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2대 신부로 땀의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가 순교한 용산 당고개 성지가 아파트 촌으로 변신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때 최경환, 이성례 부부 사이에는 맏아들인 최양업 신부외에 5명의 아들이 더 있었고, 당시 최양업 신부는김대건, 최방제와 함께신학생으로 선출되어 마카오에서 수학중이었다.
< 새로 건축된 당고개 성지 >
최경환, 이성례 부부와 5명의 아들은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서울 좌포청에 잡혀 온갖 고문 속에서도 배교를 하지 않았으나, 막내인 세살짜리가 이성례 마리아의 빈젓을 빨다 울어지쳐 옥에서 굶어 죽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고 사랑하는 막내 아들을 잃어 실성한 이성례 마리아는 나머지 4명의 아이들을 살려야겠다는 모성애로 잠시 배교를 하여 풀려났다.
한양 도성 내에서 걸식하며 아이들의 주린 배를 채우며...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남편 최경환을 생각하며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의리, 주님에 대한 사랑...사제 수업을 받는 맏아들 최양업에 대한 애정과 믿음....
그러나 어리고 어린 4명의 아들들은 아직도 응석받이로 매일 저녁 어머니를 찾고...고사리같은 아이들의 생명을 살릴 수밖에 없는 모성애로 인한 배교에 대해 매일 밤...눈물로 회개했을 믿음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는....
4명의 아이들이 걸식 행위를 하러 밖에 나간 사이에 남편 최경환이 잡혀 있는 옥사로 다시 찾아가 본인은 천주교인으로 하느님을 배신할 수 없다며 스스로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아이들이 매일 옥에 찾아 오고....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다시는 옥에 찾아 오지 말라며...너희들을 보면 나의 신앙이 흔들릴까 두렵다고...
< 철거전의 당고개 성지 >
어느날, 둘째 아들 야고보가 잔치집에 가서 구걸하여 얻은 찹쌀떡 한 개를....집에서 기다릴 동생들을 생각하여 먹지 못하고, 동생들에게 가져다 주려고 뛰어 가는 사이에...
옥에 갇힌 어머니를 생각하니 목에 겨워 먹지도 못하고, 눈물에 젖은 찹쌀 떡을 속옷에 숨겨 옥에 있는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에게 가져다 주었는데....어머니도 아들의 떡을 보고 눈물만 흘릴 뿐...먹지 못하고, 동생들에게 가져다 주라고 할 뿐....
눈물을 흘리고 있던 14세의 둘째 아들 야고보에게 네 맏형 양업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형제들끼리 서로 사랑하고,네가 지키고 함께 살아라.....그리고 주님과 성모 마리아님을 믿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라고....
그리고 다시는 찾아 오지 말라고....
어머니의 참수의 날이 다가오자...이성례 마리아의 아들인 야고보는 동냥하여 얻은 동전 두 닢을 가지고 옥사장을 찾아가 내일 참수를 집행할 망나니가 누구냐고 묻고....어린 것의 안타까운 사연을 아는 옥사장은 희성이라는 망나니의 집을 알려 주고....한 밤 중에 망나니 희성을 찾아간 야고보는 동전 두닢을 내밀며....내일 참수 당할 여인 중에 이러 이러하게 생긴 분이 저희 어머니이니 고통없이 단 칼에 죽여 주세요라고 부탁하고....
그 날 밤, 망나니 희성은 야고보의 효심에 감동하여약속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밤새 칼을 석돌에 갈았다는....그래서 다음 날,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는 단 한번의 망나니 칼에 목이 잘리고 하늘 나라 약속의 땅으로 가시고.....
먼 발치에서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의 죽음을 바라보던 둘째 아들 야고보는 눈물을 흘리며 동생들이 있는 집으로 달려갔고....어린 동생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모른 채....어머니가 언제나 집에 오냐고 채근되고....야고보는 동생들을 부둥켜 안고 소리내어 울 수 밖에 없었는데...
당시 어린 것들도 천주교인들에 대한 참수형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알고 있어...동냥짓을 하여 얻은 동전을 들고 그 무서운 사람 백정인 망나니를 찾아가 고통없이 어머니를 죽여 달라 했을까....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종은 망나니의 칼에 목이 반쯤 잘린 채로 다시 일어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호를 긋고 다시 두번째 칼을 맞고 목이 잘려 순교했으며,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8번의 칼을 맞고서야 목이 잘렸다.
순교하신 분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테지만, 이를 지켜 보던 성도들이나 그 가족의 고통은 가슴이 미어지리라 생각된다.
중국에서 김대건 신부로부터 부모의 순교를 들은 최양업 신부는 부모의 순교에 동참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한국 순교자전을 번역 집필했고, 어린 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하루 빨리 조선으로 입국하려 애를 썼지만 7번의 조선 잠입의 실패로 인해 5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후 육로 잠입을 포기하고 배를 타고 조선으로 들어온 최양업 신부는 12년 이상을 일주일에 삼일 이상을 잠도 자지 않은 채, 팔도에 흩어쳐 사는 교우촌을 방문하고 전도하며 조선의 천주교 신앙을 공고히 만들다 40세의 나이로 과로에 의한 장티푸스로 죽었다.
부모의 순교와 최양업 신부의 믿음의 씨앗은 28명의 사제와 수도사를 배출한 믿음의 가문으로 현재 남았다.
아이를 안고 있는 한복 차림의 어머니.... 그 눈에는 넉넉하고 따스한 사랑이 넘친다.
엄마의 품을 파고드는 갓난아이와 엄마가 어디라도 멀리 갈세라 치맛단을 잡은 채 한쪽 다리를 든 계집 아이….서울 용산구 신계동 당고개 순교성지의 성모자상이다.
성모자상은 한국적인 어머니의 품을 형상화했고 뒤편에는 고즈넉한 한옥이 들어서 있는데... 벽은 옹기와 도자기 조각을 이용해 황토 빛의 토속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10명의 천주교인이 이 자리에서 순교했고 권진이(아가타) 손소벽(막달레나) 등 9명은 성인 반열에 올랐고, 이곳은 서소문 밖 네거리와 절두산, 새남터와 함께 서울의 가톨릭 4대 순교성지로 꼽힌다.
한국적인 순교성지가 조성된 것은 당고개성지에 얽힌 사연 때문인데.... 순교자의 한 명인 이성례 마리아는 두 번째 한국인 신부인 최양업의 어머니다.
순교자 이성례 마리아는 한국적인 모성과 신앙을 동시에 상징하는 인물로....현 시대에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신앙이 무엇이길래...어린 것들을 놔두고 죽어야 했는지...무섭다라고...
그러한 부분이 이성례 마리아의 배교와 순교가 오버랩되면서 더욱 아프게 가슴에 와닸는 것이다.
비록 나는 천주교인은 아니지만...성인, 비성인, 이 또한 사람들이 갈라 놓은 것이지만...하늘 나라 천국서 잘 살면 그뿐이라고 자위하지만....이성례 마리아님이 성인이 못 될 이유가 없다.
그녀의 남편 성인 최경환과 부부의 끈을 위해서라도 그녀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고 싶다.
그리고...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믿음의 선조 이성례 마리아님의 신앙의 삶을 생각하며 나도 저런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고민해 본다.
순교자 이성례 마리아는 한국적인 모성과 신앙을 동시에 상징하는 인물로....현 시대에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신앙이 무엇이길래...어린 것들을 놔두고 죽어야 했는지...무섭다라고...
그러한 부분이 이성례 마리아의 배교와 순교가 오버랩되면서 더욱 아프게 가슴에 와닸는 것이다.
비록 나는 천주교인은 아니지만...성인, 비성인, 이 또한 사람들이 갈라 놓은 것이지만...하늘 나라 천국서 잘 살면 그뿐이라고 자위하지만....이성례 마리아님이 성인이 못 될 이유가 없다.
그녀의 남편 성인 최경환과 부부의 끈을 위해서라도 그녀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고 싶다.
그리고...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믿음의 선조 이성례 마리아님의 신앙의 삶을 생각하며 나도 저런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