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俗古家
민속촌의 옛집
移建民家築一園
민가를 옮겨와 정원을 조성하여
使人爲藉顧根源
사람들로 하여금 근원을 알게 하니
松亭鵲屋龜溪院
쌍송정과 까치집 구계서원은
默默遺存倍達魂
말없이 배달혼을 전해주고 있네
[집은 고향을 잃지 않는다]
집에도 고향이 있을까.
늦은 오후,
영남대학교 민속촌의 숲길을
걷다가 한 채의 집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기둥은 검게 익어 있었고,
처마 끝에는 오래 묵은 빗물이
지나간 자국이 엷게 남아 있었다.
사람의 손때는 사라진 지
오래였으나,
집은 어쩐지 누군가를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집을
사람이 사는 곳이라 말한다.
비바람을 막고,
밥을 짓고,
잠을 이루는 자리.
그러나 오래된 집 앞에 서면
그 말의 순서가 조금
바뀌는 듯하다.
사람이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집이 사람의 한 생을 품고
견디는 것처럼 느껴진다.
집은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마루에 비스듬히
내려앉던 햇살을 기억하고,
처마를 스치며 지나던
바람의 결을 기억한다.
아이가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가던 발소리,
저녁 짓는 연기,
대문 밖에서 한참 머뭇거리던
누군가의 그림자도 기억할 것이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집은 쉽게 비어지지 않는다.
떠난 이들의 시간이
벽과 기둥 사이에 얇은 먼지처럼
내려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집들은 먼 곳에서 왔다.
안동의 산자락에서,
봉화의 깊은 솔숲에서,
경주의 오래된 마을에서.
물이 차오르기 전,
마을이 지도에서 사라지기 전,
집들은 하나씩 해체되어
낯선 길을 건너왔다.
기와는 내려지고
기둥은 뽑혔으며,
익숙했던 마당의 흙은
뒤에 남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집은 옮겨졌어도
그 안에 깃들었던 시간까지
옮겨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전’이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집을 옮겼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집들은 스스로
긴 여행을 떠난 것인지도 모른다.
제 몸을 이루던 나무와 돌을
하나씩 나누어 실은 채,
오래 머물던 땅을 뒤로하고,
물에 잠길 마을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그 긴 여행 끝에
다시 세워진 집들은
이제 대학의 숲속에서
다른 계절을 맞고 있다.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의 끝에서
쌍송정을 만났다.
정자는 낮고 고요했다.
바람이 먼저 들어와 앉고,
햇살이 한동안 마루를 더듬다가
떠나는 곳.
봉화의 산자락에 있을 때에도
이 정자는 그러했을 것이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조금 비켜난 자리에 앉아,
한 사람이 책장을 넘기고,
먼 산을 바라보고,
말을 아끼던 시간.
정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붙들지도 않고,
무엇을 이루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다만 비워 둔 자리로
사람을 맞는다.
그 빈 마루에 앉아 있으면,
바쁘게 흘러가던 마음도
잠시 속도를 잃는다.
우리는 늘 무언가로
자신을 채우며 살아가지만,
때로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은
채움이 아니라
비어 있음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한때.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곁.
마음속에서 오래 웅크리고 있던
생각을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
정자는 그런 것을
가르치는 듯했다.
조금 더 걸어가면
까치구멍집이 나타난다.
초가지붕 용마루 끝의
작은 구멍.
처음에는 그저 낡은 집의
한 부분처럼 보이지만,
그 작은 틈으로
집은 숨을 쉬었다.
부엌의 연기가 빠져나가고,
갇힌 습기가 흐트러지고,
어둠 속으로 가느다란
빛이 스며들었다.
집은 완전히 닫혀 있을 때
가장 먼저 병이 든다.
그 사실을 옛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붕 한쪽에 하늘을 향한
작은 틈을 남겨 두었을 것이다.
바람이 드나들 길 하나,
연기가 빠져나갈 길 하나,
너무 답답해지지 않도록
마련해 둔 작은 여백 하나.
그 앞에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을 단단히 여미는
일에 익숙하다.
슬픔은 들키지 않게 접어 넣고,
약함은 아무도 보지 못할 곳에
감춘다.
괜찮다는 말을 먼저 배우고,
무너지지 않는 얼굴로
하루를 통과한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속에 오래 갇혀 있던
것들이 숨 쉴 곳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에게도
까치구멍이 필요하다.
울어도 되는 밤 하나.
기댈 수 있는 어깨 하나.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 있어
주는 사람 하나.
거대한 위로가 아니라,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같은 것.
한마디의 따뜻한 말이
어떤 이의 긴 겨울을 건너게 하고,
잠시 멈추어 주는
마음 하나가
한 사람의 하루를 살리기도 한다.
민속촌 깊숙한 곳에서
구계서원을 만났을 때,
마당에는 고요가
먼저 와 있었다.
오래전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글을 읽고, 묻고,
답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원의 기둥과 문턱은
오늘의 우리에게 다른 질문을
건네는 듯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끝내
잃지 않고 살아가느냐고.
사람은 살아가며
수많은 것을 배운다.
이름을 외우고,
길을 익히고,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몸에 넣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는 것은,
배움이란 머리에 쌓이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조금 더 천천히 말하는 법,
떠나는 이를 오래
바라봐 주는 법,
자신의 삶을 함부로
미워하지 않는 법.
그런 것들은
책의 문장보다 늦게 오고,
때로는 상처를 지나서야
비로소 마음에 새겨진다.
오래된 서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침묵 속에서,
오래 살아남은 것들이 지닌
느린 품위를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집들을 돌아보며
내 삶에 흩어진 집들을 떠올렸다.
어린 날의 낮은 대문,
어머니의 목소리가 머물던 부엌,
어느 겨울 저녁 창문에
성에가 피어오르던 방.
그 집들은 대부분 떠나왔고,
어떤 집은 이제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문이 열리고 마당에 빛이 든다.
사라진 것은 집의 주소였을
뿐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했던 사람의 말투와
견뎌 낸 계절의 냄새,
너무 아파서 잊고 싶었던
순간들조차
마음의 깊은 곳에서
저마다의 방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낯선 도시로 옮겨 가고,
이전과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수많은 이별을 지나온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떠나지 않는다.
집이 고향을 잃지 않듯이.
안동의 산자락을 떠난 집은
그 산의 바람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봉화의 숲을 떠난 정자는
여전히 솔향을 품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땅 위에 다시 세워졌지만,
집은 이전의 시간을
버리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제 안에 품은 채
다른 계절을 맞이하고 있을 뿐이다.
고향은 돌아가야만 하는
장소가 아니라,
끝내 우리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늦은 오후의 빛이
다시 처마 끝에 내려앉는다.
나무 기둥의 그늘은
조금씩 길어지고,
숲은 저녁 쪽으로
천천히 기울어 간다.
집들은 말없이 서 있다.
오래된 침묵으로,
떠나온 것들을 잊지 않는 방식으로.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듣는다.
집은 고향을
잃지 않는다고.
우리 또한,
어쩌면 그러하다고.
https://youtu.be/0_5Eotrl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