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詩集『혼자 춤추는 異邦人』
자기 확인의 역설
박 명 용
(시인. 대전대학교 교수)
시집 제목은 그 시집의 얼굴이요, 시가 지향하는 바를 암시한다. 그리고 독자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인적 기능과 함께 시 전체의 의미를 함축하여 그것을 암시해주고 있다는 의미에서 시집 제목은 시의 총체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김송배의 다섯 번째 시집『혼자 춤추는 異邦人』(도서출판 문단)은 그 제목부터가 희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이 아님의 역설로 되어 있다. 춤은 대체적으로 응화와 조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혼자'가 아니라 '다수'일 때 더욱 더 효과적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이 시집 제목은 어딘가 '낮설음' 그 자체가 되어 희극적 요소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시집을 정독해보면 인식의 문제로서 '존재 긍정'의 역설임을 알아차릴 수 있어 삶의 진리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한다.
갈대처럼
천성적 연약함으로 너는
비옥한 저 들판에서
서지 못하리라. 서지 못하리라
이것은「갈대, 눈물로 흔들리다. 1」의 앞부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천성적으로 나약한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비옥한 땅이 아니라 모래밭이나 자갈밭 또는 진흙에서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자라야 하는 무관심의 대상이 곧 '갈대'다. 그래서 갈대는 어쩌면 운명적이라 할 수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허구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와 '우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에 있어 '갈대'는 바로 우리 인간들의 자화상인 동시에 그것을 생성하는 진흙밭은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라 해야 할 것이다.
갈대는 누워서도
서럽게 울고 있었다
바람이 없는 날도
언제나 내 곁에서 우는 울음
산골 깊은 밤을 흔들고
문득 내 앞에 쓰러지는 메아리
갈대는 그렇게
서서도 누워서도 잠들 수 없는 아픔
산그늘이 지고 가끔 응시하는 섬뜩한 달빛
어쩌면 산짐승 밤 울음으로
그리움만 쌓아가는 눈물겨운 사랑
아아, 그것이 무상을 동반자로 안내하는
내 유일한 운명의 가락일지도
천국에서까지 서럽게 울려 퍼질 노래
내가 간직하여야 할 사랑의 참회였느니.
--「갈대, 눈물로 흘들리다 · 2]」전문
여기에서의 갈대는 '서서도 누워서도' 울 수밖에 없는 허무의 존재다. 이것은 곧 존재 확인의 증표다. 존재 확인이 불가능할 때는 아픔의 통증도 울음도 울 수 없는 숙명 적 비관론자의 정지된 상태이나 자기 확인 작업은 곧 돋아나는 '새움'과 '나의 어머니'로 돌아간다.
나뭇가지마다 돋는 새움은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의 슬픔을 생각하지 않는다
산으로 들로 이어지는 생명의 신비만 햇살에 반짝인다.
--- (중략) ---
오, 이 가을 다시 돋아야하는 생명의 아픔을 알겠다
눈물 지우며 뒤돌아보는 어머니
나의 어머니
--「갈대, 눈물로 흔들리다 . 5」중에서
시인의 눈은 유한한 인간인 자신을 돋아나는 '새움'을 통해 무한의 미래영역으로 이끌면서 존재를 긍정한다. 새싹은 본래 일정기간의 휴면을 거쳐 자신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각질을 깨고 새롭게 태어난다.
이러한 생명의 '새움'은 궁극적으로 모진 산고를 겪은 어머니로 비유되어 탄생되어지는 것이다. 즉 아픔을 감싸 안은 어머니의 희생은 곧 우리들의 생명인 것이다. 이렇게 시인의 자아확인은 산과 들 어느 곳이건 돋아나는 '새움'이며 나아가 인류의 '품안에 가득 담긴 사랑'인 것이다.
네 청순한 품안에 가득 담긴 사랑
그 사랑은 질이나 양으로 아니면
무게나 부피로 어느 정도냐고 물으며
바람이 날마다 곁에서 보챈다.
--- (중략) ---
그 신비한 생명의 찬연함을 느낌으로 눈치 챘네
비록 연약한 심연에 되비친
사랑의 나무숲을 보았다해도
잠시 비쳤다가 꺼져버린 채
어렴풋이 짐작되는 한 생명임을 알겠네
사랑을 감싸고 흐르는 눈물임을 알겠네
--「갈대, 눈물로 흔들리다 · 13」중에서
사랑은 인간에게 필요한 최대의 공약수다. 그러나 그 언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도의 추상성 때문에 혼돈하고,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그 '질이나 양' 또는 '무게나 부피'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여기서 시인은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것이 인간의 '심연'에 내재된 '생명'을 감싸고 있는 '사랑'임을 확신한다.
시인의 이러한 질문과 '알겠네'의 응답은 존재인식의 결과라 할 수 있는데 그의 의식 체계는 현실(갈대의 척박한 곳에서의 삶)-숙명적 허무(서서도 누워서도 잠들 수 없는 아픔) -긍정적 생명 (나뭇가지마다 돋는 새움, 나의 어머니)-사랑의 눈물(사랑을 감싸고 흐르는 눈물)로 변용 되면서 부정과 긍정이 통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존재론적 사유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갈대를 통해 자기 존재의 긍정과 현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생명'과 '사랑'으로 귀결 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던져준다.
그래서 『혼자 춤추는 異邦人』의 역설은 이 시대의 허구 앞에 진실이 삶에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주고 있다는 데 그 심오한 뜻이 있다.('95.4. 『예술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