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순례 #.세종시 연화사 #.보물 제 649호무인명 불비상 및 대좌. #.보물 제 650호 칠존불비상
보물 제649호 세종시 연화사 무인명 불비상 및 대좌.
무인명(戊寅銘) 불비상과 대좌는 원래 세종시 연서면 쌍유리의 절터에 있던 것을 연화사로 옮겨온 것이다. 불비상은 지붕돌과 몸돌, 받침돌을 따로 제작해 조합한 형태이다. 몸돌 윗부분에 나 있는 네모 형태의 홈은 원래의 지붕돌을 고정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됐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몸돌과 받침 돌도 처음부터 함께 조성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받침돌 윗부분과 몸돌 아래 부분이 정확하게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인명 불비상은 앞면에 불좌상과 권속들이 표현돼 있다. 양쪽 옆면 윗부분에는 불좌상이, 아랫부분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보살반가사유상과 권속들이 조각돼 있다.
해서체의 명문은 장방형의 구획 속에 음각선을 세로로 그어 4개의 명문대를 만든 다음 새겨 넣었다.
전체 내용에 대한 판독이 불가능해 구체적인 조성 목적은 알 수 없지만 아미타불상과 미륵보살상의 존명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죽은 사람들의 정토왕생과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 불비상 앞면에는 방형 대좌 위에 가부좌한 불상을 중심으로 제자상과 보살상이 각각 양 옆에 서 있다.
그 아래쪽에는 서방극락정토의 극락연지(極樂蓮池)와 그 속에서 피어난 연꽃들이 묘사돼 있다. 불상의 위쪽에는 천개(天蓋) 장식이 표현돼 있다. 불상은 머리와 상체 일부분이 마모되어 있다. 전체적인 비례는 적절한 편이나 상체와 하체, 대좌는 장방형의 벽돌을 쌓아 놓은 듯 경직된 분위기이다.
이러한 느낌은 공간적인 제약에 따른 표현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불상은 통견식(通肩式)으로 법의를 착용하는데 옷 주름은 복부 중앙에서 자 형태를 그리며 양다리와 대좌의 윗부분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이러한 대좌 형식을 상현좌(裳懸座)라고 한다
오른손은 가슴 앞까지 들어 올렸으며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내려놓았다. 원형 의 두광은 내원과 외원으로 이뤄져 있다. 내원은 12개의 연꽃잎으로 장엄되었는데 백제 연화문의 조형적 인 특징을 갖춘 짧고 넓은 형태이다. 광배 좌우에는 천개 장식의 드리개가 표현돼 있다.
불상을 향해 서 있는 제자상들은 대의(大衣)와 군의(裙衣)를 입고 있으며 두 손에는 무엇인가를 들고 있다. 제자상들은 원형의 두광을 갖추고 있으나 얼굴은 마모가 심해 표정을 알수 없다. 그 바깥쪽에는 극락연지(極樂蓮池)에서 피어난 연꽃이 있으며 이 꽃을 대좌로 삼아 보살상들이 서 있다.
좌협시 보살상은 정면 을 바라보고 있으며 우협시보살상은 불상을 향해 몸을 살짝 틀고 있다. 보살상들도 마모가 심하여 얼굴 표정과 착의법을 알 수 없다. 다만 늘씬한 자태에 섬세하게 표현된 법의를 입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불좌상 아래쪽에는 凹 형태의 구도 속에 잔물결이 출이는 극락연지가 표현돼 있다. 연지는 향로 형태의 연꽃을 중심으로 넓고 큰 연잎으로 채워져 있다. 양쪽 가장자리에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자상이 조각돼 있으나 마모가 심해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가 없다.
양쪽 옆면에는 복련(覆蓮)의 중대석을 갖추고 있는 대좌 위에 가부좌한 불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은 적절한 신체 비례와 안정된 자세를 갖추고 있다. 얼굴은 마모가 심해 그 표정을 알 수 없으나 낮고 편평한 육계를 갖춘 부드럽고 둥근 형태이다.
통견식으로 법의를 착용했으며 선정인(禪定印)을 결하고 있다. 명문이 새겨진 구획 아래쪽에는 격자 형태의 난간이 조각돼 있다. 뒷면은 주제만 다를 뿐 구도와 표현 방식이 앞면과 같다. 중앙에는 연지에서 솟아나온 연꽃 위에 반가사유상과 권속들이 새겨져 있고 그 윗부분에는 천개 장식이 표현돼 있다.
연지에 표현된 물결 모습과 직사각형에 가까운 반가사유상의 경직된 표현은 앞면의 아미타불상과 많이 닮았다. 반가사유상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상체에는 천의(天衣)만 걸치고 하체에는 군의를 입고 있다. 왼발은 내려뜨렸으며 왼손으로 오른쪽 발목을 잡고 있다. 오른손은 오른쪽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얼굴은 마모가 심해 그 표정을 알수가 없다. 각진 넓은 어깨와 가는 허리, 근육질의 상체를 갖추고 있다. 또한 2개의 테두리선으로 둘린 원형의 두 광을 갖추고 있는데 16개의 연잎으로 이뤄진 연화문으로 장엄돼 있다.
반가사유상 양옆에는 복련의 연화좌 위에 공양보살상이 호궤(胡跪)의 자세로 앉아 있다. 이들 보살상은 중앙의 반가사유상을 향해 한쪽 다리는 세우고 다른쪽 다리는 꿇어앉은 자세로 공양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협시상은 손향로로 보이는 무엇인가를 들고 있으며 좌협시 상의 것은 마모가 심해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받침돌은 단판의 앙련과 복판의 복련을 맞붙여 놓은 연화대좌로 이뤄져 있다. 윗면에는 몸돌을 고정하기 위한 장방형의 홈과 홈의 앞쪽에 나있는 네모난 구획 속에 연꽃잎이 새겨져 있으며, 그 양쪽에는 원형과 방형의 구멍이 각각 하나씩 파여 있다. 나머지 공간에는 연실(蓮實)로 추정되는 작은 원들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 윗면에 표현된 내용들이 몸돌의 도상들과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홈의 크기도 몸돌 아랫면 의 촉보다 크기 때문에 처음부터 몸돌과 함께 조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받침돌도 조형 적인 특징으로 미루어 보아 7세기 후반에 조성됐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것과 함께 조성된 또 다른 몸 돌의 불비상이 존재하을 가능성을 추측하게 한다. 무인명 불비상은 앞면의 아미타불 설법상과 뒷면의 미륵사상과 관련되는 반가사유상으로 이뤄진 매우 드문 존상이다. 불비상이 조성되던 문무왕 18년(678)경에는 신라에서 아미타정토신앙과 미륵사상이 공존하면서 유행하던 시기이다. 무인명 불비상은 이러한 도상적인 특징과 함께 백제 유민에 의해 조성된 중요한 기년명 불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