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이나 일요일 새벽 틈나는 시간이 있으면 나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유칼립투스 교목 숲을 찾는다.
울창한 숲의 품에 안기기도 전 마중 나온,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신선하고 향긋한 냄새부터 서늘한 바람과 함께 나를 숲으로 안내한다. 그 숲은 완만한 경사지로서 숲 가운데로 구불구불 등산로가 모래와 자갈이 적당히 혼합된 비포장길을 따라 가노라면 높고 낮은 야생화꽃밭이 펼쳐져 있고 가끔 나타나는 사슴을 비롯하여 토끼, 고라니 등 여러 짐승을 만날 수 있고,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은 의연한 그 모습이 신기하게까지 느껴진다.
일 년 중 6월부터 8월 중순까지 이 숲에서 일어나는 경이로운 대역사의 현장은 찾을 때마다 항상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자아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곤 한다. 유칼립투스의 껍질 벗기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때가 도래하면 온 숲이 크고 작은 흰색의 나무껍질이 산산이 흩어져 어느 것은 나무에 매달려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야생화의 이불이 되어 그의 피곤을 다독이기도 하고, 또 따른 것은 숲을 찾는 방문객의 길잡이가 돼주고 있다.
나무껍질의 큰 것은 길이가 30cm쯤 폭이 20cm쯤 넓은 것에서부터 함박눈만 한 자잘한 껍질들이 지천으로 널려있고 밟기만 하면 금세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리고 만다.
새로 자란 순을 제외한 모든 잔가지서부터 뿌리 윗부분까지 하나도 남김이 없이 껍질 벗기 의 작업은, 시작에서부터 맺음 까지 처절하고 아픈 자신과의 싸움이 매년 어김없이 일어나고, 새 옷으로 단장한 나무의 우윳빛 맑고 청아한 색깔은 도약을 위한 힘의 용트림이 보이고 생명의 환희가 무한히 넘쳐 흐름을 본다.
자라기 위한 나무의 자연적인 현상이겠지만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날마다 반복되는 옳지 못함을 묵과하면서 지나고 나면 후회하는 나에게, 무언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유칼립투스의 경이로움에 절로 머리가 숙어진다.
반백이 넘어 20년이 지나도록 고집과 아집, 욕망과 편견에 찌든 더러운 껍질을 저 나무처럼 전부 벗어버리지 못하고 그 두꺼운 껍질 위에 하얀색 물감으로 채색 만을 되풀이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부끄럽고, 자신이 너무 가여워 교목을 끌어안고서 한없는 회한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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