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기할 만한 점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그 곳은 일본어 학원이 아닌 일본어 학교라는 점이다. 서울에서 내가 근무하던 곳은 대부분의 강좌는 학생이 매달 그 학원에 등록해서 원하는 수업을 듣는 것이요, 다음 달에 수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학교’는 다르다. ‘학교’로서의 가장 큰 특징은 유학생비자를 취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어학교’는 당연히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되지는 않으나,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일본어학교에 등록을 하게 되면 유학생비자도 함께 신청을 하게 되기에 외국 학생이 이 비자를 받아 일본으로 입국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학생들의 출석관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숙사 안내와 아르바이트 소개까지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이 일본어학교 만의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호텔 부속이라는 점이다. 그 호텔이란 군마에서도 역사가 깊은 대형 호텔인데 그 호텔 사장과 일본어학원, 아니, 일본어학교와 후술하는 전문학교 이사장이 동일인물이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호텔이 일본어학교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문학교까지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문학교는 호텔서비스를 교육하는 학교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는 상당히 합리적으로 계산된 구도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외국인이 일본에 있는 일본어학교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 어렵게 비자를 받아서 오는 이유는 단순히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취업이 목적이다. 하지만 일본어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취업을 하기에 어려움이 크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학력이나 또는 스킬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외국인 유학생들이 머리에 그리는 청사진은 크게 나누어 다음과 같다.
일본어학교 졸업 → 대학 졸업 → 취업
일본어학교 졸업 → 전문학교 진학 또는 졸업 → 취업
그리고 이는 공공연한 비밀이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과정을 꿈꾸는 학생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일본어학교 등록 → 일본인과 결혼 → 혼인 또는 영주권 취득
마지막 경우는 개인사정이기에 학교에서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일본어 학교에서의 교육목표는 취업이 아니라 진학이다.
그렇다면 호텔 산하 일본어학교를 마치고 호텔 부속 전문학교에서 호텔 서비스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해당 호텔에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열리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 호텔에는 외국인 직원들이 비교적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되면 학생 측에 있어서는 취업하기도 수월해지는 면이 있고, 호텔 측에 있어서도 인력난에 허덕이는 요즘 세상에서 인력을 공급받을 수 있기에 그야말로 윈윈 관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비록 이 호텔에 취업이 안 되었다 하더라도 군마현은 국내유수의 온천이 많기 때문에 이에 따른 호텔이나 료칸 등 인력을 원하는 숙박업소들은 상당하다. 따라서 전문학교 측에서도 군마현만이 아니라 일본 각지의 호텔 료칸 방면에 대한 취업을 위해 열심이다.
나는 여기서 일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당연히 일본어 강사로 일하게 될 줄 알았다.
며칠 뒤 호텔의 사무국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면담을 하자고 한다. 약속시간에 호텔 로비에 가서는 사무국장과 근무시작일, 수업시간, 그리고 급여 등의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려고 했으나 문득 하는 말이, 이제부터 사장님이 오실 예정이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다.
사장님이? 갑자기? 왜?
그대로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어떤 초로의 신사 분이 오신다. 사장님이시다. 그로부터 1시간 정도였을까. 사장님의 원대한 꿈과 비전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사무국장이 시간제 고용이냐고 사장님한테 확인 차 물었더니 정규직이라고 한다.
사뭇 놀라 다시 정규직이냐고 물었더니 역시 정규직이라고 한다. 나는 학원강사를 생각 했었는데 덜컥 정규식으로 취업이 되고 말았다. 사장님은 그래도 비자에 문제가 없겠냐고 묻기에 지금은 종교비자로 있지만 취업을 해서 세금을 낸다는 점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을 했더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실은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큰 문제가 된다)
사장님은 나가신 다음에 다시 사무국장과 이제는 정규직으로서 근무조건에 대한 설명이 되었다. 그런데 이 때 사무국장으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근무조건이 월 4주 8휴라는 것이다. 한 달은 4주이고 1주일에 토요일과 일요일을 쉴 수 있다는 것이니 무슨 문제가 있을까 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4주 8휴라는 것’.
여기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 좋은 점은 주중에서 꼭 토요일과 일요일이 아니더라도 임의로 휴일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수요일에 예배를 인도해야 했기 때문에 수요일과 일요일를 희망했다. 이에 따라 토요일에는 정상 출근을 해야 한다.
다음으로 나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공휴일도 쉬지 못한다는 것. 중요하니까 다시 말하겠다. 공휴일도 쉬지 못한다는 것, 즉 빨간 날도 정상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무슨 일이 있어도 4주 8휴’의 핵심이다. 나는 놀란 마음에 만약에 공휴일에 쉬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더니,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연차를 쓰면 된다’라고 했다. 무엇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솔직한 말로 하자면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일본어학원에서 가르치던 때에는 아무리 좋은 회사라 하더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 정도로 나는 강사가 내 천직인 줄 알았기에 나는 하루 빨리 교실에 서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과는 달리 흔한 회사원처럼 정시 출근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