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 날
새순이 돋는다. 한겨울의 혹독함을 인고하여 얻은 결과다. 뿌리 촉은 눈을 열어 땅속을 여행하며 나뭇가지도 새 눈 티여 파란 세상 만나고 있다. 또, 꽃 피우고 마지막 낙화의 도를 위해 종씨 잉태 준비도 한다. 그 보람 행하면 조용히 모두를 내려놓는 수행자의 행복한 미소가 지금 나뭇잎과 줄기에서 일렁거린다. 봄날의 활발한 움직임이다.
계절에 맞게 짜진 시간 틀림이 없다. 멈춤이 없다가 맞다. 따스한 햇볕, 한가한 구름, 파란 하늘, 살랑이는 바람들과의 공연. 봄의 미학이다. 겨우내 처져 있던 비내골도 활기가 넘친다. 이미 앙상벌한 잎사귀들이 바람에 나풀거린다. 일부 드러난 계곡 바닥에도 연 녹의 잡초가 너나 할 것 없이 부러울 정도로 힘이 당차다. 그래서 봄 봄 하면서 기다리고 맞이하는가 보다.
존재는 생에 대한 결과물이다. 성장은 존재다. 땅속 엉기고 성기는 뿌리는 굵고 작고 갈림이 없이 달음질 물을 찾는다. 잡은 자리 조금씩 일구어 넓고 높은 곳을 보며 자란다. 감고 디디고 오르면서다. 약한 자는 그늘에서 기다가 사라진다. 그 자리 또 다른 잡목이 들어선다. 종족 번식 세상에서 만세 하는 게 존재하는 이유니까. 곡우 날은 그렇게 다가왔다.
섭리랄까. 나는 순리라 한다. 지는 자와 이기는 자, 어울리는 자들의 나누기. 구성원으로 존재감. 생사를 같이하는 삶으로. 짐도 모르고 이김도 모른 한울에서 당당하게 활개를 친다. 칼을 숨긴 장수로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다. 곡우는 이런 봄날의 절정 시기다. 씨앗에서 이미 한 번 걸러진 종자들. 겁도 없이 오직 번식을 위해서 고개 내민다. 계곡과 밭에서 비비고 서로 엉긴다. 연잎으로 녹색으로 하늘 향해 발을 든다. 본래의 가치인 존재의 과정이다. 봄날이다 자연이다, 라며 풍경이라 부른다.
문제는 물이다. 천우天雨외는 방법이 없다. 삶에는 파란 하늘비도 있어야 하고 단비도 폭우도 있어야 한다. 물은 필요한 시기에는 꼭 있어야 한다. 지금이 그 시기다. 여기 비내골도 마찬가지다. 강자나 약자나 생존에서는 무조건 필수가 물이다. 보금자리도 마찬가지다. 곡우는 자연 현상으로 씨를 뿌릴 수 있게 봄비가 내려 특히 곡식 작물이 풍성하게 해 주는 중심 절기다. 산천을 생동감으로 충만하게 해 왔었다. 하지만 올 곡우는 아니다.
가물다. 가물어도 너무 가물다. 작년, 가을장마 후부터 비가 별로 없었다. 오더라도 맛보기도 안 되는 작은 양이다.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생존은 이어 가지만 갈증은 깊어 지고 있다. 곡우 날이 다가오면서까지도 없었다. 이번 곡우 날에도 없다. 나목 잡풀은 다른 개체로 바뀌어도 변화가 없어 보인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그 모습 그대로 생생하다. 지금 저 잎사귀와 가지가 파릇파릇 한 게 그 증표다.
문제는 계곡물에 사는 어종이다. 특히 올챙이다. 가뭄 때문은 아니지만 이미 물고기는 사라진 지 오래라 관심 밖이다. 사방댐 공사 시 낙차가 심한 구조물 설치로 오르내릴 수 없다. 가재는 이미 땅속 깊이 자리 잡았는지 보이지 않는다. 고둥도 볼 수 없고. 이들은 가물어도 생존 보호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물이 잘 흐르면 다시 나타난다. 올챙이는 아니다. 전멸이다. 한 줌의 먼지로 바닥에서 사라진다. 또는, 뭇 새의 먹잇감이 되기도 하고.
맑게 잘도 내려오더니 이제 소리도 없다. 물에 분 낙엽을 잡고서라도 내려왔는데. 조금 조금씩 주변 나목과 잡초에 내주다 보니 바닥을 들어낸다. 본연의 일을 충실히 해 기운이 다 소진된 것이다. 탈진이라고 해야 하나. 가뭄을 자신의 몸으로 희생한 것이다. 며칠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도 초목 잎은 본체 색을 그대로 띠고 있다. 뽑아도 뽑아도 잘도 나는 채소밭 잡초들. 채소는 다르다. 물을 주어야 싱싱한 겨울 동 초를 키울 수 있다. 밭이랑에 줄 수량이 안 된다. 수원지에 올라가 호스 보완 작업할까 하다 바로 포기한다. 비도 오지 않는데 밭으로 당겨오면 계곡 올챙이는 생각에 미친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곳곳에 무더기로 잘 부화하여 잘도 유영하고 있었다. 겨울비에 조금씩 모인 물과 호스 낙숫물이 모인, 밭 양지 물통에도 많이도 부화했다. 얼음이 다 녹고 활발히 움직이는 며칠 전 계곡에 방류까지 해주었다. 꼬리치기 자유 헤엄. 각기 보금자리 찾아가기 위한 채비하는 걸 봤다. 세상 무서움 모른 체 오물오물. 잘도 헤엄쳤다. 오늘 보니 앙증맞은 몸짓이 참 간지럽고 애가 탄다. 바닥이 돌과 나목이랑 같이 눈에 든다. 구덩이같이 된, 물이 고인 자리. 갈 곳 잃은 올챙이는 꼬리만 흔든다. 하늘은 보일까?
당장 급하다. 한데 어찌하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너무 안타깝다. 곡우 날이라 더 슬프다. 계속되는 가뭄에 미력한 존재가 된다. 이 또한 자연 순리니. 곡우면 뭐 해? 물도 없는데. 성질난다. 하늘에다 하소연해본다. 제발 좀 도와 달라고. 곡우는 파란 하늘, 비도 아닌 파란 비만 움켜잡고 있다. 어느덧 산 그늘이 내리고 서산에 노을이 걸린다. 아직은 살랑거리는 올챙이들. 밤사이 꿈은 꿀 수 있을까? 땅이 언제까지 말라갈지 모른 화창한 곡우 날. 산수풍경에서 계곡 풍경을 보는 슬픈 애상이 가슴 훌친다.
2022. 09. 29. 경산문학 38집 출품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