절기는 이때 패했어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그것을 상징하는 절기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어요.
그렇지만 바울은 없애버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명절이니까 지키기는 지키지만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들이니까 어느 날이 중요하다 서로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겁니다.
그래서 로마서 14장에 나오는 음식 문제와 이날 전날은 전혀 채식 문제나 혹은 안식일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바울은 여기서 말하기를 음식을 이 채소만 먹는 사람도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고 그다음에 고기를 시장에 나온 것을 먹는 사람도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 비판하지 말라 그랬어요. 둘 다 좋은 것이다.
바울은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음식 문제가 아니고 우상숭배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우상숭배 문제는 고린도전서 8장 9장 10장에 가서 다시 한 번 공부를 하겠습니다.
로마서 15장은 결론적인 권면이고요. 로마서 16장은 바울의 마지막 인사로서 로마서가 마칩니다.
이제 로마서를 마치면서 우리가 로마서에서 배울 교훈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모두가 다 죄인이다. 비참한 죄인이고 벗어날 길이 없다.
율법에 의지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율법은 이미 우리가 아담과 하와 때부터 하와 때부터 어긴 것이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가 은혜로 단번에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담 때문에 죄인이 된 것보다도 더 확실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체가 다 구원받은 것이다.
이건 더욱더 확실하다. 이게 이제 로마서가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사는 화평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사는 사람이고, 또 율법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사는 사람이고 사망에서 벗어나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정말 그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면서 기쁘게 살고 또 이제 정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된다.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우리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재물로 드리고, 형제를 사랑하고 우회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 다 같이 그렇게 살자.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이 로마서에서 바울이 말하고 싶은 중요 핵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로마서를 배우면서 얻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받는 것이 받은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제 그 구원 속에서 기뻐하며 살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그래서 마침례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의 재림을 맡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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