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었을까?
이두희
그녀와 나는 한 지붕아래 살았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지만 한 식구였다. 겨울 방학기간 동안 촌티를 벗고 시야를 넓히라는 큰 형의 뜻에 따라 서울살이 맛보기를 할 때였다. 형의 친구 집이었던 그 집에는 어머니와 형, 그리고 나보다 한 학년 위였던 여고생이 살고 있었다. 시골 중학교에서 도회지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무리한 선택을 한 까닭에 재수를 했으니까 나이로는 동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 서울의 명문여고 2학년, 처음부터 그녀의 상대가 되긴 어려웠다.
첫 일주일은 쾌청하면서도 포근하기까지 한 날씨였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학원 등록과 방학기간 동안 다닐 공공도서관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학원 수업이 끝나면 다시 만나 자신이 다니는 학교며 정동길, 덕수궁, 종로서점 등 낭만이 가득한 장소를 걷기도 했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거리는 온통 들떠 있었고 무거운 집안분위기와 따분한 학교공부에 눌려있었던 그녀는 때 아닌 때를 만난 것이었다. 어리바리한 시골뜨기에게 여고생의 풋풋한 감성을 맘껏 자랑할 수 있었으니 신이 날 만도 했다. 나는 그저 고마웠고 그녀는 우월감을 느낄 수 있어서 더 빨리 친근해졌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밖에서는 더 없이 사근사근하게 재잘거리던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면 표정을 싹 바꾸는 것이었다. 불만이 가득 찬 얼굴로 어쩌다 한 번씩 던지는 말들은 사춘기 소녀의 배배꼬이고 비뚤어진 말투였다. 어렵게 가계를 꾸려나가던 홀어머니에겐 늦둥이의 투정일 터이지만 실질적 가장인 일곱 살 터울 오빠에게도 늘 도발적이었다. 오빠가 늦게 귀가하는 날엔 내방으로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수다를 떨기도 하였는데 그게 집안의 유일한 명랑분위기였다. 그럴 때도 난 그저 듣기만 하는 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신기하다는 듯 열심히 들어주는 일 밖에 없었다.
모든 인연이 그렇듯 처음의 두근거림 뒤에는 갈등과 위기가 오게 마련, 방학기간의 절반 정도가 지나자 날씨가 별안간 추워지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어설픈 짐작으로는 내 일기장을 훔쳐본 사건 때문이었다. 우연히 책상서랍 속 일기장에 손을 댄 흔적을 발견하고 그날의 일기에는 ‘일기를 훔쳐보는 것은 물건을 훔치는 것보다 더 나쁘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써 놓았다. 그게 왜 토라지는 원인이 되었을까. 오히려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남의 사생활을 몰래 훔쳐보다 들킨 민망함을 싸늘한 몸짓으로 표현한 것이거나 아니면 우월감의 상실을 두려워한 공격적 반응인지도 몰랐다. 사실 내 속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일기장에 풀어놓곤 했는데 그걸 들킨 나도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결정적으로 1월의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치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일요일 오전 모두 교회에 가고난 뒤 외출을 하려고 현관을 나서다 대문 옆 화장실에 들렀다. 사고는 그 순간에 터졌다. 화장실 안에는 교회에 간 줄 알았던 그녀가 있었다. 두어 계단 위 재래식 변기에 쪼그려 앉은 모습이 나의 시선 정면으로 맞닥뜨린 것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을 것이란 생각으로 노크 없이 확 문을 열어버린 잘못이 크지만, 안쪽에서 문을 걸어 잠그지 않은 그녀 실수도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금방 문을 닫지 않고 머뭇거린 것은 그녀를 더욱 화나게 한 것 같았다. 촌뜨기의 무례함과 의도적 지연이란 오해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 이후 둘 사이의 날씨는 언급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2월 초 개학을 앞두고 집을 떠날 때까지 차가운 얼음바람만 불었고 독백처럼 던지는 그녀의 퉁명스런 인사말을 마지막으로 그 집을 떠났다.
그녀와의 인연이 거기까지였다면 아마도 이 글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 그녀는 서울의 S여대 4학년, 나는 공군사관학교 3학년의 모습으로 운명처럼 다시 만났다. 각자 친한 친구를 통해 우연히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고 연락처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던 종로의 어느 찻집에서였다. 훌쩍 커버린 쑥스러움이 앞섰지만 금세 오랜 친구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식구들의 안부도 묻고 졸업을 앞둔 대학생의 푸념과 개똥철학이 담긴 형이상학적 이야기도 했다. 그러나 5년 전의 그 민망했던 사건과 싸늘했던 분위기에 대해서는 끝까지 이야깃거리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마치 그때의 갈등은 누구의 잘 잘못이 아니라 서로 좋아하는 감정의 빗나간 표현이었다는 듯이…….
요즘 젊은 사람들의 사랑에는 단계적 구분이 있다고 한다. 서로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는 단계를 ‘썸 탄다’라고 하고, 지금부터 정식으로 사귀자는 말에 동의하면 ‘연인관계’로 넘어가게 된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선으로 구획하고 단계별로 상호 인정하는 범위가 정해진다니 사랑하는 일마저 인위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요즘 방식에 대입한다면 그녀와의 인연은 어디까지 갔다고 할 수 있을까?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썸 타는’ 단계의 문턱에서 끝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인식이 마음 한 구석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음은 분명하다. 그 증거로 5년 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나 결혼하기 전까지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냈다는 점이다. ‘진정한 사랑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명언을 들은 적이 있다. 서로 그냥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언어로 표현한 그것은 순수한 마음이라기보다 상대방을 끌어들이거나 붙잡아 두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그녀를 만나고 싶었던 내 마음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시작할 때의 기울어진 관계에서 상호 동등한 관계로 올려놓고 싶은 숨겨진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