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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은 어린 임금 단종이 3정승에게 휘둘려 왕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왕권 강화의 기치를
내걸고 어린 단종의 충신들을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의 참모로는 한명회와 권람 등이 있었다.
한명회는 개국공신 한상질의 손자로서,
그때 그는 개성 경덕궁의 궁지기로 있었다.
권람은 권근의 손자였다.
1453년 10월 10일, 수양은 한명회, 권람 등과 더불어
거사를 모의했다.
아침 일찍 그를 따르는 홍윤성, 강곤, 임자번, 최윤,
안경손, 홍손노,홍귀동, 민발, 곽연성 등을 자신의 집
후원에 불러들였다.
수양은 이들에게 주연을 베풀고 거사를 의논했다.
"나리, 먼저 주상께 보고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민발과 송석손이 말했다.
그들은 왕권을 넘보는 김종서 등을 없애는 일이니
임금에게 먼저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극력 반대하였다.
임금에게 알려 기밀이 새어나가면 일이 크게
벌어질 수 있음을 염려해서였다.
수양은 짐짓 고민하는 척했다.
"대군, 어서 빨리 결단을 내리십시오!"
한명회가 재촉했다.
"대군, 용병하는 데는 망설임을 가장 기피해야 할
것이옵니다.어서 용단을 내리셔야 하옵니다."
홍윤성이 거들었다.
"아니요, 일에는 반드시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먼저 주상께 알려야 하오."
여전히 송석손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자 수양이 태도를 바꾸었다.
"정 그렇다면 그대들은 대궐에 들어가 나를 고발하라!"
수양은 벌떡 일어섰다.
그는 평복 안에 갑옷을 입고 갓을 썼었다.
송석손이 수양의 옷자락을 잡고 말렸다.
"대군, 심사숙고하시옵소서."
수양이 그를 발길로 차버리고 말았다.
"너를 강제로 끌고 가지 않겠다.
나를 따르지 않으려면 어서 돌아가라!
장부가 죽으려면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한다.
나 혼자라도 가겠다.
만약 어리석은 고집으로 기회를 그르치는 자가
있으면 내가 목을 칠 것이다!"
수양이 임운을 데리고 나가려고 하였다.
"대군을 혼자 보낼 수는 없소!"
한명회가 작전을 말했다.
"권언, 권람, 한서귀, 한명진 등은 따르는 군사를
이끌고 돈의문 성 위에 복병하라. 그리고 양정, 홍순손,
유수는 평상복을 입고 대군을 따르라!
홍달순이 미리 김종서의 집에 염탐하러 갔으니
도움이 될 것이다."
수양이 임운, 양정 등을 거느리고 김종서의
집을 찾아갔다.
김종서는 돈의문 밖에 살고 있었다.
수양이 김종서의 집에 닿았다.
김종서의 아들 승규가 신사면, 윤광은과 더불어
대문 앞에 나와 있었다.
"좌의정 대감을 뵈러 왔네."
"나리,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김승규가 집 안으로 안내했다.
임운, 양정 등이 뒤따랐다.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가 방 앞에서 알렸다.
김종서가 방 안에서 서둘러 나왔다.
"나리, 석양 무렵에 어인 일이시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아니오, 여기서 잠깐 얘기를 나누시지요."
김종서가 사랑채 마당으로 내려섰다.
"나리, 무슨 일이오?"
"종부시(왕족을 관리하는 관아)에서 영응대군
부인의 일을 탄핵했소이다.
좌의정께서 그 일을 맡아 처리해 주셔야겠소."
"그 일이라면 몸소 오시지 않아도 되실 일을요?"
김종서는 별로 의심하지 않았으나 아들 승규는 달랐다.
영응 대군 부인의 일이란 수양의 동생인 영응대군
(세종의 여덟째 아들)의 아내 송씨가 동래 온천에
내려가서 목욕했는데, 대간이 그 부인의 부정함을
지적하여 탄핵한 것이었다.
수양은 이 일을 구실 삼아 김종서를 찾아온 것이다.
이때 수양은 기회를 노렸으나, 김종서의 좌우에
김승규, 윤사면, 윤광은 등이 버티고 서 있어 매우
난처했다.
이때 수양은 사모뿔을 짐짓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김종서가 자기의 것을 뽑아 주었다.
"좌상 대감,
긴히 여쭐 말씀이 있으니 주위를 물리시지요."
김종서는 아들 김승규 등을 뒤로 물렸다.
수양은 품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어 김종서에게
내밀었다.
"대감 읽어 보시지요."
김종서가 두루마리를 펼쳐 읽어 내려갔다.
이때 수양이 임운과 양정에게 눈짓했다.
임운이 품안에 숨겨 둔 철퇴를 거내어
김종서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쳤다.
"으윽!"
땅바닥에 쓰러지는 김종서를 향해 아들 승규가
달려왔다.
그러자 양정이 칼을 뽑아 그의 배를 깊숙이 찔렀다.
승규가 아버지 위에 엎어졌다.
수양은 말을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때 돌다리 너머에서 한명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리, 어찌 되었소이까?"
"적을 죽였소."
그러나 김종서는 죽지 않았다.
그는 얼마 후 의식을 회복하고 아랫사람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게 아무도 없느냐? 성의 문지기에게 달려가
내가 죽게 되었으니
임금께 고하고, 약을 가져와 구하도록 하여라."
그는 고함을 질렀다.
김종서는 상처를 싸매고 여자의 옷으로 갈아입고
부인의 가마를 타고 숭례, 소덕, 돈의문을 돌았다.
그러나 수양의 심복들이 이미 성문을 장악하여
들어갈 수가 없었다.
수양은 김종서가 다시 살아날까 염려되어
이흥상을 보내어 살피게 했다.
이흥상이 김종서의 집을 샅샅이 뒤졌다.
둘째 아들 규의 방에 김종서가 누워 있었다.
"어서 끌어내라?"
이흥상이 소리쳤다.
"네 이놈! 내가 어찌 걸어가겠느냐. 초헌을 불러라!"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흥상의 칼이 김종서의 목에 깊숙이 꽂혔다.
수양은 집에 있는 무사들을 불러 거느리고
순라청에 이르렀다.
홍달손이 이미 순라꾼을 매수해 놓은 후였다.
순라꾼들이 수양을 에워쌌다.
수양은 시재소로 갔다.
그는 내금위 봉석주에게 군사들을 뜰 가운데
배치시켜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그날 임직 승지는 최항이었다.
수양은 최항을 불렀다.
수양이 최항의 손을 덥썩 잡았다.
"최승지, 김종서가 반역을 꾀하여 내가 죽였소.
일이 몹시 화급하여
주상께 미리 알리지 못했소. 최승지가 고해 주시오."
최항은 몸을 떨었다.
이때 단종은 향교동 영양위 정종의 집에 있었다.
정종은 문종의 사위로 단종에게는 매부가 되었다.
최항에게 수양이 덧붙였다.
"김종서 일당은 영의정 황보인을 비롯하여
이양, 민신, 조극관, 윤처공,이명민, 원구, 조번 등이고,
이들이 함길도 절제사 이징옥, 종성부사
이경유ㅡ 평안도 관찰사 조수량, 충청도 관찰사
안완경과 결탁하여 임금이 어린 틈을 타서 사직을
도모하려고 했소.
또한 내관 김연, 한승도 그들과 한 패요.
적의 괴수는 이미 제거 했으나,
그 나머지도 주상께 아뢰어 신속하게 토벌해야 하오."
최항이 이 사실을 단종에게 알렸다.
단종이 궁궐로 들어오고 수양의 살생부에 오른
황보인 등이 죽었다.
단종은 궁궐에 들어와 수양을 보고 울며 매달렸다.
"숙부, 나를 살려 주시오."
"전하, 염려 마시옵소서."
수양은 명패를 내어 조정의 중신들을 대궐에
불러들였다.
명패란
위쪽에 '命' 자를 쓰고 붉은 칠을 한 나무패를 말한다.
임금의 명으로 3품 이상의 벼슬아치를 부를 때
이 패에 이름을 써서 불렀다.
수양은 궁궐을 세 겹으로 에워싸고,
한명회는 살생부를 가지고 문 안쪽에서 기다렸다.
여러 대신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째 문에서 들어오는 대신들의 하인들을 떼어버렸다.
둘째 문에서는 살생부에 쓰여 있는 인물이면
한명회의 지시를 받아 홍윤성, 유수 등이 쇠몽둥이로
잔인하게 죽였다.
황보인, 조극관, 이양 등 수양의 눈 밖에 난 중신들이
죽어 나갔다.
윤처공 등은 집으로 군사를 보내어 죽였고,
민신은 추적하여 제거하였다.
우의정 정분 등 지정, 조수량, 이석정, 안완경,
유중문 등은 귀양 보냈다가 단종에게 압력을 넣어
사사시켜 버렸다.
이때 죽은 신료들은 계룡산 동학사에 위패를 모셔
그들의 영혼을 달랬다.
절에 초혼적기에는 45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수양의 대권 야심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조정의
고귀한 대신들이 명분 없이 희생되었다.
이것은 수양의 쿠테타였다.
-조선왕조 야사 발췌-밤에 읽는 조선왕조실록 "夜"사 ㅡ18
피의 밤 계유정난
수양은 어린 임금 단종이 3정승에게 휘둘려 왕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왕권 강화의 기치를
내걸고 어린 단종의 충신들을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의 참모로는 한명회와 권람 등이 있었다.
한명회는 개국공신 한상질의 손자로서,
그때 그는 개성 경덕궁의 궁지기로 있었다.
권람은 권근의 손자였다.
1453년 10월 10일, 수양은 한명회, 권람 등과 더불어
거사를 모의했다.
아침 일찍 그를 따르는 홍윤성, 강곤, 임자번, 최윤,
안경손, 홍손노,홍귀동, 민발, 곽연성 등을 자신의 집
후원에 불러들였다.
수양은 이들에게 주연을 베풀고 거사를 의논했다.
"나리, 먼저 주상께 보고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민발과 송석손이 말했다.
그들은 왕권을 넘보는 김종서 등을 없애는 일이니
임금에게 먼저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극력 반대하였다.
임금에게 알려 기밀이 새어나가면 일이 크게
벌어질 수 있음을 염려해서였다.
수양은 짐짓 고민하는 척했다.
"대군, 어서 빨리 결단을 내리십시오!"
한명회가 재촉했다.
"대군, 용병하는 데는 망설임을 가장 기피해야 할
것이옵니다.어서 용단을 내리셔야 하옵니다."
홍윤성이 거들었다.
"아니요, 일에는 반드시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먼저 주상께 알려야 하오."
여전히 송석손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자 수양이 태도를 바꾸었다.
"정 그렇다면 그대들은 대궐에 들어가 나를 고발하라!"
수양은 벌떡 일어섰다.
그는 평복 안에 갑옷을 입고 갓을 썼었다.
송석손이 수양의 옷자락을 잡고 말렸다.
"대군, 심사숙고하시옵소서."
수양이 그를 발길로 차버리고 말았다.
"너를 강제로 끌고 가지 않겠다.
나를 따르지 않으려면 어서 돌아가라!
장부가 죽으려면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한다.
나 혼자라도 가겠다.
만약 어리석은 고집으로 기회를 그르치는 자가
있으면 내가 목을 칠 것이다!"
수양이 임운을 데리고 나가려고 하였다.
"대군을 혼자 보낼 수는 없소!"
한명회가 작전을 말했다.
"권언, 권람, 한서귀, 한명진 등은 따르는 군사를
이끌고 돈의문 성 위에 복병하라. 그리고 양정, 홍순손,
유수는 평상복을 입고 대군을 따르라!
홍달순이 미리 김종서의 집에 염탐하러 갔으니
도움이 될 것이다."
수양이 임운, 양정 등을 거느리고 김종서의
집을 찾아갔다.
김종서는 돈의문 밖에 살고 있었다.
수양이 김종서의 집에 닿았다.
김종서의 아들 승규가 신사면, 윤광은과 더불어
대문 앞에 나와 있었다.
"좌의정 대감을 뵈러 왔네."
"나리,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김승규가 집 안으로 안내했다.
임운, 양정 등이 뒤따랐다.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가 방 앞에서 알렸다.
김종서가 방 안에서 서둘러 나왔다.
"나리, 석양 무렵에 어인 일이시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아니오, 여기서 잠깐 얘기를 나누시지요."
김종서가 사랑채 마당으로 내려섰다.
"나리, 무슨 일이오?"
"종부시(왕족을 관리하는 관아)에서 영응대군
부인의 일을 탄핵했소이다.
좌의정께서 그 일을 맡아 처리해 주셔야겠소."
"그 일이라면 몸소 오시지 않아도 되실 일을요?"
김종서는 별로 의심하지 않았으나 아들 승규는 달랐다.
영응 대군 부인의 일이란 수양의 동생인 영응대군
(세종의 여덟째 아들)의 아내 송씨가 동래 온천에
내려가서 목욕했는데, 대간이 그 부인의 부정함을
지적하여 탄핵한 것이었다.
수양은 이 일을 구실 삼아 김종서를 찾아온 것이다.
이때 수양은 기회를 노렸으나, 김종서의 좌우에
김승규, 윤사면, 윤광은 등이 버티고 서 있어 매우
난처했다.
이때 수양은 사모뿔을 짐짓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김종서가 자기의 것을 뽑아 주었다.
"좌상 대감,
긴히 여쭐 말씀이 있으니 주위를 물리시지요."
김종서는 아들 김승규 등을 뒤로 물렸다.
수양은 품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어 김종서에게
내밀었다.
"대감 읽어 보시지요."
김종서가 두루마리를 펼쳐 읽어 내려갔다.
이때 수양이 임운과 양정에게 눈짓했다.
임운이 품안에 숨겨 둔 철퇴를 거내어
김종서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쳤다.
"으윽!"
땅바닥에 쓰러지는 김종서를 향해 아들 승규가
달려왔다.
그러자 양정이 칼을 뽑아 그의 배를 깊숙이 찔렀다.
승규가 아버지 위에 엎어졌다.
수양은 말을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때 돌다리 너머에서 한명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리, 어찌 되었소이까?"
"적을 죽였소."
그러나 김종서는 죽지 않았다.
그는 얼마 후 의식을 회복하고 아랫사람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게 아무도 없느냐? 성의 문지기에게 달려가
내가 죽게 되었으니
임금께 고하고, 약을 가져와 구하도록 하여라."
그는 고함을 질렀다.
김종서는 상처를 싸매고 여자의 옷으로 갈아입고
부인의 가마를 타고 숭례, 소덕, 돈의문을 돌았다.
그러나 수양의 심복들이 이미 성문을 장악하여
들어갈 수가 없었다.
수양은 김종서가 다시 살아날까 염려되어
이흥상을 보내어 살피게 했다.
이흥상이 김종서의 집을 샅샅이 뒤졌다.
둘째 아들 규의 방에 김종서가 누워 있었다.
"어서 끌어내라?"
이흥상이 소리쳤다.
"네 이놈! 내가 어찌 걸어가겠느냐. 초헌을 불러라!"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흥상의 칼이 김종서의 목에 깊숙이 꽂혔다.
수양은 집에 있는 무사들을 불러 거느리고
순라청에 이르렀다.
홍달손이 이미 순라꾼을 매수해 놓은 후였다.
순라꾼들이 수양을 에워쌌다.
수양은 시재소로 갔다.
그는 내금위 봉석주에게 군사들을 뜰 가운데
배치시켜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그날 임직 승지는 최항이었다.
수양은 최항을 불렀다.
수양이 최항의 손을 덥썩 잡았다.
"최승지, 김종서가 반역을 꾀하여 내가 죽였소.
일이 몹시 화급하여
주상께 미리 알리지 못했소. 최승지가 고해 주시오."
최항은 몸을 떨었다.
이때 단종은 향교동 영양위 정종의 집에 있었다.
정종은 문종의 사위로 단종에게는 매부가 되었다.
최항에게 수양이 덧붙였다.
"김종서 일당은 영의정 황보인을 비롯하여
이양, 민신, 조극관, 윤처공,이명민, 원구, 조번 등이고,
이들이 함길도 절제사 이징옥, 종성부사
이경유ㅡ 평안도 관찰사 조수량, 충청도 관찰사
안완경과 결탁하여 임금이 어린 틈을 타서 사직을
도모하려고 했소.
또한 내관 김연, 한승도 그들과 한 패요.
적의 괴수는 이미 제거 했으나,
그 나머지도 주상께 아뢰어 신속하게 토벌해야 하오."
최항이 이 사실을 단종에게 알렸다.
단종이 궁궐로 들어오고 수양의 살생부에 오른
황보인 등이 죽었다.
단종은 궁궐에 들어와 수양을 보고 울며 매달렸다.
"숙부, 나를 살려 주시오."
"전하, 염려 마시옵소서."
수양은 명패를 내어 조정의 중신들을 대궐에
불러들였다.
명패란
위쪽에 '命' 자를 쓰고 붉은 칠을 한 나무패를 말한다.
임금의 명으로 3품 이상의 벼슬아치를 부를 때
이 패에 이름을 써서 불렀다.
수양은 궁궐을 세 겹으로 에워싸고,
한명회는 살생부를 가지고 문 안쪽에서 기다렸다.
여러 대신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째 문에서 들어오는 대신들의 하인들을 떼어버렸다.
둘째 문에서는 살생부에 쓰여 있는 인물이면
한명회의 지시를 받아 홍윤성, 유수 등이 쇠몽둥이로
잔인하게 죽였다.
황보인, 조극관, 이양 등 수양의 눈 밖에 난 중신들이
죽어 나갔다.
윤처공 등은 집으로 군사를 보내어 죽였고,
민신은 추적하여 제거하였다.
우의정 정분 등 지정, 조수량, 이석정, 안완경,
유중문 등은 귀양 보냈다가 단종에게 압력을 넣어
사사시켜 버렸다.
이때 죽은 신료들은 계룡산 동학사에 위패를 모셔
그들의 영혼을 달랬다.
절에 초혼적기에는 45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수양의 대권 야심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조정의
고귀한 대신들이 명분 없이 희생되었다.
이것은 수양의 쿠테타였다.
-조선왕조 야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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