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가슴
일본서기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 이리카스미) = 연개소문
중국의 《구당서》, 《신당서》 및 《자치통감》 등의 사서와, 이를 토대로 재편집한 《삼국사기》 열전에는 중국 당나라 고조의 이름 '연(淵)'자를 피휘하기 위해 천개소문(泉蓋蘇文)으로 기록하였다.
일본의 사서인 《일본서기》에는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 이리카스미)라고도 표기되어 있어, 한국의 고대 인명 유추에 단서가 된다.
642년 막리지의 난을 일으켜 대막리지(大莫離支)를 신설하고 연개소문, 연남생, 연남건으로 세습되는 연씨정권(淵氏政權, 642년 ~ 668년) 26년간 무인정권을 세워 고구려 왕조의 실권을 맡았다.
淵蓋蘇文은 실제로 '얼가솜/얼가소미'라고 불렸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얼' + '가소' + 받침 미음(ㅁ)으로 이루어진 말로서, '가소' + 접사 '이'가 결합하여 '가쇠/개쇠'로 불린 것을 蓋金(개금)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淵을 '얼'로 불렀으리라는 것은 일본어 표기 伊梨柯須彌(이리카스미)를 통해 유추가 가능하다. 文(글월 문)은 받침 미음으로 사용되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외모가 웅장하고 기품이 있었으며 사략이라는 중국 역사책에는 키가 10척이었다고 한다.
cf. 이리거세사
고구려의 대신. 고대 일본어로는 이리코세시라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등의 국내 사서와 중국 사서에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오직 일본서기에서만 그 존재가 언급되는 인물이다.
642년, 연개소문이 영류왕과 대신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사열식을 핑계로 군사들을 모았다가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과 대신들을 살해했는데, 당시에 다른 대신들과 함께 살해당했다고 한다.
일본서기에서 연개소문의 이름이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라고 표기된 바 있는데, 이리거세사라는 사람의 이름도 첫부분이 이와 흡사해서 연개소문의 친족이 아닌가에 대한 추측이 나돌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일본서기의 기록에서 정변 당시 연개소문에게 살해당한 사람들 중에서 영류왕과 함께 이리거세사라는 이름으로 언급되는 유일무이한 인물이다보니, 당시의 고구려에서 상당한 권세를 지녔던 인물로 여겨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