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고향 전철 시승식(수정본)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2004년경 유행했던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란 노래에서,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가사다. 오늘따라 이 가사가 유독 머릿속에 맴돈다.
여주에 전철이 생기고 난 후 8년 동안 한 번도 타본 적 없던 전철을 드디어 탔다. 마음이 설렜다. 여주가 출발역이라 앉아서 갈 수 있어 다리가 불편한 내게 퍽 다행한 일이었다. 의외로 전철을 이용하는사람이 많아 한국철도공사가 쉽게 망하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수십 년 전 탔던 서울 지하철이 생각났다. 그때는 인간 북새통에 소매치기가 들끓어 가방을 앞으로 하고 온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런데 오늘 전철을 타보니 너무 달라진 풍경에 놀라고 말았다. 전혀 예상 밖의 모습이었다. 노인에서 젊은이들까지 거의 모든 사람이 심지어 서서 가는 사람들도 다리로만 균형을 잡은 채 핸드폰에 머리통을 들이밀고 있었으니…...사람에 관심없고 기계에 올인하고 있는 정없고 삭막한 모습에 마음이 씁쓸했다.
그 시절에는 어느 역에서 누가 타고 내리는지, 어디 역쯤에 선남선녀가 사는지를 알 정도였다. 서로 인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자리를양보하기도 하다가 상황이 진전되어 결혼에 이르는 사례도 가끔 있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 속에 소매치기가 타서
“소매치기 있다, 잡아라.”
라고 소리치면 냅다 도망치곤 하던 꼬질꼬질한 젊은 청년. 오히려 동정이 생길 정도였다. 이렇게 살아가는 소리로 가득 찼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 흔하던 소매치기배들은 다 어디로 숨었는가? 그 모습 대신 사람의 모습을 비추는 CCTV가 공간을 대신하고 있다. 서로 바라보는 법도 없이 말없이 앉아 핸드폰만 주시하고있다.
이제 삶의 한 가운데서 치열하게 울고 웃고 부대끼던 모습은 핸드폰이란 기계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주 전철 모습은 멋대가리없는 통행의 시대만을 나타낼 뿐이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5월의 태양 아래 유독 빛나는 차장 밖 나뭇잎들만이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이세상과 대조를 이루었다. 동남아에서 온 서너 명의 청년들이 전철 안에서 주고받는 말들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비록 나이 든 한국 아줌마지만 외국인을 향해 빙긋이 웃어주었다. 그들이 답례로 웃어주며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탄 전철을 다시는 타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이유는기계가 대신한 삭막한 전철이 설렘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며칠 전 중국집에짜장과 짬뽕을 먹고 휴대폰으로 집에 앉아서 계좌이체를 하던 생각이 나, 나는 피식 웃고말았다. 요즘은 나이 든 사람들까지 기꺼이 현대문명을 적극 이용하면서 살고있지 않은가? 그러서 옛날을 그리워하는 상반된 모습을 하고있다 . 현대의 기계화와 산업화에 길들여진 젊은이 들에겐 지금의 세계가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이 옛 시대보다도 더 나은 세상으로 간주할 것이다. 미래학자들이 미래의 세계를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서서히 든 급격히든 변하고 있다. 그러한 세상에 노인 세대들도 같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과거 향수에 젖고싶거나 멋진 풍경이 그리울 땐 자기차를 타고 길 따라 마음 따라 자유롭게 다니면 된다. '목적지에 빨리 가고프면 전철을 타면 되는 것이고'라고 전철 안 타려던 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모두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살았다고 말해요'란 노랫말이 그 나마 나 같이 놀란 할머니를 위로해 준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살란다. 기대에 가득찼던 8년 만의 고향전철 타기는 문화적 충격 속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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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걱정말아요 그대(원본)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란 노래에서,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가사 다. 가 오늘 유독 머릿속에 맴도는 날이다.
여주란 도시에 전철이 생기고 난 후 8년 동안 어제까지 한 번도 타본 적 없던 전철을 드디어 타게 되었다. 마음이 설렜다. 타고 보니 여주가 종착역이라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내게 그건 행운이었다. 출발역부터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적어도 한국철도공사가 쉽게 망하진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수십 년 전 서울에서 사람이 미어지던 지하철 타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인간 북새통에 소매치기가 들끓어 가방을 앞으로 하고 온 신경을 써야 했었다. 그런데 오늘 지하철을 타고 보니 너무 슬프고 공허한 모습만 보여 마음이 씁쓸했다. 전혀 예상 밖의 모습이었다. 왜냐고? 노인에서 젊은이들까지 거의 모든 사람이 핸드폰만 보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심지어 서서 가는 사람들도 다리로만 균형을 잡은 채 핸드폰에 머리통을 들이밀고 있었으니…...
그 시절에는 어느 역에서 누가 타고 내리는지, 어디 역쯤에 선남선녀가 사는지를 알 정도였다. 서로 인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결혼에 이르기도 하는 사례도 가끔 있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 속에 소매치기가 타서
“소매치기 있다, 잡아라.”라고 소리치면 냅다 도망치곤 하던 꼬질꼬질한 젊은 청년. 오히려 동정이 생길 정도였다. 이렇게 살아가는 소리로 가득 찼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 흔하던 소매치기배들은 다 어디로 숨었는가? 그 모습 대신 사람의 모습을 비추는 CCTV가 공간을 대신하고 있다. 서로 바라보는 법도 없이 말없이 앉아 핸드폰만 주시하고있다.
이제 삶의 한 가운데서 치열하게 울고 웃고 부대끼던 모습은 핸드폰이란 기계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주 전철 모습은 멋대가리없는 통행의 시대만을 나타낼 뿐이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5월의 태양 아래 유독 빛나는 차장 밖 나뭇잎들만이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체 이세상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동남아에서 온 서너 명의 청년들이 전철 안에서 주고받는 말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비록 나이 든 한국 아줌마지만 외국인을 향해 빙긋이 웃어주었다. 그들이 답례로 웃어주며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탄 지하철을 다시는 타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이유는기계가 대신한 삭막한 전철이 설렘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며칠 전 중국집에서 짜장과 짬뽕을 먹고 휴대폰으로 앉아서 계좌이체를 하던 생각이 나, 나는 피식 웃고야 말았다. 요즘은 나이 든 사람들까지 기꺼이 현대문명을 적극 이용하면서 살고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옛날을 그리워하는 상반된 모습을 하고있다 . 현대의 기계화와 산업화에 길들여진 젊은이 들에겐 지금의 세계가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이 옛 시대보다도 더 나은 세상으로 간주할 것이다. 미래학자들이 미래의 세계를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서서히 든 급격히든 변하고 있다. 그러한 세상에 노인 세대들도 같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과거 향수에 젖고싶거나 멋진 풍경이 그리울 땐 자기차를 타고 길 따라 마음 따라 자유롭게 다님된다. '목적지에 빨리 가고픔 전철을 타면 되는 것이고'라고 전철 안 타려던 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모두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살았다고 말해요'란 노랫말이 그 나마 나 같이 놀란 할머니를 위로해 준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살란다. 꿈속에 그려보던 나의 8년 만의 고향전철 타기는 이처럼 나름대로의 충격 속에 막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