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백의 매화꽃과 개나리가 향기를 한껏 기지개 켜 주는 때이다. 따스한 파란 하늘비에 상고대 녹고 비내골은 분주해진다. 바삭한 따지 바닥 밟은 발걸음 소리에 바람은 나뭇가지 흔들며 반긴다. 뭇새들 지져 기는 소리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 소리가 더 높아 짐은 안다. 가설다리 철판을 건널 때 따라오는 다닥소리 어쩜 쫄랑 따르던 강아지 소리 같다. 외로움이라는 의미를 놓게 한다.
꽃들이 산기슭에서 밭둑에서 숨바꼭질하니 쇠스랑 고랑 일구는 농부 놀이 시작도 된다. 겨우내 방치의 자유에서 구속의 틀로 만들어지는 생사의 갈림이기도 하다. 작년 잡초들의 자유 분망하며 남긴 종자들의 새싹 오름. 다년생의 약채들 봉곳한 머리 밀기. 나름 새로운 형태의 삶을 전개하려 한다. 고랑 뒹구는 흙덩이에 동초 나물 뿌리가 하얀 다리 부러지며 들어 난다. 지렁이 나 뒤비 지며 온몸으로 나뒹군다. 아쉬움인가 슬픔인가. 봄은 그렇게 다가와 밭고랑에서 꿈틀 된다.
일 하다 한숨 돌리는 할배는 땀을 닦으며 땅 뒤비 지는 것에 희열을 챙긴다. 겨울 철 몸 나태 깨기 위한 활동인 것이다. 조금만 일을 해도 숨이 차니 이 어찌할꼬? 천천히 다시 든 쇠스랑 힘을 넣고 땅속 세상과 전쟁을 한다. 내가 침략자가 되어 미지의 영역 확보를 한다. 교두보 확보나 정복의 미련은 없다. 그저 땀 내기를 하기 위해서다. 나물 뿌리는 반찬용으로 한 곳에 모은다. 지렁이는 겨우내 빈 기운 보충해 헌 집 버리고 새집을 장만하라 이르며 흙으로 덮어 준다. 나무 가지에 놀던 바람 어느 듯 부채질로 바뀌니 시원한 탁배기 한 잔 절로 생각난다. 아낙 울 숙이는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모아 둔 나물뿌리를 챙긴다. 막걸리 안주 만들어 주려나.
밭둑에 있는 솔이 하늘 향해 잘 나빈다. 잎새 날로 나불거림이 승무 춤에 비견할까?. 가장 높은 곳 솔잎의 바람은 무엇일까? 굳이 솟대라며 바람에다 말하는 신비 가장 주의자 할배가 본다. 파란 하늘과 끄트머리 솔잎 라인에 눈 랜즈를 맞춘다. 무언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기대감이다. 일 년 아니 십 수년을 한자리에서 반복의 삶을 하고 있다. 사계의 변화에 잘 순응해 늘 푸른 나무가 되어 한 번씩 그늘을 챙겨 주기도 한다. 퇴약볕 내리는 날 긴 그림자의 보호막은 채소들의 응원군이다. 이미 목 감은던 수건을 풀어 손에 쥐고 있다. 저기 끄트머리에 달아볼까 하면서. 솟대의 깃발로 활용하지 못하는 걸 알면서 모양새 갖추기 해본다.
나의 봄날은 언제 일까? 2~30대 젊은 나이때일까? 군생활과 결혼 시기 그리고 아이들 키우기. 봄날의 개념도 몰랐다. 충성이 제일로 우선이었다. 그 생활로 울고 웃고 지나 간 시기다. 그리고 경산에 새 직장을 구해 마지막 안주를 했다. 철없는 때라 맨날 봄날 같았다. 우는 날 보다 성낸 날이었고 슬픈 날보다 웃는 날의 철이었다. 언제 지나가버린 세월이 되었다. 돈도 재산도 모른 체다. 과연 봄날이었을까. 내 생에 봄날은 꼭 집어 내놓을 것이 없다. 아니면 다 봄날이라 할까 보다? 돈 맛을 알고 난 5~60대 되고 보니 시건이라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뜬 군름 같은 욕이라는 단어로 허울이란 말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봄날의 개념을 내세우기가 어렵다. 해서 나이의 봄날보다 계절의 봄날에다 그냥 끼워 넣는다.
하늘과 땅사이 자리 같이한 한 미물로 '좋다'라고 말이 절로 나온다. 바람과 물과 새소리 땅속 아우성 소리 아니 합주곡 조용히 감상한다. 흐름이다. 지금이다. 시간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계절의 변화에 업혀 가고 있다. 움직임은 없는데 움직임. 땅과 작물 성장과 초목의 변화. 저 소나무가 벌써 저렇게 자랐나. 한 발의 그림자가 이제 밭을 완전 가로 지른다. 칠순 앞 나이 불러 이런 친구들 소개받는다. 아직도 못다 한 욕망 결계도 끌어들인다. 산수의 무채색 감정을 덧칠한다. 흰머리와 주름이 초목에 들고 햇살 다림질로 얼굴에 깃던 시간을 놓는다. 호미 자루로 고랑에다 상을 심는다.
낙화하는 매화에 이어서 또 다른 꽃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핀다. 개나리 노랑머리 빗질하니 참꽃들의 군무 장관이다. 참나무 소나무 둥지 따라 산기슭 돌아본다. 신난 강강술래잡이 흥겨움이 따로 없다. 제비꽃 보랏빛은 연애편지 기분. 옛사랑 순이가 받아 들던 고운 색종이 좋아하는 색이다. 가슴이 두 근 두근이다 . 걸쭉이는 첫사랑처럼 뭇 꽃들이 찾아든다. 몇 발치 파디비던 땅은 언제 다시 쇠스랑 들까? 밭 일 하다가 동네 마실 다니는 할배 노랑나비가 앞서 가고 있다.
밭고랑 일부 동초들은 잡초더미에 숨어 잔다. 다시 시작하는 쇠스랑 밭갈이 일. 바람도 햇살도 느긋히 같이 한다. 잡히는 잡초와 작년에 떨어진 채소씨. 잘들 자라라. 같이 더불어 가는 곳간 채우기다 라며 흥얼거린다. 아니다. 먹히고 먹는 생존 경쟁 관계다. 생사의 갈림이 질기게 있는 인연들이다. 때 되면 사라지고 다른 물생이 들어서는 운명 같은 환경에서 공생이기도 하다. 자연이다 순리다 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치열한 생존 현장을 나는 쇠스랑으로 땅을 판다. 또 다른 과욕 하나가 추가되는 것이다.
풍경으로 한 자리 잡았다. 한 생물로 산수의 구성원이 된 것이다. 꽃피고 더불어 뽀송한 흙과 같이 하는 시간에 나도 어느 날 사라지리라. 또 누가 찾아 들리라. 변 하지 않으면서 변하는 산수의 낙무落舞시간이다. 이런 봄날이 대롱대롱 놀고 있다.
24. 02. 20.
봄날 놀이 / 초고
홍백 매화꽃과 개나리가 향기를 한껏 기지개 켜 주는 날. 하늘에서 따스한 파란 하늘비가 내리면 상고대 녹고 비내골은 분주해진다. 바삭한 바닥 밟은 나의 발걸음 소리가 나면 환영 인사로 바람은 나뭇가지 흔들며 반긴다.
쇠스랑 고랑 일구는 농부놀이의 호작질이 시작되는 시기다. 고랑 뒹구는 흙덩이에 동초 나물 뿌리가 하얀 다리 부러지며 들어 난다. 지렁이는 나 뒤비 지며 온몸으로 나뒹군다. 아쉬움인가 슬픔인가. 봄은 그렇게 다가온다.
일 하다 한숨 돌리는 할배는 땀을 닦으며 뒤비 지는 것에 희열을 챙긴다. 뿌리는 나물 반찬용으로 한 곳으로 모아 둔다. 지렁이는 겨우내 빈 기운을 보충해 헌 집 버리고 새집을 장만하라 이른다. 나무 가지에 놀던 바람 어느 듯 부채질로 바뀌니 시원한 탁배기 한 잔 생각난다. 아낙 울 숙이는 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모아 둔 나물뿌리를 챙긴다. 막걸리 안주 만들어 주려나.
밭둑에 있는 솔이 하늘 향해 납니다. 솔 날 나불거림이 승무 춤에 비견한다. 가장 높은 곳 솔잎의 바람은? 굳이 솟대라며 바람에다 말하는 신비 가장 주의자 할배. 파란 하늘과 끄트머리 솔잎의 라인에 눈을 꽂는다. 무언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호기심. 이미 목에 감은 수건을 풀어 손에 쥐고 있다. 솟대의 깃발로 활용하지 않을 거면서.
하늘과 땅사이 한자리 같이한 한 미물로 '좋다'라고 말한다. 바람과 물과 새소리 땅속 아우성 소리 조용히 감상한다. 흐름이다. 지금이다. 칠순 앞 나이를 불러 이 친구를 소개한다. 코 앞 아직도 못다 한 욕망 결계도 끌어들인다. 산수의 무채색의 감정 칠을 한다. 흰머리와 주름이 초목에 들고 햇살 다림질로 얼굴에 깃던 시간을 놓고 호미 자루로 고랑에다 상을 심는다.
낙화하는 매화에 이어서 또 다른 꽃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핀다. 개나리 노랑머리 빗질하니 참꽃들의 군무 장관이다. 참나무 소나무 둥지 따라 산기슭 돌아본다. 신난 강강술래잡이 흥겨움이 따로 없다. 제비꽃 보랏빛은 연애편지 기분. 옛날 순이가 받아 들던 고운 색종이 색. 좋아하는 색. 가슴 두 근이다 걸쭉이는 첫사랑처럼 이렇게 뭇 꽃이 찾아든다.
밭고랑 동초들은 잡초더미에 숨어 잔다. 다시 시작하는 쇠스랑 밭갈이 일. 바람도 햇살도 느긋히 같이 한다. 잡히는 잡초와 작년에 떨어진 채소씨. 잘들 자라라. 같이 더불어 가는 곳간 채우기. 아니다. 먹히고 먹는 상관관계다. 생사의 갈림이 질기게 있는 인연. 때 되면 사라지고 다른 물생이 들어서는 운명 같은 환경. 자연이다 순리다 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치열한 생존 현장을 나는 쇠스랑으로 땅을 판다.
풍경으로 한 자리 잡았다. 한 생물로 산수의 구성원이 된 것이다. 꽃피고 더불어 뽀송한 흙과 같이 하는 시간에 나도 어느 날 사라지리라. 또 누가 찾아 들리라. 변 하지 않으면서 변하는 산수의 낙무落舞. 이런 봄날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