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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익산향토문화연구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귀희
국립제주박물관[國立濟州博物館]
제주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국립박물관. 겨울 날씨답지않게 따뜻하던 제주날씨가 이른 아침부터 추적주적 비가 내리고 있다. 제주대학 옆에 자리하고 있는 국립제주박물관. 제주시 사라봉공원 부근에 제주 전통민가 형상으로 지어져 제주의 토착 역사·문화를 종합적으로 소개·전시하는 고고·역사박물관으로 2001년 6월 15일 개관하였다. 대지 5만 572㎡, 연건평 9,287㎡,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에 2511건 7231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개방적인 해양문화와 제주문화의 형성과정을 문화사 발전단계별로 볼 수 있도록 대공간전시실·선사고대실·탐라실·조선시대실·기증실·기획전시실· 야외전시장 등으로 구성하였다.
전시실 입구 대공간전시실에는 제주읍성 축소모형을 설치해 놓아 제주의 성곽, 건물, 민속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선사고대실에서는 고산리 출토 석기, 북촌리· 상모리유적 출토품, 삼양동유적 출토유물과 대단위 취락모형 등을 통해 제주의 자연환경과 선사문화가 전개·발전되어 온 과정을 볼 수 있다. 탐라실에서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동안 발전한 제주 탐라문화의 형성과 발전, 고려시대의 제주 관련 유물을 전시한다. 곽지리유적 출토품, 용담동 선사무덤유적·고내리유적·신창리해저유적과 제주의 불교유물, 탐라의 옛 지도 등이 있다.
제주민속박물관[濟州民俗博物館]
1964년 민속학자 진성기(秦聖麒)가 제주시 삼양3동(三陽三洞)에 설립한 사립 민속박물관. 대지 3,960 m2, 연건축면적 660 m2, 소장유물 1만여 점. 1층은 특별전시장, 2 ·3층은 상설전시장으로 사용하는데, 상설전시장에는 제주 고유의 민속자료 3,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품은 대부분이 대나무 ·볏짚 ·돌 등으로 만든 서민용품들이다. 민속유물은 의식주 등의 기본생활용구, 농업 ·수산 ·상업 ·목공용의 생업생활용구, 신앙생활용구, 관혼상제용구, 유희용구(아동에서 성인용까지), 기타 등 6개 분야로 분류, 전시한다. 전시유물 가운데 가죽감태(가죽감투) ·갈옷(가죽옷) · 고수리(민가의 소주증류기) ·태왁(해녀용 뒤웅박) ·애기구덕(어린이 요람) · 남태(땅을 다지는 농기구) ·울쇠(무속악기) 등은 제주 고유의 생활용구이다. 한편 연구기관인 제주민속연구소에서는 제주의 무형 ·유형문화재 1만여 편을 수집하여 민속 ·신화 ·전설 ·민요 ·무가 등으로 분류하여 18권의 《제주민속총서》를 펴냈다.
관덕정[觀德亭] 보물 제322호
제주시 삼도일동(三徒一洞)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 정면 5칸, 옆면 4칸, 단층 팔작지붕 양식이다. 긴 대석으로 앉힌 기단 위에 세운 정자로 주위 4면이 모두 트여 있다. 기둥 윗몸에는 창방(昌枋)과 그 밑에 인방(引枋)을 짜 돌렸으나 평방(平枋) 없이 주두(柱頭)를 얹어 공포(栱包)를 배치하고, 정형화된 이익공(二翼工) 형식으로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쳤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화반(花盤)을 3개씩 배치하여 건물의 옆면과 뒷면에서 보면 장화반(長花盤)의 형태이다. 또 화반 위에서 운공(雲工)이 뻗어나와 외목도리를 받게 하였으며 그 위에 서까래와 부연(附椽)을 걸었고, 서까래의 끝은 모두 처마의 선과 똑같게 잘라져 있는 것이 색다르다. 옥내에는 앞뒤 2줄로 4개의 큰 기둥을 세워 그 위에 대들보를 걸었다. 대들보 위에는 동자기둥[童子柱] 모양의 대공을 세워 종량(宗樑)을 받쳤고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큰 기둥들과 주위 기둥은 퇴량(退樑)으로 연결하였고, 옆면 중앙의 기둥에서 대들보에 걸쳐 충량(衝樑)이 가설되어 있다.
제주목관아[濟州牧官衙址] 사적 제380호
제주시 삼도(三徒) 2동 43-3번지에 있는 조선시대 제주도 행정중심지이던 관아 터. 지정면적 1만 9,533 m2. 제주대학 조사단이 1991년 10~12월과, 92년 5~12월의 2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탐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여러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이와 함께 조선시대 제주목관아의 주요시설인 동헌(東軒), 내아(內衙) 건물터 등의 위치와 규모가 확인됨으로써 이곳이 고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한 중요한 유적지였음이 밝혀져, 이 곳 남서쪽에 있는 관덕정(觀德亭):보물 322)도 포함하여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1435년(세종 17) 고득종(高得宗)이 쓴 《홍화각기(弘化閣記)》에 따르면 제주목의 관아 시설들은 총 58동 206칸 규모였다. 또 현존의 관덕정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이익공(二翼工)건물로서 처마가 긴 것이 특징인데, 48년(세종 30)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창건된 것이다.
제주목관아 연희각[濟州牧官衙延曦閣], 제주목관아 영주협당[濟州牧官衙瀛洲協堂] 제주목관아 홍화각[濟州牧官衙弘化閣] 등이 있다.
제주목관아 귤림당[濟州牧官衙橘林堂]
조선시대 제주지방의 정치·행정중심지였던 제주목(濟州牧)관아의 복원사업을 통해 재현된 건물이다. 제주목사가 시를 짓고,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면서 풍류를 즐기던 장소였으며, 뒤쪽에는 국과원(國果園) 중 하나였던 감귤밭이 있었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1743년(영조 19년), 1769년(영조 45년), 1842년(헌종 8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702년 제작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 묘사된 모습 그대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초익공 홑처마 사모지붕 구조로 복원되었다.
삼양동선사유적[濟州三陽洞先史遺蹟]
원삼국시대 제주도를 대표하는 마을유적으로 제주시 동쪽에 위치한 삼양동의 동서 1.2~1.5㎞, 남북 0.5~0.6㎞의 3만여 평 범위에 위치한다. 그 대부분은 밭으로 조성되어 있고, 유적지 주변부로는 민가가 들어서 있다. 해발 높이 12~14m 정도의 해안단구상의 편평한 대지에 위치하는데, 유적지 동쪽으로 속칭 ‘음나물내’ 건천이 있고, 북쪽 해안으로 수량이 풍부한 용천수가 발달하여 있는 바, 현재 제주시 상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음나물내를 건너 동쪽으로 해발 172m의 원당봉이 솟아 있는데, 지표조사에 따르면 이 원당봉 기슭에도 유적이 분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200여 기가 넘는 주거지로 구성된 마을 유적지로 지금까지 조사된 남한 최대의 마을 유적지 중의 하나로서 원삼국시대에 초기복합사회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제주도에 원삼국시대 집자리가 남한지방에서 청동기시대에 유행하였던 송국리형주거지라는 점에서 집자리 짓기 방식의 전통이 남한에서 제주도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주거지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로는 우선 토기를 들 수 있는데, 단면 원형·삼각형 점토띠토기(粘土帶土器)와 제주도의 특징적인 적갈색 외반구연항아리형토기가 특징적이며, 석기로는 간돌검(磨製石劍), 간돌화살촉(磨製石촉(金+族)), 홈자귀(有溝手斧), 돌도끼(石斧), 돌끌(石鑿), 숫돌(砥石), 갈돌(石棒), 갈판(碾石) 등이 있고, 금속유물로는 한대 삼각형 동화살촉(銅촉(金+族)), 주조쇠도끼(鑄造鐵斧), 그리고 장신구류로서는 유리구슬, 환옥 등이 있으며, 자연유물로서, 보리, 콩과 쌀이 수습되었다.
우리는 답사지 16곳의 이곳을 마지막으로 모든 답사를 마치고, 공항 부근 식당에서 한식으로 점심을 나누고 간단한 쇼핑 뒤, 우린 익산으로 돌아왔다.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일정을 같이 해주시고, 우리에게 가이드를 해주신 회장님의 선배이시며 해금강관광 김인귀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멋지고, 짜임새 있는 답사,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회원님들 모두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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