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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자료1
세대주의가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
박래광 목사
(순복음경동교회)
서론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는 기독교 신학의 한 해석학적 접근법으로, 성경을 특정한 시간적 세대로 나누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특히 종말론적 측면에서 강한 영향을 미치며, 미래에 있을 예언적 사건들을 특정한 질서와 방식으로 해석하는 데 주로 사용돼 왔다. 지난 1960-90년대 한국 기독교는 부흥성회라는 이름으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서 대부분 세대주의적 관점을 차용했던 것이 사실이다.[1] 이런 방식의 성경 해석은 당시 냉전시대라는 세계정세와 맞물려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형태의 부흥성회(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은 중공과 소련(혹은 EU와 아랍국가)으로 대변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물리쳐야 한다는 반공사상과 예수님의 재림의 긴박성을 상기하면서 일종의 두려움 속에서 열심히 기도했다. 그 결과 계시록의 내용은 성도에게 위로와 소망으로 다가오기보다는 두려움과 공포를 촉구하게 되었다.[2]
그렇기에 이 논문은 세대주의의 정의, 주요 특징, 그리고 세대주의 종말론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자 한다. 다만 천년왕국과 관련된 내용은 다른 발제자의 몫으로 두고 오직 세대주의에 대해 설교자로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며 목회를 위한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1. 세대주의의 정의
세대주의는 하나님의 세계 경영(통치)에는 현저하게 다른 세대가 있다는 신념에 근거한 일종의 성경 해석 체계이다. 세대주의는 영국의 다비[3](J. N. Darby)에 의해 시작됐다. 다비는 성경 특히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사건들을 특정 연대와 연결시키려는 무리한 시도를 했다. 이것을 ‘시간을 설정하는 게임’(date-setting game)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구약은 4천년이고 신약은 2천년 그리고 천년왕국은 천년이니 다 합해서 7천년이다. 따라서 인류 역사가 2천년에 가까워지면 천년왕국이 오니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숫자에 집착했다.[4] 세대주의 운동의 폭발적인 확장은 스코필드(C. I. Scofield)에 의해서 진행됐다. 스코필드는 KJV 성경에 각주를 단 스코필드 레퍼런스 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에서 세대주의적 개념들을 설명했다. 스코필드에 따르면 “세대란 인간이 하나님의 어떤 특정한 계시에 대한 순종과 관련하여 시험을 받는 일정한 기간을 말한다.”[5]
에릭 사우어(Erich Sauer)에 의하면 스코필드는 7세대의 구분을 1) 무죄세대(에덴), 2) 양심세대(타락에서 홍수까지), 3) 인간정부세대(노아에서 바벨탑까지), 4) 약속세대(아브라함에서 애굽까지), 5) 율법세대(모세에서 세례 요한까지), 6) 은혜세대(교회시대), 7) 왕국세대(천년왕국)로 구분한다.[6] 여기에 근거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시는 방법(경륜)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구원과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세대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담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었다. 노아는 방주를 짓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었고,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진 이후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오순절부터 휴거 때까지는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휴거부터 재림까지의 7년 대환난 기간에는 믿고 끝까지 견디는 자들이 구원받으며, 천년왕국세대에서는 산상설교의 내용을 그대로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 이처럼 “세대”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에 있어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방식이 달라지는 시기라고 설명한다.[7]
2. 세대주의의 주요 특징
2.1 문자적 성경 해석
세대주의의 본질과 특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데 있다. 찰스 라일리는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여 성경을 왜곡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하며, 성경해석의 원리로 문자적(literal), 통상적(normal), 간명한(plain) 해석 원리라고 소개한다.[8] 즉 성경의 역사적 내용들을 문자적으로만 취급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9] 성경은 역사적이고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음에도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의 모든 단어를 오직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겠다고 고집하고 오직 문자적 해석 방법만이 올바른 것이라고 주장한다.[10] 여기에 덧붙여 예언 해석에 있어서 미래적 해석 방법을 취하다 보니 성경에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을 다변하는 국제정세와 끼워 맞추려고 시도하면서 시한부적인 종말론을 양산한 것이다.
예를 들어, 스콜필드 레퍼런스 성경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1차세계대전이 터진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아마겟돈 전쟁이나 짐승과 음녀가 싸우는 그런 내용과 이 전쟁을 짜 맞춘다. 그리고 할 린지Hal Lindsey는 ‘신세계의 도래’There's a New World Coming라는 책에서 요한계시록의 바벨론을 유럽연합으로 이해하고, 유럽연합과 관련된 인물을 적그리스도로, 그리고 짐승의 표인 666을 컴퓨터 바코드로 해석을 한다. 그래서 결국 이것들이 미국을 위협하고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았다.
2.2 이스라엘과 교회의 분리
세대주의자인 라일리는 세대주의의 필수 요건은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분이라고 언급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두 종류라는 것이 세대주의의 중추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교회라고 불리는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눌 수 있다. 두 백성은 전적으로 다르다.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왕국을 하나님의 구약 백성에게 주려고 가져왔으나 그들이 그를 거부하였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한쪽에 제쳐 놓임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은 전혀 다른 세대, 즉 교회 시대를 개시하셨다.[11]
2.3 그리스도의 재림과 휴거
세대주의자들의 재림에 관한 해석은 그리스도의 순간적 재림의 단회성을 말하지 않고 공중재림(휴거) 후 지상재림을 한다는 이중 재림을 주장한다.[12] 그리스도의 재림의 첫 단계는 공중재림 즉, 휴거라는 것이다. 이때 그리스도께서 지상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재림하시고 모든 죽은 신자들은 부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성도는 변화되어 영화로운 몸으로 휴거된다는 것이다. 즉 공중에서 휴거된 백성과 그리스도께서 만나 7년간 어린 양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기쁨을 나눈다고 주장한다.[13]
이러한 개념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근거가 되었고 “이스라엘에 초점을 맞춘 지상 천년왕국의 해석”이 19세기 중엽부터 일어나서 보수적인 기독교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14]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대환난과 천년왕국을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되는 장으로 본다. 교회시대의 정점은 휴거이며, 이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실한 제자들을 ‘공중에서’ 만나 천국으로 데리고 가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여실 것이다.[15]
3. 세대주의가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
세대주의는 주로 19세기 영국의 신학자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에 의해 체계화되었으며, 이후 미국의 무디 성경학교(Moody Bible Institute)와 같은 신학교를 통해 확산되었다.[16] 이것은 한국 개신교 초기부터 신앙의 뿌리를 형성하였고, 민족의 수난을 통하여 더욱 깊어졌다.
3.1 긍정적인 영향
한국에 파송된 초기 선교사들은 대부분 청교도적 보수주의자들로서, 그들이 파송될 당시 한국인들은 서양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한 쇄국정책 영향으로 선교활동이 매우 힘들었다. 이미 천주교가 전해졌지만 그 씨앗의 흔적은 거의 손실된 상태였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순수한 신앙 전파와 천국의 임박한 미래 성취와 종말에 관한 사상이 동학 농민 혁명과 청일전쟁의 기운이 무르익던 혼란한 사회에서 환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1907년 대부흥 운동으로 부흥의 열기는 전국적으로 확산하여갔다. 특히 말씀 연구하는 성경공부와 사경회를 통해 죄의 고백과 임박한 종말을 고대하는 소망의 신앙은 한국교회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17]
3.1.1 성경의 무오성과 축자영감설에 대한 순수한 신뢰
초기 선교활동이 세대주의적 요소에 영향을 받은 보수주의 일지라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성경을 그 자체로써 받아들이는 믿음 때문이었다. 세대주의가 서구에서는 칼빈주의와 대립되어 그 간극이 벌어졌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미쳤는데 그것은 세대주의를 근본주의와 동일한 상태로 수용했기 때문이다.[18]
3.1.2 재림에 대한 기대와 종말론적인 신앙생활
세대주의적 종말론 신학은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일제의 핍박이라는 어려움과 6.25전쟁이라는 환란의 고통 가운데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힘이 되었다. 이근삼 교수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순수성을 잃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는 “종말론적 희망과 그리스도 왕권에 대한 인격적 위탁”이라고 주장하였다.[19]
3.2 한국교회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
3.2.1 시한부 종말론 발생
프린스턴 신학교의 베커(J. C. Becker)는 1982년 세대주의자 할 린지를 중심으로 한 종말론 운동을 비판하는 책을 펴내면서 그 운동을 “신 묵시문학 운동”이라고 불렀다. 당시의 종말론 운동이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과 현 세상의 파국을 예고함으로써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질 성도들의 궁극적인 승리를 강조했던 유대 묵시문학 운동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20] 90년대 한국교회의 한 부분에서 일어났던 시한부 종말론 운동도 결국 이러한 영향아래 펼쳐진 현상일 수밖에 없다.[21]
한국에 기독교 선교가 시작된지 약 120년의 불과한 짧은 역사에도 신흥종교의 왕국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이단 종파가 일어났다. 이러한 현상은 급격한 사회 변동과 불안정한 사회 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어지러운 사회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기독교가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종교적 피안으로부터 불안과 불확실성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에 대한 무력감, 재화나 권력의 결핍 그리고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종교 등이 이단 종파가 일어나는 주원인이라 할 것이다.[22] 한국에도 세상의 종말을 날짜까지 들어 예고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예고가 하나같이 빗나가고 실패로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말의 예고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23] 특히 “열풍”을 일으키며 극단적인 시한부 종말론을 유포한 대표적인 집단이 다미선교회와 여기서 갈라진 디베라선교회와 성화선교교회이다. 이들은 서울역 부근을 비롯한 도심 곳곳이나 지하철역 등에서 “충격 뉴스 92년 예수 재림, 성도의 휴거, 휴거 전까지 하나님의 인(印)을 확인받으라” “급한 소식 예수 공중 재림과 휴거를 준비하라. 1992년 10월 28일 지상 최대의 인간 증발 사건 발생”이란 제목의 유인물을 뿌리거나 가정집으로 우송했다.[24]
이러한 시한부 종말론이 교회와 사회를 혼란시키고 있다. 한국 교회는 길지 않은 역사 가운데서도 종말론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고 종말론적 신앙에 굳게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이 종말신앙이 비성경적이고 비신학적인 경향으로 빠졌던 일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2.2 지나친 내세 지향적 신앙으로 인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사회 참여의 결여
한국교회는 자유주의자들과 불신자로부터 사회에 대한 참여 및 윤리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문제의 원인은 교회의 근본적인 신앙 문제로서 과정이 결여된 지나친 목표의식과 이것을 가르친 선교사들에 문제가 있음을 이상근 교수는 비판한다. 세대주의 사상가 가운데 지상의 천년왕국의 강조와 환난 이전의 교회의 휴거사상은 세상에서 교회의 사명과 목표를 흐리게 만들었고, 복음이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이런 사상들은 신자들로 하여금 현실을 도피하게 하고 피안의 세계에만 갈망하는 허구적인 신앙으로 이끌었고, 내세 편집증적인 신앙양상을 띄게 했다.
우리는 재림이 가까워진다는 핑계로 나태하고 게으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성도들은 재림하시는 주를 맞아 영접하여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게 될 것이다. 불신자처럼 슬퍼해서는 안 된다. 시간과 시기에 대해서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매일 경건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 베드로도 훈계하고 있다.[25]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1-12).”
나오면서
AD 999년에서 1000년으로 전환될 때 성 베드로 성당에서 교황 실버스터2세(Pope Sylvester II) 집례로 미사가 자정 직전에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 임박하였다고 믿었고, 서로 용서하고 자선을 베풀었다. 그러나 그 때 주님의 재림이 발생하지 않자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 버렸다. 비슷하게 지난 1999년에서 2000년으로 전환될 때도, 전 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소동이 벌어졌다. 무엇이 이런 세기말적 소동을 유발했는가? 도대체 몇 번이나 휴거를 예행 연습해야 한단 말인가? 세대주의자들은 이런 일련의 역사적 사건과 성경을 무리하게 연결하는 시도를 통해 이와 같은 해프닝을 만들어냈다.
세대주의는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한 세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대 목회 현장에서 세대주의에 대한 바른 정립이 없다면 세대주의자가 아니면서 세대주의자가 될 수 있고, 세대주의를 가르치면서 세대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위험 요소다. 그렇기에 목회 현장에서 세대주의적 성경해석 방법과 용어들을 차용함에 있어서 신중을 기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종말은 부인한 수 없는 성경적 진리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날과 그 시에 대해 함구령을 내린 이상 우리가 그 날을 예측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선악과일 것이다. 스피노자가 말한 것처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심정으로 종말을 고대하되 오늘을 놓치지 않는 교회가 되도록 설교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끝>.
[1] 천년왕국의 성경적 근거를 주로 구약에 두는 세대주의 전천년설에 의하면 1) 마지막 때에 세계적인 7년 대환난(참고, 단 9장의 70이레)이 있을 것인데, 대환난 전에 그리스도께서 ‘공중 재림’하신다. 2) 이때 죽은 성도가 부활하여 살아 있는 성도와 함께 공중으로 휴거되어, 강림하시는 예수님을 공중에서 영접하며 대환난을 면하게 된다(살전 4:16) 3) 휴거된 자들이 7년 동안 진행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동안, 지상에서는 7년 대환난과 적그리스도의 통치가 지속된다(단 9:24-27). 4) 대환난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재림하여,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서 악의 세력을 정복하고 사탄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가둔다. 5) 천년왕국을 건설하여 성도와 함께 왕노릇한다. 6) 천년왕국이 끝나 가면 사탄이 일시적으로 풀려나서 곡과 마곡의 반란이 일어난다. 7) 주님이 다시 재림하셔서 사탄의 세력을 파멸하시고 불 못에 던지신다 8) 그 후 악인들이 부활하여 최후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가고, 성도는 영원한 천국에서 산다.
[2] 송영목, “요한계시록의 세대주의 전천년설과 역사적 전천년설 비평” 『교회와 문화 30호』(서울: 한국성경신학회), p. 150.
[3] V. S. Poythress, 『세대주의의 이해』 권성수 옮김(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1990), p. 232. 이 책에서 넬슨 다비는 프리머쓰 형제단 운동(Plymouth Brethen Movement)을 주도했던 인물로 성경을 문자적 예언 해석 원리와 그것에 근거한 이스라엘과 교회의 철저한 구분, 환난 전 교회 휴거, 성경을 유대인의 본문과 교회의 본문으로 나누는 성경의 구획화, 천년왕국의 유대화 등을 주장한다. 또한 영국 출신 다비가 미국으로 건너가 스코필드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어 세대주의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4] 송영목, p. 154.
[5] 김덕연, 『세대주의와 한국교회 종말론에 관한 연구』(고신대학 신학대학원:석사논문, 1990), p. 9.
[6] Erich Sauer, 『영원에서 영원까지』 권혁봉 옮김(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9), pp. 39-40.
[7] 이종희, 『세대주의 종말론이 이스라엘 선교에 미친 영향 연구』(총신대학교 선교학과:석사논문, 2011) p. 9.
[8] C. C. Ryrie, 『세대주의의 바른 이해』(증보판), 정병은 옮김 (고양: 전도출판사, 2009), p. 215.
[9] 이광복, 『문자주의로 본 성경해석의 비극』(서울: 흰돌, 2011), pp. 106-107.
[10] 성경 해석에 있어서 문자적, 문법적, 역사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 시대이다.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스스로 성경 위에 자신들의 권위를 둠으로써 자신들의 성경해석이 성경보다 앞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이러한 반동으로 종교 개혁자들은 기록된 문자적, 문법적, 역사적 의미에 충실하고자 했다. 이 후 근대에 와서 합리주의적 영향으로 자유주의신학이 발달하며 ‘과학적 자료를 기초로 하여 초자연적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는 배경 하에 비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은 글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하며 그 의미를 영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갖게 된 것이다.
[11] C. B. Bass, 『세대주의란 무엇인가』, 황영철 옮김(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8), p. 26.
[12] 이 교리는 전 환난기적 사상으로서 새로운 스코필드 관주성경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13] 김덕연, p. 20.
[14] 정동섭, “세대주의 종말론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 『월드뷰 vol 181』(서울: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2015), p. 30.
[15] 정동섭, p.30.
[16] 심창섭,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종말사상”, 『목회와 신학 2권』(서울:두란노, 1990), p. 44.
[17] 이만열, 『한국 기독교사 특강』(서울: 성경읽기사, 1987), p. 74.
[18] 김덕연, p. 33.
[19] 김덕연, pp. 33-34.
[20] J. C. Becker, 『바울의 묵시사상과 복음』 장상 옮김(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7), pp. 20-34. 이 책에서 이 운동은 극단적으로 자아 중심적이다. 거기에는 피조물과 인류의 고통에 대한 어떤 연민이나 연대감이 없다. 이 세상이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든지 말든지, 믿는 성도들은 구원받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인류의 종말적 파멸과 공포를 즐거운 어조로 묘사한다.
[21] 박성규, 『한국교회 세대주의 종말론에 관한 연구』(한일장신대학교 대학원 : 석사논문, 2009), p. 28.
[22] 박성규, p.33.
[23] 동방교주 노광공은 1965년 8월 15일, 장막성전(이삭성전)의 유재열은 1969년 11월 1일, 1989년 8월8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하여 적북의 회문산으로 부녀자 34명이 집단 가출한 사건, 경기도 부천 시내 부녀가 100여명이 현금과 집문서 등을 가지고 강원도 치악산으로 집단 가출한 사건등 수 많은 사건이 있었다.
[24] 박성규, p. 35.
[25] 정동섭, p.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