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 를 소재로 한 영화 , ` 그녀가 죽었다. ` 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가상의 ` 나 ` 로 점철되어 있는 소셜 미디어의 광대들과 우리 사회 전반의 흐름을 통해서
과연 ` 진짜의 나 자신 ` 은 찾을 수 있을지 ,
또한 그 안에서 대중의식이 개인에게 미치는 여파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사이코드라마 안에서도 ` 역할 ` 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갖고 있는데요.
초대 사이코드라마 학회장이셨던 최헌진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
역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또한 급물살을 타듯이 급변하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리 자신의 참된 모습은 과연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을 옮겨와 봤습니다.
참된 자신을 찾아 나서는 치유적 굿 마당
` 생명굿 ` 책의 일부분입니다.
- 역할의 해체
거의 모든 이 세상의 영화며 드라마가 바로 그러한 역할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며
사람들의 시간과 돈을 합법적으로 탈취해 간다.
지금의 삶의 역할보다는 항상 더 나은 역할에 대한 굶주림 , 열망을 무제한으로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이 악을 물리치거나 ,
가난한 사람도 언제든지 노력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 사회에 대한 거짓된 위로들
또는 사회적으로 뒤처진 사람들의 고통을 통해서
자신이 그보다는 잘 살고 있다는 그릇된 자기애적 위한을 제공해준다.
거의 대부분의 영상 매체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끝없이 현실인 것처럼 묘사해서
실제 현실을 그럴듯하게 치장하고 , 현실의 실재 , 위선과 거짓과 착취와 권력의 어두운 면을 감춘다.
그리고 사람들은 낮에는 땀 흘려 일하고 , 밤에는 그들이 제공하는 향락과 오락에 빠져든다.
스마트폰 , 바보 상자 앞에서 중요한 삶의 많은 , 정말 많은 시간을 소비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
문화 라는 이름의 온갖 오락 게임 , 도박 , 연속극 , 영화 ...
장자의 꿈 이야기처럼 내가 역할인지 , 역할이 나인지 , 내가 잠을 자면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
아니면 꿈 속에서 나 라고 하는 인간이 실재의 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누가 우리를 ,
이 인간 세계를 문명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단순 무식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고 있는지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중요한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삶을 제대로 나 답게 살기 위해서는 말이다.
역할은 대부분의 경우 , 일시적 현상이다.
그것은 한 개인이 맡고 있는 일 , 행위 , 그리고 그의 능력과 관련된 개념이다.
배우가 수많은 역할을 하는 직업이라는 것도 역할의 일시성 때문이다.
아주 드물게 어떤 배우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거나 폐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이고 ,
역할은 실제로 한 주체가 임시로 또는 가상적으로 다른 사람의 행위 , 특성을 모방하거나
잠깐 동안 그 사람이 되는 듯한 착각에 빠질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문제는 역할 환상이다.
자신과 자신이 맡은 일시적인 역할에 대한 혼돈과 지속적인 믿음이다.
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나와 내 인생의 어느 한 순간 잠시 맡게 되는 역할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다.
오늘날 , 대부분의 현대인 여기에 빠져 들었다는 것 , 또한 과언이 아니다.
역할은 일시적이다.
사시사철 옷을 갈아 입듯이 , 외출할 때는 외출복으로 , 잠잘 때는 잠옷으로 옷을 바꿔 입듯이
역할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도중에 잠시 바꾸어 입는 옷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옷이 곧 나일 수는 없지 않은가 ?
옷이 날개라지만 , 옷이 그 사람을 나타낸다고 하지만 아니다.
그건 옷 장사들이 만들어 낸 말일 뿐이다.
사치를 조장하고 겉만 번드르르한 세상의 잘못된 말이다.
부자일수록 비싸고 좋은 옷을 입는가 ?
아니다.
절대 아니다.
졸부나 그렇다.
진짜는 외양에 신경쓰지 않는다.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역할에 빠져들지 않는다.
역할을 지배한다.
오늘날 , ` 인간은 사라지고 역할만 살아서 돌아 다닌다. ` 는 말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말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역할이 하나의 운명처럼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나 족쇄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름 , 나이 , 남녀 , 출생 순위 , 성씨 (가문) 학벌 , 직업 등이 그것이다.
태어나서 한 번 주민등록번호로 입력되면 죽는 날까지 그 번호로 살아가야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역할은 운명도 ` 나 자신 ` 도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편리함을 위해 잠시 빌려 쓰는 집이며 , 가구와 같은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나를 임시로 대변하는 기호들일 뿐이다.
그렇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역할 사이에는 ` 만남 ` 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과 사람 , 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
장사꾼 역할과 손님 역할이 만나고 , 의사 역할과 환자 역할이 있을 뿐이다.
사람은 사라지고 , 역할 가치가 대신하는 세상 .
맨 몸의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가 아닌 ,
그 사람의 성격이며 , 가치관 , 기질 (이것들도 살아가면서 바뀔 수 있다) 이 아니라
그의 겉모습 , 역할 , 옷 치장만으로 평가되고 만나고 관계 맺는 것이 너무나 당연시된 세상이 된 지 오래되었다.
그런 세상에는 사랑도 , 신뢰도 , 참된 우정도 싹트기 어렵다.
거래와 계산과 이해 득실이 먼저다.
세상이 갈수록 삭막해져가고 , 정이 메말라 가는 이유요 ,
끝없는 경쟁과 아귀 다툼에 피로만 더해가는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사람은 고귀한 존재다.
한 사람 , 한 사람이 저마다 귀한 생명을 지닌 존재다.
그 어떤 척도나 기준으로도 차별하고 , 서열을 매겨서는 결코 안 되는 존재다.
돈의 가치로 , 능력 순으로 , 학벌이나 직업 , 역할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사회라면 , 우리 모두 정신 차리고 저항해야 한다.
우선 나 자신부터 역할과의 동일시를 그만 두어야 한다.
그 길이 바로 가장 인간다워지는 길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역할은 그러나 긍정적인 면이 있다.
역할은 쉽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떄문이다.
그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278 p ~ 283
생명굿에서 디렉팅을 하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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