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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기행 / 뿌리는 달라도 모두 말레이인
세계 제1의 다도해 지역으로 적도를 끼고 동서로 펼쳐져 있는 말레이시아는 복합민족 국가입니다. 여러 민족이 각각 민족의 긍지를 유지하며 공존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흔히 태국을 융합사회라 하고, 필리핀을 혼합사회라 하는 데 반해 말레이시아는 복합사회입니다. 융합과 혼합, 복합이라 구별하는 데는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융합(Assimilation)은 동화를 의미하고 혼합(Amalgamation)은 뒤섞임을 뜻하는데 반해 복합(Pluralism)은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다원(多元)사회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말레이시아의 공존은 작은 음식점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말레이인의 가게에는 돼지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하나도 없고, 인도인 가게에는 소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상반되는 가게가 나란히 있거나 마주보기도 하는데 서로 비방하거나 경쟁하는 일 없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신을 모시는 힌두교 축제에 모여 즐기는 것은 인도계 중국계의 말레이시아인들뿐이요, 이슬람교 말레이인의 모습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역시 비판하는 일도 없습니다. 인도계 시크교도들은 헬멧 대신 터번을 쓰고 오토바이를 운전합니다. 헬멧을 쓰는 게 법이지만 터번만큼은 헬멧을 대신하는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법에 우선하여 종교적 관행을 존중해주는 사례입니다.
시장이나 백화점을 들어가 보면 혼돈스러울 정도입니다. 어느 나라를 방문하든 그 나라의 주류를 이루는 구성 민족 속에 타민족, 여행자 등이 섞여 있게 마련인데 이곳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세계의 민족이 한데 뒤섞여 있어 지금 내가 어느 나라에 와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정도가 됩니다. 이 나라의 주된 민족이 어떤 모습인지도 알 길이 없습니다. 번화한 거리에는 온통 한문 간판이 즐비하고, 사이사이 이슬람 사원이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서구 선진 도시를 방불케 하는 큼직큼직한 현대적 빌딩들-
그렇게 공존하는 복합사회라고 하지만 굳이 주류를 따진다면 본토박이 말레이인과 중국계, 남인도계 등 3개 민족입니다. 말레인이 전체의 45%쯤 이고, 중국계가 그 다음, 인도계는 9% 정도이며 기타 원주민 등 소수민족의 수는 아주 적습니다. 총 인구의 약 32%를 차지하는 중국계는 주로 도시에 살기 때문에 어떤 지역은 60% 이상 차지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화교(華僑)라고 불리기를 거부하며 화인(華人)임을 자처합니다. 교포란 뜻의 화교는 당대에 건너 와 임시 거주하는 사람이거나 말레이시아에 귀속할 뜻이 없는 외국 계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귀속하여 백년 이상 살아온 만큼 자기들은 중국어를 사용하고 중국 풍습을 따를망정 말레이시아인이라는 주장입니다.
동양최대의 이슬람국가
구성이 어쨌든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이슬람국가입니다. 1403년 수마트라 섬의 왕족에 의해 건국된 말라카왕국은 동서무역의 요충인 말라카해협을 장악하는 것으로 번영하였습니다. 왕도(王都) 말라카는 이때에 이미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국제도시가 되었습니다. 말라카왕국은 이때에 이슬람교와 술탄제(Sultan: 이슬람교 최고 권위자인 칼리프가 정치 지도자의 지정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말레이시아의 종교 문화적인 색깔을 고정시켜 버렸습니다. 이슬람교는 여기를 베이스캠프(?)로 하여 동남아시아 각지로 전파되었습니다.
마호메트의 코란 앞장에는 장차 다가올 최후 심판일의 힘찬 묘사가 나옵니다. 최후의 심판 때에 인류에 내려질 판정의 기준은, 코란의 경우 종교적이라기보다 도덕적입니다. 천국의 묘사는 모두 에덴동산에서 빌어 왔으며, 지옥은 뜨겁게 작열하는 아라비아의 자연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빼어난 산수로 아름다운 말레이반도는 코란이 전하는 천국의 조건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슬람교 전파의 다시없는 근거지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1511년 포르투갈이 말라카를 침략 점령한 후 아시아 무역과 그리스도교 보급의 기지로 삼았고, 이어 1641년에는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을 대신하면서 왕국은 붕괴시켰습니다. 그러나 후예들은 내륙 깊숙한 곳으로 피신해 각지에 작은 왕국을 만들고 말레이적 전통을 유지했습니다.
18세기 말에는 인도에서 진출해 온 영국이 다시 말라카를 점령하고, 19세기 초 싱가포르까지 수중에 넣으면서 내륙의 작은 왕국들까지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술탄은 폐위되지 않았으며 소왕국의 영역은 지켜졌습니다.
따라서 모슬렘의 2대 축제는 말레이시아 최대의 축제일이 되었습니다. 매년 4월(이슬람력으로는 9월)의 라마단(Ramadan) 기간 단식과 금욕생활, 또 하지 때의 메카 순례가 그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메카로 가는 순례자와 그들을 배웅하는 가족들로 쿠알라룸푸르의 수방공항이나 켈랑 항이 크게 붐빕니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도 모슬렘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중국계 말레이인들은 이런 모슬렘 축제에 못지않게 석가탄신일 행사를 치러내고 있습니다. 또 힌두교 성지 바투에서 벌어지는 대축제 "타이프삼" 역시 그 규모나 열기가 다른 종교축제에 조금도 뒤지지 않습니다.
말레이시아가 이렇듯 복합사회가 된 것은 영국 지배의 잔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의 식민지 경영에 착수한 영국인들은 본토인인 말레이인은 제쳐놓고 값싼 중국인과 인도인 노동자를 대거 데려와 이 지역에 투입했던 것입니다.
현재 세계 제1의 생산을 자랑하는 고무는 원래부터 말레이 반도에서 자생한 나무가 아닙니다. 영국인들이 브라질에서 이식하여 광대한 고무농장을 경영한 것이며 이 농장 때문에도 많은 인도인들을 이주시켰습니다.
주석을 채굴하는 데는 중국인만을 투입하였습니다. 쿠알라룸푸르는 불과 150년 전만해도 주석광산이 있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습니다. 그 광산마을이 발전하여 지금의 수도가 된 것입니다. 이런 사연으로 때로는 중국인의 숫자가 말레이인보다 많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여행하기 좋은 때는 4월과 5월
얼마 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축구 올림픽예선 최종대회는 우리 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숙적 일본을 누르고 우리 선수들이 우승의 영광을 확정지은 그 순간은 정말 대단히 통쾌했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우려했습니다. 하필이면 그 더운 나라에서 경기를 하는가. 비가 쏟아져 수중전이라도 하게 되면 선수들이 많이 힘들텐 데… 물론 상대도 같은 조건이지만 그래도 경기 결과가 운과 실수 의존을 높이는 것보다 실력, 최상의 컨디션으로 승부에 임했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염려의 이면에는 말레이시아는 열대이기 때문에 더위가 지독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깔려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무지에서 비롯되는 기우일 뿐이다. 말레이시아의 하루 평균기온은 26℃∼27℃로 생각만큼 덥지가 않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하는 지역은 온대지방이지 열대지방이 아닙니다. 한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나타나는 열대야 현상도 사막이 많은 중동지방 등의 현상이지 삼림 우거진 지역 이야기가 아닙니다. 열대는 상하(常夏)일뿐 혹서(酷暑)는 아닌 것입니다.
말레이시아의 고원에 있는 도시들은 우리나라 여름보다 훨씬 시원합니다. 특히 북동 남서의 몬순기 경계 때 한낮에 부는 해풍은 우리의 가을바람 못지않게 선선합니다. 물론 그러다가 바람이 잔잔해지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가 찾아오기는 합니다.
맑은 날이 많을 것이라는 것도 예상과 다릅니다. 열대우림지대에서는 쾌청한 날이면 격심한 상승기류가 일어나 즉시 구름을 발생시킵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짧은 건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도시가 연간 쾌청일수 10일 정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적도의 햇볕은 매우 뜨겁지만 그것이 강하게 사정없이 내려 쪼이는 시간은 별로 없으며 대개는 구름에 덮여 전체든 부분이든 흐린 날씨가 보통입니다.
1년 평균 기온 차는 쿠알라룸푸르가 1℃, 코타바루가 2℃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달의 기온 차는 5∼6℃에 이르는 지역이 많습니다. 하루의 기온 차는 더 심해서 한낮에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데 밤에는 이불 없이 잘 수 없는 때도 많습니다.
말레이시아와 같은 열대지방 여행 때 유념해야할 것은 한 달, 일 년의 평균기온이 아니라 하루의 일교차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은 4월과 5월입니다. 한낮에도 그늘에만 있으면 견딜만하고 습한 바람도 없어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때입니다.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크고 작은 섬들과 식민지 시대의 모습이 남아있는 항구도시들, 정글로 뒤덮인 산악지대가 있는가하면 휴양지로 유명한 고원지대도 있는 말레이시아는 이렇게 생각보다 시원하고, 자연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 경치, 시가지가 저마다의 고유색으로 매력을 달리하며 여행자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여행정보
직항편이 있습니다. 대한항공이 주2회 서울-콸라룸푸르를 왕복하고 말레이시아항공은 주3회 운행합니다. 말레이시아항공은 코타키나발루 직항편도 주1회 운행합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 여행 중의 방문이라면 싱가포르나 태국을 거쳐 입국하거나 홍콩, 필리핀에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상호 비자면제협정이 되어있어 비자 없이 3개월간 머무를 수 있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귀국항공권을 소지하고 있어야하며, 여권의 유효기간이 6개월 이상 남아있어야 합니다.
숙박 음식
호텔이 다양해서 방을 얻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배낭족들이 애용하는 것은 값싼 호텔이나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여사(旅社), 게스트하우스 등입니다. 일부 유명지의 시즌을 제외하면 예약이 없어도 무난하고, 또 요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방을 보고 요금에 걸 맞는가를 체크한 뒤 결정해도 됩니다. 값이 싼 호텔은 각 방에 침대와 의자만 있고 샤워, 화장실은 공동인 경우가 많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주식은 쌀(Nasi)입니다. 거기 몇 가지 반찬을 곁들여서 먹습니다. 요리법에 따라 아삼(Asam: 찜요리), 룬당(Rendang:끓이는 요리), 고렝(Goreng:볶거나 튀긴요리), 바카르(Bakar:구이) 등으로 나뉩니다. 접시에 가득 얹은 나시(밥)를 먹는 말레이인들의 주요반찬은 산발(Sanbal)인데 발효시킨 새우 등에 향신료와 고춧가루를 혼합한 것입니다.
말레이 음식 외에 정통 중국요리와 인도 요리도 있는데, 이중에는 말레이화 되어버린 요리들이 많습니다. 식사비용은 우리나라 국민소득 5천불 시대와 비슷하다면 가늠이 될까 모르겠습니다.
민족 종교 교육
말레이인 중국계 인도계 등이 공존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거주분포를 보면 농촌인구가 압도적입니다. 지붕을 야자수 잎으로 덮은 고상(高床)가옥 마을에서 야채를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며 살아갑니다.
말레이인은 동부와 북부에 많고, 해남도인 광동인 복건인 등 중국계는 주로 서부의 도시에 삽니다. 점차 이들 중국계 인구가 늘고 경제력이 강해지면서 정치적 영향력도 커져 말레이인에게 반발 감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무역업이나 상점주가 많은 인도계 주민은 인도 남부출신의 타밀족으로 중국계와 달리 그들만의 특징 있는 지역사회를 형성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중국계는 중국어를, 인도계는 타밀어를 일상어로 쓰고 있으며 중국계는 불교를, 인도계는 힌두교를 믿는 등 민족 간 경계를 피부로 느끼게 합니다. 참고로 말레이시아의 국교는 이슬람교입니다.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6년, 초급중학교 3년 상급중학교 3년, 대학은 4년으로 우리와 같습니다. 의무교육이란 제도는 없지만 초급중학교까지가 무상교육이고 취학 율은 무려 96%입니다. 대학은 말레이대학, 국민대학, 이과대학 등 6개교가 있는데 모두 국립입니다.
가볼만한 곳
이슬람도시의 특징은 하얗다는 것입니다. 우아하고 하얗게 빛나는 수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는 현대적인 고층빌딩과 서민적인 시가지와 푸른 녹음이 아름답게 조화된 인구 100만의 도시입니다. 약 150년 전에 중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켈랑 강과 콤바크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집단부락을 만든 것이 도시의 기원입니다. 영국인들에 의해 이곳에 주석광산이 생겼는데 광부들은 대개 중국에서 데려왔던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어느 정도 돈을 모으면 곧바로 유통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일꾼을 계속 데려와 중국인 이주자의 숫자가 금세 늘어났습니다.
쿠알라룸푸르란 말레이시아어로 '진흙 강이 만나는 곳'이란 뜻인데 말레이반도 서남안인 중부 산록지대의 저지와 산지가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역사가 짧은 만큼 유서 깊은 볼거리는 별로 없으며 중국인에 의해 시작된 도시답게 지금도 인구의 반 가까이를 화교가 점유하고 있습니다. 시내에는 아랍 풍 건축의 관청가와 모스크(이슬람사원), 중국풍의 상점가와 힌두사원, 구미풍의 넓은 정원, 광장 등이 혼재해 있어서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그대로 응축시켜놓은 듯 합니다.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야자나무에 둘러싸인 옛 모스크가 있습니다. 아라비아 풍으로 규모는 작지만 그 우아함과 특유의 정숙한 분위기는 말레이시아 모스크 중 최고 수준입니다. 고층빌딩에 파묻혀 있음에도 멀리 강가에서 바라보면 새로 세워진 국립회교사원과 다른, 고풍스런 멋을 느끼게 합니다. 국립회교사원은 1965년에 1천만 달러를 투입해서 세운 말레이시아의 자랑입니다. 별 모양의 돔과 높이 73m의 탑을 지닌 외관은 현대적이며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의 하나로서 이슬람교 활동의 새 중심이 되었습니다.
토요일 밤이면 보행자 천국이 되는 툰쿠 압둘라만 거리도 볼거리입니다. 여행자에게 인기 있는 것은 여장 남성들이 손님을 받는 폰단(Pondan)인데 법으로는 금지되어 있어 경찰이 나타나면 이들은 숨어버립니다.
또 하나 이색적인 곳은 시가지 남동쪽 변두리에 있는 푸두마켓(Pudu Market)입니다. 한약재 일용품 식료품 등 무엇이든지 있으며 식용 개도 있고 구탕(狗湯:보신탕)을 파는 집도 여럿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역사와 문화 자연 동식물 등을 종합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국립박물관도 내용이 충실하여 시간이 아깝지 않은 곳입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약간 교외로 나가면 말레이시아 최대의 레저 랜드인 미마랜드, 힌두교의 성지 바투 케이브, 정글을 그대로 살린 국립 동물원 등이 있습니다. 미마랜드는 자연을 그대로 살린 광대한 부지 내에 동남아 최대의 풀장과 동물원 고무농장 민속촌 등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투 케이브는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약 13Km 지점에 있는 종유석 동굴 지대입니다. 272단의 계단을 오르면 라이트 케이브라는 가장 큰 종유석 동굴을 만나는데 이곳이 힌두교의 성지입니다. 매년 1월 하순부터 2월 상순 사이에 벌어지는 힌두교 최대의 3일 축제 "타이프삼"이 이곳에서 벌어집니다. 동굴 안에는 박쥐가 날아다니고 원숭이들이 들락거리며 여행자를 즐겁게 합니다. 동굴박물관도 있어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조각이나 벽화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기타 가볼만한 곳
말레이시아의 옛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곳은 말라카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쯤 남쪽으로 가면 있습니다. 술탄을 왕으로 하는 말라카왕국은 15세기 초에 일어나 눈부시게 번영했습니다. 특히 실크로드에 필적하는 동서해상 무역로의 중심항으로 동서 문명이 이곳에서 만나 교차했습니다. 아시아 침략을 노리는 유럽제국들이 이 말라카를 탐냈음은 물론입니다. 결국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의 지배하에 놓이는 역경을 겪었으며 지금은 수많은 역사적 유물과 함께 조용한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말라카가 옛 도시라면 오늘의 다국적 적 모습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페낭 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페낭 섬의 조지타운은 식민지 시대의 잔영이 물씬 남아있는,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항구도시입니다.
말레이시아엔 남국의 정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고원 리조트와 정글은 정말 일품입니다. 말레이반도의 5분의 4가 삼림에 뒤덮여있고 그 대부분이 산악지대입니다. 그런 내륙 고원지대 여기저기에 깜짝 놀랄 만큼 신선한 휴양지, 국립공원 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해발 1770m 산악지대에 건설된 대규모 레저휴양지 켄팅 하일랜드(구름 위의 고원)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하게 공인 카지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겐 그렇지만 세계인들이 즐기는 보다 인기 있는 곳은 카메론 하일랜드와 타만 네가라(국립공원) 등입니다.
비즈니스 도시로 번창하고 있는 보르네오 북부 사바 주의 주도 코타키나발루도 동남아 최고봉인 키나발루산(4,010m)을 배경으로 하는 고원 도시입니다. 이들 고원 휴양지는 트래킹의 적지이기도 하지만 하나같이 테니스와 골프 승마 등의 스포츠 시설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