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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사람 |
: <n3017@hanmail.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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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날짜 |
: 2010년 6월 05일 토요일, 오전 06시 00분 34초 +0900 |
이제는 역사의 진실을 말해야 한다
"나 에밀졸라(프랑스)는 드레퓌시(유태인)가 결백함을 주장합니다
나는 작가생활 40년과 필생의 작업 모든 것을 걸고 그의 결백을 선언합니다.
나는 프랑스의 군사법정을 고발합니다.
증거를 가린 채 유죄판결을 내려 인권침해를 했음을 고발합니다.
나의 행동은 진실과 정의의 폭발을 재촉하는 혁명적 조치입니다.
나의 불타는 항의는 내 영혼의 외침입니다"▼에밀 졸라.
프랑스의 행동하는 지성이며 '목로주점'의 작가인 에밀졸라가 1898년 프랑스 군부를 고발한 글입니다. 에밀졸라는 오직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종신형을 선고받은 '드레퓌시 사건'의 진실을 밝히며 이와 같은 양심선언을 했던 것입니다. 서구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드레퓌시 사건의 진실은 에밀졸라의 고발로 진실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에밀졸라의 양심고백이 없었다면 '드레퓌시 사건'의 전말은 영원히 지하에 잠들어 버렸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국사와 왜곡된 동양사를 올바르게 복원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프랑스의 에밀졸라와 같은 지식인들의 양심선언이 이제는 홍수처럼 나타나야 할 때입니다. 한국사와 동양사 1만년의 역사는 참으로 황탄스런 무리들의 음모로 그 역사적 본질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현하 민족사학과 자주사학을 주장해 왔던 사람들이 국사찾기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고 그 정당성과 타당성을 정리하여 지식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며 서명활동을 전개합니다.
2. 국사교과서 개편의 당위성
무릇 모든 진리의 근원은 상식입니다. 상식을 뛰어 넘는 진리는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단순하게, 상식적으로, 모두가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얘기해 보면 참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으로 꽉 차 있습니다. 국사교과서 첫 페이지에는 단군신화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단군조선은 역사성이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군신화입니다. 도대체 우리 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가 역사국가가 아니라 신화국가로 격하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신화국가인 단군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은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짐승(곰)이 사람으로 둔갑한 여인의 아들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이 짐승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군의 후손인 우리자신의 몸에도 짐승의 피가 흐른다는 논리입니다. 이 세상에 후손이라는 사람들이 제 조상을 짐승의 아들로 규정해 놓고 조상제사를 지내는 패륜의 나라는 한국뿐일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나라의 백성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사교과서 제3페이지에는 드디어 한국의 역사시대가 시작됩니다. 단군신화와 짐승아들에 관한 얘기가 끝나고서 드디어 역사시대가 전개됩니다. 놀랍게도 이 한국역사의 시작은 서토인(중국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즉 기자조선이라는 것이지요. 현재의 국사교과서는 애매하게 기자가 서토인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얘기하고 있지 않지만, 은연중에 기자조선의 기자는 은나라에서 망명하여 조선왕이 되었다는 기자의 후손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국사교과서 제4페이지에는 위만조선이 등장합니다. 위만 역시 서토의 연나라에서 망명한 사람이라 적고 있습니다. 역시 서토인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며 민족정기를 근원적으로 빨아 없애고 있는 술책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은 스스로의 통치능력의 부재로 인해 서토로부터 지도자를 수입해서 쓸 수 밖에 없는 민족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화사상과 식민사학의 냄새가 코를 썩게 하는 역사필법인 것입니다.
국사교과서 제5페이지로 넘어가면 더욱 가관입니다. 이른바 한사군의 등장입니다. 한국민족이 스스로 세운 단군조선은 신화국가이고, 한국민족의 조상인 단군은 짐승의 아들로서 무식하고 무지하고 몽매하니, 상국인 서토로부터 기자라는 현인을 수입하고, 위만이라는 대인을 수입하고, 급기야는 통치능력의 부실로 인하여 보호국인 서토국이 위만조선을 응징하고 한사군을 설치해 식민으로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자, 이것이 한국사 교과서의 서설입니다. 이것이 과연 일국의 역사교과서가 될 수 있을 까요? 이것이 과연 주권국가의 역사교과서가 될 수 있습니까? 숫제 단군신화, 짐승의 후손, 기자신탁통치, 위만신탁통치, 한사군식민통치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현대식으로 말해 보면 너희 1대 조상은 박씨 집에서 머슴을 살았고, 3대 조상은 김씨 집에서 하인노릇을 했고, 5대 조상은 이씨 집에서 날품팔이를 하다가 대가 끊기고 말았다 하는 얘기입니다.
역사는 상식입니다. 진리는 상식입니다. 이런 패배주의, 허무주의, 허탈주의 국사교과서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참으로 기록적인 교과서입니다. 한국의 역사교과서는 우리 학생들과 국민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심어주는 교과서가 아니라 민족의 힘이 뭉쳐지는 것을 근원적으로 방해하는 '언어도단'의 역사서인 것입니다. 아시아 대륙 1만년 영광의 민족사를 반도사 2000년 통한의 민족사로 조작해 놓은 한국의 역사교과서는 반드시 개정되어 제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3. 한국사와 동양사의 진실
<단군세기 단기고사 삼국사기의 천문 및 자연과학적 결론>
"BC 1733 제13세 흘달 단군 때 '오행성결집' 현상은 99% 정확하다"
(단군세기 단기고사의 기록이 사실임이 확인됨/서울대 박창범 교수)
"BC 935년 제29세 마휴 단군 때 '큰썰물' 현상은 96% 정확하다"
(단군세기 단기고사의 기록이 사실임이 확인됨/서울대 박창범 교수)
"205년 백제와 신라에서 동시에 기록된 '태백범월' 현상은 사실"
(삼국사기의 기록은 중국기록에 없는 독자기록으로 사실임이 확인)
"224년 백제 구수왕 때의 '태백주현' 현상은 사실이었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중국기록에 없는 독자기록으로 사실임이 확인)
"삼국사기의 일식실현율은 89%로 세계최고의 과학사서임이 증명됨"
(중국25사는 평균 65%였고 일본서기는 평균 35%였다)
"초기신라의 일식최적관측지는 양자강과 안휘성과 강소성으로 확인"
(후기신라는 한반도/백제는 산동지방/고구려는 몽고 만주에 존재)
"신라의 홍수는 평균 음력 5월, 백제의 홍수는 평균 음력 6월이다"
(중국 양서는 '신라가 백제의 동남쪽 5천리에 있다'고 적고 있다)
"신라와 백제는 가뭄와 홍수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남사/주서/남제서/신구당서는 대륙백제 대륙신라를 기록하고 있다)
"신라와 백제는 눈(雪)과 서리도 다르게 오고 있음이 밝혀졌다"
(천문과학상 도저히 불가능한 얘기/대륙신라 대륙백제를 확인해줌)
"657년 신라의 토함산에 화산이 폭발하여 3년 동안 용암분출"
(현재의 경주는 확정적 후대 경주/제주와 같은 용암흔적이 없다)
"백제와 신라의 들판을 황폐화시키는 메뚜기 떼는 대륙의 것이다"
(싹쓸이 메뚜기떼는 한반도의 온화한 기후대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환단고기'가 밝힌 동양의 고대사에 대한 증언>-연대표.
BC 7199 :환국(桓國) 개국, 7분의 환인 중 제1세 '안파견' 환인 건국.
: 3301년간 지속되며 제7세 지위리 환인 때 배달국으로 연결.
BC 3898 :배달국 개국, 18분의 환웅천왕 중 제1세 '거발환' 건국
: 1565년간 지속되며 제18세 거불단 환웅 때 단군조선 연결.
BC 2333 :단군조선 개국, 47분의 단군 중 제1세 '왕검' 단군 건국.
: 2096년간 지속되며 '삼한'과 '삼조선'으로 나누어 다스림.
BC 1286 :단군조선 제1차 쿠테타, 제21세 소태 단군 때 색불루 정변.
BC 1285 :단군조선 제22세 색불루 등극, 쿠테타 성공 후 권력승계.
: 1048년간 지속(개국이후), 단군연세 '1048년'의 비밀이 풀림.
BC 426 :단군조선 제2차 쿠테타, 제43세 물리 단군 때 '우화충' 반란.
BC 425 :대부여단군조선으로 국호 개칭. 제 44세 '구물' 단군 등극.
: 1908년간 지속(개국이후), 단군연세 '1908세'의 비밀이 풀림.
BC 239 :단군조선 제3차 쿠테타, 해모수의 북부여(고구려 모국)건국
BC 238 :제47세 고열가 단군 퇴위. 오가(五加)들의 6년 공화정.
BC 232 :북부여단군조선(고구려) 제1세 해모수 '4월초8일' 단군 등극
: 단군조선 공식마감(2101년), 북부여(고구려)의 실질 개국 년대
BC 58 :북부여단군조선 제6세 고무서 단군사망. 고주몽 등극(22세).
: 고구려 개국연대는 BC 58년인 것으로 판명(삼국사기는 BC 37년)
<'환단고기'가 밝힌 동양의 고대사에 대한 증언>-환국, 배달국.
"인류기원은 나반(아바이)과 아만(어마이)이 만난 아이사타(아사달)"
(모든 사찰에 있는 독성각의 '나반존자'는 한국사찰에만 있는 특징)
"환국은 7분의 환인과 3301년의 역년을 가진 역사국가였다"
(삼국유사에도 '석유환국'이라 하여 환국의 역사성을 증명하고 있다)
"환국은 사백력(시베리아), 파내류산(파미르고원), 천해(바이칼호)에"
(환국이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하여 점차 동쪽으로 이동하였음을 기록)
"환국12국에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須密爾) 국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의 언어학적 고고학적 결론은 환단고기의 기록을 뒷받침한다)
"배달국은 18분의 환웅과 1565년의 역사를 가진 실체국가였다"
(단군조선 시대에 나온 10 여편의 가사는 모두 배달국 찬양가이다)
"개천절의 주인공은 BC 3898년 배달국을 건국한 '거발환' 환웅이다"
(BC 1891년 제11세 도해 단군은 거발환 환웅상을 '대시전'에 모심)
"배달국의 '환웅전'은 불교가 들어온 후 석가의 '대웅전'으로 바뀐다"
(대웅전에는 석가가 모셔지고 환웅전은 절 뒷편의 삼성전으로 이동)
"우리민속 '고시레'는 배달국의 주곡담당관 '고시례' 선생을 말한다"
(북애자 선생의 규원사화에는 이 사실이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서토의 3황5제 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 소호금천은 동이족"
(중국사서들은 그렇게 말하는데 우리는 어찌 이를 인정하지 않는가)
"BC 2707년 배달국 치우와 서토 황제와의 전쟁은 역사적 사실이다"
(중국사서가 역사사실로 인정하는 것을 왜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가)
"BC 2707년 배달국 제14세 치우천왕은 우리민족사의 최대영웅이다"
(이런 위대한 우리조상 치우천왕은 우리민속 곳곳에 남아 있다)
"치우천왕은 청동갑옷과 철갑투구를 개발한 동양사 최대영웅이다"
(서토인들이 치우천자를 동두철액(銅頭鐵額)이라 부른 데서 증명)
"이른바 한자로 불리우는 한문은 우리 동이족이 만든 문자이다"
(쇠철자의 옛글자( )에 동이 '이(夷)' 자가 붙어 있는 데서도 증명)
"배달국이 '녹도문'을 만들었다는 환단고기의 기록은 역사적 사실"
(평양에서 발견된 녹도문과 중국의 창성조적비는 이 사실을 증명)
"최근 서토는 배달국의 치우천자 묘를 발굴하여 중국사로 편입함"
(매국과 패륜을 일삼는 무리들아! 이러고도 조상제사를 지내는가)
"서토인들은 만주의 100여개 단군시대 피라미드들을 숨기고 있다"
(배달국 사이트 '배달국'(한글)이나 baedalguk.com에서 확인하라!)
<'환단고기'가 밝힌 동양의 고대사에 대한 증언>-단군조선.
"단군조선은 나라의 기원을 '배달국'으로 하였다"
(단군시대 10여 편의 가사는 모두 배달국찬양가 : 어아가 서효사 등)
"단군조선 제1세 왕검단군은 곰을 토템하던 곰족들의 지도자였다"
(47분의 단군과 2096년의 단군시대를 창업한 분을 곰의 아들이라니!)
"삼국유사의 곰과 호랑이 얘기는 번역의 오류(곰족과 호족의 얘기)"
(야구단 베어스(곰) 타이거스(호랑이) 등은 짐승들이 야구를 하는가)
"단군이 곰의 아들이었다면 우리 몸속에도 곰의 피가 흐른단 말인가"
(조상과 역사를 모독하는 매국사학자들의 패륜행위를 응징해야 한다)
"단군조선은 47분의 단군과 2096년의 역년을 가진 역사적 국가였다"
(하북성에서는 단군조선을 알려주는 '天子'명문 청동기가 발굴되었다)
"단군조선은 개국 때부터 삼한과 삼조선으로 다스려졌음이 밝혀졌다"
(요녕성에서 제후국 '번한番汗'의 실체가 '番干'이란 명문으로 발견됨)
"단군조선은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를 제후국으로 다스렸음이 증명"
(중국서경/중국후한서/중국설원에 너무나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다)
"서토나라에서 BC 221년까지 황제(천자)를 참칭한 제왕이 있었던가"
(진시황이 처음으로 황제를 참칭했다 해서 '진시황'이라 부른다)
"BC 1767년 제13세 흘단 단군이 하나라를 응징한 것은 역사적 사실"
(중국후한서에는 동이족이 빈기(섬서성) 지방을 점거하였음을 기록)
"BC 1236년 제23세 아홀 단군이 은나라를 응징한 것은 역사적 사실"
(회대(양자강) 땅에 대한 동이족의 점거기록/중국사기/중국후한서)
"BC 997년 제27세 두밀 단군이 주나라를 응징한 것은 역사적 사실"
(중국후한서는 주나라 목왕이 단군조선에 36군을 점령당했다고 기록)
"기자조선은 단군조선의 역사를 뒤엎은 완벽한 조작임이 드러났다.
(기자 망명지: 서화(하남성)/기자 무덤: 몽현(안휘성)/중국사기/수경)
"BC 1733년 제13세 흘달 단군 때의 '오행성결집현상'은 역사적 사실"
(컴퓨터로 역추적한 결과 실제적 천문현상/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
"BC 1291년 제21세 소태 단군 때의 '귀방정복' 기록은 역사적 사실"
(은나라 갑골문에서 '귀방'의 존재사실 확인/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
"단군조선은 BC 1286년 제1차 쿠테타가 발생하였음이 밝혀졌다"
(동국세년가 등의 단군연세 1048세 비밀이 풀렸다/2333-1286=1048)
"단군조선은 BC 426년 제2차 쿠테타가 발생하였음이 밝혀졌다"
(삼국유사의 단군연세 1908세 비밀이 풀렸다/2333-426=1908)
"단군조선은 BC 239년 제3차 쿠테타가 발생하였음이 밝혀졌다"
(제47세 고열가 단군 이후 7년의 '공화정'을 거쳐 북부여로 계승된다)
"단군조선은 공식적으로 BC 232년 북부여단군조선(고구려)으로 계승
(놀랍게도 '4월초8일'은 북부여단군조선의 건국축제일로 밝혀졌다)
<'환단고기'가 밝힌 동양의 고대사에 대한 증언>-북부여단군조선.
"북부여단군조선이 곧 고구려(高句麗)이다"
(환단고기, 삼국유사, 광개토비문, 모두루 묘지명, 중국25사가 증명)
"북부여단군조선(고구려)은 BC 239년 '해모수'에 의해 건국되었다"
(쿠데타였지만 7년 공화정 이후 BC 232년 합법적으로 계승하였다)
"북부여단군조선(고구려)은 단군조선을 계승한 '합법적' 정부였다"
(위만조선은 북부여단군조선의 영토 일부를 탈취한 비합법적 정부)
"북부여단군조선의 건국축제일 '4월초8일'은 석가탄신일로 바뀐다"
(서양에서 태양신 축제일인 12월25일이 성탄절로 바뀌는 것과 같다)
"북부여는 제1세 해모수부터 제6세 고무서까지 181년간 존재하였다"
(북부여단군조선 제6세 고무서의 사위가 바로 '고주몽'임이 밝혀짐)
"BC 194년 위만조선의 건국은 북부여단군조선의 일부 상실이다"
(북부여는 제후국 '번조선'을 탈취 당하고 위만의 축출을 위해 전쟁)
"위만조선은 단군조선의 합법적 후계정부가 아니다"
(북부여단군조선은 위만을 '도둑떼'로 규정, 대규모 전쟁을 벌인다)
"BC 108년 위만조선의 멸망은 '북부여단군조선'의 멸망이 아니다!"
(당시 북부여단군조선은 제4세 '고우루' 단군이 재위하고 있었다!)
"이른바 한사군을 다스린 사람들은 모두 조선인들(최, 참, 음, 협)"
(이는 한사군의 현장을 눈으로 보고 적은 사마천의 '사기'가 증언함)
"동명왕이라 불리우는 고두막은 BC 108년 한사군 전쟁시의 의병장"
(동명왕은 BC 86년 북부여 제5세 단군, 고주몽은 고구려의 개국조)
"동명왕 고두막은 한나라 무제와 벌어지는 전쟁들을 승리로 이끈다"
(고구려의 진중가에 '무제는 망아지처럼 도망했네'라는 노래로 나옴)
"BC 58년 고주몽은 북부여단군조선 6세 고무서 단군 사위로 등극"
(환단고기는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BC 58년으로 정확히 고증하였다)
<'삼국사기'와 '중국25사'의 역사적 진실>-삼한 78국
"삼한은 78국 사방 4000리를 가진 대륙국가이다"(▼중국삼국지)
(1국은 사방 100리: 한반도에 삼한과 삼국이 동시에 있을 조건 안됨)
"삼한의 위치는 낙랑(하북성)과 대방(하남성)이다"(▼중국25사)
(삼국사기 중국25사는 삼한이 북경과 하남성에 있음을 적고 있다)
"낙랑은 지금의 북경"(중국지명사전/중국대명일통지/평양덕흥리고분)
(평양덕흥리고분은 낙랑이 북경임을 고고학적으로 말해 준다)
"660년 당나라 설인귀는 '대방주자사'로 백제전에 참여"(▼자치통감)
(이 때 대방은 고구려 영토/대방이 황해도가 아닌 결정적인 이유)
"마한 진한 변한 등 삼한은 '기주'(하북성)의 도이"▼중국우공추지
(중국서경은 기주의 도이는 갈석산(하북성)에 있다고 적고 있다)
"삼한의 강역은 연나라(하북성) 제나라(산동성) 지역"(▼중국 삼국지)
(중국삼국지는 삼한 사람들이 연제지역에 존재하였다고 적고 있다)
"삼한은 위나라 관구검의 침공을 받았다(대륙삼한증거)"(▼삼국지)
(위나라가 한반도의 전라도 경상도를 공격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진한(신라)은 진(秦)나라 망명객의 나라"(▼진서▼양서▼남사▼송서)
(진시황의 백성들이 어찌 백제를 건너서 신라로 망명할 수 있는가)
"중국25사 진서는 삼한이 중화족과 섞여서 살고 있다고 적고 있다"
(진서는 삼한 78국이 개별 국가단위로 진나라에 복속했음을 기록)
"삼한78국이 삼국을 제치고 모두 진나라에 어찌 복속할 수 있는가"
(삼한78국이 삼국(고구려/백제/신라)에 복속한 국가는 하나도 없다)
"중국25사 진서는 삼한의 대륙존재 사실을 확실히 하고 있다"
(삼한78국이 100여년에 걸처서 각각 진나라에 복속하고 있기 때문)
<'삼국사기'와 '중국25사'의 역사적 진실>-고구려
"고구려는 BC 239년 개국한 북부여단군조선을 계승한 국가이다"
(환단고기, 삼국유사, 광개토 비문, 모두루 묘지명, 중국25사가 증명)
"고구려의 역년은 정확히 900년이다"(당나라 시어사 가언충의 증언)
(북부여단군조선의 공식적 개국 BC 232년+고구려멸망 668년=900년)
"동명왕과 고주몽은 완전히 다른 역사적 인물이다"(▼환단고기)
(동명왕은 BC 86년 북부여 제5세 단군, 고주몽은 고구려의 시조이다)
"고구려 백제는 오·월(양자강), 유·연(하북), 제·노(황하)를 차지"
(현대의 중국대륙 동편 군현지(郡縣誌)에서 분명히 증명할 수 있다)
"고구려의 대륙경영 사실은 이정기가 세운 산동성 제나라에서 증명"
(고구려 강역이었기 때문에 고구려 장군이 산동성에 나라를 세운 것)
"현대의 중국 군현지에서 소개되고 있는 고구려의 대륙경영 사실"
(산동성의 청도/즉묵/봉래, 강소성의 양주/비주/금호/염성/숙천 등임)
"평양덕흥리고분은 고구려의 북경 지배사실을 기록한 고고학적 승리"
(북경과 하북성의 13군 태수가 고구려의 유주자사에게 하례하고 있다)
"낙랑은 북경임이 밝혀졌다"(▼평양덕흥리고분▼중국대명일통지)
(매국사학자들은 '낙랑'이 평양이고 '대방'이 황해도라 말해 왔다)
"북경과 하북성은 고구려의 기본강역"(평양덕흥리고분/유주자사명문)
(북경에는 고구려 제2세 유리왕의 '유리묘' '유리하' '유리창'이 있다)
"고구려의 펑양성은 요녕성 요양임이 밝혀졌다"(▼중국 요사지리지)
(중국요사지리지는 고구려 평양성이 요녕성 요양이라 정확히 기록)
"지금의 평양은 고구려 시대의 한성임이 평양성벽글씨에서 밝혀졌다"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의 묘비명에도 이 사실이 명백히 적혀 있다)
"지금의 압록강은 동압록이고 지금의 요하가 압록강임이 밝혀졌다"
(중국요사지리지/중국고지도/삼국유사/환단고기의 증언이다)
"고구려의 '요서10성'은 모두 지금의 북경과 하북성에 있다"
(매국사학자들은 '요서10성'을 모조리 '요동10성'에 표시하고 있다)
"고구려의 초기지명과 패망지명은 모두 북경과 하북성에서 발견됨"
(매국사학자들은 고구려사를 쪼그랑 바가지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삼국사기'와 '중국25사'의 역사적 진실>-대륙백제.
"백제는 영(瀛)과 빈(濱)의 바다 남쪽에 있다"(▼중국당서▼중국위서)
(중국의 각종 고지도는 '영'과 '빈'을 모두 산동성 황하 일대에 표시)
"백제는 중국의 요서와 진평(하남성)을 경영함"(▼송서▼양서▼남사)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은 진평군 진평현이 하남성에 있음을 적고 있다)
"백제의 책계왕은 성한(成漢:사천성 성도)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한국과 중국의 사학자들은 천벌을 받을 거짓말을 해왔던 것이다)
"백제는 후위(북위)와도 전쟁을 벌인 대륙국가"(▼삼국사기▼자치통감)
(백제는 대륙에 주요기반을 가졌고 한반도의 백제는 백제의 일부였다)
"중국 남제서의 백제7군 지명은 대륙지명이며 현재까지 남아 있다"
(광양은 하북성/청하는 하북성/성양은 산동성/광릉은 강소성에 있다)
"백제 개로왕은 하수(황하)를 따라 '숭산'(하남성)까지 제방을 쌓았다"
(숭산(崇山)은 지금도 하남성에 그대로 살아 있는 지명이다)
"중국대륙의 동편에는 단군조선 삼한삼국 지명이 230개나 있다"
(삼국사기에서 '알 수 없는 지명'으로 분류된 30개도 대륙에서 발견)
"대륙의 '산동성' 일대에는 백제패망지명이 '20개'나 존재한다"
(대륙의 산동성에서 '백제패망지명' '신라전쟁지명'이 수 십개 발견됨)
"백제의 한성과 사비성은 산동성의 '한성'과 '(사)비성' 지역에 있다"
(대륙의 산동성에는 황산, 백마하, 주류자, 항성(당항성) 등이 있다)
"멸망 당시의 백제성곽 수는 200개, 임진왜란 당시 성곽수는 10개"
(명나라의 장수 송경락의 증언/1666년 백제지역의 성곽수는 60개)
"멸망당시의 백제인구 400만/조선 세종 때 백제지역 인구 11만3천"
(중국25사가 증언/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군과 신라군사의 수 18만)
"백제의 사비성이라 부르는 충남 부여는 백제의 '내저성'이었다"
(매국사학자들은 충남 부여에서 발견된 '내저성' 비문을 숨기고 있다)
"백제 정벌군인 신라 태종무열왕의 관직명은 '우이도행군총관'이다"
(우이도가 지금의 산동반도임은 천하가 다 아는 역사상식)
<'삼국사기'와 '중국25사'의 역사적 진실>-2개의 신라.
"신라는 백제의 동남쪽 5000리에 있다"(중국양서/중국남사/중국주서)
(대륙백제와 대륙신라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2개의 신라)
"삼국사기와 중국25사는 분명히 2개의 신라를 적고 있다"
(대륙에는 사로신라가 있었고, 한반도에는 매금신라가 있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초기신라는 대륙신라로 '사로신라'라 기록하였다"
(광개토비문과 중원고구려비에 나오는 반도신라는 '매금신라'로 기록)
"삼국사기 중국25사에 나오는 2개의 신라는 천문학적으로도 증명됨"
(세계적인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의 일식관측지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선도성모(박혁거세 모친)는 송나라 때까지 대륙에 사당이 있었다"
(송나라에 간 김부식 선생이 선도성모 사당에 참배하는 장면이 나옴)
"15년 신라 지마 이사금이 가야 정벌에 나서 '황산하'(黃山)를 건넘"
(가야를 정벌하는데 황산(충남논산)이 왜 등장하는가/절강성 황산)
"300년 낙랑(평양)과 대방(황해도)이 망해 신라로 귀의한다"
(낙랑이 지금의 '평양'이 아니고 대방이 지금의 '황해도'가 아닌 이유)
"330년 신라 흘해 이사금 21년 '벽골지'(전북김제)를 만들었다"
(신라임금이 백제 땅에 있는 벽골지를 만들었다니/대륙신라의 증명)
"414년 신라 실성 이사금 12년 '평양주'에 큰 다리를 놓았다"
(신라임금이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다리를 놓다니!/절강성 평양)
"489년 신라 소지 마립간 10년 동양(東陽)에서 거북을 진상했다"
(동양이란 지명은 한국에 없고 절강성에 지금도 있는 지명이다)
"494년 소지 마립간 때 임해진(臨海鎭)을 설치해 왜적을 방비하였다"
(임해라는 지명 역시 절강성에만 있을 뿐 한국에는 없는 지명이다)
"495년 신라 소지 마립간 때 고구려와 '살수'(청천강?)에서 싸웠다"
(이 때는 고구려가 최강의 시기인데 신라가 어찌 청천강을 갈까)
"555년 신라 진흥왕 때 '완산주'(전북전주)를 설치하였다"
(신라 진흥왕이 완산주를 설치하였다니!/대륙의 호북성 전주 관련)
"657년 신라의 토함산에 화산이 폭발하여 3년 동안 용암분출"
(한반도의 경주는 확정적 후대 경주/제주와 같은 용암흔적이 없음)
"신라의 수도 경주는 인구가 18만호였으니 1백만명이 모여 살았다"
(조선 세종 때의 인구는 6천명/현재의 경주인구는 월성포함 30만)
"659년 신라 태종무열왕 때 공주(백제수도)에서 큰물고기가 죽었다"
(망하지도 않은 백제 땅을 신라 임금이 관할하다니!/하남성의 공주)
"672년 신라와 당나라는 '석문'(하북성)에서 당나라와 8년전쟁 치름"
(석문(石門)은 지금도 하북성에 그대로 살아 있는 지명이다)
"816년 신라 헌덕왕 때 백성들이 굶주려 절강(절강성)으로 갔다"
(굶주린 신라백성들이 어떻게 절강성까지 갔겠는가/대륙신라 관련)
<고려사에 나타난 대륙지명>-고려사의 진실.
"고려는 10여개의 '번국'(藩國:제후국)을 가진 황제국이었다"
(동여진 서여진 북여진 탐라 탁라 우산국 철리국 흑수국 개마국)
"고려는 '동번'(東藩:동여진)을 응징하였으나 내란으로 규정"
(고려는 군사 3만명을 동원한 거대 전쟁을 내란으로 규정한 황제국)
"고려는 '요하'를 삼분하여 그 절반을 가지고 창업하였다"(궁예)
(고려는 요하(遼河/요녕성)를 물고 나라가 창업되었다)
"고려는 '요수'의 물결을 잠재우고 진한땅을 얻어 통일했다"(최승로)
(고려는 요수(遼水/요녕성)를 물고 나라가 창업되었다)
"고려성종은 '요성'에 나아가 선대의 옛법을 행하였다"(고려성종)
(고려의 요성(遼城/요녕성)은 요하 요수 요동 요서 요동반도에 있다)
"고려는 송으로부터 '현도군'(玄兎郡) 도독이란 책명을 받았다"
(한서와 후한서의 현도군은 유주(북경), 자치통감은 노룡(하북성))
"서토의 하남성 숭산(嵩山:현재지명)은 고려의 영토임이 밝혀졌다"
(고려 문종은 소림사로 유명한 '북숭산' 신광사로 행차하고 있다)
"고려의 10도 지명에는 대륙지명이 섞여 있다(하남/강남/산남)"
(일반적으로 하남은 황하, 강남은 양자강, 산남은 산동성을 말한다)
"고려는 최사위란 공신에게 '청하현개국남'이란 관작을 내린다"
(청하는 요녕성 요하유역과 황하의 지류에만 있는 지명이다)
"고려는 공신들에게 평량후, 태원공, 신안후 등의 작호를 내린다"
(평량은 섬서성, 태원은 산서성, 신안은 하북성에만 있는 지명이다)
"고려의 철령위(鐵嶺衛)는 요녕성 '철령시'를 말하는 것이다"
(고려의 철령위는 요녕성 철령시이지 강원도 철령이 아니다)
"고려의 '쌍성총관부'는 길림성 쌍성에 있다"(현재의 중국지도)
(매국사학자들의 매국행위가 천벌을 받을 수준임을 말해 준다)
"고려의 동녕부(평양)는 요녕성 '요양'을 말하는 것"(요사지리지)
(요사지리지는 요녕성 요양이 고구려의 평양성이라 적고 있다)
"고려의 행정구역수는 584개, 조선은 324개, 신라는 450개"
(매국사학자들이 고려와 신라의 강역을 얼마나 잘라 먹었는가)
"강화도에는 고려의 대형사찰인 선원사 흥국사 등의 유적은 없다"
(신라의 소형사찰인 전등사, 정수사, 보문사, 적석사 등은 있다)
"고려는 양자강 고우성으로 연경의 고려인 2만3천을 파견하였다"
(고려가 대륙에 영토가 없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위화도(압록강)와 위화진(평북운산)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역사조작의 흔적/위화도와 위화진은 100km이상 떨어져 표시됨)
"1666년 김수홍의 '천하고금대총람'에는 경주가 안휘성에 표시됨"
(대륙의 안휘성 회원현과 안휘성 봉양현에는 많은 유적유물 있다)
"현재의 중국지도에도 고려의 영토는 만주까지로 나타나 있다"
(만주지도에 고려모, 고려령, 쌍성(쌍성총관부), 철령(철령위) 표시)
오씨(吳氏)의 유래와 본관
오씨는 본래 중국 연릉(延陵:지금의 강소성 금릉도 단도현) 사람인 태백(泰伯)이 세운 오나라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기록하는 문헌이 전한다.
우리나라 오씨의 근원에 대해서는 문헌마다 기록이 달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오씨문중의 연원지인 연릉(延陵)을 보다가,회산감씨(檜山甘氏)가 고려에 와서 봉작을 받은 곳이
연릉(延陵)이라는 감씨에 대한 설명을 보고 너무나 놀랐다.
시조 감계의 자는 양원(養元), 호는 연강(延岡)이다.
시조 감계는 원나라 사람으로 1351년(충정왕 3년) 공민왕(恭愍王)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 원나라 황족 위왕의 딸, 공민왕비)를 따라 한림학사(翰林學士)로서 고려에 들어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으며, 후에 연릉군(延陵君)에 봉해졌다.
15세손 감수화(甘受和) 때 까지 본관을 연릉(延陵)으로 삼아오다가, 16세손 감철(甘喆)이 북벌을 간(諫)하여 중지하게 한 공으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오르고 회산군(檜山君)에 봉해진 이후로 본관을 회산으로 하고있다.
연릉은 강소성에 있다.그렇다면 강소성은 고려의 영역이다. 대륙고려의 실체를 보는듯하다.
4.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에 관하여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의 역사성에 관하여 그 실체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다음의 몇 가지를 통해 그 진실성을 말해 보고자 합니다.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에 관한 기록이 풍부히 남아 있는 곳은 환단고기입니다. 여기서는 환단고기의 기록과 고고학적 물증을 기준으로 말하고자 합니다. 환단고기의 기록이 물증으로 증명되고 있는데도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을 부정하는 제도사학계는 과연 어느 나라 국민인지 스스로 되물어야 할 것입니다.
(1) 북경의 삼조당: BC 2707년에 있었던 배달국과 치우천자와 서토의 황제와의 전쟁은 동아시아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전쟁입니다. 최근 서토는 이 전쟁의 주요 당사자인 치우천자와 황제의 묘를 정비하고 그들을 서토의 정식조상으로 받아들여 북경의 탁록에다 삼조당을 세웠습니다. 환단고기는 동아시아를 뒤흔든 역사적 전쟁인 치우천자와 황제와의 전쟁기록을 가장 많은 분량으로 가장 완벽히 기록하고 있는 사서입니다.
(2) 강화도 참성단: 강화도 마니산에 제천단과 참성단이 있어 역사적으로 해마다 천제를 지내온 바 그 첫 기록이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왕검단군 무오 51년(BC 2284년)에 쌓았다고 나옵니다. 마니산 참성단은 지금도 의연히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을 뒷받침하며 그 의연히 그 자태를 빛내고 있습니다. 서울 올림픽과 전국체전 성화채취의 기본성지가 되고 있습니다. 차제에 마니산 참성단은 국보로 지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3) 평안도의 단군릉: 단군조선의 실재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안도 강동현에 있는 대박산에서 단군릉이 1993년 발굴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왕과 왕후로 보이는 유골이 발견되었으며, 북한은 이 단군릉을 거대하게 재축조하여 성역화 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BC 2084년 단군조선 제5세 구을 단군이 붕어하시고 대박산에 묻혔다는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유물유적인 것입니다. 환단고기의 역사성이 여기서도 증명되는 것입니다.
(4) 흘달단군 때의 오성취루: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대야발 선생의 단기고사에는 단군조선 제13세 흘달 단군 50년(BC 1733년)에 5개의 별이 일렬로 서는 장관을 연출했는데, 이것이 서울대학교 박창범 교수에 의해 천문과학적 방법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세계적인 천문학자인 박창범 교수는 1734년 7월 13일 일몰 직후 금성, 목성, 토성, 수성, 화성 등 추가로 초승달까지 1렬로 지어 하늘에 나타나는 장관을 연출했음을 확인하였습니다(우연일 확률은 0.007%데 불과)
(5) 갑골문의 귀방: 은나라의 갑골문에서도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유물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즉 BC 1291년 단군조선 제21세 소태 단군 재위 때 은나라 왕 무정이 '귀방'을 쳤다는 기록이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남아 있는데, 과연 은나라의 갑골문에서 은나라의 귀방정복 사실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입니다. 환단고기는 이토록 확실한 역사적 근거와 고고학적 근거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6) 아유타국과 백제상인: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는 '진역유기'를 인용하여 현재 태국에 있는 아유타국과 백제상인들이 교역한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백제가 현재의 캄보디아인 부남국과 교역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정확히 뒷받침해 줍니다. 이는 백제의 대륙존재설이나 해외경영의 한 단면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인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기록이 남아 있는 환단고기를 연구도 해보지 않고 위서 운운하는 것이 한국역사학계의 현실입니다.
(7) 장수왕의 연호 건흥: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본기에는 고구려의 장수왕이 즉위하자, 건흥이러는 연호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건흥 연호는 1915년 충북 충주시 노은면에서 출토된 불상의 명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상에는 '건흥오년세재병진'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 그 정확한 근거가 나와 있습니다. 실로 대단한 기록이요 엄청난 고고학적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강단사학에서 무시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8) 연개소문의 내력: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발해의 정사인 '조대기'를 인용하여 연개소문의 아버지 이름을 연태조, 할아버지는 자유, 증조부는 광이라고 했다. 그런데 1923년 중국 낙양의 북망산에서 출토된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의 무덤에서 연남생의 증조부 이름을 '자유'로 명기하고 있어서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진가를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환단고기는 고구려 및 발해사와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에 대한 기록을 알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서인 것입니다.
(9) 이정기 장군과 제나라: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는 781년 고구려의 유장 이정기 장군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고구려의 유장 이정기는 중국대륙 산동반도 일대의 15개 주에 제나라를 건국하고 4대 58년간 다스렸던 사람인데 환단고기는 여기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고구려의 유장 이정기가 중국의 산동반도에 제나라를 건국하고 다스렸음은 KBS에서도 방영되어 그 역사적 사실이 인정되었습니다. 이처럼 환단고기는 위대한 사서인 것입니다.
(10) 발해 문황의 연호 대흥: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는 발해의 제3세 문황 대흠무의 연호가 대흥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1949년 만주 길림성 화룡현 용두산에서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출토된 정효공주묘지 비문에서 발해의 문황 대흠무가 자기 연호를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이란 쓰고 있었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가 얼마나 정확한 역사기록을 남긴 사서인지가 확실히 증명된 것입니다.
(11) 비파형청동검: 단군조선의 비파형청동검은 단군조선이 서토와 구별되는 선진 청동문화를 가진 정치세력 집단이었음을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군조선의 유적유물입니다. 이 정치집단의 분포도는 환단고기가 말하고 있는 역사적 시기와 역사적 강역이 너무도 일치하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비파형청동검의 분포지는 만주, 한반도, 중국대륙의 동편으로 환단고기가 설명하고 있는 역사강역과 완전히 일치하며 그 연대도 완전히 일치합니다.
(12) 고인돌유적: 환단고기의 태백일사가 설명하고 있는 고인돌에 대한 기록 또한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을 유적유물로 뒷받침하는 단군조선의 실존적 증거물입니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서는 배달국 신시시대의 장묘문화로부터 고인돌시대 장묘문화와 삼국시대의 장묘문화까지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이와 같이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의 실상을 연대기와 역사기록과 역사강역을 정확히 표시하고 있는 아시아의 대표적 역사서이며 세계적인 역사서인 것입니다.
(13) 하북성 중산의 천자명문: 하북성 중산묘에서 BC 10세기 것으로 보이는 청동도끼가 발견되었는데, 그기에는 '천자건방중산후'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군조선의 핵심강역인 서요하 지역에서 출토된 BC 22세기의 도자기 부호와 양식이 완전히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BC 22세기부터 BC 10세기까지 북경과 하북성 일대를 다스린 것은 단군조선의 천자였음을 기록한 환단고기의 기록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서토인들이 최초로 천자(황제)를 참칭한 것은 BC 221년의 진시황이었습니다.
(14) 요녕성의 '번한' 명문: 요녕성 대집둔 지구에서는 환단고기가 기록하고 있는 단군조선의 제후국 번한(번조선)의 명문이 나타나 환단고기의 사실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요녕성 대집둔 지구에서는 番汗(번한/ 번조선)을 나타내는 '番干'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은제 도장이 발견된 것입니다. 단군조선은 개국과 동시에 진한(요하지역)과 번한(황하/하북성)과 마한(한반도/만주) 등의 삼한(삼조선)으로 나누어 다스렸다는 환단고기의 기록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유물유적이 출토된 것입니다.
(15) 단, 기, 언, 고죽 명문: 서요하 지역의 적봉시 하가점을 중심으로 하북성에서 요서지역싸지 출토되는 청동기 문화 유적지를 '하가점하층 문화'라 부르는데, 여기서는 단군조선을 나타내는 단(亶), 단군조선의 제후국 기자조선(번한/번조선)을 나타내는 기(기), 단군조선의 제후국 서국의 서언왕을 나타내는 언(언), 단군조선의 제후국 고죽국을 나타내는 고죽(孤竹) 등이 광범위하게 출토되고 있습니다. 모두 환단고기의 기록을 참고하지 않으면 알아 들을 수 없는 명문들이니다.
(16) 남녀조각상과 곰석상: 서요하지역의 적봉시 홍산과 나사대 지역에서는 환웅과 곰녀를 상징하는 남녀조각상과 곰석상이 출토되었습니다. 서요하 지역의 적봉시 홍산유적지에서는 갑골문의 초기형태가 발견되어 은나라의 갑골문이 홍산문화 담당자들에 의해 전해졌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홍산문화와 나사대 문화는 대체적으로 배달국 시대(BC 3898년과 BC 2333년 사이)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17) 배달국의 녹도문과 창성조적비: 환단고기에는 BC 3898년 18분의 환웅 중 배달국을 건국한 제1세 거발환 환웅께서 신지에게 녹도문을 창안할 것을 명하고, 배달국의 역사기록을 담담시킵니다. 그런데 이 녹도문이 한국의 평양에서도 발견되었고, 산동성의 창성조적비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평양의 녹도문과 창성조적비의 글씨는 모양과 형태가 배달국의 녹도문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이 이렇게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18) 가림토문과 일본의 신대문자: 환단고기에는 BC 2181년 제3세 가륵 단군이 을보록에게 정음38자를 창제할 것을 명합니다. 그런데 이 가림토문의 흔적은 지금의 한글에 그래로 남아 있고, 일본의 신대문자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 '구주신사'의 가람토문비석이나 '이세신궁'의 가림토문 청동거울은 한글비석과 한글 청동거울이라 명명하면 딱 들어 맞을 정도로 완벽한 가림토문입니다. 또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역시 그 형태와 내용이 한글(가림토문)과 흡사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19) 요하는 압록이고 난하는 요하: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는 지금의 압록강은 '동압록'이고,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고, 지금의 난하가 '요수(요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란 사실은 중국요사지리지와 삼국유사도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고 지금의 난하가 요수임은 서토의 고지도 '지리도' '연산도' '중국삼대간룡총람지도'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환단고기가 얼마나 정확한 기록을 반영한 역사서인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20) 낙랑군과 낙랑국: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북부여기는 낙랑군과 낙랑국에 대한 근거를 가장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낙랑이란 지명이 나타나는 것은 BC 1767년 제13세 흘달 단군, BC 1237년 제23세 아홀 단군, BC 195년 북부여 제1세 해모수 단군, BC169년 북부여 제3세 고해사 단군 때입니다. 특히 BC 195년에는 낙랑왕 최숭이 보물을 싣고 마한의 서울 왕검성으로 가는 장면이 적혀 있습니다. 이때부터 하북성의 낙랑군과 한반도의 낙랑국이 구분되어 나타납니다. 환단고기는 고대사의 비밀을 푸는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은 이렇게 명확히 나타났습니다. 환단고기를 통해본 아시아 정확히 말해 극동삼국 '한국' '지나' '일본'의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이미 범죄 수준의 무협소설입니다. 아시아 대륙과 중국대륙 그리고 만주와 한반도에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72세 6962년의 역사를 모조리 무덤의 역사로 파묻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불행한 역사를 이제는 제대로 밝혀야 합니다. 부끄러운 동양의 얼굴을 다시금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민족사적 요청이며 동양사적 요청이며 세계사적 요청입니다.
5. 맺음말
사학자들은 낙랑이 평양이라 하고 대방이 황해도라 말합니다. 그러나 1976년에 발견된 평양덕흥리고분에서는 낙랑과 대방이 지금의 북경과 하북성임을 증명하는 명문이 출토되고 말았습니다. 고구려 유주자사가 북경과 하북성을 경영하고 있었음이 고고학적으로도 증명된 것입니다.
또한 백제의 수도라고 하는 충남부여에서 '내저성'이란 비문이 출토되어 충남부여가 백제의 사비성이 아니라 내저성이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뻔뻔스럽게도 그들은 아직도 교과서를 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라와 겨레의 역사를 선양하고 잃었던 역사를 발굴하여, 민족사를 바로 잡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몫이거늘, 어찌하여 한국의 역사가들은 한국의 역사를 서토(중국)의 아류역사로 만들지 못해 저렇게 안달을 하는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에 대한 역사성은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료들이 중국25사에 워낙 많이 늘려 있어서 그것들을 이리 저리 주어 모아도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사는 거뜬히 복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민족 최대의 영웅 배달국 제14세 치우천자에 관한 것은 서토의 '사기'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서토 사서에서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역사기록조차 우리역사에 편입하지 못하는 저들 사학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국적은 어디입니까? 참으로 알 수 없고,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학자들의 행위를 어찌 매국행위라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치우천자와 같은 위대한 조상들의 대륙활동사가 있는데도 한국의 국사교과서 첫 페이지는 단군신화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국사 교과서 다음 페이지에는 한국역사의 실질적 시작국가를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이라 하면서 그들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민족사에서 좋은 것은 모두 빼어버리고 외국인(중국인)을 한국사의 주인공으로 실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교과서는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유일한 교과서입니다. 국민들의 에너지가 뭉쳐지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아버리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정신나간 역사를 우리는 해방이후 60년 동안이나 배우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이 매국행위를 공공연히 일삼고 있다면 우리정부는 어떤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까? 우리 정부 역시 민족교육과 역사교육을 포기하려고 작정이나 한 듯, 국사 교과목을 사회과 교과목에 통합시키는가 하면, 국사를 공무원 시험과목에서도 선택과목으로 추방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국사과목을 대입 수능에서 선택과목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불감증이요 망국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정부는 역사학자들보다 더 매국주의적 발상을 하고 있습니다.
서토(중국)인들은 고구려사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하려고 수 조원의 돈을 쏟아 부으며 고구려사를 조작하고 있고, 왜토(일본)인들은 식민사관을 고수하는 얼빠진 한국의 역사가들에게 매년 수 십억의 돈을 쏟아 부으며 매국사학의 기틀을 이어가도록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서울의 고구려 아차산성을 보수할 돈을 쓰지 않아 아차산성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가 하면, 서토가 고구려사를 침략해서 난리인데 인기방송 'KBS 역사스폐셜' 방송 프로그램을 없애버렸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자고로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모두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청나라, 금나라, 요나라 등의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역사를 똑바로 가르친 나라는 영원히 그 민족성을 유지하고 번영의 길로 갑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좋은 예입니다. 지금 세계의 패권은 미국이 갖고 있지만 사실은 미국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유태인들입니다. 미국이 10억 아랍인들을 포기하고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이스라엘에 코가 꿰어져 있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잡고기들은 알지 못합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의 깊이를! 참새는 알지 못합니다. 봉황의 뜻을! 마당쇠는 알 수 없습니다. 주인의 뜻을!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나는 법입니다. 왕대밭에 왕대나고 쑥대밭에 쑥대나는 법입니다, 마음속에 이상을 품은 사람과 마음속에 패배의식을 품은 사람은 인생이 다르고, 인성이 다르고, 인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그 인생의 결과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한국의 역사교과서는 참으로 잡고기, 참새, 마당쇠 교과서입니다. 강물의 깊이도, 봉황의 뜻도, 주인의식도 잃어버린 역사교과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사가 저렇게까지 천대받고서야 어찌 나라의 기틀이 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한국의 역사학계는 스스로 자신의 영광된 역사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환국 7세 3301년, 배달국 18세 1565년, 단군조선 47세 2096년의 역사를 팽개치고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대륙영토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 어찌 가슴을 치며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역사의 불행은 고려와 조선시대부터 우리역사를 스스로 분탕질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실로 불가사의한 나라 불가사의한 민족입니다. 우리역사의 불행은 일부의 외세적 농간을 제외하면 모두 우리자신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주류사학을 담당하고 있는 사학자들은 한국사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저토록 잡고기, 참새, 마당쇠가 되도록 하였단 말입니까? 나라가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된지가 60년이 되어 가는데 무엇이 두렵다는 말입니까?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는 국사교과서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환단의 역사 72세 6962년의 역사를 찬란히 부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대륙영토를 올바로 복원해야 합니다.
겨레여 일어나라! 1000년의 함성으로 일어나라!
겨레여 깨어나라! 반도에서 대륙까지! 대륙에서 환국까지!
지식인들이여 말하라! 이제는 역사의 진실을 말해야 한다!
청년 학도들이여 외쳐라! 민족사의 새벽종을 울려라!
<우리의 요구>
(1) 지식인들은 역사의 진실에 양심선언을 하라!
(2) 국사교과서를 올바로 개정하라!
(3) 환단고기를 민족의 정사로 지정하라!
(4) 삼국사기가 가르치는 삼국의 대륙역사를 가르쳐라!
(5) 고려사가 가르치는 고려의 영토를 올바로 기술하라!
(6) 환국 7세 3301년의 역사를 가르쳐라!
(7) 배달국 18세 1565년을 가르쳐라!
(8) 단군조선 47세 2096년을 가르쳐라!
(9) 북부여(고구려의 모국) 6세 181년을 가르쳐라!
(10) 고구려 백제 신라의 대륙영토를 가르쳐라!
배달개천 5902년 7월 1일
국사찾기 국민운동본부 추진본부장 허성정(<아!고구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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