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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수애기!
수조에서 놀이를 하는 돌고래들의 입에서 물방울이 튕겨질 때마다 오후의 햇살도 덩달아 튀어 오른다. 해진은 좋아하는 오징어도 마다하고 꼼짝 않는 호순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해진이 불러주는 ‘섬집 아기 노래’에 지긋이 내리감은 눈을 깜빡이며 반응했지만, 몸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징어 껍질의 타우린 냄새를 맡으면 자다가도 달려 나오는 호순이가 돌고래 체험 행사가 끝난 뒤부터 며칠째 멍 때리고 있으니 해진은 조바심이 났다.
서귀포에서 돌고래 조련사로 일하던 해진이 부산 아쿠아리움으로 옮겨 온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이곳에는 해진을 비롯해 다섯 명의 조련사가 다섯 마리의 돌고래를 훈련시키고 있는데 네 마리는 모두 제주산 남방큰돌고래이고 해진의 껌딱지 호순이만 병코돌고래다. 서귀포에서 근무할 때는 남방큰돌고래만 조련했기 때문에 태평양돌고래라고도 불리는 병코돌고래가 해진한테는 매우 낯설었다.
이제 열세 살 된 호순이는 호주에서 왔다고 해서 이름을 ‘호순이’라고 지었다. 영특한 호순이는 사춘기를 앓는지 낯가림이 심해 친해지기가 퍽 어려웠다. 처음 한두 달은 본체만체하고 오히려 해진을 골려 먹으려고 장난을 치곤 했는데 늘 진심을 다하는 해진의 마음을 알고부터는 해진 바라기가 되었다. 호순이의 주 특기는 춤추기였다. 지느러미를 살살 흔들어 개다리 춤을 추고 음악이 나오면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춰 조련사들한테도 인기가 많았다. 해진은 덩치 큰 호순이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솟대처럼 뛰어오를 때는 생의 환희를 느꼈다. 제주남방돌고래들은 점프와 공중돌기를 잘했는데 그 육중한 몸을 점프해 유연하게 뒤집는 것을 보면 놀라 입이 쩍 벌어졌다.
돌고래들은 머리가 좋아 한두 번 가르쳐주면 금방 따라 하지만, 소리와 초음파로 의사소통을 하는 호순이는 이곳에 있는 돌고래 중에서도 가장 영특하고 다정했다. 눈망울이 예쁜 샛별이와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멍이가 입으로 공을 통통 치는 것이 개인기라면 호순이는 공을 꼬리와 주둥이에 올리고 저글링 하는 것을 좋아했다. 너무 오래 돌리면 어지럽지 않을까 싶어 걱정도 되는데 호순이는 한 번 시작하면 관람객들의 박수 소리가 수족관을 찢을 만큼 완벽하게 보여주어 꼬마 친구들이 무척 귀여워했다.
아쿠아리움은 주말이나 공휴일이 더 바쁘다. 평일에는 외국인 관광객이나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고 주말에는 꼬마 손님들이 많아 쇼도 2시간에 한 번씩 한다. 돌고래 쇼는 보통 15분 정도 하는데 호순이를 보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 미처 쉴 틈도 없이 다시 무대에 서게 될 때도 있다. 주말이라 저녁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데 호순이와 눈이 마주쳤다. 종일 공연하느라 힘들었던 호순이를 토닥여주려고 하니 빙글빙글 꼬리로 원을 그리며 오히려 호순이가 해진을 위로했다. 바다의 살점이라 그런지 호순이는 정말 배려심 깊고 따뜻한 심성을 지닌 생명체다. 어떻게 동물이 사람을 위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호순이를 향해 몇 번이나 손을 흔들어주고 수족관을 빠져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집안은 적막했다. 불을 켜니, 깜깜한 방안에 어머니가 장롱처럼 벽에 기대고 앉아 있었다. 후~ 유, 해진은 참았던 한숨을 한꺼번에 몰아내며 방마다 환하게 불을 켰다. 5년 전 도망치듯 제주도로 날아갈 때만 해도 다시는 안 돌아오겠다고 다짐했었는데. 해진은 어머니를 혼자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머니 바람대로 해양직 공무원이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대학 다니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공무원이 되려고 새삼스럽게 책과 씨름하는 것도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탓도 있겠지만, 해진의 꿈은 배가 잘 다닐 수 있게 뱃길을 안내하며 선박을 안전하게 인도하는 도선사가 되는 것이었다. 도선사는 바다와 선박, 항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이는 가질 수 없는 전문직이다. 눈을 감고도 바다를 운항할 수 있어야 할 정도로. 선박 운항 경력 20년이 되어야 도선사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니 바다에 청춘을 바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훈장 같은 것이다.
해진의 아버지는 선박업계에서도 인정하는 1등 항해사였다. 어린 시절, 해진의 눈에 보이는 아버지는 최고로 멋진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한 번 배를 타면 몇 개월씩 바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외국 선박회사에 근무할 때는 몇 년씩 집에 못 돌아올 때도 있었다. 바다에 아버지를 빼앗긴 해진은 어린 시절을 우울하게 보내며 검은색 매직펜으로 달력에 날짜를 지우는 것이 낙이었다.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해진은 어릴 때부터 바다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태명을 ‘바다의 보배’라는 의미가 해진(海珍)이라고 지어놓을 정도로 바다를 운명처럼 생각한 사람이었다. 이름을 해진(海珍)으로 지을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이유가 또 있었다. 해진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모두 항해사였는데 두 분이 배 안에서 자식들을 중매하는 바람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하게 된 것이었다. 부친의 뒤를 이어 항해사가 된 아버지는 해진이 태어났을 때 바다가 보내준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도선사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도 몰랐을 때부터 해양대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해진은 멋진 도선사가 되어 아버지와 같이 바다를 지키겠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 동안 바다에서 생활하신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도선사의 꿈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조류에 밀리거나 암초에 부딪히며 침몰하는 선박 사고를 지켜보면서 도선사 시험에 여러 번 도전했지만, 번번이 떨어져 아들이 대신 당신의 꿈을 이루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아버지는 해진이 대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바다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암초를 피하려 급하게 항로를 변경하다가 아버지가 탄 배는 조류에 휘말려 침몰했고 그 사고로 아버지는 그토록 좋아하던 바다에 영원히 수장되고 말았다. 얼마나 바다가 좋았으면 당신이 바다가 되었을까.
아버지의 사고는 예견된 쓰나미처럼 집안을 휩쓸고 해진의 꿈까지 앗아갔다. 해진은 가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들이 위험한 바다에서 멀어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 비보를 접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닷가에서 울부짖던 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바다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아버지 사고 이후, 어머니 앞에서는 누구도 ‘바다’라는 단어조차도 꺼낼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삼켜버린 바다는 무에 그리 성이 안풀리는지 날마다 어머니의 여린 가슴을 후려쳤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바다가 훤히 보이는 아파트를 장만했는데 사고 이후 어머니는 바다와 멀리 떨어진 이모네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했다. 혼자되신 뒤 눈에 띄게 말 수가 줄어든 어머니는 드라마를 보다 바다가 나와도 티브이를 껐다.
불규칙하게 흐르는 일상은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었지만, 어머니의 우울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해진이 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배를 타겠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응원했던 어머니는 이제 예전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해진이 어릴 때부터 멋진 도선사가 되어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던 어머니는 남편을 바다에 빼앗겼는데 아들마저 바다에 줄 수 없다며 당신이 죽기 전에는 바다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뭐, 기발한 생각들 좀 해봤어? 어제 김이슬 주임이 제안 한 ‘돌고래 타기’ 그거, 꽤 승산 있을 것 같은데? 어때? ”
아침부터 쇼를 담당하는 팀장의 광대뼈 부위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올 초에 오월 가정의 달을 겨냥해 새로운 이벤트를 선보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었는데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논의가 됐다.
“ 박해진 주임! 뭐 좋은 아이디어 없어? 서귀포 있을 때 조련사 체험 프로그램도 추진했었다면서? 제주도에서는 아이디어 뱅크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쇼 팀장의 말에 화들짝 놀란 해진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평화를 다시 떠올렸다. 사실, 서귀포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해진은 조련사로서 의욕이 넘쳐있었다. 네다섯 살 어린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진 돌고래에게 재미있는 놀이와 개인기를 가르쳐 유명한 조련사가 되겠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는 날도 허다했다.
제주 서귀포 바다에는 남방큰돌고래들이 서식하고 있다. 10년 전부터는 해양환경보호단체에서 돌고래를 보호하고 생태계 보전을 위해 남방큰돌고래의 날 행사를 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서귀포 아쿠아리움에도 귀염둥이 남방큰돌고래가 인기였다. 그곳에서 해진도 남방큰돌고래인 ‘평화’를 데리고 아이들과 조련사 체험 행사를 했었다. 단순히 돌고래들이 하는 쇼 공연만 보다가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돌고래 조련사 체험을 할 수 없을 없을 만큼 돌고래쇼장이 호황을 누렸다. 서귀포 아쿠아리움에서도 처음 하는 이벤트 행사라서 걱정했는데 몰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돌고래에게 먹이도 주고 직접 돌고래를 만져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이들한테는 신기한 일이었던 것 같다.
하나, 조련사 체험 이벤트는 생각했던 것처럼 수월하지 않았다.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소리를 질러 돌고래를 놀라게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돌고래 등에 올라타서 말을 타듯이 뛰었다. 먹이를 준다고 돌고래 입 안에 사탕을 한 움큼 집어넣고 덩치 큰 남자아이가 돌고래 등에서 안 내려오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영특해서 작은 손짓에도 교감하며 민감하게 움직이는 돌고래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생선도 먹지 않아 애를 태울 때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가 심한 돌고래들 때문에 체험 행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건의해도 회사 측에서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극성에 고통받는 평화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던 순간을 생각하니 해진은 자신도 모르게 불끈 주먹이 쥐어졌다.
돌고래들 때문에 마음이 아플 때마다 해진은 생각했다. 그때 모슬포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해양 공무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날 모슬포에서 제주 남방큰돌고래 기사를 보지 않았더라면 해진은 지금쯤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해진은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해양대학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축하해 줄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고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항해사의 길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항해사 같은 건 집어치우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는 어머니 잔소리가 듣기 싫어 집을 뛰쳐나온 해진은 무작정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해진이 갑자기 제주행 비행기를 탄 것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해진은 해양대학교 합격 선물로 아버지와 함께 제2의 고향 같은 모슬포항을 여행했었다. 모슬포는 부모님의 신혼여행지라 매년 한 번씩 가족여행을 왔었다. 해진은 어려서부터 자주 왔던 모슬포에서의 추억이 많다. 아버지와 함께 오름을 다녀와서 산방산 탄산온천에 가서 피로를 풀고. 11월에는 방어축제 구경을 하며 신선한 방어회도 먹었다. 나중에 은퇴하면 어머니가 좋아하는 모슬포에서 별장 짓고 살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 대정읍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해 놓았다. 아버지가 노후를 보내려고 마련해 놓은 집은 주인을 떠나보내고 쓸쓸하고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아버지 물건과 흔적 때문에 울컥하기도 했다.
출출한 것 같아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2시였다. 컵라면이라도 사려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대정읍은 작은 바닷가 마을이라 잠깐만 나가도 바다 냄새가 코를 찌른다. 편의점을 찾아 걷다 보니 어느새 등대가 눈앞이다. 샤일리 커피숍이 보이는 바닷가에 앉아 파도소리를 듣다가 일어나니 현기증이 일었다. 생각해보니 어제저녁부터 지금까지 밥 구경을 못한 것 같았다. 걷다가 보니 아버지와 함께 갔던 횟집이 눈에 띄었다. 수족관에는 자리돔과 한치가 먹음직스러웠지만, 기웃거리다가 다시 발길을 돌렸다. 컵라면에 햇반을 말아 대충 한 끼를 때운 해진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려면 필요한 것도 사야 하고 근처에 무엇이 있나 검색하는데 갑자기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닌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모성애가 강한 돌고래가 죽은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니는 모습을 누군가가 우연히 포착한 모습이었다. 순간 해진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특별히 정해진 일정 없던 해진은 이튿날부터 거의 매일 돌고래를 만나러 바다로 나섰다.
마라도가 보이는 동일리 바닷가에는 예쁜 수애기 카페가 있다. 노을을 유난히 좋아하시는 어머니와도 자주 다녀갔던 카페다. 어스름이 석양이 질 때는 아름다운 노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많아 자리 잡기도 어려운 곳이다. ‘수애기’라는 카페 이름처럼 이곳에서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탄 카페는 이미 핫플레이스가 되어있었다. 돌고래 100여 마리가 한꺼 번에 포효할 때는 장관이라 돌고래를 보러 오는 손님도 많았다.
그날부터 해진도 수애기 카페 단골손님이 되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 놓고 책도 읽고 인터넷 검색도 하며 종일 돌고래를 기다리는 것이 낙이었다. 하지만, 수시로 변하는 바다 시계 때문에 돌고래를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떤 날은 종일 기다리다 허탕 치고 돌아가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스마트폰 배터리가 닳도록 돌고래 사진을 찍을 때도 있었다. 돌고래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는 행운은 자주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남방큰돌고래를 기다리느라 복잡한 머리를 비울 수 있어 좋았다. 동일리 바다에서 돌고래에 심취한 해진이 우연히 돌고래쇼장을 찾으면서 재롱둥이 돌고래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지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생명체를 만나게 된 것 같아 해진은 가슴이 벅찼다. 비록 자신이 좋아하는 바다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좁은 수조 안이지만, 해진은 돌고래들과 교감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하루하루 꿈같은 나날을 보내던 해진은 돌고래에게 새로운 놀이를 가르쳐 사람들한테 재미있고 기발한 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던 돌고래 조련사가 되었지만, 해진은 사실 돌고래의 성격이나 특성을 알지 못했다. 동일리 바닷가에서 돌고래를 기다리던 해진이 조련사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참, 많았다. 낮에는 선배 조련사를 따라다니며 돌고래의 성격과 특성을 배우고 밤에는 이론서를 달달 외우다시피 공부하며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3년이 지나면서 능숙하게 돌고래를 다루게 되고 쇼에 익숙해졌는데 어머니 때문에 부산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해진은 처음부터 다시 조련 일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친해졌지만, 호순이는 오랜 시간 해진의 주변을 겉돌았다. 아마, 그때가 영악한 호순이가 해진의 간을 보는 시기였지 싶다. 무던하던 평화와는 너무 성격이 달라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걸핏하면 입으로 물을 튕기며 물에 빠뜨리고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는데 꼼짝도 않고 애를 태웠다. 해진의 손짓에 따라 공을 가지고 잘 놀다가도 공중돌기를 하는 남방큰돌고래들이 칭찬을 받으면 금방 샐쭉해졌다. 호순이는 머리가 좋아서 샘도 많고 한 번 토라지면 달래기도 쉽지 않았다. 조련할 때는 잘했는데 쇼가 시작되면 오히려 해진을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해진은 이제껏 여러 마리의 돌고래를 훈련시켰지만, 호순이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 돌고래는 처음이라 골치가 아팠다. 호순이가 속을 썩을 때면 평화가 생각나 서귀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해진이 호순이를 포기하고 다른 돌고래를 길들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즈음, 평생 잊을 수 없는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몰려드는 사람들로 쇼 장이 시끌벅적하던 주말, 호순이는 관람객 앞에서 노골적으로 해진을 망신시켰다. 악수를 하고 공놀이를 하던 호순이가 갑자기 물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관람객들이 이름을 부르며 응원의 박수를 보내도 꿈쩍 않는 호순이 때문에 결국 그날 호순이 순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돈인데 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팀장의 화풀이가 이어져 해진이 풀 죽어 있는데,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호순이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믿기지 않았지만, 호순이는 분명히 해진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해진은 얼른 다가가 호순이를 끌어안아주었다. 괜찮다며 울지 말라고 호순이 머리를 한참 동안 쓰다듬어주었다. 그날 이후 호순이의 행동이 완전히 달라졌다. 껌딱지처럼 해진을 따라다니며 장난도 치고 수족관 분위기를 방방 띄웠다. 수족관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해진은 그날의 울컥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부산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어머니와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불면증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잠을 자려고 한 잔씩 마시던 술이 습관이 되면서 오랜 시간 술에 의존하며 지냈다. 자식이라야 달랑 아들 하나인데 제주도로 달아나 버렸으니 어머니는 매일 밤 술에 취해 잠들고 식사도 잘 안 챙겨 몇 년 사이에 건강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주위에서 돈 잘 버는 남편 만나서 회장 사모님처럼 산다고 뜨르르했던 예전의 고운 어머니 모습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알코올 중독으로 초로기 치매가 왔다는 이모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해진은 아직도 서귀포에서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진은 거실에 짐을 풀자마자 냉장고부터 뒤져 술병을 모조리 치웠다. 방 구석구석에서 나오는 술병들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병원에서 알려주는 식단표대로 식사를 챙겨드리고 시간 맞추어 약을 먹을 수 있도록 어머니 휴대폰에 알람 시간을 저장해 주는 정도만 도와드렸다.
오늘 아침 회의에서는 지난주에 김이슬 조련사가 제안했던 ‘돌고래 타기’ 체험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했다. 김 조련사는 태국에 가서 코끼리를 타고 시골 마을을 도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는데 돌고래 타는 것은 더 신날 것 같다며 악의 없이 웃었다. 돌고래 타고 10분 동안 수족관을 도는데 10만 원을 받을지 8만 원을 받을지를 놓고도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쇼 팀장은 5분 태우면 10만 원을 받고 10분 태우면 15만 원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두 달 전에 입사한 송주희 조련사는 너무 비싸면 타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돌고래 타는 것을 낙타나 코끼리 타는 것과 비유하면서 해외여행 패키지 경험담을 늘어놓는데 누가 누가 동물을 더 많이 타봤나 대회를 하는 것 같아 해진은 슬그머니 회의실을 나와버렸다.
해진은 회의 중에도 자꾸 서귀포에서 돌보던 평화가 생각나 괴로웠다. 유난히 겁이 많고 소심했던 평화는 돌고래 체험 행사가 끝나고 나서 그 좋아하는 물고기도 먹지 않았다. 해진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사람을 피해 다녔다.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평화도 여덟 살밖에 안된 어린 돌고래인데 또래의 어린이들이 올라타고 마구 주무르니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돌고래는 지능이 높아 여덟 살 어린이 정도의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왜 안 그렇겠는가. 구경거리가 되는 것 같아 누가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싫어하는 돌고래도 있다는데 아이들은 마치 돌고래를 장난감처럼 다루었으니… 평화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새로 들어온 조련사가 맡았다는데 내가 돌아가면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리던 해진이 간식 바구니를 들고 수족관으로 왔다. 윤슬에 얼굴을 비추어보며 햇살과 밀담을 나누던 호순이는 해진의 발아래로 달려와 귀엽게 얼굴을 내밀었다. 한 마리씩 음미하며 물고리를 맛있게 먹고 나서는 꼬리를 부챗살처럼 휘감더니 물살로 둥그렇게 무늬를 만들었다. 고맙다는 마음의 표시였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 호순이를 바라보며 이제 돌고래 타기 이벤트가 시작되면 분명히 호순이도 사람을 태워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샛별이, 아롱이, 멍이, 자유도 모두 열 살 안팎이라 어린데 혹시라도 어디 다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루하루 길어지는 해처럼 어머니의 건강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가끔 농담도 하고 아버지와 같이 먹었던 모슬포 방어 이야기도 꺼내곤 했다. 나이 예슨 살에 치매가 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침울해하던 어머니가 이제는 꼬박꼬박 금주 일기를 쓰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해진이 일찍 퇴근하는 날은 이모네 가족까지 불러 함께 밥을 먹었다. 혼자 계실 때 찬밥 한 술 물에 말아 대충 때우던 습관을 없애주고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던 솜씨 좋던 예전의 어머니 모습을 되찾아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예전에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날은 늘 잔칫집 같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해상에서 보내는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언제나 주방에 서 있었다. 한식과 중식요리 자격증에 제빵 자격까지 취득한 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옥수수 빵을 굽고 별미로 손칼국수를 만들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으로 충전하고 바다에 나가면 또 거뜬하게 서너 달을 견딜 수 있다고 하시더니. 아버지는 어머니보다도 바다가 더 좋으셨던 걸까.
오월이 다가오면서 열심히 준비하던 돌고래 체험행사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쇼 팀장은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무조건 10분을 태워야 한다고 우겼다. 그래야 관람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했지만, 김이슬 조련사와 안경수 조련사를 빼고는 모두 반대하는 눈치였다. 애들이 어려서 잘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문제고 잘못하다가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책임론까지 나왔다. 조련 팀장도 돌고래 타기를 상품화해서 손님이 많아지면 좋겠지만, 시간을 늘리는 것을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못 박았다. 쇼 팀장은 덩치 좋은 제주남방큰돌고래 자유가 시범을 보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아쿠아리움 본부장이 매형이라서 그런지 쇼 팀장은 어쨌든 상품을 만들어 매형한테 잘 보이려고 한다는 것을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본부장 처남이라는 위치 때문에 직원들도 은근히 쇼 팀장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니 실제로 그가 하는 말은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옆에서 쇼 팀장의 눈치만 보고 있던 조련 팀장도 슬쩍 거들었다. “그럼, 자유부터 한 번 시켜보든가? 자유는 성격이 좋아서 아마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유는 안경수 조련사가 관리했는데 활달하고 이름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돌고래였다. 이곳에 있는 다른 돌고래들에 비해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성격이 좋아 누구든 잘 따르고 사람들한테도 무척 호의적이었다. 잘 먹어 건강하고 시키는 것은 뭐든 잘하는 자유가, 사람을 태우고 10분 동안 수조를 도는 것도 감당할 수 있을지 지켜보기로 했다.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찬성한다고 큰소리쳤던 안경수 조련사도 살짝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안 조련사가 평소처럼 자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추며 보상으로 청어 한 마리를 던져 주었다. 훈련할 때처럼 친밀하게 교감하면서 자유를 안심시키던 안 조련사가 자유의 등에 살짝 올라앉았다. 자유는 안 조련사를 태우고 물살을 헤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련사한테서 발생했다. 훈련할 때는 제법 잘하던 안 조련사가 어쩐 일인지 기우뚱거리며 불안해 보였다. 자유가 조금 크게 움직이면서 헤엄쳐 나가는 순간 안 조련사가 미끄러지듯 떨어져 물속으로 처박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다들 놀라 물속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안 조련사가 튀어나오며 손을 흔들었다.
“아, 수조를 도는 건 쉽지는 않네요. 헤엄치면서 움직임이 커지니 눈앞이 깜깜 해지더라고요. 흐흐” “지금은 수조 앞이라 수심이 얕지만, 만약 사람을 태우고 수심이 깊은 수조를 한 바퀴 돌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안경수 조련사는 자유가 헤엄치기 시작하니 균형 잡기가 어려웠다고 느낌을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쇼 팀장 눈 밖에 날까 조심스러워하면서 연습 시간을 늘려 누구든 안전하게 태울 수 있게 조련해야 한다고 너스레도 떨었다. 팀장한테 잘 보이려고 잘난척하던 사람이 슬슬 꼬리를 빼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걱정이 태산 같았다.
시범이 끝난 뒤 쇼 팀장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대도시에 있는 아쿠아리움은 이미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는데 기발한 발상이라고 칭찬했던 아이디어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닌가 좌불안석하는 모습이었다. 불안하기는 해진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겨우 호순이와 교감을 나누게 되었는데 혹시라도 호순이가 다시 마음을 닫아버리면 어쩌나 걱정이었다. 돌고래와의 교감에 반해서 조련사가 되었지만, 해진은 아직도 돌고래 앞에 서 있는 것이 꿈만 같다. 해양대학교를 갈 때까지만 해도, 멋진 항해사를 거쳐 도선사가 되는 것이 정해진 운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진은 요즘도 꿈속에서 종종 배를 타고 바닷길을 달린다. 아버지와 같이 망망대해를 달리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보이지 않아 바닷속을 허우적거리는 꿈을 꾸기도 한다. 아버지를 부르다 깨면 꿈이고 그런 날은 땀에 옷이 다 젖어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해진은 멍 때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 호순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호순이도 해진이처럼 화려하던 시절이 있었다. 광활한 바다를 자유롭게 누비며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꿈을 꾸기도 했을 것이다. 병코돌고래인 호순이가 살던 곳은 에메랄드 빛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호주 시드니의 ‘저비스 베이’다. 저비스 베이는 돌고래들이 살기에 최적인 곳으로 돌고래들의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돌고래들은 20년 전의 일도 기억한다는데 호순이도 저비스 베이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할까? 부모 형제들과 마음껏 헤엄쳐 다니던 바다를 떠나 이렇게 좁은 수조 안에 갇혀 있으니 얼마나 외롭고 답답할까?
“이제 정말 며칠 안 남았으니 모두 정신 차리라고! 이러다가 올해도 작년처럼 놀이 공원에 손님 다 빼앗길 수 있어.” 조련 팀장의 발 빠른 추진력에 밖에는 벌써 ‘돌고래 타기 체험 행사’ 현수막이 내걸렸다. 성질 급한 조련 팀장은 회사에서도 이번 행사에 사활을 걸고 있으니 훈련을 바짝 서두르라고 했다. 이번에 새로 선 보이는 쇼는 돌고래 하고 수영하기와 돌고래 타고 사진 찍기인데 생각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았다. 돌고래 타고 사진 찍기 체험은 성격 좋은 자유와 호순이, 멍이가 맡고 아직 어린 아롱이와 샛별이는 수영하고 노는 체험에 내보내기로 했다. 지난번에 자유한테 시도했던 것과는 달리 돌고래 등에 관람객을 태우고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고 나서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것으로 시간은 대략 5분에서 8분 정도로 잡았다.
이번 행사는 돌고래 체험 행사 경험이 있는 해진한테도 어려운 과제였다. 돌고래 중에서 가장 배려심 깊은 호순이가 행사 반장으로 뽑혔기 때문이다. 해진은 자꾸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성격 좋고 무던한 평화도 감당하지 못했는데 호순이가 과연 해낼 수 있을지. 상대의 마음을 읽고 교감이 가능한 돌고래를 놀이기구처럼 이용하는 것이 속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해진은 평소에도 의견 충돌이 있는 쇼 팀장과 어제저녁에도 한차례 언성을 높였다. 호순이 등에 아이들을 태울 생각에 흥분한 나머지 하마터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 뻔했다.
“팀장님은 돌고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세요? 돌고래의 지능과 성품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시냐고요?”
“돌고래는 자신이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동물이라고요.”
“바다에서는 40년을 사는 돌고래가 수조에서는 4년밖에 못 산다고 하는데, 그렇게 강제로 생명을 줄이는 것도 부족해서 놀이기구로 이용하는 것이 동물학대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흥분을 감추지 못해 목 근육에 핏대가 선 해진을 향해 팀장은, 그렇게 잘난 사람이 왜 이런 곳에서 돌고래나 조련하면서 사느냐고 삿대질을 해댔다. 쇼 팀장은 돌고래들은 사회성이 좋아 사람과의 유대를 좋아하고 그래서 스킨십을 많이 해주어야 한다며 해진한테 혼자 동물 애호가인 척 잘난 체하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서귀포에서 돌아오면서 해진은 우리나라도 동물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화를 조련하면서 돌고래가 사람한테 얼마나 호의적이고 사려 깊은 동물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먹을 것도 많고 규제가 없는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던 돌고래를 수족관에 가두어 쇼를 시키는 것만도 못할 짓인데 놀이 기구로 상품화하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직장 분위기는 어둡지만, 어머니의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초로기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는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도 자주 잊어버리고 백화점에 갔다가 길을 잃기도 했는데 요즘은 혼자 마트에도 다녀오시곤 했다.
어머니 상태가 안 좋을 때는 조련사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제는 어머니보다도 호순이가 더 걱정이었다. 자나 깨나 호순이 걱정인 해진은 돌고래가 불쌍해서 바다로 돌려보내 주고 싶은데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요즘 들어 부쩍 기운 없어 보이는 해진이 마음에 쓰였는지 오늘 아침에 어머니가 해진을 불러 앉혔다.
“우리 여기 다 정리하고 모슬포 가서 조용하게 살까? 작은 텃밭 하나 사서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고 그렇게 살면 행복할 것 같아”
“나, 거기가서 살면 아는 사람 만날 일이 없어 참, 좋을 것 같아”
“ 언제든지 맘대로 산책하고 귤밭에 나가서 일도 하고, 그러다가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수애기 카페에 가서 바다도 바라보면서 살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아는 사람을 안 만나서 좋을 거라는 어머니의 말에 해진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버지를 데려간 바다가 싫어 바닷가에서 멀리 이사를 했는데 모슬포에 가서 살자고 하는 어머니가 갑자기 안쓰러워 보였다. 시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아버지를 기억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어머니는 매번 울고 들어오신다는 것을 해진은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 말씀처럼 차라리 다시 평화한테 돌아갈까. 안 그래도 평화한테 미련이 많은 해진은 생각이 더 많아졌다.
매형 백을 믿고 나대는 쇼 팀장한테 잘 보여 한자리 꿰차려고 하는 조련 팀장이 힘을 실어주면서 체험 행사도 날개를 달았다. 아쿠아리움에 꼬마 친구들을 유혹하는 돌고래 모양 애드벌룬을 띄웠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자유와 호순이, 멍이도 곧잘 따라 했다. 워낙 머리가 좋은 애들이라 호순이가 하는 것을 보고 자유가 따라 배우며 나날이 기술이 늘어갔다. 성격이 좀 까칠한 멍이는 가끔 몸을 흔들어 조련사를 골려먹기도 했지만, 맛있는 생선 앞에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순해졌다. 호순이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응용해서 더 멋진 개인기를 만들어내는데 이번에도 한 바퀴 돌고 사진을 찍을 때는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윙크를 해 웃음을 선사했다.
소문을 듣고 몰려드는 관람객들로 쇼 팀장과 조련 팀장은 입이 귀에 가 걸렸다. 예약이 밀려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는 한 달에 한 번 평일 야간 공연도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며 생전 안보이던 본부장도 공연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주말 공연이 끝나면 소고기로 회식을 시켜주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해진은 하루에 다섯 차례씩 공연하고 지쳐있는 호순이를 볼 때면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트레스로 의욕을 상실한 호순이를 보면서 해진은 내년에는 호순이를 데리고 서귀포로 돌아가 돌고래들이 스트레스받지 않게 쇼의 체계를 잡아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아니, 얼마 전에 서귀포 바다에 방류된 남방큰돌고래 복순이처럼 동일리 바다에 방류해 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호순이가 평화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해진이 처음 만나던 날처럼 물방울을 튀기며 놀려먹을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의외로 반응이 좋아 꼬마 손님들이 넘치면서 팔월까지 두세 달을 쉬지도 못했다. 손님이 많아지면서 수당도 늘고 대우는 좋아졌지만, 몸이 너무 고달팠다. 마침, 월요일이라 쉬는 날이지만, 해진은 오징어 한 양동이를 들고 수족관으로 향했다. 해진은 얼마 전부터 식욕이 줄고 기운 없어 보이던 호순이를 위해 냉동 대왕 오징어를 특별 공수했다. 호순이가 좋아하는 오징어를 먹고 기운을 차렸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여느 날과 같이 대형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는 수족관을 지나 돌고래들이 있는 수조에 도착했을 때 해진은 처음 보는 이상한 풍경에 발걸음을 멈춰 섰다. 마치, 네 마리의 돌고래들이 몸 뗏목을 만들어 돌고래 한 마리를 태우듯이 떠 받들며 물 위로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돌고래들이 또 신기한 놀이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돌고래들이 떠받치며 수면 위로 들어 올리고 있는 돌고래는 눈을 감고 축 늘어진 호순이였다. 해진은 양동이를 집어던진 채 단숨에 수조로 뛰어 들어갔지만, 호순이의 심장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3년 전에도 돌고래 한 마리가 갑자기 폐사하는 바람에 슬픔에 빠진 동료 돌고래들이 쇼를 거부해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또 이런 일이 벌어지니 관리 팀장의 얼굴이 흑색으로 변했다. 더구나 얼마 전부터는 돌고래쇼가 동물보호법에 위반된다며 곳곳에서 시민단체가 들고일어났다. 해마다 늘어나는 돌고래 폐사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시민단체는 돌고래를 방류해야 한다는 캠페인까지 벌여 여간 민감한 일이 아니었다. 호순이의 주검을 확인한 본부장은 직원들한테 모두 입조심하라고 지시하고 흐느끼는 해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본부장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고통스러운 해진은 장화를 벗어던지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 안녕, 수애기!”
“ 나의 호순이!”
“ 다음 생에는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던 푸른 바다에서 자유롭게 만나자!”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이곳을 떠날 것을, 죽을 만큼 괴로워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몰라준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에 입안에서만 맴돌던 말을 흐느끼듯 쏟아내고 나니 해진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마구 솟구쳤다.
*수애기: 돌고래의 제주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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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말이 통하지 않는 생명에 대해, 그들에게서 잠깐의 위안과 즐거움을 얻고자 그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고등동물인 우리 인간들의 이기심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인물들의 성격과 주제가 잘드러나는 좋은 소설 잘 읽고 갑니다~~♡♡
여행지에서 돌고래 쇼를 관람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돌고래의 지능이 그렇게 높은 줄은 몰랐는데 취재하면서 많이 놀랐고 충격을 받았어요. 어쩌면 인간보다 더 모성애가 강한 돌고래의 삶을 보면서 돌고래 쇼는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글을 보니 해진이한테 푹 빠져 살았던 시간들이 쏙쏙 머리를 드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읽게 되나 궁금했었는데 올려주셨네요.
돌고래의 지능이 높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높네요.
치밀한 구성,
등장인물(돌고래)의 배열 등 잘 읽었습니다.
퇴고가 부족해서 많이 아쉬웠던 글인데 그래도 내보내야 할 수밖에 없네요. 부족한 글을 따뜻하게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올해는 선생님의 글에 날개가 달리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생명이지만 그들도 인간처럼 감정을느낀다니, 애처로운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소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감명있게 잘 읽었습니다. ^^
맞아요.돌고래는 말은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감정으로 느낄 수 있는 영특한 생명체이죠. 취재하는 동안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코로나 시기에는 돌고래 쇼가 중단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