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정보가 넓게 정확히 전달되어지게 되었다.
인쇄의 역사는 이제까지 보아온 바와 같이, 유럽보다도 중국이나 한반도의 쪽이 선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라고 불리는 프레스가 크게 선전되고, 인쇄기술은 서양이 발단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 인쇄기술이 르네상스를 확대해 가면서 정보전파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더 나아가서 과학혁명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한편 같은 유럽에서도,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에 앞서는 5년전인 1440년에 네덜란드에서 로렌스 코스터(Lourens Coster)가 목활자를 시작하였다고 하고 그것으로부터 금속활자와 같은 인쇄기술로의 발전하였다고 하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진짜 발명자라고 하는 설명에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고도 한다. 코스터를 활판인쇄의 시초라고 하는 것은 네덜란드 역사가 하드리아누스 유니우스(Hadrianus Junius)의 바타비아(Batavia, 1588년 간행)라고 하는 서저에 기재되어 있고, 그것에 의하면 나무의 판에 문자를 깎아 종이를 눌려 붙임으로써 문자가 주어진 것이 활판인쇄를 생각나게 하였다고 되어 있다.
활판인쇄기술의 발명자, 혹은 활판인쇄기의 실용화에 성공한 인물이라고 하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화폐 주조인으로서 그 수완을 높이 평가받았던 금속 가공인이었다. 구텐베르크 성서(42행 성서)라고불리는 최초의 인쇄성서는 1455년에 완성, 1457년에는 마인츠 시편을 인쇄하였다. 이것은 세계에서 최초로 판권장(版權張, colophon)에 인쇄일과 인쇄자명을 넣었던 서적으로서 역사에 남아있다. 여기에 더해서 이러한 구텐베르크의 업적을 칭하여 독일 국내에는 다수의 구텐베르크 상을 건립하였다.
하여튼 인쇄라고 하는 점에서의 가장 큰 중대사는 활판인쇄술에 의해 정보가 넓고 정확하게 전달되어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요점 BOX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에 앞선 5년전인 1440년에, 네덜란드에서 로렌스 코스터가 목활자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
용어해설
활판인쇄 코스터 발명설: 17세기부터 19세기의 장기간에 걸쳐, 특히 코스터의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지지되어, 구텐베르크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고 취급되고, 게다가 나라에서 추방되는 사람도 있었다는 말도 있다.
로렌스 코스터: 구텐베르크와 나란히 활판인쇄술의 창시자로 되어있는데, 1870년에 발표된 안토니우스 반 더 린드(Antonius Van der Linde)에 의한 조사에 따르면 인쇄업자로서는 가공의 인물이었다. 이후 인쇄술에 있어서 네덜란드 발명설을 전설로 되어 있다. 코스터가 인쇄하였다고 하는 200개 정도의 서적은 모두 1463년 이후의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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